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의 하나님 (7)
[요나 3장 5-10절 말씀 묵상]
언젠가 TV를 보다가 이승만 대통령 시대 때 김두환 의원을 다룬 드라마가 있어서 잠깐 보게 되었습니다(나중에 알고 보니 드라마 제목이 “야인시대”였음). 독사와 김두환씨와 싸우는 장면이 끝난 후 그 다음 날인지 자유당을 반대하는 집회가 열렸습니다. 그 때 그 집회에서 조… 박사 전에 나온 한 인물(?)이 연설을 우렁차게 하는 것을 보고 저희 집 둘째 예리가 오빠와 장난감 가지고 놀다가 좀 놀란 듯 TV에 시선을 멈추더니 하는 말 ‘아빠도 시끄럽게 하자나’였습니다. 무슨 말인가 의아하게 여기고 있던 저에게 사랑하는 첫째 딜런이 제가 의아한 모습을 눈치 챈 듯 여동생의 말에 해석을 달아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아빠, preaching(설교)할 때 시끄럽게 하자나요’였습니다. 저는 이 말을 듣고 속으로 좀 놀랬습니다. 이 두 아이들이 저의 설교를 마치 울리는 꽹과리처럼 생각하고 있구나 라고 생각하니 회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의 멘토 목사님에게 ‘설교란 감화력’(설교의 능력/성령의 역사)이라고 배웠는데 저의 설교가 제 아이들에게는 감화는 둘째 치고 ‘시끄럽다’라고 하니 할 말을 잃었습니다. 그 다음 날엔 아주 가까운 어르신 선배 목사님에게 ‘교만하다’는 쓴 소리를 듣고 가까운 동역자도 제가 교만함을 동의하는 말을 내비쳤습니다. 한 마디로 ‘시끄러운 설교’와 ‘교만한 인격’, 결국 설교와 인격에 대한 쓴 소리로 말미암아 마음이 그리 편치 않은 일주일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면서 회개하는 시간을 갖고 있는 중입니다.
회개란 무엇입니까? “회개”란 구약의 용어로는 “나캄”(뉘우친다)과 “슈브”(돌아선다)라는 단어가 있고 신약의 용어로는 “메타노이아”(마음의 변화)와 “에피스트로페”(행동의 변화)가 있습니다. 곧 회개는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께로 향한 마음과 행동의 돌이킴을 의미합니다(인터넷). 회개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1) 첫째는, 지성적 요소입니다.
이것은 생각의 변화입니다. 곧 죄에 관한 지식입니다. 로마서 3장 20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2) 둘째는, 감정적 요소입니다.
이것은 감정의 변화입니다. 곧 거룩하고 의로우신 하나님을 반역하여 범한 죄에 대하여 슬퍼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경건의 비애입니다. 또 죄에 대한 통곡도 됩니다. 성경 고린도후서 7장 9-10절을 보십시오: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성경 시편 51편 7절을 보십시오: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3) 셋째는, 의지적 요소입니다.
이것은 목적의 변화입니다. 곧 죄에서 떠나려는 내적 전환 사죄와 성결을 추구하려는 성향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의지의 결단입니다. 성경 사도행전 2장 38절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성경 누가복음 15장 18-20절을 보십시오: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가니라 아직 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저는 오늘 본문 말씀 요나 3장 5-10절 중심으로 “요나의 하나님 (7)”란 제목을 걸고 요나의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이신가 한 2가지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첫째로, 우리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회개케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5-9절), (2) 둘째로, 우리 하나님은 뜻을 돌이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10절).
첫째로, 우리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회개케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 요나 3장 5절을 보십시오: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무론 대소하고 굵은 베를 입은지라.”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시사 니느웨에 가서 요나에게 명하신 말씀을 선포게 하셨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이 주신 두 번째 기회에 말씀을 받고 그 말씀인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라라”(4절)고 니느웨 성에 들어가 하룻길을 행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리할 때 니느웨 백성들의 반응은 바로 회개였습니다. 이 니느웨 사람들의 반응인 회개를 한 3 단계로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1) 그들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오늘 본문 요나 3장 5절을 보십시오: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 불순종한 요나, 도망가는 요나, 죄를 숨기다가 제비뽑기에서 비신자 사공들에게 죄가 들어난 요나, 하나님은 그러한 요나를 통해서도 비신자 사공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그 결과로 사공들도 하나님을 믿고 그에게 제사를 드린 것을 우리는 요나서 1장에서 이미 묵상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요나 3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요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명하신 말씀을 선포케 하시므로 니느웨 백성들이 하나님을 믿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것은 니느웨 백성들이 요나가 선포한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심각하게 받아들였음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2) 그들은 금식을 선포하고 굵은 베를 입었습니다.
오늘 본문 요나 3장 5절을 보십시오: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무론 대소하고 굵은 베를 입은지라.” 이것은 겉으로 나타난 회개의 싸인 입니다. 이러한 회개의 행동은 니느웨 백성들뿐만 아니라 6절 [“그 소문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lit. ‘그 메시지가 니느웨 왕의 마음에 감동(영향)을 주므로’]을 보면 니느웨 왕까지도 회개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니느웨 왕은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고 보좌에서 일어나 조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았습니다(6절). 이것은 니느웨 왕이 자기 스스로 낮추는 공적 예식이었습니다. 이렇게 자기를 스스로 낮추고 극도의 불편은 하나님의 교정(수정)에 대한 복종을 표현하는 방법 중에 하나입니다(볼드윈).
(3) 그들은 힘써 회개 기도를 하나님께 간절히 드렸습니다.
