끊을 수 없는 사랑

 

 

[로마서 9장 1-13절 말씀 묵상]

 

 

우리는 이미 로마서 8장 31-39절 말씀을 묵상하였습니다. 특히 저는 세 가지 확 신 중 마지막 세 번째 확신인 “사랑의 확신”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여러 분에게 38-39절 말씀을 나눴습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 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 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죽음조차도 저와 여러분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말씀 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오늘 본문인 로마서9장 1-3절을 읽으면서 우리는 그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는 바울의 마음을 좀 엿보는 것입니다. 그 한 예로 오늘 본문 로마서 9장 3절을 들 수 있습니 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 라도 원하는 바로라”.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는 이스라엘을 향한 바울의 마음이 “끊을 수 없는 사랑”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끊을 수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바울의 사랑은 곧 바울을 향한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바울은 하나님의 끊을 수 없는 사랑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고 있었던 것입 니다. 오늘 “끊을 수 없는 사랑”이란 제목 아래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바울의 끊을 수 없는 사랑의 마음을 묵상하는 가운데 우리 모두가 바울의 마음을 본받아 끊을 수 없는 사랑 으로 이웃 사랑하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길 기원합니다.

 

과연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바울의 끊을 수 없는 사랑의 마음은 어떠하였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바울의 끊을 수 없는 사랑의 마음에는

“큰 근심”(great sorrow)과 “그치지 않는 고통”(unceasing anguish)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9장 1-2절을 보십시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 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 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왜 바울은 마음에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 통이 있었습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한 마디로 말한다면, 이스라엘의 불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바울의 마음에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었던 이유는 그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인(3절)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하 심을 받기보다 오히려 행위로 말미암아(11절) 의롭다 하심을 얻고자 하였기 때문이었습니 다. 특히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을 알고 믿을 수 있는 특권을 가졌던 민족으 로서(4-5절) 그 특권을 누리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그의 마음엔 큰 근심과 그치지 아니하 는 고통이 있었습니다. 과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특권은 무엇이었습니까? 오늘 본문 로마서 9장 4-5절을 보면 바울은 한 6가지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특권을 말하고 있습 니다:

 

  • 첫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특권은 하나님에게 대하여 양자적 관계를 가졌었습 니다[(4절) “저희에게는 양자됨과”].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에게 대하여 양자적 관계를 가졌었습니다. 이것은 결코 그 민족 중 개개인에 대한 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 전체가 하나님 과의 관계에서 양장되었던 것입니다. 곧 이스라엘은 신정 국가였습니다. 이스라엘은 하 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백성들이였습니다(박윤선). 그런 면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특권을 누렸습니다.

 

  • 둘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특권은 하나님의 영광을 본 것입니다[(4절) “영광”].

 

예를 들어 출애굽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목격하고 경험한 하나님의 영광(하나 님께서 자기 자신을 나타내심)을 생각해 볼 때 참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특권을 누렸던 백 성들이었음을 우리는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 셋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특권은 “언약들”이었습니다[(4절) “언약들”].

 

여기서 언약들이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로 더불어 언약을 맺으신 것으로 아브라함 이후에도 거듭거듭 있었습니다(박윤선). 결코 이스라엘 백성들이 뭔가를 하나님 보시기에 잘해서 하나님께서 그들과 언약을 맺으신 것이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랑으 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큰 축 복이요 특권이었습니다.

 

  • 넷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특권은 “율법”을 받은 것이었습니다[(4절) “율법을 세우신 것”].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그 들에게 큰 영광입니다.

 

  • 다섯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특권은 “예배와 약속들”을 받은 것입니다[(4절)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오직 이스라엘 백성들만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 있는 특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만이 하나님의 약속들이 있었습니다.

 

