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 (2)

 

 

[로마서 4장9-17절 말씀 묵상]

 

 

우리는 이미 로마서4장1-8절 말씀 중심으로 이 세상에서 최고로 행복한 사람이 누 구인지를 배웠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모든 죄 사함 받은 자, 하나님께서 의인이라고 인정하는 자가 이 세상에서 최고로 행복한 사람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러한 가 운데 저는 제 개인적으로 “행복 공식”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행복 지수 = 오직 은혜 + 예 수님의 십자가 행위 + 오직 믿음. 성경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을 알아가면 알아갈 수록, 그 분이 저와 여러분의 구원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행하신 일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우리의 믿 음이 자라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이 자라나면 자라날수록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 수 그리스도 안에서 베풀어 주신 구원을 생각할 것이고, 베풀어 주신 구원을 생각하면 할수 록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더욱더 깨닫게 됩니다. 그리하면 할수록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더욱더 행복감을 느끼면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4장9-17절을 보면 우리는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해서 계속 말씀하고 있는 것 을 봅니다. 이 말씀을 한 2 부분으로 나눠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부분은 오늘 본문 로마서 4장 9절에서 12절까지 말씀입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마 임아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관하여 설명하면서 그 행복을 누릴 수 있 는 사람들은 할례를 받았던지 안 받았던지 상관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믿음으로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는 행복은, 할례 받은 여부를 구별치 않고 생긴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박윤선).   그래서 바울은 오늘 본문 로마서 4장 9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 니다: “그런즉 이 행복이 할례자에게뇨 혹 무할례자에게도뇨 대저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 함에게는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하노라.” 그는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로서 자부심을 갇고 자랑 삼았던 할례에 대해서 말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행복을 받는 대상자 들은 할례를 받은 유대인들이던 할례를 받지 못한 이방인들이던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율법의 행위인 할례를 받은 것이 칭의 행복을 누릴 수 있 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처럼 오직 믿음으로만이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아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후 바울은 오늘 본문 로마서 4장 10-11절에서 유 대인들이 존경하는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도 할례를 받기 전에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추가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실은 창세기 15장 6절에 나오는 반면 그가 할례 받은 사실 은 창세기 17장10절 이하에 나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아브라함의 칭의는 할례 때문에 얻어진 것이 절대 아니라는 사실을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통하여 설명해 주고 있 습니다(박윤선).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할례 받기 전에 약속의 말씀을 주셔 서 그 약속의 말씀을 믿게 하시므로 아브라함의 의롭다 하신 것입니까? 그 이유를 바울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저희로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 뿐 아니라 우 리 조상 아브라함의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좇는 자들에게도 니라”(롬4:11-12). 즉,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할례 받기 전에 그를 의롭다 하신 이유는 그로 하여금 모든 믿 는 자들의 조상이 되게 하시므로 말마암아 아브라함처럼 오직 믿음으로만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는 행복을 누릴 수 있음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하면, 바울은 유 대인들과 이방인들이 섞여 있었던 로마에 있는 공동체에게 편지를 쓰면서 할례를 받은 유대 인 성도들이나 할례를 받지 못한 이방인 성도들이나 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처럼 오직 믿음으로만 하나님께 의롭다하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그는 오직 믿 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무할례 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좇는 자들은(12절) 하나님께 의롭 다 하심을 받은 참된 행복자들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공동체를 생각할 때 유대인 성도들과 이방인 성도들이 섞 여 있음을 염두해두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 님의 의는 차별이 없느니라”고 말하였습니다(3:22). 즉,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므 로(1:17) 그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믿는 모든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의롭다 하시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모든 죄 사함을 받 고 하나님으로부터 의인이라는 선언을 받음에 있어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상관이 없습니 다.   모두 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유대인 성도들이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려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자신들이 할례를 행 하므로서 하나님의 선민족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려고 했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에서 명 한대로 할례를 행하므로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유대인 성도들에게 있어 할례를 행하지 않은 이방인 성도들을 동일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받아들이 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유대인 성도들은 이방인 성도들을 차별한 것 같습니 다.   그러하기에 바울은 로마에 있는 유대인 성도들과 이방인 성도들의 차별하는 죄악된 경 향을 지적하면서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는 최고의 축복에 대해서 말하면서 아브라함을 예로 들었습니다. 바울은 아브라함조차도 할례 받기 전에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음으 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음을 가르쳐 주면서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음에 있어서 할례는 무관하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저는 세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구약에 할례를 신약의 세례와 비교 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세례 자체가 우리를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받게 하는 요소 는 절대 아닙니다. 세례는 그저 할례처럼 칭의된 표입니다(11절)(박윤선). 