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진 자” (1)

 

 

[로마서 8장 12-17절 말씀 묵상]

 

 

여러분은 “빚진 자”하면 무엇이 생각나십니까? 우리는 주로 “빚진 자”하면 돈을 빌려서 갚아야 할 처지에 있는 사람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한 예로 우리는 성경 마태복음18장24절을 들 수가 있습니다. 어떤 한 임금이 그의 종들과 회계할 때 일만 달란 트 “빚진 자” 한 사람이(24절) 갚을 것이 없어(25절) 그 임금 앞에 엎드려 절하며 “내게 참 으소서 다 갚으리이다”(26절) 하였을 때 그 종의 주인이 그를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다 탕감하여 주었습니다(27절).  그런데 이 일만 달란트 빚을 탕감 받는 종이 자기에 게 백 데나리온 빚진 또 다른 종을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 빚을 갚으라”(28절)하면서 그 다른 종이 “엎드리어 간구하여 … 나를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29절) 했을 때 탕감해 주기는커녕 빚을 갚도록 옥게 가두었습니다(30절). 그 때 이 다른 종이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고하였습니다(31절). 주인이 자기에게 빚을 탕감 받은 종을 불러다가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32-33절)하고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 종을 옥졸들에게 붙혔습니다(34절). 이 비유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 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35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모든 죄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 용서해 주셨듯이 우리도 서 로 용서의 삶을 살라는 교훈입니다.

 

