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
[로마서 8장 1-11절 말씀 묵상]
여러분이 좋아하는 찬송가나 복음성가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 찬송 가나 복음성가를 좋아하시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주위에 사랑하는 형 제, 자매들이 힘든 일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 그 형제, 자매들에게 복음성가 “이 믿음 더욱 굳세라”라는 복음성가의 2절 가사를 인용하여 권면하곤 합니다: “주님이 뜻 하신 일 헤아리기 어렵더라도 언제나 주 뜻 안에 내가 있음을 아노라.” 이 얼마나 큰 위 로와 힘이 되는 가사인지 모르겠습니다. 비록 주님이 뜻하신 일 헤아리기 어렵더라도 내가 언제나 주님의 뜻 안에 있다는 사실에 전 개인적으로 힘을 얻고 위로받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저는 오늘 본문 로마서8장1절 에서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는 “그리 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이란 말씀 속에서 좀 곰곰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과연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는 말씀은 무슨 뜻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그 뜻을 깨닫 고자 여기 저기 주석들과 더불어 이미 묵상한 로마서를 뒤돌아보았습니다. 그 뜻은 한 마 디로 요약한다면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하였다’는 뜻입니다(6:5). 즉,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는 말씀은 ‘내가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하였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 예 수와 연합하였다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그 뜻은 우리가 예수님과 “합하여”(3절) 예수님 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을 때 우리의 옛 사람도 십자가에 죽었고(6절) 예수님께서 죽 음에서 다시 살아 나셨을 때 우리도 함께 다시 살아나서 새 사람이 된 것을 의미합니다 (1-11절).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은 예수님의 죽으심이 우리의 죄 값인 죽음을 대신하고, 예수님의 부활하심은 우리의 부활을 성립시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8장1-11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한 마디로 ‘여러분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입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 다. 그러면 여기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이란 어떠한 자들입니까? 한 3 가지로 오늘 본문 중심으로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정죄함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8장 1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여기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이제 정죄 함이 없다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죄함”이라는 단어의 뜻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 단어의 헬라 원어인 “카타크리마”는 법정 용어로서 유죄 판결을 가리킵니다(박윤선). 우리는 창세기에 나오는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정죄를 받았던 사람들입니다(롬5:16, 18). 다시 말하면, 아담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그의 죄가 모든 인류 의 사람들에게 전가되어(12절) 우리 모두는 죄 가운데 태어나 죄를 지며 살아가므로 말미암 아 법정에서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유죄판결을 내려 결국 영원히 죽을 수밖 에 없었습니다(21절). 그러나 둘째 또는 마지막 아담이 되시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의 죽으시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심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믿는 우리 모든 이 에게 이제 의롭다하심을 얻게 하셨습니다(16절). 즉, 예수님의 의가 예수님을 믿는 저와 여러분에게 전가되어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는 의인이 된 것입니다(19절). 그러므로 예수 님을 믿어 의인이 된 저와 여러분은 결코 유죄 판결을 받을 수 없습니다. 왜 예수님을 믿 는 저와 여러분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는 것입니까? 그 이유를 바울은 오늘 본문 2절에 서 이렇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정죄함이 결코 없는 구체적 인 이유는 바로 저와 여러분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죄의 종으로서(6:17) 우리의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하나 님께 범죄하므로 결국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었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고 나서는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라 의의 종이요 사망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영생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믿고나서 부터는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 하나님께 서는 오직 죄와 사망을 생산하는 법을 새로운 법으로 대치하신 것입니다. 그 새로운 법이 란 바로 “생명의 성령의 법”(8:2)입니다. 여기 두 법의 핵심은 죄와 사망의 법은 인간 공 로에 근거하고 있으며 성령님의 법은 바로 은혜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유대 인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므로 말미암아 인간의 공로로 자기들이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고자 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행함의 법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로마서3장 27절을 보면 바울은 “믿음의 법”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은 우리는 오직 예 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의롭다하심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믿 음의 법은 바로 은혜의 법입니다. 그 이유는 믿음조차도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기 때문입 니다. 그리고 이 믿음의 법은 “성령의 법”입니다(8:2). 그 이유는 성령님께서 우리로 하여 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깨닫게 하시므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과 구주로 영접케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저와 여러분은 영원한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하게 된 것입니까? 어떻게 저와 여러분은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이 된 것입니까? 오늘 본문 로마서 8장 3-4절을 보십시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 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 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저와 여러분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이 된 것은 바로 하나님이 하셨습니다(3 절). 결코 우리가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연약하여”(3절) 절대 우리 스스로 죄와 사망 의 법에서 우리 자신을 해방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율법으로 말미암아서 정죄를 면할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부패한 인간성(“육신”이란 뜻)은 율법을 실행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박윤선).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율법으로는 죄의 형벌을 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맥아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독생 자 예수님을 보내주시사 그로 하여금 우리의 죄를 취급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셨습니다. 죄도 없으신 예수님을 마치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이 땅에 보내사 십자가 의 못 박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대신하여 정죄를 받으신 것입니다(박윤선). 그 결 과 예수님을 믿는 저와 여러분, 성령님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셨습 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 같은 죄인들을 대신하여 그 육신에 정죄를 받은 결과, 우리는 객관적으로는 아무 공로 없이 의롭다하심(칭의)를 받았습니다. 