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가지 행복 (7):
화평하게 하는 자의 복
[마태복음 5장 9절]
여러분, 혹시 “피스 메이커의 날”[화평하게 하는 날(Peacemaker Day)]이 언제인지 아십니까? 제 생각엔 저처럼 여러분도 피스메이커의 날이란 말을 처음 들어 보시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한국 피스 메이커(Korean Peacemaker Ministries)란 단체에서는 2003년부터 11월 11일을 “피스 메이커의 날”로 제정하여 기념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피스 메이커의 날”(Peacemaker Day)은 갈등과 분쟁으로 신음하고 있는 이 나라와 민족, 교회와 개인들의 현재 모습을 되돌아보고, 이 시대에 화평하게 하는 사역이 얼마나 절실하게 필요한지 사역의 필요성과 목적을 되새기면서 이 땅에 진정한 그리스도의 평화가 임하기를 기도하는 시간을 갖고자 제정되었다고 합니다. 이 피스 메이커의 날에 “피스 메이커 상”을 제정하여 시상한다고 하는데 그 상은 갈등과 분쟁의 어려운 국내 현실 가운데서도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3)는 명령에 순종하여 교회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사회적으로나 국가․민족적으로 화해의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개인이나 단체를 발굴하여 이를 격려하고자 마련되었다고 합니다. 이 시상의 목적이 3 가지가 있는데 그 첫째 목적이 이렇습니다: “화평하게 하는 사역을 묵묵히 수행하면서 주위에 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개인 및 단체들을 격려하고, 더욱 그 빛을 비추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며”(인터넷). 저는 피스 메이커 상의 첫째 목적이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특히 화평하게 하는 사역을 묵묵히 수행한다는 말에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도전과 더불어 화평하게 하는 사역을 묵묵히 잘 감당하여 주위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미치고 싶은 마음이 저에게 있습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저는 개인적으로 가정이나 교회나 주님 안에서 하나됨(unity)을 잘 지켜 나아가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개인적으로 마음에 품고 순종하려고 노력하는 말씀은 에베소서 4장 3절입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우리는 본문 마태복음 5장 1-12절 말씀 중심으로 예수님의 산상보훈 중 “팔복”, 즉 ‘여덟 가지 행복’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태까지 묵상한 말씀을 복습한다면 첫 번째부터 여섯 번째 행복이란 첫째로, 천국(3절), 둘째로, “위로”(4절), 셋째로, “기업”(5절), 넷째로, 배부름(만족함)(6절), 다섯째로, 긍휼이 여김을 받음(7절), 그리고 여섯째로는 하나님을 볼 것이다(8절)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7절부터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있다고 배웠는데 첫째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긍휼이 여기라’(7절)였고, 둘째로는 ‘마음을 청결하게 하라’(8절)였습니다. 오늘은 본문 마태복음 5장 9절 말씀 중심으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세 번째로 요구하시는 것과 일곱 번째로 우리에게 주시는 행복에 대해서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5장 9절을 보십시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제자도의 삶은 바로 ‘화평하게 하는 자라 되라’(Be the peacemakers)입니다.
