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가지 행복 (1):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
[마태복음 5장 3절]
여러분은 행복하십니까? 잡 코리아가 운영하는 아르바이트 전문 구인구직 포탈 알바몬이 최근 ‘행복’을 주제로 대학생 39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발표했다고 합니다. 그 발표한 결과를 보면 설문에 참여한 대학생들에게 행복의 가장 중요한 조건을 꼽게 한 결과 ‘감사와 긍정적인 마인드’가 29.1%로 1위를 차지했고 2위는 ‘건강(16.6%)’, 3위는 ‘재산, 경제력(15.0%)’이 각각 차지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행복을 위해 갖춰야 할 조건을 꼽은 응답별로 행복점수를 매겼을 때는 100점 만점에 ‘종교생활’이 75.3점으로 1등을 차지했고 그 다음 2위는 ‘사랑하는 사람(67.7점)’, 3위는 ‘감사(66.5점)’인 반면에 ‘재산’을 꼽은 응답군은 50.7점으로 가장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고 합니다(인터넷). 여러분, 무엇이 여러분으로 하여금 행복감을 느끼게 하고 있습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예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나의 모든 죄가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점점 더 깨닫게 됩니다. 성경 신명기 33장 29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 우리가 행복한 사람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시므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이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하심을 받아(롬4:6-8) 구원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우리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자들입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5장 1-12절은 그 유명한 팔복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덟 가지 행복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산에서 그의 제자들과 모인 무리들에게 가르치신(마5:1-2) 교훈인 산상보훈(5-7장) 중 제일 첫 부분에 나오는 말씀입니다(5:1-12). 오늘 저는 그 팔복 중에 첫 번째 복인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에 대해서 묵상하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5장 3절을 보십시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과 모인 무리들에게 교훈해 주신 첫 번째 복은 “천국”(the kingdom of heaven)입니다. 여러분은 “천국”의 존재를 믿으십니까?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다는 여론조사 기관인 갤럽에서 미국 국민들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당신은 천국의 존재를 믿습니까?” 그 결과 약 80%정도의 사람들이 “그렇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대답한 사람들의 비중은 기독교인이나 비기독교인이나 거의 비슷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갤럽이 한국 국민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물었더니 비기독교인들의 경우 약 33.9%만이 “그렇다”라고 대답했고 기독교인의 경우는 41.1%가 “그렇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 말은 58.9%의 한국 기독교인들은 천국의 존재를 믿지 않고 있다는 말입니다(인터넷). 오늘 본문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천국이란 또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즉,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는 동일한 말입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5장 3절에서 저자 마태가 “하나님의 나라”라고 말하지 않고 “천국”이라고 말한 이유는 그는 유대인들에게 마태복음을 쓰고 있었고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피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가와 누가는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을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에게 쓴 것이기에 “하나님의 나라”라고 쓴 것입니다(Wood).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 또는 “천국”하면 주로 무엇을 생각합니까? 아마 우리는 “천국”하면 우리가 죽은 후에 들어가는 곳으로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7장 2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들어가는 곳이 바로 천국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란 달리 말한다면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자입니다(요6:29). 한 마디로 말한다면, 예수님을 믿는 자는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마태복음 5장 3절에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첫 번째 복인 천국이란 예수님을 믿음으로 들어가는 곳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천국이란 곳은 눈물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시는 사망도 없습니다(계21:4). 또한 그 곳에는 다시 저주가 없을 뿐만 아니라(22:3)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습니다(5절). 이 천국을 가리켜 성경 요한계시록은 “새 하늘과 새 땅”(21:1) 또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2절)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장차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이 천국에 들어가면 그 때에는 우리가 주님을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입니다(고전13:12). 지금은 비록 우리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님께서 우리를 아신 것 같이 우리가 온전히 알 것입니다(12절). 이렇게 천국하면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우리 성도들이 장차 들어갈 곳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성경은 천국 또는 하나님의 나라를 꼭 우리가 장차 들어갈 곳으로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천국 또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우리에게 임하였다고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눅11:20). 그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17:21). 이 예수님의 말씀의 배경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라고 물었을 때(20절)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라고 말씀하신 후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21절). 이 말씀들을 종합해서 생각해 볼 때 “천국” 또는 “하나님의 나라”란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장차 들어갈 곳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에게 임하였고 우리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천국” 또는 “하나님의 나라”를 장소 개념으로만 생각하며 또한 미래지향 적으로만 생각해서는 아니 됩니다. 그 말은 우리가 “천국”을 얘기할 때 “Where?”(어디?) 또는 “When?”(언젠?)라는 개념으로만 생각하기보다 “Who?”(누구?)란 관점에서도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Who?”(누구?)란 관점에서도 천국 또는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해야 한다는 말은 바로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즉, 우리가 천국 또는 하나님의 나라를 말할 때 우리는 그 나라의 왕이신 예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저와 여러분은 이미 예수님께서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 안에 거하고 계십니다(롬5:5). 그 말은 왕이신 예수님이 우리를 통치하시고 다스리시고 계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천국)이 우리 안에 이미 임하였습니다. 즉, 우리 안이 바로 천국이요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 가정도 천국이요 하나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그 이유는 주님이 우리 가정과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천국(하나님의 나라)이란 왕 중의 왕이신 주님이 통치하시는 우리 마음과 우리 가정과 우리 교회란 말입니다. 이러한 개인과 가정과 교회는 예수님의 이중 계명인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계명을 지켜 행합니다. 그 결과 우리 마음, 우리 가정 그리고 우리 교회가 천국화를 이루어 나가갑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놀라운 첫 번째 복인 천국이 바로 “그들의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53). 여기서 “그들”이란 바로 “심령이 가난한 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란 누구인가 입니다. 여러분 생각엔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란 누구를 가리킨다고 생각하십니까? 여기서 “심령”이 가난하다는 말은 사람의 영혼이 가난하다는 말인데 그 뜻은 영적으로 궁핍함을 가리킵니다. 즉,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란 인격적인 골수와 같은 극히 내부적인 영혼 부분에서 영적 궁핍을 느끼는 자들이란 말입니다(박윤선). 여기서 “영적 궁핍을 느끼는 자들”이란 한 3 가지를 말합니다(박윤선):
(1) 영적 궁핍을 느끼는 자들은 자기의 할 수 없는 처지와 하나님 밖에 도와 줄 자가 없음을 아는 자들입니다(사61:1, 시69:29, 70:5, 74:21, 86:1-6; 습3:12).
