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복
[로마서 8장 1-2, 14-18절 말씀 묵상]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복 중 오늘 본문 로 마서 8장 1-2절과 14-18절에 나타난 3 가지 복을 이렇게 수요기도회 때 저희 교회 원로 목사님을 통하여 말씀을 들은 후 다시금 묵상하면서 적어내려 갑니다. 그 3 가지 복은 과 거의 복, 현재의 복, 그리고 미래의 복입니다.
첫째로, 과거의 복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에게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8장 1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 함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정죄함”이라는 단어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그 단어의 헬라 원어인 “카타크리마”는 법정 용어로서 유죄 판결을 가리킵니다. 저와 여러분은 창세기에 나오는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정죄를 받았던 사람들입니다(5:16, 18). 다시 말하면, 아담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그의 죄 가 모든 인류의 사람들에게 전가되어(12절) 우리 모두는 죄 가운데 태어나 죄를 지며 살아 가므로 말미암아 법정에서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유죄판결을 내려 결국 영 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21절). 그러나 둘째 또는 마지막 아담이 되시는 예수님의 십 자가의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믿는 모든 자들은 이제 의롭다하심을 받 았습니다(16절). 즉, 예수님의 의가 예수님을 믿는 저와 여러분에게 전가되어 하나님이 보 시기에 우리는 의인이 된 것입니다(19절).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어 의인이 된 저와 여러분 은 결코 유죄 판결을 받을 수 없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왜 예수님을 믿는 저와 여러분 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까? 그 이유를 바울은 이렇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2 절).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결코 정죄함이 없는 구체적인 이유는 바로 저와 여러분이 죄 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죄 의 종으로서(6:17) 우리의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하나님께 범죄하므로 결국 사망에 이 를 수밖에 없었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고 나서는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 라 의의 종이요 사망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영생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 수님을 믿고나서 부터는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 하나님께서는 오직 죄와 사망을 생산하는 법을 새로운 법으로 대치하신 것입니다. 그 새로운 법이란 바로 “생명의 성령의 법”(8:2) 입니다. 여기 두 법의 핵심은 죄와 사망의 법은 인간 공로에 근거하고 있으며 성령님의 법 은 바로 은혜에 근거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유대인들은 율법을 철저 히 지키므로 말미암아 인간의 공로로 자기들이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고자 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행함의 법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로마서3장27절을 보면 바울은 “믿음의 법”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은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의롭다하심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믿음의 법은 바로 은혜의 법입니다. 그 이유는 믿음조차도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믿음의 법은 “성령의 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2절). 그 이유는 성령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깨닫게 하시므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 과 구주로 영접케 (믿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저와 여러분은 영원한 생명을 얻었 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저와 여러분이 과거에 받은 복입니다.
둘째로, 현재의 복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8장 14절을 보십시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 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들입 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은 우리 안에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부은바 되었 습니다(5:5).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 았으므로 하나님에게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8:15). 내주하시는 성령님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십니다(16절). 우 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상속자입니다(17절).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영으 로 인도함을 받고 있습니다(14절). 지금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좁은 길로 인도하고 계십니 다. 비록 지금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은 모든 사람들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큰 문으로 들 어가 넓은 길을 걷고 있지만 양자의 영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는 성령님의 인도하 심 따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 지금 좁은 길을 걷고 있습니다(마7:13, 눅13:24). 그 좁은 길 은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입니다. 그 좁은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 좁은 길은 고난 의 길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지금 우리를 예수님과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게 하고 계십니다(롬8:17).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빌립보서 1장 29절을 보십시 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믿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님을 위하여 고난을 받지 않 을 뿐만 아니라 받을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을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이 은 혜인 줄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어 영원한 생명을 얻은 우리들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임을 알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인 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처럼 그리스도의 고 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할 뿐만 아니라(빌3:10) 실제로 그 고난에 참여하므로(고후1:7) 우리 몸에 예수님의 흔적을 지니길 원하고 있습니다(갈6:17).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습니다(딤후1:8). 또한 우리는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 습니다(벧전2:20).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고난을 받습니다(살후1:5). 우리가 고 난을 받을 때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지만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도 우시사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고 계십니다(롬8:26). 그러므로 성령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받는 고난을 견디게 하십니다(고후1:6). 더 나아가서, 성령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즐거워하게 하십니다 (벧전4:13).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저와 여러분이 현재 누리고 있는 복입 니다.
