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복을 주시는 하나님
[느헤미야 9장 22-26절 말씀 묵상]
1999년 영국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합니다. 혼자 살던 72살의 앤지 클렌스 할머니 가 복권을 샀습니다. 그런데 복권이 무려 20만 파운드(30억원)나 되는 거액에 당첨됐습니 다. 복권발행회사측은 클렌스 할머니가 심장이 약하다는 걸 알고 심장마비를 우려해, 이 할머니가 다니는 성공회 목사 에임스씨에게 찾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에임스 목사 는 할머니를 찾아가 조심스럽게 ‘복권이 당첨되면 어떠실 것 같아요?’하고 말했습니다. 그 러자 ‘에이, 목사님도 참. 내 주제에 무슨… 그럴 리 없겠죠.’ 목사는 말했습니다. ‘아니… 그래도 말이죠.’ 잠시 생각하던 할머니는 ‘그렇다면 에임스 목사님. 당신이 모두 가져요.’ 에임스 목사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심장마비로 즉사했습니다. 결국 할머니는 그 돈을 모두 받았는데…. 절반은 고인이 된 에임스 목사 가족에게 주었다고 합니다(인터넷). 한 인터넷 기사를 보니깐 “‘축복인가 죄악인가’ 뜨거운 복권 논쟁”이란 글이 있어 나눕니다. 영국의 새해 첫 주가 투기 열풍으로 뜨겁게 달아오르자 종교계에서는 비난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습 니다. 코번트리 대주교 시몬 배링턴워드 신부는 복권이 사람들의 탐욕을 부채질한다며 이 를 폐지하라고 촉구했습니다. 그는 영국 BBC와의 회견에서, 복권이 사회 전체를 타락시키 는 죄악이라고 강력히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같은 프로그램의 인터뷰에 응한 존 메이저 영 국 총리는 시몬 배링턴워드 신부의 복권 비판이 전적으로 틀렸다고 반박했습니다. 복권 사 업으로 한 해에 벌어들인 수익금 수십만 파운드는 정부가 세금만 가지고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스포츠·예술·문화유산·불우 이웃 돕기 사업에 요긴하게 쓰인다는 것이 메이저 총리의 주장이었습니다(인터넷).
여러분 생각엔 복권 당첨이 축복입니까? 아니면 죄악입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과연 진정한 복은 무엇입니까?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복이란 무엇입니 까? 저는 오늘 본문 느헤미야 9장 22-26절 말씀 중심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떠한 복을 주시는지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어떻게 누려야 하는 것인지 주시는 교 훈을 받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떠한 복을 주십니까? 한 2가지로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1) 첫째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복은 물질의 복입니다.
우리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오해하고 있는 신앙의 단면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기 복주의 신앙(기복 신앙)입니다. 기복신앙이란 무엇입니까? 기복 신앙이란 자신이 설정한 행복과 가치를 성취하고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내가 교회에 나가 야, 예수를 붙잡아야 행복해 지고 출세할 수 있다는 겁니다(인터넷). 다시 말하면, 기복신 앙이란 ‘예수 믿고 복받으세요’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과정에서 져야하는 십자가는 복이라는 개념이 전혀 없습니다. 이 기복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우리 가운데 너무나 많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큰 이유 중 하나는 물질의 축복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교회 내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 이 기복신앙은 “하나님을 예배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물질적인 축복이나 개인적인 행복을 위한 도구로 퇴위시켰으며, 예수그리스도를 믿 는 신앙의 목적을 개인의 영달과 사업의 번영 등의 현세적인 것에 두게 하고 있습니다(인터 넷). 기복 신앙이 잘못됐다고 하여서 무조건 물질의 복을 죄악시하는 또 다른 극적인 관점 도 위험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우리에게 물질의 복도 주시는 하나님이시 기 때문입니다. 기복신앙은 물질의 복을 얻는 수단으로 예수님을 믿는 것이라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물질의 복은 예수님을 믿는 결과(수단이 아닌)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 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은 물질의 복은 무엇이었습니까? 오늘 본문을 보면 한 2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물질의 복은 바로 “땅”이였습니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9장 22-25절을 보십시오: “…저희가 시혼의 땅 곧 헤스본 왕 의 땅과 바산 왕 옥의 땅을 차지하였나이다 … 전에 그 열조에게 명하사 들어가서 차지하 라고 하신 땅으로 인도하여 이르게 하셨으므로 그 자손이 들어가서 땅을 차지하되 주께서 그 땅 가나안 거민으로 … 저희가 견고한 성들과 기름진 땅을 취하고 ….