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진노

 

 

[로마서 1장 18-32절 말씀 묵상]

 

 

언젠가 한국 드라마 중 뜨는 드라마 혹은 참 인기 있는 드라마 중 “엄마가 뿔났다” 라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유명한 연예인들인 이순재씨, 강부자 씨, 김혜자 씨, 백일섭 씨 등등 나오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작가 김수현 씨가 참 글을 잘 쓰신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 니다. 왜 제가 그렇게 생각을 했냐면 그 드라마를 보면 이상적인 부분도 없지 않아 있지만 (예를 들어 한 대가족에 며느리인 김혜자 씨가 시아버지인 이순재 씨와 남편인 백일섭 씨에 게 허락을 받고 집을 나가 아파트에서 혼자 살면서 사는 모습 ㅎㅎ) 현실적인 모습을 잘 보 여주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드라마에서 사람들이 사는 모습들, 그들의 말들을 들을 때가 공감도 될 때가 없지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 주 교회에 오는 기독교 신문 중 “크리스천 헬러드”를 보니까 어느 한 목사님의 글이 있어 읽게 되었습니다. 읽게 된 이 유는 그 글 제목이 “성도가 ‘뿔났다’?”였기 때문입니다. 그 글 내용의 핵심 권면 내용은 제 생각에 성도님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의 분노(화)를 다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게 좀 흥미를 갖게 글 부분은 바로 이것입니다: “성도는 원래 뿔 낼 수 없는데, 의로운 일에는 분을 내야 한다 … 신약성경 원어에는 ‘뿔났다’를 표현하는 두 가지 다른 단어가 있다. 각각 의로운 분노와 그렇지 않은 성냄을 표현한다”(크리스천 헬러드).

 