마지막 셋째로, 미래의 복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 광입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8장 18절을 보십시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 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여기서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는 “현재의 고난”이란 하나님의 자녀이자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해서 함께 받아야 할 고난을 가리킵니다(17절). 그러면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받아야 하는 고난은 무 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핍박”입니다(마5:10-12, 요15:21, 딤후3:12). 예수님 때문에 우 리가 받는 핍박이 바로 예수님과 함께 저와 여러분이 받아야 할 고난입니다. 예를 들어, 그 핍박이란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 것이요(요15:18-21), 우리가 예수님 때 문에 세상 사람들에게 “욕”을 먹는 것이요(마5:11),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거스려 거짓으로 말하는 모든 악한 말들’(11절) 등을 가리킵니다. 왜 이러한 고난을 하나님의 자 녀들인 저와 여러분이 받아야 합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하 고 있습니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요15:19). 즉, 우리가 고난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우리가 세상에 속하지 않고 도리 어 세상에서 하나님께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고난을 받아야 할 이유 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그리스 도와 함께한 후사이기에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합니다(롬 8:16-17). 이러한 현재의 고난이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 (18절). 왜 바울은 이렇게 편지를 로마 성도들에게 쓰고 있는 것입니까? 그 목적은 무엇 입니까? 죤 칼빈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는 여기서 고난과 영광의 가치 있음 (worthiness)을 비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장차 나타날) 영광의 크기와 비교하므로 십자가 의 무거움을 가볍게 하므로 신실한 성도들의 마음으로 하여금 인내하게 하고자 비교하고 있 는 것입니다’(칼빈).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으로 인해 고난을 당할 때에 십자가의 무거움 을 장차 분명히 나타날 영광을 바라보므로 말미암아 가볍게 여길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현재 우리의 고난과 비교할 수 없는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은 무엇입니까? 한 2 가지 로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 우리에게 장차 나타날 영광은 바로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성경 로마서 8장 21절을 보십시오: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장자 나타날 영광을 바라보면서 현재의 고난을 인내하며 견디길 권면하면서 19절에 와서는 피조물의 간절한 고대하는 바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 서 “피조물”이란 인간을 제외한 세계의 만물들로서 바울은 이 피조물이 간절히 고대하는 바 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 피조물들은 하나님 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을 학수고대하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 의 영광에 참여하게 될 때에 피조물들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될 것이기 때문입니 다(21절). 이것은 마치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하나님의 자녀들인 저와 여러분이 죄와 죄의 영향들(effects)에서 완전히 해방되듯이 세계 만물들(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될 것임을 말합니다. 첫째 아담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결국 모 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사망에 이르게 된 것처럼 (5:12) 피조물 또한 한 인간의 범죄로 인 하여 저주를 받았습니다. 창세기 3장17절 하반절-18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 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간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 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 첫째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은 피조물들, “허무 한데 굴복하”여(20절) 쇠하며 부패해지는 가운데 모든 만물들이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 고 있습니다(22절). 그러한 탄식과 고통 중에서도 피조물들이 간절히 고대하는 것이 있으 니 그것은 예수님 다시 오시는 날 주님께서 “만물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계21:5). 더 이상 만물은 첫째 아담의 저주 아래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 저주에서 해방되어 그 때에는 더 이상 썩어짐의 종노릇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소망을 가지고 피조물들은 탄식하며 고통 중에서라도 견디고 인내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결코 피조물들(세계 만물들)만의 소망 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만물을 새롭게 하실 때에 피조물들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인 저와 여러분이 죄의 결과인 사망에서 해방되어 더 이상 죽음의 종노릇을 하지 않게 될 것입 니다. 우리는 죄에서 온전히 자유를 누릴 뿐만 아니라 죄의 영향인 사망으로부터 영원히 자유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분적으로나마 우리고 현재 누리고 있는 “하나 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의 권면대로 현재의 고난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 장차 나타날 영광을 바라보면서 현재의 고난을 인내하며 견뎌야 합니다.
- 우리에게 장차 나타날 영광은 바로 “우리의 몸의 구속”입니다.
성경 로마서 8장 23절을 보십시오: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모든 세계 만물들만 탄식하며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까지도 속으 로 죄로 인하여 탄식하며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립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 다시 오실 때 우 리가 죄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인 부활의 영광을 누릴 것 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들인 저와 여러분이 장차 누릴 영광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롬5:2). 저와 여러분이 소망하는 “하나님의 영광”이란 예수 님 재림하시는 날 우리가 홀연히 변화되어(고전15:51) 더 이상 욕되지 아니하고(43절), 약 하지 않으며(43절), 썩지 아니하고 죽지 아니하는(54절) “영광의 몸의 형체”를 입을 것(빌 3:21)을 가리킵니다. 이것을 사도 베드로는 “신의 성품”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벧후1:4). 바로 저와 여러분의 확실하고 즐거운 소망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성품에 온전히 참예하는 것입니다. 이미 내주하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심을 받는 우리를 예수님의 성품에 참예하도록 우리를 거룩하게 성화시켜 주고 계십니다. 비록 지금은 온전하지 않지만 예수 님 재림하시는 날 우리는 온전히 주님의 성품에 참예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 스도 예수 안에 있는 저와 여러분이 장차 누릴 복입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복 받은 자,
제임스 김 목사 나눔
(수요기도회 때 원로 목사님을 통하여 말씀을 받은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