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소망이 다 끊어 졌을 때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내가 받는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삽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요나 2장1-2절).
우리 사람들은 소망을 먹고 삽니다. 소망이 없이는 우리는 살 수가 없습니다. 소망이 있기에 우리는 먹고 마시며 일하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중에 어떤 이들이 가지고 있는 소망은 ‘앞으로 나아질꺼야’라는 소망을 가지고 기대하면서 현재의 역경과 고통스러운 환경을 이겨 나아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또 다른 이들은 ‘언젠가는 나도 성공할 수 있을꺼야’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견디며 인내하며 현실의 당면한 상황과 싸우고 있습니다. 무엇인가 우리 안에 가지고 있는 희망이 있기에 우리는 하루하루 견디며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이러한 소망이 죽으면 우리는 비록 살아 숨 쉬고 있으나 죽은 자나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 안에서 소망을 살려 놓으려고 발버둥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그렇게 살려두려고 노력했던 소망마저도 끊어진다면 저와 여러분은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오늘 본문 요나 2장 1-2절을 보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배를 타고 니느웨의 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도망가고 있었던 요나가 결국 이방인 사공들에 의해 바다에 던진바 되어(1:15) 큰 물고기 뱃속에서(17절)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다시 말하면, 그는 세상의 소망이 다 끊어 졌을 때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더 이상 살 소망이 없는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요나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를 드렸던 것입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자기 스스로도 구원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도 도와 줄 수 없는 상황에서 요나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러한 상황에서도 요나는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면 요나 2장 1절을 보면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기도”란 단어(히브리 원어: “이트팔렐”)는 감사 기도의 의미로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삼상 2:1; 삼하 7:27). 어떻게 요나는 세상의 소망이 다 끊어진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릴 수 있었을까요? 한 2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 요나가 세상의 소망이 다 끊어진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릴 수 있었던 것은 그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고난을 통하여 자신의 죄를 회개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다에 내리신 대풍(1:4)으로 말미암아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배를 함께 타고 있었던 이방인 선장과 사공들에게도 피해를 주어 고난 가운데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요나로 하여금 자기의 죄를 이방인들 앞에서도 자백하게 만드셨을 뿐만 아니라 회개의 행동을 보이게 하시사 이방인 사공들로 하여금 요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 던지게 하셨습니다(2:3). 이제 그는 큰 물고기 뱃속에서 이 세상의 모든 소망이 다 끊어진 상황에 놓여 있었지만 그는 하나님께서 죄를 자백하며 회개케 하신 은총을 생각하였기에 그는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비록 그는 세상의 소망은 다 끊어졌지만 자기의 불순종의 죄를 회개하므로 말미암아 죄에서 자유를 누리게 되었으므로 그는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세상의 소망이 다 끊어 졌을 때에라 할지라도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이 소망이 없어 보일지라도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며 회개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요나처럼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세상의 소망이 다 끊어져서라도 우리의 죄의 문제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해결이 될 수만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범죄로 인하여 우리가 믿던 모든 것 다 끊어졌다면 우리는 우리의 참 소망이 되시는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우리의 죄를 자백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회개의 행동을 보여야 합니다. 우리는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우리의 죄의 문제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해결만 될 수 있다면 우리가 믿던 세상의 모든 것, 모든 소망이 다 끊어질지라도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바라기는 세상의 소망이 다 끊어지므로 말미암아 참 소망이 되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흘리신 보혈의 능력을 의지하여 우리의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게 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합니다.
둘째로, 요나가 세상의 소망이 다 끊어진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릴 수 있었던 것은 그는 고난 가운데서 다시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할 때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1:3) 다시스로 도망갔습니다. 또한 그는 하나님께서 바다에 내리신 대풍으로 인하여 타고 있던 배가 거의 깨어지게 될 정도가 되었는데도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징계의 폭풍을 경험하고 있었으면서도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결국 큰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게 만드셨습니다. 과연 요나는 어떠한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까? 바로 구원의 하나님입니다(2:9). 그는 자기를 자기의 죄에서 구원해 주실 수 있으신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드디어 요나는 바다 깊은 곳 물고기 뱃속에서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세상의 소망이 다 끊어진 상황에서야 요나는 구원의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구원의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는 감사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이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9절). 아직 구원을 받기 전인데, 아직 그는 세상의 소망이 다 끊어진 물고기 뱃속에 있었는데, 그는 구원은 하나님께로서 말미암는다는 고백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리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그의 죄에서만 구원해 주신 것이 아니라 세상의 소망이 다 끊어진 그 바다 깊은 곳 물고기 뱃속에서도 구원해 주셨습니다. 불순종하였던 요나와 달리 그 물고기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요나를 육지에 토했습니다(10절).
여러분, 우리는 우리가 믿던 세상에 모든 것이 다 끊어질지라도 우리는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아무 구원의 소망이 없을 때에 오히려 우리는 참 구원의 소망이 되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세상의 구원은 없습니다. 세상에 어느 누구도 우리를 건져 줄 수 없을 때 우리는 참 구원자가 되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간구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우리의 죄에서만 구원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처한 세상의 소망이 다 끊어진 상황에서도 우리를 건져 내 주실 것입니다. 승리!
“세상에 믿던 모든 것 끊어질 그날 되어도 구주의 언약 믿사와 내 소망 더욱 크리라”[찬송가 539, “이 몸의 소망 무언가”(3절)],
제임스 김 목사 나눔
(깊은 수렁이와 같은 침체 속에서 오히려 구원의 주님만을 바라보면 간구하길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