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
[로마서 8장 18-25절 말씀 묵상]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 17장 “성도의 견인에 대하여”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 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용납하시고, 효과적으로 부르시고, 성령으 로 거룩하게 하신 자들은 은혜의 상태로부터 전적으로 또는 최종적으로 떨어져 나갈 수 없 고, 다만 끝까지 그 가운데 확실히 인내하여, 영원히 구원을 얻을 것이다”(인터넷). 이 교 리는 하나님이 그의 영원한 섭리에 의해 선택하고 성령으로 거듭나게 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보호받기 때문에 결코 하나님 자녀의 신분을 잃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 들은 양자됨의 자격을 잃지 않고 의인의 신분을 빼앗기지 않으며, 영혼이 멸망되는 일은 없 다는 말입니다(요10:27-29; 롬8:35-39; 빌1:6). 이에 대한 신약성서의 근거 중 요한복음 10장28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 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한 번 얻은 구원은 결코 빼앗기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사 선택한 자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값없이 주시고 변하지 않는 사랑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선택 작정의 불변성에 의”하여 끝까지 인내하여 영원히 구원 을 얻게 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단과 세상의 유혹, 자기 안에 남아있는 부패의 만 연함, 자기를 보호 하시는 방편들에 대한 게으름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극악한 죄에 빠지기 도 하고, 잠시 그 가운데 머물러 있기도 합니다. 그로 인해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초래 하고, 그분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고, 자기의 은혜와 위로를 어느 정도 빼앗기게 되고, 자기 마음이 굳어지고, 자기 양심이 훼손되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모욕하고, 자기 스스로 에게 일시적인 징계를 초래합니다(인터넷).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의 변하지 않은 사랑과 선택 작정의 불변성에 의하여 저와 여러분도 하여금 장차 나타날 영광에 들어가게 하실 것 입니다. 그 때까지 우리는 환난 가운데서도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인내하며 견뎌야 합니 다.
오늘 본문 로마서 8장 18절에서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한 3 가지로 묵 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우리에게 장차 나타날 영광은
현재 우리가 받는 고난과 족히 비교 할 수 없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8장 18절을 보십시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현재의 고난”이란 하 나님의 자녀이자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해서 함께 받아야 할 고난을 가리킵니다(17절). 그러면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받아야 하는 고난은 무 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핍박”입니다(마5:10-12, 요15:21, 딤후3:12). 예수님 때문에 우 리가 받는 핍박이 바로 예수님과 함께 저와 여러분이 받아야 할 고난입니다. 예를 들어, 그 핍박이란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 것(요15:18-21), 우리가 예수님 때문에 세상 사람들에게 “욕”을 먹는 것(마5:11),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거스려 거짓으로 말하는 모든 악한 말들’(11절) 등을 가리킵니다. 왜 이러한 고난을 하나님의 자녀들인 저 와 여러분이 받아야 합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 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 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 15:19). 즉, 우리가 고난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우리가 세상에 속하지 않고 도리어 세상에서 하나님께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고난을 받아야 할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하 나님의 자녀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이기에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롬8:16-17). 이러한 현재의 고난이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 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18절). 왜 바울은 이렇게 편지를 로마 성도들에게 쓰고 있는 것입 니까? 그 목적은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은 여기서 고난과 영광의 가치 있음(worthiness) 을 비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장차 나타날 영광의 크기와 비교하므로 십자가의 무거움을 가볍게 하므로 신실한 성도들의 마음으로 하여금 인내하게 하고자 비교하고 있는 것입니다 (칼빈).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도 예수님으로 인해 고난을 당할 때에 십자가의 무거움을 장 차 분명히 나타날 영광을 바라보므로 말미암아 가볍게 될 수 있길 기원합니다.
