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육신이 되어” (6)

 

 

 

[요한복음 11-4, 9-14]

 

 

말씀이신 성자 하나님께서 육신”(사람)이 되신 두 번째 목적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보자가 되시기 위해서입니다.

 

본래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중보자가 필요가 없었습니다. 본래 하나님과 아담과 교제를 하셨었습니다. 창세기 2장 7절 말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아담)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셔서 생령이 되었습니다. 즉, 그 사람 아담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에덴 동쪽의 동산을 만드셔서 그 사람 아담을 거기 두시고 교제하셨습니다(8절). 또한 하나님께서 아담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창세기 2장 16-17절 말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첫째 사람 아담과 언약을 맺으시면서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계속해서 교제를 나누길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만일 아담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그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않았다면 하나님께 계속해서 교제를 할 수가 있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아담으로 하여금 가정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창세기 2장 18-24절 말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돕는 배필을 지어주시므로 그로 하여금 가정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창세기 2장을 보면 하나님과 아담 사이에 중보자가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창세가 3장에 와서는 하나님과 아담 사이에 중보자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 여자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 그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하여 그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아담)에게도 주매 그도 먹었기 때문입니다(창3:6). 그 결과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7-8절). 그리고 아담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17-19절). 그래서 결국 하나님과 아담이 원수가 되었습니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롬5:10). 하나님께서 우리를 원수로 여기시고 우리에게 진노하시며 우리를 대적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중보자가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중보자는 한편만 위해서는 안 되고 양편을 위하고 합당해야 합니다. 중보자이신 성자 하나님은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고 계시고 또한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으신 것을 다 하실 수 있으십니다. 그리고 중보자이신 성자 하나님은 사람이 되시되[“말씀이 육신이 되어 …”(요1:14)] 완전한 사람이십니다. 중보자이신 성자 하나님은 죄가 없으십니다. 만일 그 분이 죄가 있으시면 중보자가 될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장 3절 말씀입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만일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 있는 육신”으로 오셨으면 중보자가 되실 수가 없으십니다. 그러나 성경은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의미는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연약한 몸으로 오셨다는 말입니다(시장하시고, 목말라 하시며 피곤하셨음). 그 자체는 죄가 아닙니다. 바로 그 때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치셨기에 죄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시험도 다 받으셨지만 다 이기셨기에 죄가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야 말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참 중보자가 되실 수 있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유일한 중보자는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디모데전서 2장 5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중보를 잘 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디모데전서 2장 6절 말씀입니다: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 그 분은 우리 죄를 속량하시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습니다. 훌륭한 중보자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에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롬5:10). 그래서 이제 우리는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합니다(11절). 에베소서 2장 11-13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여기서 “그 때”(11, 12절)란 하나님과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를 말합니다. “그 때”란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요 우리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못했을 때입니다. “그 때”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고 그리스도 밖에 있었습니다(12절). 우리는 하나님도 없는 자였습니다(13절). 하나님과 원수 된 자였습니다. 우리는 소망도 없었습니다(12절). 그러나 “이제는”(13절)(“이제”란 아주 강세를 표시함) “전에 멀리 있던”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습니다(13절).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가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사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셨습니다(14-15절).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성소에 있는 휘장에 찢어져 둘이 되므로(마27:51) 사람들이 지성소에 들어가게 되었고, 지성소에 계시던 하나님께 성소에도 계시므로 사람들과 함께 거하셔서 교제하시고 화평을 이루셨습니다. 에베소서 2장 16-19절 말씀입니다: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원수 된 것을 소멸하시고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므로 이제부터 우리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권속”이란 하나님의 가정 식구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예수님이 우리의 맏형님이시고(롬8:29), 맏형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십니다(히2:11). 이렇게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가 중보자이신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어 하나님의 식구가 되어 예수님이 우리의 맏형님이 되시고 우리는 예수님의 아우들이 되었으니 이 얼마나 우리가 영화롭게 되었습니까? 우리는 이 크신 은혜에 늘 감사하며 오직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