다시 말하면, 구약에서 유대인들이 할례를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표이지 결코 그 표 자체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절대 아닙 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 으므로 말미암아 세례를 받는 것이지 세례를 받음으로 하나님께 구원 받고 또한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근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세례를 못 받으면 구 원 받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결코 세례를 받음으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 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세례 받는 것을 구원을 받 을 수 있는 방법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세례를 받아야만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습니다, 구원 받습니다 등등 식으로 말을 한다면 우리는 분명히 세례 받은 자들로서 우리가 세례 받은 것을 자랑하면서 세례를 받지 못한 자들을 차별(화)할 수 있을 것입니 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이 가르쳐 주듯이 할례나 무할례나, 즉 우리 신약 시대에 살아 가고 있는 교회에 적용해 볼 때 세례를 받았거나 안 받았거나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처럼 오직 우리는 믿음으로만 구원 받고, 오직 예수 그리스 도를 믿음으로만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두 번째 부분은 로마서 4장 13절에서 17절까지 말씀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마암아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관하여 설명하면서 아브라함은 유대인에게 뿐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믿 음의 조상이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나 그의 후손에게 세 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이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 암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13절). 여기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세상의 후사”란 한 4가지로 생각 할 수 있습니다(박윤선): 첫째로,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으로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는 말씀(창12:3), 둘째로,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비가 되리라는 말씀 (17:4-5), 셋째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와 같이 번성하리라는 말씀 (22:17), 그리고 넷째로, 아브라함이 우거하는 가나안 일경으로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17:3)는 말씀. 이 네 가지 약속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졌습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우리 신자들로 “영원한 기업”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즉,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천국을 얻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는 모든 믿는 자들을 그분의 자녀로 삼으시사 우리에게 영원한 기업인 천국을 얻게 하신 것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영원한 나라 천국에서 살 수 있는 확실한 소망을 가지고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국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이 영원한 기업 을 얻는 방법은 율법을 지키므로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 음으로 얻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유대인들의 말처럼 믿음이 아 닌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또한 영원한 기업을 얻게 된다면 바울은 우리의 “믿 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폐하여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14절).  다시 말하면, 만일 ‘영원 한 기업을 얻으리라’(“세상의 후사”)는 약속이 율법을 지킨 공로로 얻어지는 것이라면 우리 의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도 거짓말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기 때문입니다(15절).  다시 말하면, 율법은 우리로 하여 금 하나님의 진노를 면케 해 주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것을 이루어 내는 것입니다(박윤 선). 율법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해줍니다(3:20, 23).  율법은 우리가 얼마나 하나 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지를 깨닫게 해 줍니다(23절). 그러므로 율법을 지키는 인간의 공로로는 영원한 기업, 곧 천국을 얻을 수 없습니다. 만일 율법을 100%은 완전히 지키면 천국을 영원한 기업으로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을 완전히 지킬 사람은 이 세 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후사가 되는 것, 천국을 얻는 것은 은혜 에 속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16절). 다시 말하면, 영원한 나라인 천국을 기업으로 받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 되는 것이며 또한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즉, 인간의 구원은 전 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습니다. 유대인이던 이방인이던 모두 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처럼 (16절) 믿음으로만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는 행복 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을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는 최고의 행복을 누리게 되었습니 다(17절).

 

여기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4장 17절 에서 바울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두 가지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박윤선):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 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 아브라함의 믿음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음이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아브라함은 창세기 22장에서 하나님께서 명하신대로 독자 이삭 을 하나님께 받치고자 단에 자식을 묶어 놓고 칼로 내리치려고 하면서 까지도 하나님께서는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도 다시 살리실 줄을 믿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즉, 죽은 자를 살리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우리는 가지고 있 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자 십자가에 독 생자 예수님을 못 박혀 죽게 하신 후 3일 만에 부활케 하신 그 하나님의 부활의 능력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 아브라함의 믿음은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음이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게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즉, 무에서 유를 창 조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도록 아들이 없었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약속, 즉 그의 후손이 하늘의 별들과 해변의 모래 같이 많게 하시겠다는 말씀을 그는 믿었습니다.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무에서 유를 창조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믿었던 아브라함처럼 우리도 이러한 믿음을 사모하며 추구해야 합니다. 이 러한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제임스 김 목사 나눔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계속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