오늘 본문 요나 3장 8절을 보십시오: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를 입을 것이요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니느웨 왕은 조소를 내려 니느웨 백성들과 그들에게 종속된 짐승들까지도 금식할 것을 선포한 후 백성들에게 힘써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할 것을 명하였습니다. 더 나아가서, 그는 그의 백성들에게 삶의 변화를 요구하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8절하).
언젠가 주일 제가 가르치는 성경 공부 반에서 제 자신의 부족한 죄를 성도님들에게도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두 다른 반응이 있었습니다. 한 분은 제가 죄를 범한 후 하나님 아버지께 용서를 구했다면 더 이상 죄책감 속에서 있으면 하나님 아버지의 관점에서 볼 때에 어떻겠느냐는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또 다른 한 분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나서도 무거운 마음이 있는 것을 고백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죄를 짓고 나서 하나님께 용서를 구한 후 마음이 어떠하십니까? 사죄의 확신 가운데 마음이 평안하십니까 아니면 괴로움 속에서 아직도 마음이 무거울 때가 있으십니까? 저는 진정한 회개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후 저는 화요일 새벽기도 때에 마태복음 3장 8절과 10절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8절),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10절). 이 말씀의 배경은 세례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자기가 세례 베푸는데 오는 것을 보고 “독사의 자식들아”로 시작하여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느 면으로 보면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은 저와 여러분보다 율법을 더욱더 엄격하게 지킨 사람들이었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고 회개했다면 우리 보다 더욱더 철저히 고백하며 회개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그들에게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습니까? 죄를 고백하고 회개했다고 하면서 회개의 열매, 즉 선한 열매를 맺지 않는다면(마3:10) 과연 그것이 진정한 회개였는가 우리는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행위적으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성경은 “회개의 열매를 맺으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회개의 열매란 과연 무엇입니까? 여기에는 소극적인 방면과 적극적 방면,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1) 소극적 방면의 열매는 곧 변상이니 이전에 지은 죄를 청산하는 것입니다.
삭개오는 회개할 때에 내가 누구의 것을 토색하였으면 4배나 갚겠나이다 하였습니다(눅19:8).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형제가 너를 인하여 원망하는 것이 생각나거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라, 네가 호리라도 갚지 않으면 결단 코 그곳에서 나오지 못하리라 하셨습니다(마5:23-26). 우리가 사람으로 혐의가 있거든 풀어 주어야 하고 물질로 잘못된 것은 물질로 해결하여야 할지니 이것이 소극적 열매입니다.
(2) 적극적 방면의 열매는 곧 의의 열매(빌 1:11)이니 그 생활이 새로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의 생활은 세마포(계19:8)를 짜는 생활이니 정성으로 흠과 티와 주름잡힘이 없이 깨끗하고 화려하게 짜야 할 것입니다(인터넷).
니느웨의 회개 운동이 금식이나 베옷을 입는 것으로 멎어진 의식주의가 아니고, 도덕적인 회개 운동이었음이 드러납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면 (1) 그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였고, (2) 그들의 금식이 그들을 멸망의 위험에서 건져낸 것이 아니고, 그들의 변화된 생활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들과 화해 되시게 하였습니다. 금식은 음식을 금하는 것을 그 요점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입만 금식하지 말고 눈도 귀도 손도 발도 금식에 합당한 행위에 참여해야 합니다(박윤선).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 87문을 보면 “생명에 이르는 회개가 무엇인가?”란 문제가 나옵니다. 그 문제의 답은 “생명에 이르는 회개는 곧 구원 얻는 은혜인데 이로 말미암아 죄인이 자기 죄를 참으로 알고 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깨달아 자기 죄를 원통히 여기고 미워함으로 죄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든든하게 결심하고 마음과 힘을 다하여 새로이 순종하는 것이다”입니다.
둘째로, 우리 하나님은 뜻을 돌이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 요나 3장 10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기로 뜻을 정하여 도망가던 요나를 돌이키시사 두 번째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서는 요나로 하여금 니느웨 성에 들어가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고 외치게 하셨습니다. 그리할 때 니느웨 왕과 백성들의 3가지 반응은 (1) 첫째로, 그들은 하나님을 믿었고(5절), (2) 둘째로, 그들은 금식을 선포하고 굵은 베를 입었습니다(5절). 그리고 (3) 셋째로, 그들은 힘써 회개 기도를 하나님께 간절히 드렸습니다(8절). 과연 니느웨 왕과 백성들은 진정한 회개를 드렸습니까? 대답은 “예”입니다. 진정한 회개 했는지 알기 위해선 8절에서 10절까지 4번이나 반복되는 한 단어를 생각해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8절), “하나님이 혹시 뜻을 돌이키시고 …”(9절), “… 그 진노를 그치사 …”(9절), “하나님이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10절). 니느웨 왕과 백성들의 회개 기도는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는 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금식하며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은 데서 끝난 것이 아니라 그들은 옛 삶의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났습니다(8, 10절).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신 이유입니다. 니느웨 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요나를 통하여 선포한 말씀처럼 “재앙”(10절)이었습니다. 그러나 요나의 선포를 통하여 니느웨 왕과 백성들은 하나님을 믿고 겸손히 진정한 회개 기도를 드리므로 말미암아 그들의 삶과 행동이 변화된 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뜻을 돌이켜 니느웨에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요나의 하나님은 니느웨 백성들이 죄를 회개하고 돌이켰을 때 재앙을 내리시고자 하셨던 뜻을 돌이키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돌이킬 때에 뜻을 돌이켜 우리에게 징계를 내리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께 우리는 우리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악 된 길에 돌이켜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향하여 내리시고자 하신 징계를 돌이키실 것입니다. 이러한 회개의 축복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길 기원합니다.
회개의 눈물을 사모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우리가 죄에서 돌이킬 때에 우리를 향하신 징계의 뜻을 돌이키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