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십시다.
[마태복음 7장 7-11절]
기도하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기도의 사람 혹은 기도의 용사라고 불리었던 죠지 뮬러 목사님을 얘기하곤 합니다. 그 이유는 그는 역사상 기도응답을 가장 많이 받기로 소문났기 때문입니다. 그는 5만개 이상의 기도를 응답받았다고 합니다. 이번에 설교를 준비하면서 죠지 뮬러 목사님의 평생 기도 수칙 6가지를 알게 되어 여러분들과 나눕니다(인터넷): (1) 예수님을 의지하라! 내 공로가 아니라 예수님의 공로를 의지하여 기도하라. (2) 죄를 버려라! 우리가 죄악을 품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 마음에 숨긴 죄악을 버려라(시 66:18). (3) 믿어라! 하나님께서 맹세하신 약속의 말씀을 믿으며 기도해야 한다(히11:6). (4) 인내로 기도하라! 기도자의 자세는 첫째도 인내요, 둘째도 인내요, 셋째도 인내다. 농부가 오랫동안 참으며 추수할 때를 기다리듯이, 기도하는 자도 기다려야 한다(약5:7). (5) 하나님의 뜻을 살피며 기도하라! 경건한 동기를 가지고 기도해야 한다. 이기적인 목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을 구해서는 안 된다(약4:3).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면서 기도하기 위한 6가지 자세는 이렇습니다: (a) 자신의 뜻을 포기하라, (b) 느낌을 신뢰하지 말라, (c) 성령과 말씀을 바라보라, (d) 환경을 고려하라, (e) 하나님의 뜻을 보여 달라고 기도하라, (f) 결정했을 때에 마음이 평온한지 점검하라. (6) 할 수 있는 한, 새벽에 기도하라! 기도의 사람들은 새벽의 사람들이었다. 새벽에 도우시는 하나님을 붙들어라(시46:5).
여러분, 우리는 이미 마태복음 6장 5-13절에서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 대해서 묵상했었습니다. 먼저 5-8절에서 우리는 기도에 대한 3 가지 가르침을 배웠습니다: (1) 첫째 교훈은, 우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기도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2) 둘째 교훈은, 우리는 기도할 때에 은밀한 중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3) 셋째 교훈은, 우리는 기도할 때에 이방인들처럼 중언부언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6장 9-13절에서 그 유명한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주기도문을 한 4개의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우리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2) 3개의 ‘당신’ 청원입니다: (a)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9절), (b) ‘(당신의) 나라이 임하옵시며”(10절), (c) ‘(당신의) 뜻이 하늘에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10절). (3) 3개의 ‘우리’ 청원입니다: (a)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11절), (b)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12절), (c)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소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13절). (4) “송영”입니다(13절하).
오늘 본문 마태복음 7장 7-1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다시 기도에 대하여 가르치시는 모습을 우리는 볼 수가 있습니다. 이 예수님의 기도에 대한 가르침을 우리는 한 3 가지로 요약할 수가 있습니다(Willmington):
첫째로, 기도에 대한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그 명령은 바로 계속해서 하나님 아버지께 간절히 구(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7장 7절을 보십시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여기서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3 동사인 “구하라”, “찾으라” 그리고 “두드리라”는 단어들은 모두 다 현재 시간의 명령사입니다. 즉,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계속해서 구하라, 계속해서 찾으라, 그리고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예수님께서는 그의 제자들이 계속해서 하나님 아버지께 간절히 기도하라고 명령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던질 수 있는 질문은 무엇을 위해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계속해서 하나님 아버지께 간절히 기도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어떤 주석가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계속해서 간구해야 하는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부지런히 찾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Willimington). 또 다른 주석가는 그들이 하나님 아버지께 간절히 기도해야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지혜와 인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오늘 본문 마태복음 7장 7-11절과 제일 가까운 문맥인 1-6절에서 비판(정죄)하지 말라, 외식을 버리라 그리고 판단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실천하긴 위해선 하나님의 지혜가 하나님의 인도가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Wiersbe). 