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을 하늘에 쌓아 둡시다.

 

 

 

[마태복음 619-24]

 

 

혹시 여러분에게 두려움이 있으십니까? 있으시다면 어떠한 두려움이 있으십니까? 성경 신명기 8장 17절을 보면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였던 모세에게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 두려움이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할까 함이었습니다. 분명히 성경 신명기 8장 18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재물을 얻을 능력을 주신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의 능력과 힘으로 재물을 얻었다 할까봐 모세는 두려워했습니다. 한 마디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교만해 져서 하나님을 잊어버릴까 봐 두려워했습니다(14절). 여러분, 언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교만해 질 위험이 있었습니까? 그것은 그들의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입니다(13절).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름다운 땅(7절), 그들에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9절)인 가나안에 들어가 먹어서 배불리고(10, 12절)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면서(12절) 그들의 우양이 번성하며 그들의 은금이 증식되어 그들의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13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교만해 질 수 있었습니다. 모세는 이것을 두려워했습니다. 우리도 두려워해야 합니다. 우리도 우리가 교만해 질까봐 두려워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도 모르게 배가 불러 교만해 져서 하나님을 잊어버릴까봐 우리는 두려워해야 합니다. 특히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이 풍족한 미국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배가 불러 교만해 질까봐 두려워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의 비만을 우리는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에 비만이 생겨 욕심과 탐심의 노예가 될까봐 조심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6장 20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오늘 이 말씀 중심으로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둡시다”란 제목 아래 과연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지 한 3 가지로 생각해 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받아 순종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첫째로,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는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6장 19절을 보십시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여러분, 보물을 땅에 쌓아둔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성경 누가복음 12장 16-21절을 보면 보물을 땅에 쌓아둔 한 부자에 대한 비유가 나옵니다. 이 부자는 자기 밭에 소출이 풍성하므로 심중에 고민이 생겼습니다. 그 고민이란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였습니다(눅12:17). 그가 고민 속에 선택한 것은 자기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는 것이었습니다(18절). 이 부자는 곳간을 더 크게 져서 그 곳에 자기의 모든 곡식과 물건을 쌓아두되(18절)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둔 후 자기는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려고 하였습니다(19절). 이러한 부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20절).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21절). 이 예수님의 비유를 보면 우리는 보물을 땅에 쌓아둔다는 말은 이 세상 사람들이 보물로 여기는 재물이 많아질 때 자기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져서라도 이 땅에 쌓아둔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먼저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이 세상 사람들이 보물로 여기는 재물입니다. 이 재물은 무엇입니까? 이 재물은 바로 부 혹은 재산이나 소유물을 가리킵니다(Walvoord). 그것이 돈이 될 수도 있고 또한 현대 말로 하면 부동산(건물)도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 마태복음 6장 19절에서 말씀하는 보물을 땅에 쌓아둔다는 말씀은 재산을 이 땅에 쌓아 둔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돈이 많아질 때 마치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한 부자가 자기의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는 것처럼 은행 구좌를 여러 군데 열어서라도 그 많은 돈을 쌓아두는 것이 보물을 땅에 쌓아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자기를 위하여 이 땅에 재물을 쌓아둘 때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한 2 가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1) 첫째 질문은, 만일 하나님께서 오늘 밤에 나를 데리고 가시면 내가 여태 것 준비한 재물은 누구의 것이 되는 것인가? 저는 이 질문을 던질 때 전도서 5장에 나오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 말씀은 솔로몬 왕이 이 세상에서 본 큰 폐단 되는 것으로서 곧 소유주가 재물을 자기에게 해 되도록 지키는 것입니다(13절). 그런데 결국 그 재물을 제대로 누려보지도 못하고 재난으로 인하여 다 잃어버리게 되므로 자기 자식들에게도 물려 줄 재산이 하나도 없이 빈손이 된다는 것입니다(14-16절). 이 전도서 5장 말씀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우리이게 주신 재물과 부요를 능히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이란 것입니다. 여러분, 상상이 되십니까? 만일 하나님께서 재물과 부요의 축복은 받았는데 그것을 누릴 수 있는 축복을 받지 못했다면 그 결말이 상상이 되십니까? (2) 둘째 질문은, 과연 나는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인가? 분명히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2장에서 한 부자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21절)고 말씀하셨는데 이 땅에 쌓아둔 모든 재물이 있다한들 오늘 밤에 죽으면 그 모든 재물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 대하여 부요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가 되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예수님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란 바리새인들은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물질적으로 축복해 주심을 믿었습니다(Walvoord). 그리고 실제로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재물과 부유를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재물과 부요를 결코 은을 사랑하는 자(전5:10), 즉 돈을 사랑하는 자에게 주시지 않습니다. 만일 주신다하여도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징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떻게 재물과 부요가 돈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저주(징벌)이 될 수 있습니까? 그 징벌 중 하나는 바로 욕심의 배입니다. 돈을 사랑하는 자에게 돈이 더 많아지면 결국은 그 돈으로 인하여 욕심이 더욱더 생겨서 결코 만족함이 없이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징벌입니다. 만족함이 없는 욕심의 배를 갖는다는 게 큰 저주입니다. 만족할 수 없는 욕심의 배를 소유한 돈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결코 마음에 평온함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돈을 사랑하는 자에게 재물과 부요를 주시지 않으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즉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재물과 부요를 주십니다(참고: 시112:1-3). 