우리는 빚진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의 모든 죄를 다 용서(탕감)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흘리신 보배로운 피로 우리의 원죄, 과거의 죄, 현 재의 죄 그리고 앞으로 지을 모든 죄까지도 다 용서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 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같이 우리도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하며 살아가야 합니 다. 그런데 왜 우리는 용서하지 않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우리에게 빚진 자 사상이 결핍되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우리는 빚진 자 사상이 더욱더 뚜렷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거룩하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우리의 죄가 더욱더 들춰질 것이요, 우리의 죄가 들춰지면 들춰질 수록 우리는 예수 십자가의 흘리신 보혈의 필 요성을 더욱더 절실히 느낄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받으 면 받을수록 우리는 더욱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깊이 들어갈 것입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의 빚진 자 사상은 더욱더 뚜렷해질 것입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찬송가410장, 1절)라고 찬양하지 않 을 수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이 은혜에 깊이 들어가지 못하기에 우리의 빚진 자 사상이 부족하고, 이 빚진 자 사상이 부족하므로 우리는 ‘그래도 내가 좀 쓸모가 있지’라고 생각하 는 것입니다. 아무 쓸데없고 쓸모없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그의 전적인 은혜로 사용하시고 계시는 것인데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베 풀어 주시는 은혜에 더욱더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빚을 얼마나 탕감해 주셨는지를 더욱더 깨달아 가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빚진 자 답게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빚진 자 답게 살라는 교훈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8장 12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여기서 “빚진 자”란 헬라어 원어로는 “채무 자”(a debtor)란 말입니다. 이 “채무자”란 단어에는 가능성 있는 두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돈을 빚진 자’란 의미요 또 다른 의미는 오늘 본문에 적용되는 ‘의무가 있는 자’란 뜻입니 다. 그래서 영어로는 “we are under obligation”(우리에게는 의무가 있습니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한 마디로, “빚진 자”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로서(1절) ‘의무를 가진 자”(갈 5:3)를 가리킵니다. 이 단어는 이미 바울이 로마서1장14절에서 사용하였습니다: “헬라인 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래서 바울은 빚진 자로서 그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의무인 복음 전파에 힘을 쓰고 있었기에 로마에 까지 가서 복음 전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15절). 그리고 그는 고린도전서9장16-17절에서 이렇게 말 하였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내가 내 임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 으려니와 임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직분을 맡았노라”. 오늘 본문 로마서 8장 12절 에서 바울은 로마 성도들이나 저와 여러분이 빚진 자들로서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교 훈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중심으로 빚진 자들로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 2 가지 중 우선 하나만 생각하고자 합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빚진 자 답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빚진 자들로서 육신대로 살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8장 12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여기서 바울이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고 말한 것을 보면 지금 그는 로마서 7장에서 말하였던 내적 싸움 또는 영 적 싸움을 생각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즉, 바울은 “내 속 사람으로는 하 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라고 말했듯이(7:22-23절) 지금 그는 영적 싸움에서 육신이 좇는 죄의 법에게 저셔 “육신대로” 살아서는 안 된다고 권면하 고 있습니다. 왜 그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우리가 “육신대로 살면 반 드시 죽을 것”이기 때문입니다(13절). 우리가 이미 묵상했듯이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생각하는데(5절) 그 육신의 생각의 결말은 “사망”입니다(6절). 그러므로 바울은 로마 에 있는 성도들에게 육신대로 살면 그 결말은 사망이기에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지 말 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육신대로 사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을 말합니까? 한 마디로 말한다면, 육신대로 사는 것은 죄를 지면 사는 것을 말합 니다. 그리고 죄를 지면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법(계명, 말씀)에 불순종하면서 사는 것을 가리킵니다. 예를 들어 육신대로 사는 것은 하나님의 법인 ‘하나님 사랑하라, 이웃 사랑하 라’는 예수님의 최대의 두 계명에 불순종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세상을 사랑하며, 이 웃을 사랑하지 않고 오히려 이웃을 미워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죄를 짖 는 삶입니다. 어떻습니까? 이 말씀을 들으면서 ‘아 내가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고 있 구나’라는 생각이 드십니까? 아니면 ‘나는 내적 싸움에서 육신에게 이겨서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 안에는 두 종류의 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 마음이 좇는 하나님의 법이요 또 다른 하나는 우리 육신이 좇는 죄의 법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고 있습니다(7:25). 지금 이 두 법이 우리 안에서 싸우고 있습니다(22-23절). 그런데 문제는 이 두 법이 우리 안에서 충돌하여 서로 싸우는 가운데 우리가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사는 것입니다.   결코 이렇게 살기를 원하는 그리스도인은 한명도 없을 것입니다.   만일 저와 여러분이 참된 성도라면 결코 육신 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고 싶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왜 우리는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때가 있는 것이냐 는 것입니다. 왜 우리는 영적 싸움에서 져서 죄책감 속에 허덕이면서 괴로워하는 것입니까? 왜 우리는 자꾸만 죄와 싸워 져서 패배의 식 속에서 자꾸만 자신에게 ‘안된다’, ‘나는 결코 이 죄와 싸워 이길 수가 없다’는 생각으로 사는 것입니까? 그 원인이 무엇입니까? 그 원인은 우리가 성령 충만하지 못해서 그렇습 니다. 성령 충만함은 무엇입니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 충만함을 성령의 은사나 기 적 행함 또는 열광적인 기도의 몰입이나 황홀경의 체험 등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 러나 그것이 성령 충만함이 아닙니다. 성령 충만함이란 하나님의 영 또는 그리스도의 영으 로 충만케 된 상태를 말합니다. 그 그리스도의 영에 의해 지배를 받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의 지배를 받는다면 그리스도의 말씀(계명)에 순종하며 그 말씀에 이끌리면 살아갑니다.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은 주님께 온전히 복종하며 살아갑니다. 주님과 친밀 한 교제 가운데 들려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온전히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삶이 바로 성령 충만한 삶입니다. 이렇게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서 살아갑니다(13절). 무슨 말씀입니까?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은 하 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아(14절)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의 법(계명)에 순종 하면서 살아갑니다. 결코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은 죄의 종으로서 죄의 법에 순종하면서 지속적으로 똑 같은 죄를 반복적으로 지으면서 살아가지 않습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을 가리켜 성경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14절).

 

빚진 자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영인 성령님으 로 인도함을 받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리스도인은 결코 육신대로 살 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서 살아갑니다. 우리 모두 빚진 자 답게 살아가십시다.

 

 

 

빚진 자,

 

 

제임스 김 목사 나눔

(빚진 자 사상을 추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