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땅에 뿌려진 씨

 

 

 

[마태복음 13 장 1-9 절 말씀 묵상]

 

 

여러분, 수년 전에 이 세상을 떠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을 아시죠?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평등선거 실시 후 뽑힌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만델라는 남아공 옛 백인정권의 인종차별에 맞서 투쟁을 하다가 반역죄로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1990 년 2 월 11 일, 27 년 동안 감옥 생활을 하다가 출소했는데 그가 감옥에 있을 때 한번은 자신의 딸이 아이를 낳아 감옥에 데리고 왔었다고 합니다. 그 때 만델라는 그 손주의 이름을 ‘희망’(Hope)이라고 지어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너는 희망이야. 감옥에 있는 동안 희망이 나로부터 떠나간 적이 없었지. 그리고 앞으로도 희망은 나를 떠나지 않을 거야”(인터넷). 여러분, 이것이 그에 대하여 무엇을 말해 주고 있습니까? 넬슨 만델라, 그의 마음에는 희망의 씨앗이 심겨져 있었던 것을 말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에도 희망이 씨앗이 심겨져 있는지요? 제 마음에 주님께서 심겨주신 희망의 씨앗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요한복음 6 장 1-15 절(오병이어의 말씀)과 교회적으로는 마태복음 16 장 18 절(‘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입니다. 농부 되신 주님께서 제 마음 밭에 이 말씀의 씨앗들을 뿌리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 씨앗들로 하여금 싹이 트게 하시고 자라나게 하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주님의 때가 오면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실 것을 저는 기도하며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13 장 1-9 절을 보면 예수님의 씨 뿌리는 비유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로 모여 든 큰 무리들에게(2 절) 이 씨 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씨가 4 가지 땅에 뿌려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그 네 땅이란 “길가”, “돌밭”, “가시떨기” 그리고 “좋은 땅”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4 땅 중에 네 번째 땅인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열매(“결실”)을 맺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8 절) 여기서 “씨”는 “하나님의 말씀”(눅 8:11)이고 “씨를 뿌리는 자”는 “인자” 곧,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 중심으로 “좋은 땅에 뿌려진 씨”란 제목 아래 4 가지 땅을 묵상하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길가에 뿌려진 씨입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13 장 3-4 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이 비유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3 장 19 절에 이렇게 그 비유의 의미를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즉, ‘길 가에 씨가 뿌려진 자’란 “천국 말씀” 즉, “하나님의 말씀”을 듣긴 듣지만 깨닫지 못할 때 악한 자가 와서 그 뿌려진 말씀을 빼앗긴 자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악한 자”란 누구입니까? 성경 마가복음 4 장 15 절을 보면 저자 마가는 “사단”이라고 말했고 누가복음 8 장 12 절을 보면 저자 누가는 “마귀”라고 말했습니다. 왜 마귀 사단은 우리 마음에 뿌려진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서 빼앗는 것입니까? 성경 누가복음 8 장 12 절을 보십시오: “길 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와서 그들로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사단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우리 마음에서 하나님의 천국 말씀을 빼앗습니다. 빼앗되 사단은 우리가 말씀을 들었을 때에 즉시 와서 우리에게 뿌리운 말씀을 빼앗습니다(막 4:15). “길 가”와 같은 마음은 이 세상의 모든 악한 운동과 영향에 개방된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순종으로 섭취하려는 생각이 없습니다. 이것이 큰 병통입니다(박윤선). 즉, 길 가와 같은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순종하려는 자세가 마음에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불순종의 태도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때문에 그 말씀을 깨달을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언젠가 잠언 22 장 17-29 절 말씀 중심으로 “지혜 있는 자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라는 제목 아래 교훈을 받았습니다. 그 받은 교훈 중 하나가 바로 지혜 있는 자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귀를 기울여 들으라(listen obediently)는 것이었습니다(Harris). 만일 우리가 순종의 자세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불순종의 자세로 그 말씀을 듣는 다면 물론 사단이 그 말씀의 씨를 우리에게서 빼앗아 갈뿐만 아니라 우리 마음은 하나님을 불신하며 결국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계속해서 불순종하면서 교만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이 더욱더 강팍(완고)해져서 어느 누구의 사랑의 책망도 귀 기울여 듣지도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 사단에게 그 들은 말씀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의 자세로 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세로 들을 때에 우리는 그 말씀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 깨달은 말씀을 우리는 실제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그 말씀을 우리 마음에 간직할 수가 있습니다(잠 22:18). 그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간직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욱더 하나님을 신뢰할 수가 있습니다(19 절).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므로 그 말씀을 우리 소유로 만들 때에(시 119:56) 우리의 믿음이 더욱더 자라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의 자세로 들으면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믿음은 자라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믿음은 점점 더 연약해 져서 점점 더 하나님을 의심하게 되고 결국에는 하나님을 불신하여 그의 계명에 불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길 가에 뿌려진 씨의 삶입니다.