이 2 가지 해석이 다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 두 가지 주석가의 해석보다 Word Biblical 주석의 해석이 좀 더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주석의 해석의 주장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하나님 아버지께 계속해서 간절히 구해야 하는 기도 제목은 바로 오늘 본문 11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좋은 것”(good gifts)이라는 것입니다(Hagner). 11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만일 이 해석이 맞는다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명령대로 계속해서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해야 할 그 “좋은 것”은 무엇입니까? 이 질문을 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오늘 본문 마태복음 7장 7-11절과 유사한 누가복음 11장 9-13절 중 13절을 보아야 합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마태가 말한 “좋은 것”을 누가는 성령님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즉,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명령대로 하나님 아버지께 계속해서 간절히 구해야 했던 것은 바로 성령님이란 말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계속해서 하나님 아버지께 성령님을 간구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까? 그 이유는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간절한 기도였기 때문입니다. 성경 요한복음 14장 16절을 보십시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여기서 “또 다른 보혜사”란 성령님을 가리키는데 그 뜻은 무엇입니까? “보혜사의 희랍어 원어 ‘파라클레토스’(paravklhto)는 원래 법정 용어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고대 법정에서는 피고인이 원고가 고용한 변호사에게 심히 추궁당하여 스스로 변호할 수 없는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될 때, 피고인의 가장 친한 친구를 불러 피고 곁에 세우는 관습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 때 이 친구는 피고에 대한 ‘파라클레테스’(parav- klhte")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혜사란 곤궁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기 위하여 목숨을 내걸고 변호하여 승리케 하는 위로자를 의미하는 것입니다”(인터넷). “요한복음 14장 16절에는 예수께서 성령을 ‘다른 보혜사’(ajllo paravklhto)로 부르고 있는데, 여기에는 깊은 암시적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른 보혜사’의 형용사 ‘다른’에 해당하는 ‘알로스’(ajllo)는 종류와 성질이 똑같은 다른 것을 뜻합니다. 즉 예수님께서 성령을 ‘다른 보혜사’라고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보내실 성령은 예수님과 동일한 인격과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을 대신해서 예수님의 위치에서 일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인터넷).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을 위하여 간구하시되 하나님 아버지께 또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님을 그들에게 주사 영원토록 그들과 함께 있게 하여 주시길 원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이 그들의 모든 죄를 걸머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사 그들을 떠나야 할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16:7). 이렇게 예수님께서 친히 하나님 아버지께 보혜사 성령님을 그의 제자들에게 보내주시길 간구한 이유는 성령님께서 그들과 영원히 함께 계시면서 그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길 원하셨기 때문입니다(14:26).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 성령님을 보내주시길 간구한 이유는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예수님을 증언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15:26). 또한 진리의 성령님이 오시면 그가 그들을 모든 진리 가운데 인도하실 것이요 장래 일도 그들에게 알리실 것이기 때문입니다(16:13).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 간절히 계속해서 구해야 할 좋은 것은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아직도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믿지 않고(못하고) 계신 분들은 하나님의 선물인 믿음(엡2:8)을 계속해서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실 때 여러분은 구원을 받을 뿐만 아니라 성령님이 여러분 안에 거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성령님이 여러분 안에 거하고 계신 분들은 성령 충만함을 위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계속해서 간구하시길 바랍니다(참고: 엡5:18). 그 이유는 우리 모두가 성령 충만하여 성령의 열매인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갈5:22-23)를 충만히 맺어 드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가운데 우리 모두가 초대 교회 성도들처럼 성령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합니다(행4:31). 또한 우리는 성령님의 뜻에 합당하고 성령님이 주시는 영적인 것들을 위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계속해서 간구해야 합니다(인터넷).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는 좋으신 하나님이시기에 우리에게 최고의 좋은 것으로 주실 것입니다.