그런데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의 문제는 그들의 눈이 성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6장 22-23절을 보십시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무슨 말씀입니까?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은 영적인 눈(영안)이 어두워져서 재물의 욕심(탐심)을 내므로 그 재물을 이 땅에 쌓아두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6장 14절 상반절에서 바리새인들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여러분, 우리는 바리새인들처럼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는 돈을 사랑해서는 아니 됩니다. 성경 디모데전서 6장 10절을 보십시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왜 우리가 돈을 사랑하면 아니 됩니까? 그 이유는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돈을 사랑하므로 돈을 탐내면 우리는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져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9절). 그러므로 우리는 돈을 사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돈을 이 땅에 쌓아두지 말아야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오늘 본문 마태복음 6장 19절 하반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듯이 이 땅에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 땅에 우리가 돈이나 재물을 쌓아두면 둘 중에 하나라는 말입니다. 그 모든 돈이나 재물이 다 해하여 지던지 아니면 도둑이 훔쳐가던지 이 둘 중에 하나입니다(MacDonald). 한 마디로, 왜 우리가 이 땅에 돈이나 재물을 쌓아두지 말아야 하냐면 다 없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야고보는 야고보서 5장 2-3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여러분, 우리는 이 말세에 이 땅에 재물을 쌓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로,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는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영원한 가치관을 가지고 영원한 것을 위하여 영원하신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6장 20절을 보십시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여러분, 오직 우리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는 이 예수님의 말씀의 뜻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어떻게 우리가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둘 수 있을까요? 저는 이 질문을 생각할 때에 마가복음 10장 17-22절에 나오는 예수님과 재물이 많은 한 사람과의 대화가 생각났습니다. 이 재물이 많은 한 사람은 예수님께 달려와서 끓어 앉아 자기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 예수님께 여쭸을 때(17절)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다(17절)고 말씀하신 후 그에게 그가 아는 계명을 말씀하셨습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19절). 그 때 이 재물이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라고 답했습니다(20절). 그 때 예수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21절). 예수님께서는 그 재물이 많은 사람에게 부족한 것을 말씀하시면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어떻게 보화를 하늘에 쌓아둘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예수님의 말씀에서 배울 수가 있습니다. 그 방법을 박윤선 박사님은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은 방법은, 땅에서 나의 모든 좋은 것들(물질 뿐 아니라 노력과 재능과 그 밖에 모든 것)을 주님을 위하여 희생함이다”(박윤선).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2장 33-34절에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무엇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 것은 구제하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이요 그 보물은 다함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구제하라는 말씀에 대해서는 오늘 본문 마태복음 6장 문맥인 2-4절에서도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우리는 구제할 때에 은밀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은밀한 중에 보시는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께서 갚아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는 그 이유는 오늘 본문 마태복음 6장 21절에서 이렇게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즉, 우리가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어야 하는 이유는 그리하여야 우리 마음이 하나님께만 가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박윤선). 우리 한국어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영어 성경에는 21절을 시작하면서 접속사 “For”이란 단어로 시작합니다. 그 접속사는 20절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는 말씀의 이유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둬야 하는 이유는 그리할 때 우리 마음이 하늘에 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둬야 하는 이유는 우리 마음이 항상 영원하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가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과연 저와 여러분의 마음이 지금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만 가 있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 가기 위해서 우리 자신을 부인하고 우리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16:24). 우리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주님의 뜻에 순종함에 있어서 어떠한 고난과 희생이 있다할지라도 우리는 그 희생을 치러야 합니다. 그 희생은 바로 주님을 위하여 희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주님을 위하여 희생하는 것이란 무엇일까요? 그 좋은 예가 바로 히브리서 11장 24-26절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 모세입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믿음으로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란 칭함 받기를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과 잠시 죄악을 낙을 누리는 것 중 고난 받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또한 그는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수모를 받는 것을 더 가치 있게 여겼습니다. 어떻게 모세는 이렇게 할 수 있었습니까? 바로 그는 믿음으로 장차 자기가 받을 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세는 영원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서 애굽의 모든 보화를 가지고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은 “잠시”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동시에 그는 주님 앞에서 설 때에 받을 상급은 영원한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영원한 가치관을 가지고 영원한 것을 위하여 이 세상에 순간적인 것들을 거절하고 아낌없이 버렸습니다. 남미 에과토르에 살고 있는 잔인한 아우카족(와다니족)에게 복음을 전하다고 29세의 젊은 나이로 다른 네 명의 선교사님들과 순교한 짐 엘리엇 선교사님이 대학생 때 한 말이 생각납니다: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해 영원하지 않는 것을 버리는 자는 절대 어리석은 자가 아니다”(He is no fool who gives what he cannot keep to gain that which he cannot lose).

