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얻습니다.
[로마서3장19-31절 말씀 묵상]
신앙생활에 있어서 우리가 평생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 의 구원을 위하여 행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허물과 죄로 죽었던(엡2:1) 저와 여러분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다시 살리시사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품으로 만드신 이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결코 잊어서는 아 니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구원 받은 우리 신앙인들이 신 앙생활을 하면서 종종 초점을 잃어버릴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처음 신앙생활 할 때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그 구원의 은총에 초점을 맞추 다가 나중엔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행한 일들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혜라는 개념보다 인간의 공로를 의지하는 위험한 죄를 범하게 됩니다. 그 결과 우리는 교만한 가운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보다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주님의 몸된 교회 를 섬기는 모습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찬송가 488장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 들어”라는 찬송에 1절 가사와 후렴처럼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1절) “세상 모든 풍파 너 를 흔들어 약한 마음 낙심하게 될 때에 내려 주신 주의 복을 세어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후렴) 받은 복을 세어보아라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많은 축복들 중 빼 놓을 수 없는 축복은 바로 “칭의”입니다. 여기서 칭의란 다른 말로 하면 ‘의롭다하심’입니다. 그러면 의롭다 하심이란 무슨 뜻입니 까? 이것은 법정인 용어로서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죄를 범한 유죄한 자인 저와 여러분 을 아무 죄 없다고 무죄판결을 내릴 뿐만 아니라 ‘당신은 의롭습니다’라고 선언하는 것을 뜻합니다. 즉, 하나님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됩니다. 그러므로 이젠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 다하심을 받는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더 이상 하나님의 원수가 아닌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교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개혁주의 칭의론의 핵심은 ‘칭의’가 ‘하나님의 법적 선언’임을 강조 하는데 있습니다. 곧 의롭다고 ‘인정하다, 선언하다’의 의미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칭의를 이와 같이 보면 크게 소극적 측면과 적극적 측면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전자는 죄에 대한 형벌, 진노에서 해방됨을 의미하는 반면 후자는 완전한 의로움을 소유한 의인으로 인정하신다는 의미를 가집니다”(인터넷).
오늘 본문 로마서 3장 19-31절에서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2 가지 핵심의 진리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 핵심 진리는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하심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3장 20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 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율법으로는 의롭다하심을 얻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율법으로는 죄를 깨닫기 때문이라고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바울은 자기나 로마 교회 성 도들이나 오히려 율법을 통하여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 때문에(23절) 율법의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 을 사람이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유대인이 나 헬라인이나 모두 “다 죄 아래 있”다고 말하였습니다(9절). 이 사실을 율법을 통하여 깨 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다 죄 아래 있는 자들로서 스스로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는 하나님 으로부터 의롭다하심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죄인 된 사람이 원수 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스스로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 과의 관계를 회복시킬 수는 절대 있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바울이 율법에 대해 서 설명하는 이유는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주신 율법을 지켜 나아가므로 하 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얻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모세를 통하여 율법을 받은 것 에 대해 매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또한 이러한 자부심 속에서 그들은 율법을 의지하며 자랑하였습니다(2:17).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기들 스스로 율법을 어기며 죄를 범하고 있었 습니다(2:12ff.). 그들은 하나님을 뜻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2:18) 교만한 가운데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면서(20절) 율법을 가르치기는 좋아했지만 자기들 스스로는 가르치지 않았습니다(21절). 오히려 유대인들은 율법을 자랑하면서도 그 율법을 범하므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습니다(23절). 그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고 있었습니다(24절). 그러므로 바울은 이러한 유대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자신들의 행위로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하심을 받고자 하였던 유대인들, 자신의 공로를 의지하여 하 나님으로부터 의롭다하심을 받고자 하였던 자들에게 결코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다고 명백하게 말해 주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 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20절)라고 말한 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 지 않고 …”(28절).
그러면 어떻게 우리는 어떻게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있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 까?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과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두 번째 핵심 진리입니다.
그 두 번째 핵심 진리는 바로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하심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하심을 받을 수 없고(20, 28절)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율법의 행위로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님의 행위를 믿음으로 모든 죄가 사함을 받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수 있다는 것입니 다. 그래서 그는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이렇게 분명히 말하였습니다: “그 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줄 우리가 인정하노라”(28절). 여기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세 가지 진리가 있습니다:
- 우리가 의롭다하심을 받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란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3장 24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 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사도 바울은 로마 성도 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율법의 행위로는 그들이 의롭다하심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 직 하나님의 행위와 예수님의 행위로만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행위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속해 주시고자 예수님을 화목 제물로 세우 시사 그로 하여금 십자가에 보배로운 피를 흘려 죽게 하시므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자신 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의롭다 하신 것입니다 (25-26절). 그러면 예수님의 행위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자 못 박혀 피 흘려 죽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롭다하심을 받는 것은 사람의 행위로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행위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어떻게 죄인이 자기 스스로 의롭다하심을 얻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죄 인이 율법을 지키므로 의롭다하심을 얻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죄인이 율법을 완전히 다 지킬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죄를 범한 자가 인간의 노력으로 무죄판결을 받을 수 있습니 까? 만일 그럴 수 있다면 분명히 우리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자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기의 공로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관계를 죄를 범한 인간 자신이 스스로 회복했다면 분명히 우리 사람들은 자랑할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절대로 우리는 자랑할 수가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27절). 그는 아무도 자랑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27절).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받았기 때문입 니다(24절).
