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그리운 마음이 있다 할지라도 용서하는 마음이 없으면

서로에게서 거리를 두게 만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아들 압살롬은 예루살렘에 2년 동안 있으면서 아직 한 번도 뵙지 못한 아버지 다윗왕을 뵈려고 요압 장군으로 하여금 자기를 위해 중재역을 해 달라고 부탁하려 했지만 요압이 그를 만나주지 않았습니다(사무엘하14:29, 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하는 수없이 압살롬은 자기 하인들을 시켜 요압의 보리밭에 불을 지르게 해서 결국 요압을 만났습니다(30-31절, 현대인의 성경).  그때 압살롬은 요압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당신을 부른 것은 당신을 왕에게 보내 왕이 나를 볼 생각이 없었다면 무엇때문에 나를 그술에서 데려왔는지 한번 물어봐 달라고 부탁하고 싶었기 때문이오.  내가 차라리 그 곳에 머물러 있었더라면 좋을 뻔하였소.  이제 나를 왕과 좀 만나게 해 주시오.  만일 나에게 죄가 있다면 왕이 나를 죽여도 좋소”(32절, 현대인의 성경).  이 압살롬의 행동과 말을 생각할 때 저는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을 그리워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아버지 다윗을 보고 싶어했습니다.  그는 아버지를 만나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아버지 다윗은 자기를 그술에서 예루살렘으로 데려와 놓고서도 2년 동안이나 한 번도 만나주지 않으니까 자기가 차라리 그술에 머물러 있었더라면 좋을 뻔했다고까지 요압에게 말했던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아무리 아버지와 아들이 한 지붕 아래 함께 산다고 할지라도 용서하지 않는 마음은 그 사람 사이에 거리를 멀리 두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미워하는 마음은 서로에게 거리를 두게 만들지만, 용서하는 마음은 서로의 거리를 좁힙니다.  아무리 그리운 마음이 있다 할지라도 용서하는 마음이 없으면 서로에게서 거리를 두게 만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