과연 저와 여러분은 화평하게 하는 자입니까? 저는 잠언 20장 19-22절 말씀 중심으로 “그리스도인의 바른 인간관계”에 대한 교훈을 한 3가지로 받았었습니다. 그 첫 번째 교훈이 바로 우리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 남의 비밀을 누설하는 자, 입술을 벌린 자를 사귀지 말라는 교훈을 받았습니다(19절). 그 이유는 남 얘기하기를 좋아하는 수다쟁이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므로 신뢰를 저버리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말쟁이는 다툼을 일으키며(26:20) 또한 친한 벗을 이간시키기 때문입니다(16:28). 여러분은 이 교훈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 개인적 생각은 많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안에서나 교회 밖(가정이나 직장 등등)에서나 인간관계에서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상처를 입으며 또한 상처를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왜 교회 안에서 싸움과 다툼이 있는 것입니까? 왜 예수님을 따라 살아간다고 하는 우리들이 교회 밖에 나아가서도 싸우고 다투는 것입니까? 심지어 왜 우리는 가정에서도 서로 싸우고 다투는 것입니까? 사도 야고보는 야고보서 4장 1절에서 그 원인이 우리 안에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이 싸우는 정욕으로 말미암아 교회 안에서나 교회 밖에서나 가정에서 싸움과 다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싸우고 다투는 그 원인 중에 핵심은 바로 우리가 사랑을 구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참고: 잠17:9). 우리가 하나님께 사랑을 구하지 않고 오히려 욕심을 내어(약4:2) 기도하고 있으며 또한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고 있기에(3절) 우리 가운데에서는 싸움과 다툼이 끊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들은 싸움과 다툼을 일으키는 화평을 미워하는 자들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성경 시편 120편 6절을 보면 시편 기자도 화평을 미워하는 자들과 함께 오래 거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서 시편 기자는 화평을 원했지만 화평을 미워하는 자들은 다투기를 좋아하며 거짓말로 남을 해하기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화평을 원할지라도 내가 말할 때에 그들은 싸우려 하는도다”(8절). 결국 시편 기자는 고난을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서 그는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밖에 없었습니다(1-2절). 박윤선 박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의인은 그 일생에 까닭 없이 악평을 받는 일이 많다. 그러나 그것을 방지시키는 방도는, 그것을 하나하나 변호함이 아니고, 하나님께 고하여 그의 도우심을 받음이다”(박윤선). 혹시 여러분 가운데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실히 필요한 분이 있지 않으십니까? 인간관계에 있어서 여러분은 화평을 원하는데 화평을 미워하는 자로 인하여 고난을 당하고 계신 분이 있지 않으십니까? 여러분을 마음으로 미워하여 까닭 없이 여러분에게 시비를 걸고 심지어 돌아다니면서 여러분에 대하여 비판하며 악평을 하는 사람으로 인하여 마음이 괴롭고 힘든 분이 있지 않으십니까? 그 사람들의 비판과 악평을 하나하나 변호하려고 하기보다 침묵 속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 여러분의 심정을 고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부르짖음을 들이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어느 가정이나 교회나 회사나 어떠한 조직이나 한 3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1) 첫째 부류의 사람들은 바로 ‘화평하게 하는 자들’(peacemakers)입니다. 이들은 평화를 사랑하여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직장에서나 어느 인간관계에서나 갈등과 분쟁이 아닌 화평을 추구합니다. (2) 둘째 부류의 사람들은 바로 ‘화평을 지키는 자들’(peace-keepers)입니다. 이들 또한 화평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특히 어떠한 갈등과 분쟁의 요소가 있는 단체나 인간관계에서 어떻게 해서든 화평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자들입니다. (3) 그런데 문제는 바로 셋째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바로 ‘화평을 깨는 자들’(peace-breakers)입니다. 이들은 화평을 미워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싸우는 정욕에 이끌림을 받아 다투고 싸우기를 좋아합니다. 만일 교회 안에서 화평케 하는 자들과 화평을 지키는 자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교회는 주님 안에서 하나됨을 잘 지켜 나아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교회 안에 화평을 깨는 자들이 많으면 그 교회는 갈등과 분쟁 속에서 분열을 경험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화평을 깨는 자들은 결코 세상에 나아가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보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지금 많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장 16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의 빛을 사람 앞에 비취지 못하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묵상한 마태복음 5장 16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명하셨습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무슨 말씀입니까? 예수님을 따라 살아가는 우리 예수님의 제자들은 착한 행실의 빛을 이 세상에 비춰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세상에 비춰야 할 착한 행실의 빛은 무엇입니까? 그 착한 행실의 빛은 예수님의 행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이 세상에 예수님의 빛을 비취므로 말미암아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행실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사랑와 이웃 사랑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바로 화평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 살아가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행실을 본받아 행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행실은 화평케 하는 것인데 과연 저와 여러분이 얼마나 가정에서가 직장에서나 이웃과의 관계에서 화평케 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 마태복음 5장 9절에서 예수님께서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는데 과연 저와 여러분들이 화평케 하는 자의 복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여러분, 교회란 공동체 안에는 평안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공동체의 한 일원(지체)으로서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엡 4:3).