성경 시편 70편 5절을 보십시오: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하나님이여 속히 내게 임하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니 여호와여 지체하지 마소서.” 주님의 도우심과 건지심을 갈급하게 간구하는 시편 기자는 자기는 가난하고 궁핍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시편 기자와 같은 자가 영적으로 궁핍한 자요 심령이 가난한 자입니다.
(2) 영적 궁핍을 느끼는 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오만한 자들과 반대되는 생활을 하기 때문에 그 오만한 자들의 박해를 받는 자들입니다(시37:14, 86:14).
성경 시편 37편 14절을 보십시오: “악인이 칼을 빼고 활을 당겨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엎드러뜨리며 행위가 정직한 자를 죽이고자 하나.” 영적으로 궁핍한 자는 악인들의 핍박과 환난으로 인하여 가난하고 궁핍하게 된 자입니다. 그러면 왜 악인들이 영적으로 궁핍한 자를 핍박합니까? 그 이유는 그가 정직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3) 영적 궁핍을 느끼는 자들은 죄를 인하여 상심하며 회개하는 자들입니다 (사66:2, 시34:6, 18, 51:17).
성경 시편 34편 18절을 보십시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성경 시편 51편 17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 이다.” 영적으로 궁핍한 자는 마음이 상한자요 상한 심령 속에서 통회하는 마음을 가진 자입니다.
이러한 자가 바로 심령이 가난한 자입니다. 이러한 심령이 가난한 자들은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과는 달리 자기의 의가 없는 줄 알고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과 사죄를 구하는 자들입니다. 즉,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란 사람이 사람에게 대한 겸손을 이름이 아니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도무지 의를 가지지 못하였음을 발견한 자들을 가리킵니다(박윤선).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전혀 소망이 없음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이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고 있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없이는 완전히 영적으로 파산 상태에 놓여 있음을 알고 있는 자들입니다(MacArthur). 그러므로 심령이 가난한 자들은 하나님의 의가 절실히 필요함을 아는 자들입니다. 자급자족하였던 바리새인들과 달리 심령이 가난한 자들은 오직 자기의 의가 없는 줄을 알기에 오직 하나님의 의를 덧입어야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음을 아는 자들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행하므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철저히 율법을 지키려고 애썼던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이 얻는 의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의가 아니라 인간의 공로는 얻는 자기 의입니다. 그러한 인간으로부터 오는 의로는 결국 바리새인 자신들로 하여금 사람들 앞에서 뿐만 아니라 심지어 하나님 앞에서까지 자기 행위를 자랑하며 그리 못하는 사람을 멸시하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좋은 예가 바로 누가복음 18장 10-13절에 나오는 예수님의 비유입니다. 그 비유에 나오는 두 사람 중 바리새인은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서 세리와 따로 서서 기도하였는데 그의 기도 내용을 보면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 행위를 자랑한 것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성경 누가복음 18장 11-12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그러나 세리는 성전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13절). 이 세리의 기도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세리야 말로 심령이 가난한 자가 아닙니까? 자기의 의(공로)를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음을 알고 하나님께 불쌍히 여겨달라고 간구하는 이 세리, 예수님께서는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세리)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14절).
여러분,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경 갈라디아서 2장 16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성경은 분명히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사람은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은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합2:4; 롬1:17). 믿음으로 살아가는 의인은 우리 주님 안에 있는 영생이란 하나님의 은사를 받았습니다(롬3:23). 예수님을 믿어 의롭다 함을 얻은 의인은 천국(영생)을 하나님의 선물로 받았습니다. 이 하나님의 선물을 여러분도 받고 싶지 않으십니까? 성경 사도행전 16장 31절을 보십시오: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주 예수님을 믿으므로 구원(영생, 천국)을 하나님의 선물로 받는 여러분이 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