 

둘째로, 돌밭에 뿌려진 씨입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13 장 5 절을 보십시오: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이 비유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3 장 20-21절에서 그 비유의 의미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현대인의 성경) “그리고 돌밭에 떨어진 씨는 말씀을 들을 때 기뻐하며 즉시 받아들이지만 그것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하지 못하고 잠시 견디다가 그 말씀 때문에 고통이나 핍박이 오면 곧 넘어지는 사람이다”]. 즉, ‘돌밭에 씨가 뿌려진 자’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지만 그 속에 뿌리가 없으므로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입니다. 그래도 “돌밭에 뿌려진 자”는 “길 가에 뿌려진 자”와 달리 하나님의 말씀을 기쁨으로 받습니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면 누가복음 8 장 13 절을 보면 “잠시 믿다가”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믿음이 오래 못 간다는 것입니다. 믿음(신앙) 때문에 오는 환난(고통)이나 박해(핍박)로 인하여 시험을 받을 때에 그는 넘어지고(막 4:17) 심지어 믿음을 “배반”합니다(눅 8:13).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그 원인은 그 속에 뿌리가 없기 때문입니다(마 13:21, 막 4:17). 이것이 바로 뿌리 깊지 못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강준민 목사님의 “뿌리 깊은 영성”이란 책 제목이 생각났습니다. 그 책에서 저자는 “영성”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저와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성령님 안에서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강준민). 예수님을 닮아가는 뿌리 깊은 영성에 가운데 저자가 말한 내용 중에 흥미로운 말은 ‘뿌리 깊은 영성은 먼저 아래로 성장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말입니다. 마치 나무의 뿌리가 땅 밑으로 성장하듯이 말입니다. 그러면서 저자는 이 말에 대하여 한 4 가지로 요약했습니다: (1) 첫째로,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영성: “하나님의 나라는 작은 겨자씨와 같습니다. 작은 것에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세상의 가치관은 성취, 성과, 결과에 가치를 두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존재”에 가치를 둡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린아이와 같이 순진하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사람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특징은 영혼의 가치에 두는 것입니다.” (2) 둘째로,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영성: (빌 2;7-8)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3) 셋째로, 자신을 감추는 영성: “뿌리는 드러내지 않습니다. 뿌리를 깊이 내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4) 넷째로, 보이지 않는 속사람을 돌보는 영성: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엡 3:16). ”뿌리는 언제 깊이 내릴 수 있는지요? 그것은 시련 때 입니다. 하나님께서 시련을 주시기도 합니다. 모세는 40 년 동안 광야에서 그랬습니다. 나무는 겨울에 쉬면서 뿌리만 가꾸게 됩니다. 나무에게 겨울이 중요합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아주 힘들게 하여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존 번연도 그러했습니다. 고난은 축복입니다. 제 자신에게 항상 이렇게 말합니다. ‘고난을 낭비하지 말라’”(강준민).

 

여러분, 우리는 뿌리 깊은 신앙을 추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떠한 신앙의 핍박과 박해가 있다 할지라도 뿌리가 움직이지 않는 견곤한 믿음을 추구해야 합니다(잠 12:3). 성경 골로새서 2 장 6-7 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현대인의 성경)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였으니 계속 그분 안에 사십시오. 그분 안에 깊이 뿌리를 박고 그분을 기초로 여러분의 인생을 건설하며 가르침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가 넘치는 생활을 하십시오”]. 여러분, 우리가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가 넘치는 생활을 하려면 우리는 예수님 안에 깊이 뿌리를 박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 인생의 기초로 삼아야 합니다(고전 3:11). 그러한 가운데서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행해야 합니다.   그리할 떄 우리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처럼 많은 환난 가운데서도 성령님의 기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주님을 본 받는 자들이 되며,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며 또한 우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질 수가 있을 것입니다(살전 1:6-8).