  • 여섯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특권은 예수 그리스도가 육신으로는 그들에게서 나신 것입니다[(5절)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바울은 이러한 특권들(은혜들)을 가진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 고 또한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므로 말미암아 마음에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영혼 구원에 대한 간절한 마음 가운데 “큰 근심”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었지만 그 와중에서도 그의 마음 을 위로해 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바로 ‘폐하여질 수 없는 하나님의 언 약의 말씀’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6절을 보십시오: “또한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 진 것 같지 않도다 ….”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앙의 문제로 마음에 큰 근심과 그 치지 않는 고통이 있었지만 그는 그 와중에서도 결코 폐하여질 수 없는 하나님의 언약의 말 씀을 붙잡았습니다. 그 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9절을 보십시 오: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라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 니라”. 이 약속의 말씀은 오늘 본문 7절 하반절에 좀 더 구체적으로 나와 있습니다: “…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 이 말씀은 바울이 창세기 21장 12절 말씀을 인용한 것으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그의 여종 하갈의 소생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는 것을 보고(8절) 아브라함에게 와서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어 쫓으라 했을 때(10절) 아브라함이 “깊이 근심”하고 있는 중(11절) 그에게 임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이 약속의 말씀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입니다. 바울은 알고 있 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6 절하). 그리고 그는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 기심을 받”았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습니다(8절). 그러한 가운데 그는 하나님께서 끊을 수 없는 사랑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시사 그 중에 주권적으로 선택한 진정한 아브라함 의 씨가 있는 줄 믿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 진정한 아브라함의 씨를 하나님께서는 복 음으로 부르실 줄 믿었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을 의지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씨 중 이삭을 택하시 고 이스마엘은 택하지 않으셨습니다(7-8절).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삭과 리브가 사이에서 난 에서와 야곱 중 야곱은 택하시고 에서는 택하지 않으셨습니다(10-13절). 특히 야곱을 택하시고 예서를 택하지 않으셨음에 있어서 바울은 오늘 본문 11절에서 매우 중요한 말을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또한 저와 여러분에게 해주고 있습니다: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무슨 말씀입니까? 에 서와 야곱이 태어나기도 전에, 그들이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는 야곱 을 택하시고 에서를 택하지 않으셨다는 말씀은 사람의 선행이나 악행에 근거하여 하나님께 서 누구는 선택하셔서 복음으로 부르시사 예수님을 믿게 하시고 누구는 선택하지 않으셔서 믿음을 선물로 안주시고 그렇다는 말씀이 절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이스마엘이 아닌 이삭, 에서가 아닌 야곱을 선택하신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 안에서 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절대로 사람의 행위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불순종하고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진리를 모르고 선행으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고 있 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불신앙 가운데 있는 자신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마음에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끊을 수 없는 그 사랑으로 그의 형제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였습니다. 사랑하되 자기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언정 그의 형제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 그 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어 영생을 얻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3절). 물론 바울이나 예수님을 믿는 저와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사 선택하시고 복음으로 부르시고 의롭게 하신 하나님의 자녀들은 결국 영화롭게 하 실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자 작정하신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서는 결국 구원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나 예수님을 믿는 저와 여 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절대 끊어질 수가 없습니다. 그저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향한 자신의 사랑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상이지 실제적 가능성을 말 씀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박윤선). 바울은 자기가 그들 대신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 서 끊어질지라도 그는 그 정도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원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습니다.   이 러한 간절함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습니까? 특히 가족과 친척중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는 영혼들의 구원을 위하여 내 자신이 대신 저주를 받아 천국가지 못하고 지옥에 갈지라도 그 들이 구원받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은 1998년인가 아리조나 씨에라비스타 연합장로교회에서 제가 목사 안수를 받을 때 하나님께서 그 때 노회장이셨던 목사님을 통하여 저에게 주셨던 말씀입니 다. 그 말씀을 받은 후 지금까지 목사로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면서 저는 가끔 ‘과연 나에게 이러한 영혼 구원에 대한 간절함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제 자신에게 던질 때가 있 습니다. 특히 아직도 예수님을 모르고 방황하는 친구들을 생각할 때 저는 이 질문을 가끔 던졌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그러한 간절함이 제 마음에 없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 습니다. 결국 얼마 전에서야 그저 기도로만 모세가 하나님께 드렸던 기도를 드린 적이 있 었습니다: ‘하나님, 사랑하는 친구들의 영혼을 건져주세요. 그렇지 않으시려면 주님의 기록 하신 생명책에서 제 이름이 지워 버려 주세요’(출32:32). 기도를 드리면서도 한 쪽으로는 두려운 마음이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물론 생명책이 기록된 이름이 지워지는 않지만 이것 이 얼마나 쉽지 않은 기도요 두려운 기도인지 좀 느꼈습니다. 그런 와중에 드는 생각는 ‘내 생명이 오늘 끝날지라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그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원해 주신다면 나의 죽음은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 영혼 을 구원함에 있어서 여러분의 생명과 바꾸실 의향이 있습니까? 그 정도로 한 영혼을 사랑 하고 계십니까? 바라기는 하나님의 끊을 수 없는 사랑으로 바울처럼 큰 근심과 그치지 않 는 고통 중에 하나님께서 우리 삶 속에 보내주시는 예수님 믿지 않는 죽어가는 영혼들을 사 랑하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길 기원합니다.

 

 

 

하나님의 끊을 수 없는 사랑으로 영혼을 사랑하고 싶은,

 

 

제임스 김 목사 나눔

(사랑의 불타는 전도자와 위로자가 되게 해달라고 계속 하나님께 간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