성경은 우리가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 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엡2:8-9). 하나님의 선물을 은혜로 받은 자들이 무 슨 공로가 있다고 자기 자신(의 행위)을 자랑할 수 있겠습니까? 믿음도 선물이요 구원(영 생)도 선물이요 다 자격 없는 죄인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인데 우리가 자랑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 도께서 저와 여러분을 의롭다하시고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삼일 만에 무덤에서 부활 하셨습니다. 그가 죽기까지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시므로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원수 되 었던 하나님의 관계가 회복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면 서 기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잊어서는 아니 됩니다.
-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는 차별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3장 22절을 보십시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사도 바울의 편지를 받는 로마에 있 는 성도들 공동체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주님의 공동체 가운데 차별이 있었습니다. 유대인 성도들은 영적 우월감을 가지고 자기들이 하 나님으로부터 율법과 할례를 받은 하나님의 선민족이라는 사상 속에서 이방인들로부터 자기 들을 차별화 하였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자들을 특히 염두해 두고 편지를 쓰면서 그들이 의롭다하심을 받은 것은 율법을 행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24절). 또한 그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 으로 의롭다하심을 받는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 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는 차별이 없다고 분명히 말해 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교회 안에서 차별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고, 다 예 수 십자가의 공로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어떻게 자기 자신을 특별히 자랑하면서 공동체 안에 다른 형제, 자매들로부터 자시 자신을 차별화 할 수 있습니까? 그렇게 교회 안에서 차별화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 안에서 영적 우월감을 가지고 다른 형제, 자매들로부터 자 기 자신을 차별화하는 자들은 예수 십자가의 공로보다 자기 공로를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특성 중 하나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행하신 일에게 초점을 맞추기보다 자기 가 하나님을 위해서 행한 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참으로 위험한 신앙생활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 은 홀로 유대인의 하나님 뿐이시뇨 또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뇨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 도 되시느니라”(29절). 유대인이나 이방인들에게나 동일한 하나님께서 모든 믿는 자들, 그 들이 유대인이던 이방인이던, 다 의롭다 하십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의로다 하심을 받는 것, 믿음으로 구원을 받음에 있어서 차별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음에 있어서 어떠한 차별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나라, 민족, 성, 빈부 차이 등등 이런 것들로 인하여 차별이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은 모든 믿는 자들은 율법을 폐하기보다 오히려 율법을 굳게 세워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3장 31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 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주로 우리가 율법이라고 하면 율법주의를 생각해서 부정적인 선입관 속에서 구약의 율법을 경의시하는 경우가 있습 니다. 우리는 신약시대, 즉 새 언약 시대의 사람들로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살 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율법을 어기기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신앙생활은 균형을 잃은 신앙생활입니다. 참된 균형적인 신앙생활은 율법을 폐하기보다 오히려 율법을 굳게 세우는 삶입니다. 즉, 비록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구원을 받 지만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로서 또한 구원을 받은 자로서의 책임은 의로운 삶을 사는 것입 니다. 그 의로운 삶을 산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지키면서 사는 삶입니다. 물 론 여기서 율법을 지키는 삶이란 의롭다하심을 받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전적인 하나 님의 은혜로 믿음을 선물로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로서의 마땅한 삶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 자로서 어떻게 살아드려야 합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마땅히 살아드려야 하는 삶은 율법을 굳게 세우는 삶입니 다. 그것은 다름 아닌 간략하게 말한다면 예수님의 두 계명인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실천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어(faith)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들로서 신실한(faithful) 삶, 곧 예수님의 두 계명을 순 종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 니다. 우리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죄 사함 받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하 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교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교제 가운데서 차별이 있어서는 아니 됩니다. 다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을 선물로 받아 예수 십자가의 공로로 구원 받고 의롭다 하심을 받은 저와 여러분이 어떻게 영적 우월 감을 가지고 서로 간에 차별화 할 수 있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또한 우리는 하 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들로서의 책임이 있습니다. 진정으로 우리가 이 하나님의 은혜를 조금이나마 깨달아 알고 있다면 그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더욱더 사랑하며 이웃을 더욱더 힘써 사랑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잊지 마십시다. 우리는 오직 은 혜로서만, 오직 그리스도 때문에, 그리고 오직 믿음으로서만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제임스 김 목사 나눔
(오직 믿음으로 승리하길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