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로마서 3장 1-18절 말씀 묵상]

 

 

신앙생활에 있어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제자도의 원리가 있습니다. 그 원리는 바 로 “자기 부인”(Self-denial)과 “자기희생”(Self-sacrifice)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 게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마16:24). 우리는 우리의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추 구하면서 예수님을 좇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내려놓을 것은 내려놓으면서 주님을 좇아 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려놓아야 할 것들을 알면서도 내려놓지 않고 예수님을 좇으려 고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신 자기 부인을 예수님의 제자로서 마땅히 실현해야 할 훈련입니다. 또한 우리는 고통과 희생 없이 예수님을 좇으려 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우리는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지 않고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가려고 하는 옛 본능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 기희생을 요구하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 원리를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실천 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현상을 성경 디도서1장16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 니다: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  우리가 입술로는 하나님을 안다 고 말하고 있지만 우리의 삶으로는 그 하나님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부인 하는 우리의 삶 가운데는 한 3 가지 위험한 죄악된 요소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불신앙’, ‘불의’ 그리고 ‘교만’입니다. 우리의 불신앙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불신하며, 우 리의 불의는 하나님조차도 불의하신 하나님으로 생각하게 만들며 또한 우리의 교만은 영적 우월감과 특권 의식 가운데 ‘내가 당신보다 더 낫다’라는 정신과 자세로 다른 이를 정죄하 고 판단하게 만듭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로마서 3장 1-18절에서 결코 그래서는 아 니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3장 4, 6, 9 절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 게 편지를 쓰면서 특히 스스로 의롭다 하는 영적 우월감에 있었던 유대인 신자들에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세 번이나 말하고 있습니다: “그럴 수 없느니라”(4절),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6절), “결코 아니라”(9절)]. 과연 바울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무엇을 완곡히 부정하고 있는 것입니까?

 

첫째로, 사도 바울은 우리의 불신앙이

하나님의 미쁘심(신실하심)을 결코 폐할 수 없다고 완곡히 부정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3장 3-4절을 보십시오: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 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 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찌어다 ….”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 특히 영적 우 월감 속에서 스스로 의롭다 믿고 있었던 유대 신자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그들이 유대인으로 서 이방인들에 비해 외부적으로 받은 은혜는 많지만 그 은혜조차도 신실하게 감당하지 못하 여 그들에게 아무 유익이 없고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있고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유대인 신자들이 받은 외부적인 은 혜는 오늘 본문 1-2절에서 두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할례”(1절)와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것’(2절)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었던 자부심, 즉 그들이 자랑으로 삼았던 것 은 율법과 할례였습니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이 두 가지 은 혜를 문제는 유대인들은 내적화하지 못하고 그저 외적화만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유대인 들은 외적으로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는 상징 적인 요소인 할례와 더불어 모세를 통해서 율법도 받았지만 그 율법을 지키므로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의 공로에 대한 자부심과 영적 우월감 및 교만함 가운데 있었습니다. 오직 의인은 예 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야 하는데 이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이들의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즉, 유대인들의 죄 목록은 불신앙과 불성실함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지 않았 고 또한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로서 하나님께 신실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이러 한 죄를 범하고 있는 로마에 있는 유대 성도들에게 가상 질문을 3절에서 말하면서 ‘만일 여 러분들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진리를 믿지 아니하고(불신앙)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들로서 자기 자신을 부지런히 가르치지 않고 다른 이들을 가르치기 에만 좋아하고 있다고(2:21)(불성실) 할찌라고 여러분의 불신앙과 불성실함이 하나님의 미 쁘심을 결코 폐할 수 없습니다’라고 편지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디모데후서 2 장 13절 말씀을 좋아합니다: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일향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 실 수 없으시리라.”  제가 이 말씀을 좋아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저의 불성실함을 들춰내 실 때에 그러한 저의 불성실함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계속 신실하시다는 사실에 위 로를 받기 때문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즉 신실하신 하나님은 신실하실 수밖 에 없으시다는 이 사실은 저에게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의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불성실 할지라도 그분은 일향 미쁘신 하나님이십니다. 결코 우리의 불성실함이 하나님의 미쁘심 을 페할 수 없다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러한 믿음 가운데서 우리는 유대인들처럼 외적으로만 결코 하나님을 믿는 신자들처럼 보 이려고만 힘써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즉, 우리는 표면적인 그리스도인이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결코 우리는 유대인들처럼 스스로 의롭게 여기면서 영적 우월감 속에서 남을 판단 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이러한 신앙생활은 거짓된 신앙생활입니다. 우리의 거짓됨이 더욱더 들춰져야 합니다(롬3:4).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우리의 마음, 이 거짓되 고 부패한 마음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철저히 들춰져야 합니다(렘17:9). 그러한 가운데 우리는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4절)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참되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발견 돼야 합니다. 즉, 우리는 이면적 그리스도인이 돼야 합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은 자 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우리는 망각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그러한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베풀어 주신 이 구원의 은총을 내면화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인 믿음(faith)으로 구원을 받은 자들 로서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faithful) 삶을 살아야 합니다.

