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의 작용

 

 

[로마서 7장 7-13절 말씀 묵상]

 

 

혹시 여러분 가주 교통법 중 하나인 D.U.I. 즉 Driving Under Influence(음주운전)에 대 해서 아십니까? 이 법은 술은 마신 후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8% 이상일 때 적용이 되는 법이라고 합니다. 만일 술을 마신 후 알코올 농도가 0.08% 이상일 경우 취한 상태에서 운 전 하다가 적발되면 벌을 받게 된다고 합니다. 그 벌칙이란 예를 들어 1. 48시간에서 6개 월까지 구류에 처해 지며, 2. 6개월까지 차량을 압류할 수 있고, 3. 6개월 까지 운전면허를 정지 시킬 수 있으며 … 등등(인터넷). 전에는 음주운전으로 적발되면 그 기록이 7년이었 는데 이젠 10년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10년 안에 음주운전으로 두 번 걸리면 재범 때는 가중처벌을 받게 된다고 합니다.   아마 감옥까지 갈 수도 있다고 합니다.   잘은 모르지만 이 D.U.I. 교통법이 점점 더 엄격해 지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많은 사람들이 음주 운전 사 고 사망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미국에는 “Mothers Against Drunk Driving (MADD)”(음주운전 반대 어머니회)라는 그룹이 있습니다. 1980년에 어린 딸이 음주 운전 때문에 사망한 한 어머니의 노력으로 출범한 이 단체는 “음주운전 철폐를 위한 정책개발과 행동강령, 시민 캠페인을 조직해서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큰 음주 운전 반대조직으로 활동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조직에서 시도한 것 중에 하나가 바로 “Don’t Drink Drive”(음주운 전 금지)라는 포스터 입니다. 한 인터넷 기사를 보닌까 이 단체를 통해서 “thousands of anti-drunk driving laws”(수천개의 음주운전 반대 법들)가 통과 되었다고 합니다(인터넷). 왜 이러한 교통법들이 있는 것입니까? 다시 말하면, 교통법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 목 적은 “도로에서 일어나는 교통상의 모든 위험과 장애를 방지·제거하여 안전하고 원활한 교 통을 확보하는 데” 있습니다(인터넷). 이렇게 세상에는 교통법 외에도 수많은 법들이 있습 니다. 교회 안에서도 교회 헌법이라는 것이 있지만 오늘 저는 율법에 대해서 좀 생각해 보 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사도 바울이 오늘 본문 로마서 7장 7-13절에서 율법에 대해서 말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예수님을 믿기 전 율법 아래 있었던 삶, 즉 부정과 불법 가운데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었던 삶에 대하여 로마서 6장과 7장 6절까지 말씀한 후 오늘 본문 로마서7장7-13절에 와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예수님을 믿기 전의 율 법 아래서의 삶에 대하여 설명해 주고자 율법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 율법에 대한 말 씀이란 바로 율법의 작용(기능)에 대한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 성도들에게 설명해 주고 있 는 이 율법의 작용(기능, 용도)은 무엇입니까? 한 3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율법의 작용에 대해서 묵상하는 가운데 저와 여러분이 율법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 는지 배우므로 말미암아 더욱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깊이 들어가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그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더욱더 마음으로 순종하며 살아가므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길 기원합니다.

 

