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음에 부은바 된 하나님의 사랑

 

 

[로마서 5장 5-11절 말씀 묵상]

 

 

예수님을 믿는 우리 신자들은 확실한 소망, 우리를 부끄럽게 아니하는 소망이 있습 니다(롬5:5). 그 소망이란 바로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므로 이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즐거워 할 수 있게 되 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욕된 몸, 약한 몸, 썩을 몸을 입을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고전15:43, 54).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우리는 홀연히 변화될 것입니다(51절). 그 때 우리는 “영광의 몸의 형체”를 입을 것입니다(빌3:21). 우리는 “신의 성품”에 온전히 참예 할 것입니다(벧후1:4). 우리는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성품에 온전히 참예하게 될 것입니다. 이 소망은 우리가 당당하게, 부끄럽지 않게 가질 수 있는 소망입니다(롬5:5). 왜 그렇습니 까?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저와 여러분에게 주신 이 소망은 하나님 의 사랑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 크신 사랑으로 사랑하시기에 그 사랑 안에서 택함을 받아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저와 여 러분에게 주신 이 확실한 소망은 절대로 우리를 부끄럽게 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 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우리는 믿음 외에(1절)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끄럽게 아니하는 확실하고 분명한 영원한 소망을 주셨습니다(2, 5절).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어 주셨습니다(5절). 즉, 하 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에게 믿음, 소망, 사랑을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베풀어 주시는 은혜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 에 대해서 본문 로마서 5장 5-11절 말씀 중심으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특히 오늘 성경 로마서 5장 5절을 보면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 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과연 예수님을 믿는 저와 여 러분의 마음에 부은바 된 하나님의 사랑은 어떠한 사랑인지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를 겸손히 받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하셨다는 것입 니다(6, 8, 10절).  이 사랑을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 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 이니라”(3:16). 저는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 님의 그 크신 사랑을 오늘 본문 중심으로 한 3 가지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사랑은 ‘연약한 자’들을 사랑하시는 사랑입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5장 6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 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 를 쓰면서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 전에 예정하신대로 나타날 시기에(“기약대로”) 경건히 않 은 자기나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 연약하고 경건치 아니하였던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시사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믿기 전에 저와 여러분 의 연약하고 경건치 아니한 모습은 어떠하였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선을 전혀 행할 수 없는 무기력과 무능력한 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더글라스 무). 한 마디로, 우리는 육에 속한 자들이었습니다(박윤선). 그리고 육에 속한 자들로서 우리는 “육체의 욕 심”(갈6:16)을 따라 살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예수님 믿기 전에 육체의 욕심 속 에서 “육체의 일”(19절)을 하면서 살았었습니다. 그 육체의 일이란 무엇입니까?  갈라디아 서 5장19-21절을 보십시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 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  이것이 바로 구속받지 못한 예수 믿기 전 에 우리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태에 놓여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사 랑하시사 창세전에 예정하신 우리를 구속하시고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과연 우리가 어느 누구의 사랑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인간의 사 랑과 절대로 비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 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 는 자가 혹 있거니와”(롬5:7). 이 세상의 사랑은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은 율법의 규정을 준수하는 자로서 자기가 존경하는 의인을 위해서는 죽는 이들이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선인, 즉 사랑으로 행하는 자로서 그 선인의 사 랑을 받는 자들은 그 선인을 위해서 죽을 사람이 혹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7절)(박윤선). 그러나 연약하고 경건치 아니한 자들, 육체의 욕심 속에서 육체의 일을 하는 자들을 위해 죽으려고 하는 사람은 이 세상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연약하고 경 건치 아니한 자들이었던 저와 여러분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왜 그러셨 습니까? 그 이유는 우리를 구속해 주시사 하나님과 화목케 하시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더 이상 파멸과 고통의 길을 걷지 않고 평화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 다. 우리는 경건한 자가 되었습니다(시32:6). 과연 경건한 자는 죄를 한 번도 짖지 않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인가요? 그것은 아닙니다. 경건한 자란 자기의 죄를 하나님께 자복하 므로 사죄함을 받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의롭다 칭함을 받은 자, 곧 “의인”인 저와 여러 분을 가리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을 때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저 와 여러분 마음에 부은바 된 것입니다(5절).

 

둘째로, 하나님의 사랑은 ‘죄인’들을 사랑하시는 사랑입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5장8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 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 연약하여 육체의 욕심 가운데 육체의 일을 행하면 서 불경건한 삶을 살며 죄를 범하고 있었을 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 들인 저와 여러분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신적 사랑, 즉 무조 건적 사랑입니다. 성경 요한일서 4장 9-10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 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된 하나님의 사랑은 연약하고, 경건치 아니 하며, 허물과 죄로 죽었던(엡2:1) 저와 여 러분을 다시 살리시려고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사 십자가에 화목 제물로 죽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길이 참으시는 중에”(롬3:25) 죄인들이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자 독생자 예수님을 속죄 제물로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 려 죽으시므로 말미암아 그의 피의 능력을 믿는 우리들은 모든 죄 사함 받고 의롭다 하심을 얻었습니다.  바울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9절).  또 한 그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라고 말하고 있습니 다(23절). 그리고 그는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5:12). 즉,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6:23). 이렇게 우리 모두는 예수님을 믿기 전, 다 죄 아래 있으므로 하나님의 진노 아래(1:18, 5:9) 영원한 죽음의 길을 걷고 있 었습니다.  우리는 아무 소망 없이 영원한 멸망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소망 없 는 죄인들을 하나님께서는 무조건적으로 그의 사랑으로 사랑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무엇인가 사랑할 만한 것이 있어서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 랑이시게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의 최고의 표현이 바로 독생자 예수님의 죽음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향하신 최고의 사랑 표현을 연약하고 경건치 아니하며 죄인들이 우리를 구속하시고자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하신 것입니다. 그의 십자가의 피 흘려 죽으심으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모든 죄가 다 사 함을 받았습니다. 우리 모든 죄가 다 치워버린바 되어 하나님의 눈의 보이지 않게 되었습 니다(시32:1). 이러한 자를 가리켜 시편 기자는 복된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시32:1).

 

마지막 셋째로, 하나님의 사랑은 ‘원수’들을 사랑하시는 사랑입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5장 10절을 보십시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 되었은즉 화목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 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 이니라”.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6절), 즉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8절)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 관계였습니다. 이 때에 우리 죄인들의 생각을 바 울은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 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8:7). 우리 인간은 범죄 후 하나님과 원수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믿기 전, 육체의 욕심 가운데 육신의 생각을 하면 서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원수 관계에 서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바로 독생자 예수님께서 십자 가에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하게 되었습 니다(10절). 그러므로 바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 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11절). 우리는 즐거워해야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시사 예수 그리스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해 주시므로 하 나님과 화목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가 주님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 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는 소망을 주셨 기 때문입니다(5절).  우리는 이 확실하고 부끄럽지 않은 당당한 소망이 예수님 안에 있기 에 우리는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3절).

 

이 기쁨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우리는 우리 마음에 부은 된 하 나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어떻게 우리는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화목케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예수님을 모르는 자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다 시 말하면, 우리는 아직 연약한 자들(경건치 아니한 자들), 죄인들, 그리고 하나님과 원수 된 자들에게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 리는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즉, 예수님의 계명을 순종하며 살아가야 합니 다. 그 계명 중 하나는 바로 마태복음5장44절 말씀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찬송가404장)을 울면서 감사, 감격에서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던 고 김창혁 목사님을 생각하면서,

 

 

제임스 김 목사 나눔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이 내 생명보다 나으므로 주님을 찬양하면서(시6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