 

마지막 셋째로,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는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6장 24절을 보십시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여러분, “한 사람”(24절),즉 “집 하인”(눅16:13)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이 질문에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이유는 그는 한 주인을 사랑하게 되면 다른 한 주인을 미워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이유는 그가 한 주인을 중히 여기면 다른 주인을 경히 여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주인 만을 섬겨야 합니다. 그런데 왠지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마6:24). 이것은 혼합주의입니다. 하나님이면 하나님, 재물이면 재물을 섬겨야 하는데 우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재물을 위하여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물질의 우상화는 결국 우리로 하여금 물질의 노예로 만들어서 모든 것을 물질을 위해서 살아가게 만들고 있습니다. 공부를 해도 물질을 위해서 하고, 일을 해도 물질을 위해서 합니다. 심지어 신앙생활도 물질을 위해서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를 해도 하나님께 물질을 축복을 구하고, 목사님들에게 축복기도를 받아도 물질의 축복 기도 받는 것을 우리는 매우 좋아합니다. 우리의 입술과 귀 모두 다 물질의 축복을 사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손과 발도 물질의 축복을 추구하는데 분주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마음이 물질에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네 보물 있는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6:21). 우리의 마음은 세상의 보물에 빼앗겼습니다. 아니 우리는 이 세상의 보화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두려워해야 합니다. 우리는 돈을 사랑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합니다(딤전6:10). 우리는 물질의 복 받기를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함부로 물질의 복 받기를 하나님께 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물질의 복을 받은 후 우리의 마음이 교만해져서 우리의 마음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에게서 떠나 더 이상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우리가 가진 물질을 의지하면서 그 물질을 우상화하여 섬기는 죄를 충분히 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물질의 복을 구하기 전에 우리의 마음이 항상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만 가 있는지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수시로 점검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물질의 복보다 그 복을 주시는 복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 한분만으로 만족하며 자족하는 비결을 먼저 배워야 합니다. 그리하면서 우리가 그 영원하신 주님을 위하여 우리의 물질을 받쳐 희생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질의 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결코 하나님과 물질을 겸하여 섬기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주님만을 섬기면서 주님께서 주신 물질을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할 것입니다.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성경 잠언 15장 6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의인의 집에는 많은 보물이 있어도 악인의 소득은 고통이 되느니라.” 성경은 분명히 악인의 소득은 고통이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마음에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만 가 있지 않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물질의 복에게만 가 있으면 우리는 마음이 교만해져서 하나님과 물질을 겸하여 섬기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물질을 거둬 가시면 그것은 오히려 축복입니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께서 그 물질을 거둬가지 않으시고 오히려 우리의 소득이 점점 많아질 때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우리에게 고통이 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소득은 결국 우리 마음의 교만과 욕심을 더욱더 부추겨서 물질을 우상화하는 죄까지 범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것처럼 우리의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므로 말미암아 오직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에게만 우리 마음이 가 있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물질도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 사용하므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