즉,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우리는 의롭다 하심을 받아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둘째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은 영을 좇아 행하는 자들입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8장 4절을 보십시오: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 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 그리스도 죄인들을 대신하여 그 육신의 정죄를 받으시므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은 우리 성도들은 결코 정죄함이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는 더 이상 육신을 좇지 않고 영을 좇아 행합니다. 여기서 육신을 좇지 않고 영을 좇아 행한다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한 마디로, 예수님 믿어 새 사람(새 피조 물)이 된 성도(신자)들은 자신의 부패한 인간성을 좇아 옛 사람의 죄악된 삶의 스타일로 살 아가지 않고 오히려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영”(9절), “그리스도의 영”(9절), 즉 성 령님을 좇아 행한다는 말씀입니다. 비록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 옛 사람들로서 육신의 일을 도모하면서 우리가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추구하며 부패한 삶과 불법을 행하며 살았지만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새 사람이 되어선 더 이상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더 이상 우리는 육신의 생각을 하면서(6절) 육신의 일을 좇아(5절) 살아가서는 안 됩니다. 그 이유는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기 때문입니다(7절). 육신의 생각 은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만 아니라 할 수도 없습니다(7절). 이것이 결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의 삶이 아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의 삶은 “하나님 의 영”, “그리스도의 영”이신(9절) 성령님을 좇아 행하며 살아갑니다. 이러한 삶은 어떠한 삶입니까? 그 삶은 “생명의 성령의 법”에 순종하는 삶입니다(2절). 또 달리 말한다면, 성 령님을 좇아 행하는 삶은 “하나님의 법”(7절)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삶을 가리킵니다. 이렇 게 우리가 하나님의 법, 성령의 법에 순종하며 살아가기 위해선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 까? 우리는 “영의 일을 생각”해야 합니다(5절). 다시 말하면, 우리가 성령의 법에 순종하 며 살아가기 위해선 성령님의 일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성령님의 일을 사모하며 추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님의 일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 로 “하나님의 뜻”을 가리킵니다. 성경 로마서 8장 27절을 보십시오: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 라”. 이 말씀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어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좇아 행하는 삶, 즉 성령님의 일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임 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즉, 우리 성도들이 영을 좇아 산다는 것은 성령님을 좇아 사는 삶이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 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삶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로마서 8장 6절을 보십시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6절). 예수님을 믿기 전에 육신 의 생각을 하며 육신의 일을 도모하며 육신을 좇는 삶의 결과는 사망이지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저와 여러분은 성령님을 좇아 행하며 살아갈 때에, 즉 하나님의 뜻을 사모하며 그 뜻대로 살아가길 사모하며 그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때에 그 결과는 바로 “생명과 평 안”입니다. 어떻습니까? 과연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영생)과 평안을 누리시며 살아가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성령님을 좇아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영생)과 평안함이 여러분 안에 없다면 그 원인은 바로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고 있지 않다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저와 여러분이 성령님을 좇아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드리고 있다면 분명히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8절).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나서도 육신을 좇아 행하며 자기의 몸의 사욕과 정욕대로 부패와 불법을 행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러나 만일 저와 여러분이 선으로 악을 이기듯이 성 령 충만하여 성령님의 지배를 받으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므로 육신의 정욕 을 이겨 나아가는 삶을 살면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드리는 자를 가리켜 성경은 “그리스도의 사람”, 즉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신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9절).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저와 여러분 이 바로 “그리스도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을 좇아 살아가야 합니다. 결코 우리는 육신을 좆아 부패한 인간성의 지배를 받아 죄악된 삶을 살아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사모하여 그 뜻을 추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 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셋째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부활의 소망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8장 11절을 보십시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 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 게 이 로마서 편지를 쓰면서 분명히 여기 11절에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 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영”은 “하나님의 영” 또는 “그리스 도의 영”이신 우리 신자들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을 가리킵니다(9절). 이 성령님은 바로 예 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영입니다. 즉,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은 “부활의 영” 이라 말입니다. 이 부활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듯이 우리의 죽을 몸도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몸은 언젠가 는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라고 말 씀하고 있습니다(히9:27). 그러기에 성경 전도서7장2절에서 ‘모든 사람의 결국이 죽음이기 에 산 자가 이 사실에 유심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몸은 언젠가는 죽겠 지만 우리에게는 분명하고 확실한 소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부활의 소망입니다. 예 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셨던 것처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우리도 또한 몸이 죽은 후 예수님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 우리는 부활할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어떻 게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까? 바로 예수님을 부활시키신 성령님께서 예수님을 믿는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부활의 성령님께서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고 성경은 분명히 그리고 명백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롬8:11). 예수님을 죽음에서 다시 살게 하신 성령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죽을 몸도 다시 살게 하실 것입니다. 이미 영원히 죽 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로서 육신의 생각 속에서 육신을 일을 추구하면서 죄악 가운데 살았 던 우리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말미암아 예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인 복음을 듣 고 믿게 하시므로 말미암아 죄와 허물로 죽었던 저와 여러분을 다시 살게 하시사 새로운 피 조물이 되게 하신 성령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우리 안에 거하시사 예수님 다 시 오시는 날 우리의 죽을 몸도 다시 살게 하시사 영광스러운 영적인 몸을 입고 영원한 천 국에서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
제임스 김 목사 나눔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