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해야 합니다(2절). 그리고 우리는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 서로 용납해야 합니다(2절). 왜 우리는 서로 용납하지 않는 것입니까? 왜 우리는 서로 용서하지 않는 것입니까? 우리가 지금 미움과 교만함과 오래참지 못함으로 인하여 공동체의 화평을 깨는 자들이 되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선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겸손히 그리고 온유함으로 서로 용서하며, 서로 용납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같은 죄인을 용서하셨고 용납해주셨듯이 우리는 서로 용서하고 용납해야 합니다. 진심으로 말입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공동체의 화평을 잘 지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아직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을 때(롬5:10),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8절)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더불어 화목케 하셨습니다(10절). 또한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엡2:14)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셨습니다(15절). 그러므로 이젠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셨습니다(18절).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의 화평이십니다(14절).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들로서 예수님을 따라 살아가고자 한다면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화평하게 하는 자가 돼야 합니다. 그리고 화평케 하는 자의 책임은 죄인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성경 고린도후서 5장 18절을 보십시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우리가 죄인들을 하나님과 화목케 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직분을 받은 자들로서 우리는 화목하게 하는 말씀(19절)을 불신자들에게 전하므로 그들을 하나님과 화목케 해야 합니다. 죄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어 의롭다 하심을 받을 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됩니다(롬5:1). 또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므로 서로 원수 된 인간과 인간 사이를 화목케 해야 합니다. 마치 예수 그리스도께서 원수지간이었던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사이에 막힌 담을 허시고 그 둘로 화목케 하신 것처럼(엡2:14-15) 우리도 예수님의 제자들로서 서로 원수 된 인간과 인관 사이의 관계를 화목케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5장 23-2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화평의 일에 힘써야 합니다(롬14:19). 성경 히브리서 12장 14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이렇게 예수님의 말씀대로 화평하게 하는 자에게 주시는 행복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입니다(마5:9).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화평하게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가 화평하게 해야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갈3:26).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화평하게 하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나타내야 한다는 말입니다(MacDonald). 그 말은 반대로 얘기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화평하게 하기보다 화평을 깨고 있다면 결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임을 이 세상에 나타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의 명령대로 화평하게 할 때에 우리는 평강의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Barclay). 이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우리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요 축복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일인 화평케 하는 일을 할 때 우리는 이 세상의 하나님의 자녀임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십니다.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교회 중 하나로 알려진 미국 남가주 캘리포니아에 있는 새들백 교회 릭 워렌 목사님은 어떻게 하면 화목한 교회를 만들 수 있는지 비결을 소개하였다고 합니다(인터넷). 그는 새들백 교회가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화목한 분위기를 계속해서 유지했기 때문이라고 밝히며 교회의 화목은 성장과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라고 역설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로마서 14장을 토대로 화목한 교회로 목회하는 비결을 6 가지로 나누어 소개했습니다: (1) 서로를 격려하고 지지하라, (2) 각자의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라, (3) 정말 중요한 일에 초점을 맞추라, (4) 사랑으로 스스로 종이 되라, (5) 다른 이에게 내 생각을 강요하지 말라, 그리고 (6) 믿음으로 따라 살아가라. 여러분, 믿음으로 따라 살아가는 게 무엇입니까? 그것은 주님의 말씀(명령)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바로 ‘화평하게 하는 자가 되라’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는 주님께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님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므로 하나님의 아들, 딸이라 칭함을 받기에 합당한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