둘째로, 기도에 대한 우리의 확신입니다. 그 확신은 바로 기도 응답의 확신입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7장 8절을 보십시오: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대학교 때 어느 목사님으로부터 제자 훈련을 받았을 때 5가지 확신에 대해서 성경 공부한 기억이 납니다. 그 다섯 가지 확신 중에 하나가 바로 “기도 응답의 확신”이였고 그 기도 응답의 확신 성경구절은 바로 요한복음 16장 24절이었습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그 때 제자 훈련을 받으면서 이 성경구절을 외우긴 하였지만 제 마음에는 기도 응답의 확신이 들었다기보다 기도 응답의 확신을 갖고 싶은 마음이 더하였습니다. 특히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는 말씀대로 저는 하나님께 기도 응답을 받아 제 기쁨이 충만하길 원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뒤돌아보면 제가 그 때 하나님께 간구하였던 기도 제목들은 잘 기억이 나지 않고 결론적으로 좋으신 하나님께서 저의 모든 부족함 가운데서도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사 저에게 항상 좋은 것으로 주셨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 아버지께 계속해서 간절히 기도하는 기도 제목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혹시 계속해서 하나님께 기도해도 기도 응답이 없다고 생각될 때 낙심되지 않으십니까? 만일 그러시다면 그럴 때마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8장 1절부터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 예수님의 비유를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늘) 그에게 가서 자기 원수에 대한 자기의 원한을 풀어 주길 계속해서 구하였을 때 그 과부가 자기를 번거롭게 하고 괴롭게 한다고 그녀의 원한을 풀어주었습니다(2-5절). 이 비유를 말씀하신 후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6-8절).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인 여러분의 밤낮 부르짖는 간구를 속히 들어주시겠다는 말씀이 아닙니까?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의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우리의 끊임없이 지속해서 부르짖는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이신데 문제는 우리가 그 하나님을 자꾸만 의심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기도 응답이 더딜 때 우리는 하나님을 의심합니다. 의심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에 대하여 성경 야고보서 1장 6-8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의심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는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님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혹시 저와 여러분이 계속해서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면서도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우리가 의심을 품고 하나님께 기도해서는 아닌지요?
오늘 본문 마태복음 7장 8절에서 예수님께서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께서는 그의 제자들이 하나님 아버지께 계속해서 간구하되 기도 응답의 확신(믿음)을 가지고 기도할 것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죤 칼빈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반드시 들으신다는 사실에 대한 확신처럼 우리의 기도를 작흥(흥을 일으킴)시키고 격려시키는 것은 없다. 의심을 품고 하는 기도는 무력하고 냉정하고 태만한 죽은 의식에 불과하다”(박윤선). 실제로 우리가 기도 응답의 확신을 가지고 기도할 때 큰 위로와 힘을 얻지 않습니까? 그뿐 아니라 기도 응답의 확신이 있을 경우 우리의 마음은 평안하고 담대해 집니다. 성경에서는 우리에게 기도 응답의 확신을 주는 약속의 말씀들이 있습니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마21:22),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14:14),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15:7). 우리의 기도를 이루어 주시는 분은 신실하신 언약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하신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놀라운 것은 우리가 불성실할지라도 하나님은 미쁘시기에(딤후2:13) 우리에게 하신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어 나아가십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 계속해서 기도하되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기도 응답의 확신을 가지고 끊기 있게 하나님께 좋은 것을 구해야 합니다. 유다서 1장 20절을 보십시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되 믿음으로 기도할 뿐만 아니라 성령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믿음과 성령으로 기도하되 우리는 우리에게 “좋은 것”(good gifts)을 주시는 변함도 없으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믿음으로 계속해서 간구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1장 17절을 보십시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분명히 성경은 온갖 좋은 것, 즉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은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계속해서 간구하되 기도 응답의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마지막 셋째로, 기도에 대한 비교입니다. 그 비교는 악한 아버지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입니다.