첫째로, 율법의 작용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해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7장 7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 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 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여기서 바울은 한 법을 예를 들고 있습니다.   그 법은 다름 아닌 십계명 중 열 번째 계명인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 지니라 …”(출20:17, 신5:21)라는 말씀에 근거한 것으로 “탐내지 말라”는 율법입니다. 과 연 ‘탐내지 말라’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부당한 소원을 갖지 말라’는 의미입니다(박윤 선). 온 율법의 총괄적 요약은 십계명이고, 십계명의 강령은 하나님을 사랑함과 사람을 사 랑함인데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다른 것을 사랑하게 하는 부당한 소원이 바로 탐 심입니다(박윤선). 그래서 바울은 “탐심은 우상 숭배”(greed is idolatry)라고까지 말하였습 니다(골3:5). 더 나아가서, 탐심이란 하나님만 사랑 못하게 하는 것이라 이웃도 사랑 못하 게 만듭니다. 아주 사람으로 하여금 욕심에 가득 찬 이기주의자로 만드는 것이 바로 탐심 입니다. 그러므로 탐심은 온 율법의 정신이 사랑과 반대가 됩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자신을 바라볼 때 자기 속에 “각양 탐심”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는 오늘 본문 로마서 7장 8절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각양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 니라”. 바울은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았는데도 율법이 가입하므로 말미 암아 자기 속 안에 잠재하고 있었던 죄성이 충분히 활동하여 자기로 하여금 감당할 수 없게 각양 탐심을 생산하게 만들게 된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만일 십계명의 열번째 계명인 탐심하지 말라는 말씀이 없었으면 우리는 탐심의 죄를 범하면서도 탐심의 죄를 죄로 여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 의식 없이 계속해서 탐심의 죄를 범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탐심하지 말라는 십계명의 열 번째 계명이 있으므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은 부당한 욕심이 우리 안에 생겨날 때 우리는 이것이 탐심이 죄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러한 가운 데 우리는 스스로 놀라게 되는 것은 우리 안에 내재하는 이 탐심의 죄성이 십계명의 열 번 째 계명인 탐심하지 말라는 율법을 알면서도 그 법을 어기고 싶은 강한 죄악된 열정을 봅니 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우리는 결국 우리 속에서 충분히 자라난 탐심의 나무 열매로 말미 암아 결국 실재 행동으로 탐심의 죄를 범하는 우리 자신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 울은 “…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9절). 즉, 바 울은 율법이 가입하므로 죄가 율법의 제어를 기회로 하여 발동하므로 말미암아 그 결과 자 기는 죄성에게 포로 되어 버려 가련한 상태에 놓여 있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박윤 선). 이렇게 죄성에 포로된 가련한 상태는 죄가 바울을 속였기 때문입니다(11절). 마치 마 귀가 하와를 속여 선악과를 따 먹게 하므로 하나님의 계명을 어겨 범죄케 한 것처럼 마귀는 바울이나 또한 저와 여러분에게 죄를 범해도 괜찮다는 식으로 우리를 속이므로 말미암아 우 리로 하여금 죄의 종노릇하게 만들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왜 사단은 이렇게 애쓰고 있습니 까? 그 이유는 우리를 죄의 종의 삶의 결국인 사망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10절). 결국 하나님과 분리되어 영원히 죽에 만들기 위해서 사단은 속이고 또 속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명심하십시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미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어졌습니다(요5:24).   우리는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닙니다.   우 리는 이제 의의 종이요 순종의 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첫 번째 교훈 말씀은 하나님의 율법, 하나님의 계명, 좀 더 포괄적으로 말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 자신의 죄 를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죄를 깨달아야 합니 다(3:20).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죄가 죄로 들어날 것입니다(7:13). 하나 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죄가 들춰 치고 또 들춰질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어떻게 해 야 합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치기 때문입니다(5:20).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죄를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우리는 주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많고 넘치는지 깨닫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둘째로, 율법의 작용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의 율법을 통하여 여러분 자신의 죄를 더욱더 많이 그리고 깊 이 깨닫게 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리라 생각됩니다: 죄를 숨기던지 아니면 예수 십자가의 보혈을 의지하여 죄 사함 받고자 예수님께 겸손히 그 모습 그대로 믿음으로 나아가던지.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숨기면 우리는 더욱더 죄악에 깊이 빠질 것입니다. 탐심하지 말라고 성경은 명령하고 있는데 탐심의 죄를 범하고 그 범 한 죄를 하나님께 그리고 사람들에게 숨기고 살면 더욱더 우리는 똑 같은 죄를 계속 번복하 며 범하므로 말미암아 결국 죄를 죄로 여기지도 않는,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까 지 갈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죄가 들춰졌을 때 그 죄를 숨기지 않고 죄 사함을 받고자 예수님께 믿음으로 나아가 우리를 죄를 자백하며 회개 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사해주실 뿐만 아니라 기억도 하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그 죄 가운데 건져(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길을 선택하고 계십니까?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3장24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같이 율법이 우 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하려 함이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가 율법을 통하여 우리의 죄를 깨닫게 될 때(롬7, 13절; 3:20) 우리는 율법을 순종하므로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바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갈3:24). 결국 율법이란 우리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임을 깨닫게 해줍니다. 저와 여러분은 율법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우리의 죄를 깨닫게 될 때 그 율법을 우리가 순종 하므로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어떻게 깨닫습니까? 율법 을 완전히 순종해야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는데 우리는 절대 하나님의 말씀을 100% 순종할 수 없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우리로 하여금 무기력함을 느끼게 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율법을 온전히 순종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해줍니다. 그러 므로 우리는 율법 외에 우리에게 나타난바 되신 하나님의 한 의이신 예수님(3:21)을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오직 예수님 안에 죄 사함이 있고 용서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바라보십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죄 사함이 있고 용서함 이 있습니다.   오직 예수님 안에서 참된 구원이 있습니다.   비록 죄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우리로 하여금 우리 속에서 각양 탐심으로 여러 죄악을 범하게 하므로 말미암아 우리를 죽 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로 하여금 생명에 이르게 하십니다(10절). 바라기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므로 죄 사함 받고, 죄에서 건지심을 받으므로 생명을 얻으시는 저와 여러 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마지막 셋째로, 율법의 작용은 율법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신앙 생활의 지침서가 됩니다.