둘째로, 우리에게 장차 나타날 영광은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8장 21절을 보십시오: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 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장자 나타날 영광을 바라보면서 현재의 고난을 인내하며 견 디길 권면하면서 오늘 본문 19절에 와서는 피조물의 간절한 고대하는 바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피조물”이란 인간을 제외한 세계의 만물들로서 바울은 이 피조물이 간 절히 고대하는 바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입니다. 왜 피조물들은 하나님 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을 학수고대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될 때에 피조물들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될 것이기 때 문입니다(21절). 이것은 마치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하나님의 자녀들인 저와 여러분이 죄와 죄의 영향들에서 완전히 해방되듯이 세계 만물들(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될 것임을 말합니다. 첫째 아담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결국 모 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사망에 이르게 된 것처럼(5:12) 피조물 또한 한 인간의 범죄로 인하 여 저주를 받았습니다. 창세기 3장17절 하반절부터 18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 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간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 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 첫째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은 피조물들, “허무 한데 굴복하”여(20절) 쇠하며 부패해지는 가운데 모든 만물들이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 고 있습니다(22절). 그러한 탄식과 고통 중에서도 피조물들이 간절히 고대하는 것이 있으 니 그것은 예수님 다시 오시는 날 주님께서 “만물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계21:5). 더 이상 만물은 첫째 아담의 저주 아래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 저주에서 해방되어 그 때에는 더 이상 썩어짐의 종노릇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소망을 가지고 피조물들은 탄식하며 고통 중에서라도 견디고 인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피조물들(세계 만물들)만의 소망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만물을 새롭게 하실 때에 피조물들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 들인 저와 여러분이 죄의 결과인 사망에서 해방되어 더 이상 죽음의 종노릇을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죄에서 온전히 자유를 누릴 뿐만 아니라 죄의 영향인 사망으로부터 영원 히 자유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분적으로나마 우리고 현재 누리고 있는 “하 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의 권면대로 현재의 고난과 족 히 비교할 수 없는 장차 나타날 영광을 바라보면서 현재의 고난을 인내하며 견뎌야 합니다.
마지막 셋째로, 우리에게 장차 나타날 영광은 바로 “우리의 몸의 구속”입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8장 23절을 보십시오: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 라.” 모든 세계 만물들만 탄식하며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까지도 속으로 죄로 인하여 탄식하며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립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 다시 오실 때 우리가 죄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양자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는 “우리 몸의 구속”인 부활의 영광을 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들인 저와 여 러분이 장차 누릴 영광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롬5:2). 저와 여러분이 소망 하는 “하나님의 영광”이란 예수님 재림하시는 날 우리가 홀연히 변화되어(고전15:51) 더 이 상 욕되지 아니하고(43절), 약하지 않으며(43절), 썩지 아니하고 죽지 아니하는(54절) “영광 의 몸의 형체”를 입을 것(빌3:21)을 가리킵니다. 이것을 사도 베드로는 “신의 성품”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벧후1:4). 바로 저와 여러분의 확실하고 즐거운 소망은 하나님이신 예수 님의 성품에 온전히 참예하는 것입니다. 이미 내주하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심을 받는 우리는 예수님의 성품에 참예하도록 우리를 거룩하게 성화시켜 주고 계십니다. 비록 지금은 온전하지 않지만 예수님 재림하시는 날 우리는 온전히 주님의 성품에 참예하게 될 것입니다. 이 확실하고 즐거운 소망을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 분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족히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 부활의 영광을 소망하며 바라보는 저와 여러분 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은 것처럼 믿음으로 바라는 가운데 참 고 기다려야 합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8장 24-25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 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 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우리는 “이미”(Already)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모든 죄 사함 받고 의롭다 하심을 받아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럼에 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썩어짐의 종노릇하는 세상에 살아가면서 죄와 더불어 싸우면서 죄와 그의 영향인 죽음으로 인하여 탄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아직 도”(Not-yet) 구원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아직도 영화롭게 되지 못했기에 이 광야와 같은 세상에 살아가면서 바울처럼 내적 싸움, 영적 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롬7장). 그러나 예수님 이 땅에 다시 오실 때 우리는 영화롭게 되어 더 이상 영 적 싸움을 할 필요도 없게 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에 온전히 참예하 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현재의 고난 중에서도 장차 나타날 이 하나님의 영광, 부활의 영광을 바라보는 가운데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 모두 인내하고 견 디십시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길 기원합니다.
장차 나타날 영광을 바라보면서,
제임스 김 목사 나눔
(참고 견디며 기다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