여기서 저는 우리가 종종 낼 수 있는 “성냄”보다 “의로운 분노”, 즉 “의분”에 대하 여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오늘 본문 로마서 1장18절을 보면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서 사도 바울이 로마서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드 는 질문은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왜 갑자기 “하나님의 진노” 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가 라는 의문이 듭니다. 로마서1장15-17절에서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여러분을 보기 심히 원합니다’(11절)라고 하면서 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원하기 때문(15절)입니다’라고 편지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오늘 본문 18절부터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서 로마 성도들에게 말씀하고 있는 이유 는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이 질문을 대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로마서1장17절에 나 오는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the righteousness of God is revealed)라는 말씀 과 오늘 본문 18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진노가 … 나타나나니”(the wrath of God is revealed)란 말씀과 비교해서 생각해봐야 합니다. 즉,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하나 님의 진노 아래 있는 불의한 죄인들에 대해서 오늘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이유는 얼마나 이 불의한 죄인들에게 하나님의 의가 절대적으로 필요한지를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맥아더). 다시 말하면, 그는 로마에 있은 성도들에게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길 원합니다’라고 편지 를 쓰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불의한 죄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길 원합니다’ 라고 자신의 마음을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운데 바울은 로마 성도들도 자기처 럼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잇는 불의한 죄인들,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복음을 담대히 전하기 를 도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 로마서 1장 18-32절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로마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과연 하나님의 진노가 누구에게 나타난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과연 우리는 누구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까? 한 3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성경은 하나님의 진노는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에게 나타난다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1장 18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 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여기서 불의로 진리 를 막는 사람들이란 하나님을 알만한 지식이 있으면서도 자신들의 불의와 경건치 않음으로 그 지식을 억누르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어떻게 자신의 불 의와 경건치 않음으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인 진리를 억누를 수 있습니까? 21절을 보십시 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면 서도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감사치도 아니하므로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고 또한 마 음이 어두워졌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미련하게 살므로 진리를 억누르며 살아가고 있습니 다. 성경 시편 14편1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어리석은(미려한)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그러나 오늘 본문 로마서1장19-20절을 보면 “하나님을 알만한 것 이” 모든 사람들 속에 보인다고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창조주 하나 님께서 그가 만드신 만물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계시하셨기 때문입니다. 즉, 창조주 하나 님께서는 그가 창조하신 만물을 통하여 자신의 능력과 신성을 우리 사람들에게 분명히 보여 알게 하셨습니다(20절).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은 양심에 하나님의 존재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있다“(원문번역)라고 말하고 있습니다(19 절). 죤 칼빈은 ‘자연계가 하나님을 보게 하는 거울이다’고 말하였습니다(박윤선). 모든 사 람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계를 통하여 양심에 하나님의 존재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 므로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을 모른다고 핑계(변명할 수)치 못합니다(20절). 이것을 신학적 으로 말한다면 “자연계시”라고 합니다. 자연 계시란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그가 창조한 우주 만물에 나타내 주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지으신 우주 만물을 보는 모든 피조물들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존재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는 것입니 다. 그러나 문제는 무엇입니까? 천지를 보아도 자연계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계신 것을 알고 양심을 보아서도 알고 있으면서도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은 일부러 모른 체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경건치 아니한 자들과 불의한 자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억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운데 하나님께 영광도 돌리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생각이 허망해져서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습니다(21절). 스스 로 지혜 있다고 말하지만 미련하게 되었습니다(22절).  이렇게 불의로 진리를 막는 자들에 게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들에게 예수 그 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둘째로, 성경은 하나님의 진노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는 사람 들에게 나타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1장 25절을 보십시오: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 멘”. 경건치 아니하고 불의한 자들, 불의로 하나님의 진리를 막는 자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꿉니다. 이들은 자연 계시를 통해서 하나님의 존재를 알면서도 그 지식을 억제하므로 생각이 허망해지고 어두워져서 미려한 마음 가운데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면서 진리를 버리고 오히려 거짓 것을 추구하고 좇습니다. 그 결과 조물주이신 하나님보다 사람 인 만든 것들(“피조물”)을 경배하고 섬깁니다.  이들은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 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는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23절). 한 마디로 말하면, 이러한 자들은 우상 숭배의 죄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우상 숭배 의 죄 중 하나는 바로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며 돈을 우상화하는 것입니다. 물질 만능 주의 시대에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됨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은 지성과 감정 및 의지, 즉 전 인격적으로 돈 사랑에 오염되어서 하나님의 능력보다 돈의 능력을 믿고 의지하 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을 좀 더 기독교적인 용어로 포장해 본다면 현대 기독교인들인 우리는 복의 근원이 되신 예수님보다 물질의 복을 더 사모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결국 하 나님의 진리를 바꾸어 거짓 것으로 바꾸는 사람들은 물질을 우상화하여 조물주인 하나님보 다 돈을 더 사랑하며 섬기는 우상 숭배의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상 숭배의 죄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다시 말하면, 성경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는 죄의 결과 는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 로마서 1장 26-27절을 보십시오: “이를 인 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 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 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결국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는 사람들에게 임한 보 응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부끄러운 음욕(“욕심”)에 내어 버려두셨습니다(26절). 즉, 하나님 께는 그들을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신 것입니다(24절). 그것은 남자나 여자 다 순리대로 쓸 것은 바꾸어 역리로 쓰는 죄를 범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순리대로란 남자가 여자를 또한 여자가 남자를 향한 성욕을 가리키는데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는 사람들에 게 임한 보응은 순리대로가 아닌 역리대로, 즉 여자가 여자에게, 또한 남자가 남자에게 음 욕을 품는 것을 가리킵니다. 한 마디로, 동성연애의 죄를 가리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꾼 죄의 결과요 하나님의 보응, 진노입니다.