 

율법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해주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로 인도하여 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우리로 하여금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지침서가 되어 줍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율법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신자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 웁니다. 근대 신자들 가운데 종종 율법의 구약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으로서 옛 언약 시대 것이기에 신약인 새 언약 시대에 와서는 구약의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생각하 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입니까? 저는 그 원인을 “율법”과 “율법주의”를 혼동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율법과  율법주의를  동일하게 보므로 말미암아 율법을 부정적으로 보던지 심하게는 죄악시하는 경우가 우리 가운데 있다 고 생각합니다. “율법주의”란 무엇입니까? 보통 우리가 율법주의 하면 우리는 성경에 나 오는 바리새인들을 생각합니다. 그들의 문제점은 무엇입니까? 위선 입니까? 제일 근본적 인 바리새인들의 문제점은 바로 구약의 율법을 순종 하므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으려 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율법주의 입니다. 즉, 율법주의는 자기 의에 기초한 신앙입니 다. 그래서 율법주의에서는 정해진 규정들과 규칙들을 잘 지키는 자기의 헌신과 노력이 강 조됩니다(인터넷). 그러나 이 자기 의에 기초한 율법 주의적 신앙에는 두 가지 위험한 열 매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영적 우월감과 상습적인 죄책감입니다. 율법에 정해진 규정들과 규칙들을 남들보다 잘 지키는 사람들은 영적 우월감을 가지므로 자기들보다 못한 사람들을 무시합니다. 반면에 잘 지키지 못한 사람들은 상습적인 죄책감을 가집니다(인터 넷). 우리는 이렇게 바리새인들처럼 영적 우월감을 갖게 만드는 율법주의가 바른 신앙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것을 경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율법주의를 경계하면서 우리는 동일하게 율법을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는 것 입니다.   아마도 그 이유 중 하나는 구약에서 율법과 신약에서의 율법에 계속 이어서 지켜 야 규정들과 규칙들과 더 이상 지키지 않아도 되는 규정들과 규칙들 사이에 혼동이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율법은 율법주의와 다른 것입니다. 즉, 율법주의는 율법을 지키므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으려는 것으로 자기 의에 기초한 것이지만 율법 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로서 마땅히 우리 신자가 지키고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에 기초한 신앙입 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7장 7절과 13절을 보면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7절),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 망이 되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13절). 무슨 말입니까? 율법 자체는 죄악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오히려 바울은 율법은 선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특히 바울은 ‘율 법은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12절).

 

  • 율법은 거룩합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시기에 그의 율법(말씀) 또한 거룩합니다. 그 거룩한 말씀을 통하 여 우리는 우리의 거룩하지 못함을 깨닫게 되므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자가의 은혜를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주님의 그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순종하므로 하나님의 거룩함을 추구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 율법은 의롭습니다.

 

여기서 의롭다는 말씀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 흠 잡힐 것이 없이 바르다는 뜻입니 다(박윤선). 하나님의 율법(말씀)은 우리에게 바른 길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은 성도들로서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율법이 우리에게 보여주 는 의의 길, 바른 길을 걸어가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 율법은 선합니다.

 

그 의미는 우리가 율법을 순종하므로 선행을 행해야 함을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왜 우리를 마음으로 율법을 순종하여 선행을 해야 합니까? 그 이유는 저와 여러분은 “선 한 일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지으심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엡 2:10). 바라기는 선한 율법을 순종하므로 우리의 선행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 아버 지께 영광을 돌릴 수 있길 기원합니다(마5:16).

 

 

 

율법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함을 받길 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나의 지침서가 되는 주님의 이중계명을 순종하길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