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부활하심을 예언하심 (1)
[마태복음 16장 21-23절]
마태복음 16장 21절 말씀입니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자신이 죽으실 것과 3일 만에 부활하실 것을 예언하신 말씀입니다. 지난 주 수요기도회 때 마태복음 2장 13-18절 말씀 중심으로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이 땅에 죽으로 오신 예수님께서(갈4:4) 애굽으로 피하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죽으실 때가 되지 않으셨기 때문이라고 배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33년 이 땅에서의 삶 가운데 여러 번 피하시고 숨으시곤 하셨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죽으실 때가 아직 되지 않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시다가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죽으셨습니다(롬5:6). 이렇게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이 땅에 오시고(갈4:4),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죽으신 예수님께서는(롬5:6)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딤전6:14-15).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러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때에 이루러 드려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장소에서 죽으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장소는 바로 “예루살렘”입니다(마16:21).
오늘 본문 마태복음 16장 21절을 보면 “이 때로부터 … 나타내시니”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이 때로부터”란 예수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란 질문(13절)후에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질문하셨을 때(15절) 시몬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신앙 고백을 했습니다(16절). 그래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17-19절)고 말씀하신 후 “제자들에게 경고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20절). 바로 이 말씀을 하신 후 “이 때로부터” 예수님께서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21절). 즉, “이 때로부터”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18절)고 말씀하신 후로부터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죽으실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21절). 예수님께서는 전에도 자신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지만 밝히 말씀하지 않으시고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으심에 대해서는 “신랑이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라고 말씀을 하셨고(마9:15), 자신의 부활하심에 대해서는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요2:19). 그러나 “이 때로부터”(마16:21)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밝히 말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태복음 16장 21절에서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으심에 대해서 “이 때로부터” 밝히 말씀하시면서 자신이 죽을 장소가 “예루살렘”임을 말씀하셨습니다(21절). 그 이유는 바로 “예루살렘”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예수님의 죽으실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정하신 “예루살렘”에 대해서 한 3가지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창세기 22장을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셨을 때(1절) 그가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장소가 바로 “모리아 땅”(2절)에 있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일러주신(3, 9절) 모리아 산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리아 산은 바로 예루살렘입니다[(대하3:1)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를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3절) 3일째에(4절, 현대인의 성경) 모리아 땅에 도착하여 멀리서 모리아 산을 바라보고(4절) 아브라함은 그의 두 종들에게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고 말했습니다(5절). 그런 후 그는 이삭에게 번제 나무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면서(6절) 대화를 했습니다. 아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불과 나무는 있는데 번제할 어린 양이 어디 있는지 여쭈었고(7절) 아브라함의 답변은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였습니다(8절). 그리고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한 숫양을 친히 준비하셨으므로(13절) 아브라함은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대신하여 그 숫양을 번제로 드렸습니다(13절). 그래서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라고 불렀습니다(14절).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사랑하시며 기뻐하시는 아들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마13:7) 예루살렘에서 죽임을 당하시면서(마태복음 23장 21절 예수님의 예언대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크게 소리 지르셨을 때(27:46) 그 아들을 위해 번제할 어린 양을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지 않으셨습니다(창22:8). 즉,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모리아 산(예루살렘)은 “여호와 이레”였지만 하나님 아버지에게 있어서 독생자 예수님이 죽으신 예루살렘은 “여호와 이레”가 아니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어린 양”(8절)은 바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요1:29)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2) 사무엘하 24장을 보면 다윗 왕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지 않은 이스라엘 인구 조사케 하므로(1-4절) 그 결과 3일 동안의 무서운 전염병으로 이스라엘 전역에서 죽은 자가 70,000명이나 되었고(15절, 현대인의 성경) 그 재앙을 그치게 하고자(21절) 다윗은 여호와께서 명령하신바 (선지자) 갓의 말대로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오르난)의 타작마당에 가서 단을 쌓았는데(18-25절) 이 아라우나(오르난) 타작마당이 바로 예루살렘입니다.
역대하 3장 1절 말씀입니다: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 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다윗은 아라우나(오르난)에게 값없이는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지 않길 원하여 상당한 값으로 그의 타작마당을 사서(대상21:24)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려 여호와께 아뢰었더니 여호와께서 하늘에서부터 번제단 위에 불을 내려 응답하시고 여호와께서 천사를 명령하시매 그가 칼을 칼집에 꽂았습니다(26-27절). 결국 그 천사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그의 손을 들어 멸하려 했을 때 여호와께서 이 재앙 내리심을 뉘우치사 백성을 멸하는 천사에게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때 그 천사가 있었던 곳이 바라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모리아 산이요 예루살렘)이었습니다(삼하24:16).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예루살렘에서 죽으시는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에게 거룩한 진노를 쏟으시매 있어서 멈추지 않으시고 충분히 진노를 쏟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를 속하시기 위하셔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 제물로 이 땅에 보내셨기 때문입니다(요일4:10).
(3) 역대하 3장 1절을 보면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 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받치라고 명하신 “모리아 산”이나 하나님께서 갓 선지자를 통해 다윗에게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고 명하신 장소인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이나 그곳이 바로 하나님께서 정하신 “예루살렘”이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 예루살렘에서 솔로몬 왕은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했는데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2:19).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예루살렘 성전은 자기 육체[“자신의 몸”(현대인의 성경)]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입니다(21절). 곧, 예루살렘 성전은 예수님의 육체(몸)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 죽임을 당하실 것을 오늘 본문 마태복음 16장 21절에서 예언(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장소(“예루살렘”)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도 맏형 되시는 예수님을 본받아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와 장소에서 죽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다가 하나님의 뜻대로 죽어야 합니다. 이러한 성도의 죽음은 하나님 보시기에 귀중한 것입니다(시116:15). 비록 사람들 보기엔 저주를 받아 비참하게 죽는 것일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하나님의 뜻대로 살다가 하나님의 뜻대로 죽는 것이 가장 귀중한 삶이요 가장 소중한 죽음입니다. 시편 116편 15절 말씀입니다: “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현대인의 성경) “여호와께서는 성도의 죽음을 소중하게 보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