성경 마태복음 7장 9-11절을 보십시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예수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계속해서 하나님 아버지께 좋은 것을 구하되 기도 응답의 확신을 가지고 간구할 것을 말씀하신 후 오늘 본문 마태복음 7장 9-11절에 와서는 악한 아버지와 하늘에 계시 우리 아버지 하나님과 비교하셨습니다. 이 비교의 요점은 육신의 아버지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주는 것을 알고 있다면 하물며 선하신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구하는 자기에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맞는 말씀이 아닙니까? 어느 육신의 아버지가 자녀가 생선을 달라고 구하는데 뱀을 주겠습니까? 아무리 악한 아버지라도 적어도 자기 핏줄인 자식에게만 에게 라도 좋은 것을 주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하물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저는 여기서 “하물며”(11절)란 단어를 생각할 때 저는 한 두 군데 성경 구절 말씀을 묵상케 되었습니다: (1) 첫 번째 성경구절은 누가복음 18장 7절 말씀입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신(1절)것으로서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에서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2절)과 “하나님”(7절)을 비교하셨습니다. 그 비교의 내용은 그 불의한 재판장(6절)도 자기의 원한을 풀어달라고 자기를 번거롭게 하는 한 과부의 간청을 들어주었다면 “하물며”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의 밤낮 부르짖는 원한을 풀어 주시지 아니하시겠느냐는 것입니다(7절). 여러분, 불의한 재판장도 자기를 번거롭게 하는 한 과부의 간청을 들어주었다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선택받은 저와 여러분들의 간구를 들어 응답해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2) “하물며”란 단어를 생각할 때 묵상케 된 두 번째 성경말씀은 요나 4장 11절입니다: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의 종 요나 선지자에게 하신 말씀으로서 하나님께서는 요나와 하나님 자신과 비교하셨습니다. 그 비교의 내용은 요나는 자기가 수고도 아니 하였고 재배도 아니 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박넝쿨을 아꼈다(욘4:10)는 것과 하나님께서는 니느웨 성읍에 좌우를 분별하지 못하는 120,000명을 아끼신다는 것입니다(11절). 여러분, 박넝쿨이 중요합니까 아니면 120,000명의 영혼이 중요합니까? 무엇을 더욱더 아껴야 합니까? 만일 우리가 수고도 하지 아니한 순간적인 것을 아끼고 있다면 하물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주시기까지 사랑하고 계신데 저와 여러분을 매우 귀하게 여기시고 아끼지 않으시겠습니까?
여러분, 성경 이사야 49장 15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젖 먹는 아기를 낳아 기르는 엄마와 하나님 자신을 비교하고 계십니다. 그 비교의 핵심은 어미가 자식을 잊어버린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절대도 잊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엄마가 자기 자식을 잊어버릴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혹시 잊어버린다 할지라도 하나님 아버지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녀로 삼으신 저와 여러분을 절대로 잊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떠한 엄마도 자기 아기가 젖 달라고 울 때에 마약을 주는 엄마는 없을 것입니다. 하물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간구하는 저와 여러분에게 제일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죠지 뮬러 목사님의 52년간 끈질긴 기도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인터넷). 그가 가장 시간을 많이 들여 한 기도 제목은 자기가 어렸을 때부터 같이 삶을 나누었던 5명의 친구들의 구원 문제를 위한 기도였다고 합니다. 이 5명의 친구를 위해 계속 기도한 뮬러 목사님, 한 사람, 두 사람 믿기 시작했는데 그런데 끝까지 안 믿는 친구가 두 사람 있었습니다. 그래서 뮬러 목사님은 이들을 위하여 약 52년간을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뮬러 목사님이 이제 노년이 되어 어느 날 그는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면서 자기 인생의 마지막 남은 힘을 가지고 간절하게 최후의 설교를 했다고 합니다. 그 날 그의 마지막 설교를 듣던 그의 한 친구가 뮬러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나머지 한 친구는 안 믿었다고 합니다. 결국 뮬러 목사님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후에 그때까지 안 믿고 있었던 한 친구가 뮬러 목사님의 죽음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특별히 그는 자기의 친구 뮬러 목사님이 자기를 위해서 52년간이나 기도했다는 소식을 듣고 결국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믿고 나서 그 친구가 전 영국 땅을 순회하면서 이런 간증을 했다고 합니다: “뮬러 목사의 기도는 다 응답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최후의 응답입니다. 당신의 모든 기도도 다 응답됩니다.” 바라기는 예수님의 명령대로 기도응답의 확신을 가지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 끊기 있게 계속해서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는 가운데 하나님의 기도 응답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