 

셋째로, 가시떨기에 뿌려진 씨입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13 장 7 절을 보십시오: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이 비유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3 장 22 절에 이렇게 그 비유의 의미를 말씀하셨습니다: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현대인의 성경) “또 가시덤불 속에 떨어진 씨는 말씀은 듣지만 이 세상 걱정과 재물에 대한 유혹 때문에 말씀대로 생활하지 못하는 사람을 말한다”]. 즉, ‘가시떨기에 씨가 뿌려진 자’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나 그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 말씀대로 생활하지 못하는 사람이 바로 가시떨기에 씨가 뿌려진 자입니다. 왜 하나님의 말씀대로 생활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바로 세상의 염려(걱정)와 재물에 대한 유혹 때문입니다.(마 13:22) 이 외에 기타 욕심(막 4:19)과 향락에 기운(쾌락)(눅 8:14)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그 말씀대로 생활하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입니다. ‘가시떨기’와 같은 환경은, 그 좋은 씨가 섭취해야할 영양을 다 빼앗기 때문에 그것이 결실하지 못합니다(박윤선). 무슨 뜻입니까? 만일 저와 여러분의 마음이 가시떨기와 같다면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나 우리 마음이 이미 이 세상의 염려와 재물에 대한 욕심과 기타 욕심 및 쾌락에게 빼앗겨서 그 말씀대로 살지 못하므로 열매 맺는 신앙생활을 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이런 저런 세상의 염려든지 재물의 유혹이나 욕심과 쾌락에 우리 마음이 빼앗겼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 수가 있겠습니까?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염려하며 재물의 유혹과 욕심과 쾌락에 빠져서 하나님께 범죄할 것입니다.

 

저는 가시떨기와 같은 환경을 생각할 때 오래 전에 읽었던 영동 세브란스병원 암센터 소장인 이희대 의사의 “희대의 소망”이란 책이 생각났습니다. 그 분은 유방암 전문의면서 대장에서 시작된 암이 간과 뼈로 전이되어 10 번의 재발을 겪은 암 4 기 환자로서 생과 사를 넘나드는 고통을 겪는 암 환자들에게 그 책을 썼는데 그 책에서 읽었던 글 중 암세포가 왜 무서운지에 대한 글이 생각나 제 개인 블로그에 들어가서 그 글을 찾았습니다. 인용합니다: “암세포가 무서운 것은 끊임없이 자라나기 위해서 다른 세포들의 영향분을 혼자서 차지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것도 한군데서만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리를 옮기면서 말이다. 암세포는 칼로리 섭취가 지나치게 많을 때 번식을 잘하는 경향이 있다. 암세포는 가만히 숨어 있다가 어느 순간 고칼로리 영양분을 낚아채서 독식하며 성장한다. 암세포가 다른 세포의 영양분을 독식하면서 성장하듯이, 그 생성 또한 끊임없는 욕심에서 비롯된다. 말하자면 암세포의 본질은 탐욕이다"(인터넷). 마치 이러한 암세포처럼 세상의 염려나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 및 쾌락은 우리 마음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영양분을 빼앗아 갑니다. 좀 더 성경적으로 말한다면,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 및 쾌락은 우리가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막으므로 우리로 하여금 그 말씀대로 생활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성경 마태복음 13 장 22 절을 보면 저자 마태는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라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서 “막혀”라는 말은 영어로 “choke it”이란 말로서 그 의미는 ‘숨이 막히다, 질식시키다’, ‘목을 조르다’는 뜻입니다. 또한 영어 단어는 “strangle”로서 그 의미는 ‘목을 조이다’, ‘목 졸라 죽이다’입니다. 이렇게 한번 생각하면 좀 이해하기가 쉬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귀로 듣고 그 말씀을 머리에 넣었는데 그 말씀이 우리 마음으로 내려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가 우리 목을 조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그 무엇인가는 바로 우리 마음에 있는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 및 쾌락입니다.

 