 

요즘 전통 결혼(Traditional Marriage)을 응호하는 그룹과 동성 결혼(Homosexual Marriage)을 응호하는 그룹과 계속 충돌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특히 동성 결혼을 응호하는 사람들은 길가로 쏟아져 나와 푯말을 들고 데모를 하는 장면을 우리가 종종 TV 뉴스를 통 해서도 보았습니다. 과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바라봐야 합니까? 여기서 저는 두 가지를 구분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동성연애 자체 는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것이라는 사실과 동시에 동성연애자들을 향한 우리 기독교인들의 태도는 그들을 적대시하기보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그들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하며 힘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동성연애가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오늘 본문뿐만 아니라 고린도전서6장9절과 유다서 7절에도 나옵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 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 하는 자나”(고전6:9);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 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유1:7). 여기서 “남색”과 “다른 색”이란 동성연애를 가리킵니다. 이렇게 성경은 동성연애가 불의요 죄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러한 죄를 우리는 미워해야 하 지만 그 죄를 범하는 동성연애자들을 적대시하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는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의 죄는 미워하지만 그 죄를 범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품고 복음을 전하는 가운데 회개하여 동성연애의 죄를 끊고 주님께 돌아오는 역사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 니다.

 

셋째로, 성경은 하나님의 진노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에 게 나타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1장 28절을 보십시오: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 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 니”. 여기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였다는 말씀은 불의로 하나님의 진리를 막는 사람들, 그리고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아는 것을 실 용적으로 가질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박윤선). 다시 말하면, 이들은 하 나님께서 창조하신 우주 만물을 통하여 하나님의 존재를 양심적으로 알면서도 하나님을 아 는 지식을 억눌러서 하나님께 감사치도 아니하고 영광을 돌리는 않는 것은 그 마음에 하나 님을 아는 지식을 두는 것이 무가치하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결국 하나님의 진리를 억누르고 그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는 자들의 가치관이 무너져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즉,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모르고 그 지식을 하잖게 여기 므로 결국 거짓에 미혹되어 우상 숭배의 죄를 범하며 남자가 남자에게 음욕을 품고 여자는 여자에게 음욕을 품는 역순하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저희를 그 상 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셨습니다(28절). 하나님의 진리를 막는 이들을(18절)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버려 주신 하나님(24절),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두신 하나님 (26절)께서 그들을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셨습니다(28절).  하나님의 진노가 하나님 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는 자들에게 임하되 그들의 상실한 마음, 즉 잘못된 마음 그대로 내어 버려두셨습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합당치 못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28절). “곧, 인간의 본분과 책임에 부합하지 않는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박윤선). 그 죄악 된 행 동들의 목록이 오늘 본문 29-32절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 목록을 한 5가지로 분류할 수 있 습니다: (1) 불의, 추악, 탐욕, 악의 - 사람이 자기에게 대한 취급을 잘못하는 범죄; (2) 시 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 - 사람이 남들과 경쟁하는 관계로 생기는 범죄; (3) 수군수군하 는 것과 비방 - 사람이 남을 언론으로 해하는 범죄; (4) 하나님을 미워함과 능욕, 교만, 자 랑, 악을 도모함 - 사람이 자기를 높이는 범죄 그리고 (5) 부모를 거역함과 우매, 배약, 무 정, 무자비 (의리를 반역하는 범죄)(박윤선). 이러한 죄를 범하는 잘못된 마음을 가지고 있 는 자들은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 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 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고 있습니다(32절). 그러므로 하 나님의 진노가 이러한 자들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이 뿔나셨다’라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이 하나님의 화는 우리 성도들이 종종 내는 성냄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의 화는 의로운 분노이십니다. 다 시 말하면, 거룩한 분노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거룩한 분노를 내시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사람들이 불의로 진리를 막기 때문이요(18절),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 꾸기 때문이요(25절) 또한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28절).   우리는 이러 한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나 타나므로 모든 죄를 다 회개하고 예수님께 돌아와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는 구원의 역사가 나타나길 기원합니다.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있었던 자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덧입은,

 

제임스 김 목사 나눔

(진리를 막고,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며,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게 만드는 사탄의 역사를 명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