 

둘째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은 결코 불의하실 수 없다고 완곡히 부정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3장 5-6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 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우리의 거짓됨이 들춰지면 질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참되심을 더욱더 깨닫게 됩니다. 우리 의 불성실함이 들춰지면 질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더욱더 깨닫게 됩니다. 그 참 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의 임재로 말미암아 우리의 불의가 들춰지면 질수록 하나님의 의는 더욱더 분명하게 들어나게 되는 것입니다(5절). 그리할 때 우리는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한다고 하여 하나님께서 불의 가운데 우리에게 진노를 내리신다고 말할 수는 결코 없습니다. 바울의 논리는 만일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므로 하나님도 우리처럼 불의 편에 속하셔서 우리에게 진노를 내리신다고 생각 한다면(5절) 하나님께서 어 떻게 공의롭게 세상을 심판하실 수 있냐는 질문입니다(6절). 또한 우리의 불의로 인해서도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고 하여(7절), 우리는 불의한 것을 그대로 계속해도 하나님께서 심판을 안하시니 좋다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박윤선). 그러나 바울은 “나도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7절), “저희가 정죄 받는 것이 옳으니라”(8절)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할지라도 하나님은 결코 불의하실 수 없다고 완곡히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로마서 1장 18-32절에서 묵상했듯이 하나님의 진노는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에게(18절),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는 사람들에게(25절) 그리고 마 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28절) 나타난다고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러한 자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28절) 곧 “모든 불 의”(29절)를 하게 하셨습니다: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함,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함, 수군수군, 비방, 능욕, 교만, 자랑함, 악을 도모함, 부모를 거역함, 우매함, 배약함, 무정함, 무자비함’(29-31절). 이러한 불의를 행하므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고 하여 우 리가 계속 불의를 행해서는 아니 됩니다(8절). 그러한 가운데 우리의 불의의 관점으로 하 나님을 바라보므로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께서 불의하게 우리를 징계하시고 심판하신다고 생각해서는 아니 됩니다(5-6절). 우리 하나님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결코 불의로 우리를 징계하시고 심판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결코 불의하시지도 않으실 뿐만 아니라 불의하실 수도 없으신 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우리 죄를 사해주시고 우리를 의롭다 해 주셨습니다(롬4:25).  그러므로 예수 십자가의 공로로 의롭다 함을 받은 저와 여러분은 오 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야 합니다(1:17).

 

셋째로, 사도 바울은 우리는 결코 나은게 없다고 완곡히 부정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3장 9절을 보십시오: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 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 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특히 유대인 신자들을 염두해 두고 편지를 쓰면서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냐(1절)고 질문으로 오늘 본문 로마서 3장을 시작하면서 결론적으로 9절 에 와서는 “우리가 나으뇨 결코 아니라”고 쓰고 있습니다. 즉, 결론적으로 유대인이나 헬 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으므로 유대인이 헬라인보다 나은게 하나도 없다고 로마에 있는 신 자들, 특히 유대인 신자들에게 쓰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바울은 오늘 본문 10-18 절에서 “기록된바”로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영원한 진리는 우리 모두가 죄 아래 있다고 선포하고 있 습니다.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 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저희 목구멍 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 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 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결국 유대 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므로 모든 불의를 행하므로 모두 다 죄 아 래 있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적 우월감을 가지고 교만한 가운데서 이방 인 형제들을 판단(정죄)하는 유대인 신자들에게 바울은 당신들도 별 다를 바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바울은 표면적 유대인들은 외면적으로 하나님께 받은 율법이나 할례를 통하 여 특권의식을 갖고 이방인 형제들을 정죄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다 죄 아래 있으므로 결코 우리가 누구보다 낮다고 자랑할 수 없다고 바울을 말하고 있습니 다.

 

여러분, “도토리 키 재기”라는 속담 아시죠? 인터넷 사전을 보면 그 속담의 뜻은 “정도가 고만고만한 사람끼리 서로 다툼을 이르는 말, 비슷비슷하여 견주어 볼 필요가 없음 을 이르는 말”이라고 합니다(인터넷). 다 거기서 거기인데 서로가 서로를 비교하면서 교만 함 가운데서 영적 우월감이나 특권의식을 가지고 형제를 판단하며 공동체의 화목을 깨서는 아니 됩니다. 결코 제가 여러분보다 나은 것도 아니요 여러분이 저보다 나은 것도 아닙니 다. 우리가 다 죄 아래 있다고 예수 십자가의 공로로 예수님을 믿어 죄 사함 받고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우리 공로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의 공로로 구원을 받 았습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감히 어느 누구가 도토리 키 재기 하면서 영적 우월감을 가지고 교회를 몇 년 다녔다니, 교회를 얼마나 봉사했다니 하면서 자랑하면 서 교회 안에서 자랑하며 자기 자신을 높일 수 있습니까?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 게 여기고”(빌2:3).

 

여러분, 우리의 불성실함이 하나님의 성실하심(미쁘심)을 결코 폐할 수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결코 불의하실 수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결코 다른 형제, 자매보 다 더 나은게 없습니다.

 

 

 

신실하시고 공의로우시며 겸손하신 주님을 바라보면서,

 

 

제임스 김 목사 나눔

(영적 우월감을 경계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