여러분, 만일 우리 마음에 이 세상의 염려과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 및 쾌락이 있다면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합니다.   버리되 우리는 그저 입술로만 죄를 자백하고 회개해서는 아니 됩니다. 그 이유는 만일 우리가 입술로만 그리한다면 우리는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마음이 막혀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생활하지 못할(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생활하기 위해선 우리는 우리 마음에 있는 마치 암세포와 같은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 및 쾌락을 다 버려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도 생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 넷째로, 좋은 땅에 뿌려진 씨입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13 장 8 절을 보십시오: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이 비유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3 장 23 절에서 그 비유의 의미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현대인의 성경) “그러나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런 사람은 100 배, 60 배, 또는 30 배의 열매를 맺는다”]. 즉, ‘좋은 땅에 씨가 뿌려진 자’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 열매를 맺는 자란 말입니다. 성경 누가복음 8 장 15 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현대인의 성경) “그러나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잘 간직하여 인내로 열매를 맺는 사람을 가리킨다”]. 여기서 “착하고 좋은 마음”(a noble and good heart)에서 ‘착하고 좋다’는 단어는 헬라어 원어를 보면 다른 두 단어이지만 그 의미는 ‘좋은’(good)이란 뜻입니다. 그렇지만 그 “좋은” 이란 의미를 좀 구분할 수가 있는데 두 번째 단어인 “좋은 마음”(good heart)이란 도덕적으로 똑바른[곧은, 고결(순결)한(noble)] 마음을 가리킵니다(Zodhiates). 그런가 하면 첫 번째 단어인 “착하고”란 단어는 “아름답다’(beautiful)이란 의미도 있는데 그 의미에는 ‘건강하다, 바르다, 적합하다’(healthy, sound, fit)란 의미가 내포되 있습니다(Friberg). 이 의미를 생각할 때 누가복음 8 장 15 절에 나와 있는 “착하고”란 개혁개정 성경의 번역을 현대인의 성경에서 “바르고”라고 번역한 것을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두 단어를 구분한 이유는 좋은 땅에 씨가 뿌려진 자의 마음은 어떠한지 좀 더 정확하게 알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은 바르고 건강하되 하나님의 말씀 받기가 적합한 마음입니다. 또한 그 마음은 도덕적으로 똑바르고 고결(순결)한 마음으로서 주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마음입니다. 저는 이 마음을 생각할 때 사도행전 17 장 11 절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현대인의 성경)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이며 그것을 확인하려고 날마다 성경을 연구하였다”]. 이 말씀이 생각난 이유는 누가복음 8 장 15 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착한 마음’의 영어 번역인 “a noble heart’를 생각할 때 사도행전 17 장 11   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이   “더   너그러워서”(개혁개정)   또는 “신사적이어서”(현대인의 성경)이라고 말씀하였는데 그 단어의 영어 번역이 “noble character”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두 구절 말씀을 연관해서 묵상했을 때 오늘 마태복음 13 장 8 절과 23 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좋은 땅”, 즉 하나님의 말씀의 씨가 뿌려진 좋은 땅과 같은 마음이 무엇인지 좀 더 풍성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 마음이란 ‘바르고 건강하되 하나님의 말씀 받기가 적합한 마음이요 도덕적으로 똑바르고 순결한 마음으로 주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마음인데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을 확인하려고 날마다 성경을 연구(상고, 곰곰이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의 마음이 이러한 마음이 되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복음성가 “작은 불꽃 하나로 남아”라는 찬양의 2 절 가사가 생각났습니다: “이름 없는 들풀하나 주님 앞에 섭니다 찬바람에 견디도록 주여 도와 주옵소서 꽃피우지 못한 죄인 열매 없는 무화가라 허송세월 보낸 이몸 엎드리어 우옵니다 슬픔근심 가득 찰 때 하늘나라 소망하며 아버지의 품안에서 영원토록 살게 하소서 온 세상 향내 내는 작은 들풀 하나로 남아 피우고 또 피워서 청지기가 되게 하소서.”   이 가사 중 특히 저는 “꽃피우지 못한 죄인 열매 없는 무화가라”는 내용이 생각났습니다. 열매 맺는 신앙인이 되고 싶은 마음으로 이 말씀을 다시금 묵상하며 맺고자 할 때 저는 오늘 예수님의 씨 뿌리는 비유에서 좋은 땅에 뿌려진 씨처럼 100 배, 60 배, 혹은 30 배 열매를 맺고 싶습니다.   또한 우리 모두가 좋은 땅과 같은 마음이 되어서 열매 맺는 신앙인이 되길 기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고 적합한 마음이 되야 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고 적합한 마음은 건강한 마음이요 바르고 순결한 마음입니다. 그러한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세로 듣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러한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의 뿌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깊이 내립니다. 그러므로 말씀(신앙)으로 인하여 어떠한 고통과 역경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고 견디며 이겨나아 갑니다. 그리고 좋은 땅과 같은 마음은 세상의 염려와 재물에 대한 유혹 및 기타 욕심과 쾌락으로 인하여 말씀이 막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좋은 땅과 같은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열매를 맺습니다. 이러한 열매를 맺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