“ “땅”이란 말이 이 네 구절에서 자그마치 7번이나 나옵니다. 이 축복은 창세기 17장7-8절에 나와 있는 아 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성취하신 것입니다: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 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 님이 되리라”(참고: 창13:14-18). 이러한 사실은 결국 하나님께서 출애굽 시대 때 이스라 엘 백성들에게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을 축복으로 주신 이유는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 성취 와 더불어 하나님께서는 그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이 되시길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물질의 복은 “모든 아름다운 물건”이였습니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9장 25절을 보십시오: “…모든 아름다운 물건을 채운 집과 파서 만든 우물과 포도원과 감람원과 허다한 과목을 차지하여 ….” 출애굽 시대 때 이스라엘 백성들 은 하나님의 명령인 ‘가나안 땅에 들어가 차지하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여호수아의 지도력 아래 가나안 땅 을 정복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땅”외에 그 땅의 모든 소산물이나 전 거주 자들의 소유물인 집, 우물, 포도원, 감람원, 과목 등을 다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 리가 여기서 한 가지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물질의 축복을 받는 우리에게 책임 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 언약을 맺으셨을 때 이스라 엘 백성들에게는 책임이 있었습니다(언약: 하나님의 약속 & 인간의 책임). 그것은 다름 아 닌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하는 것이었습니다(23절). 바로 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책임 이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물질의 축복을 받는다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 있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면 서 물질의 복을 받으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요 오만입니다.
물질 축복을 위한 십계명이 있습니다:
- 첫째 계명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필요한 물질을 주님이 공급하신다는 것입니다(마 6:33),
- 둘째 계명은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모든 것을 후히 주시고 누 리게 하시는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라는 것입니다(딤전 6:17). 하나님과 물질을 겸하여 섬 기지 못하며,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습니다(마 6:21, 24),
- 셋째 계명은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사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물질만 사랑하 면 물질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어, 가지고 있는 물질까지 빼앗깁니다(딤전 6:10),
- 넷째 계명은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모든 재물과 가족을 버리면, 세상에서 백배 의 복을 받고 천국에서도 큰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막 10:29-30),
- 다섯째 계명은 오직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 두라는 것입니다. 하늘에 쌓아 둔 보물을 빼앗을 자가 없습니다(마 6:19-20),
- 여섯째 계명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지 말고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라는 것입 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서 복을 주시는지 하나님을 시험해 보십시오(말 3:8-10),
- 일곱째 계명은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적게 심은 자는 적게 거두고 많 이 심은 자는 많이 거둡니다(고후 9:6),
- 여덟째 계명은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헌금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즐 겨 내는 자를 사랑하십니다(고후 9:7),
- 아홉째 계명은 하나님의 사업에는 능력 이상으로 투자하라는 것입니다(고후 8:3),
- 열째 계명은 모든 물질은 하나님의 것이며 그의 자녀는 관리인에 불과하며 반드 시 결산의 날이 있으므로 항상 준비하라는 것입니다(마 25:14-30)(인터넷).
-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복은 바로 인복입니다.
제 결혼 예배 때 주례자 목사님의 설교 말씀이 생각납니다. 주례자 목사님께서 3 개의 복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세 복중에 하나가 바로 “인복”이였습니다(다른 두개는 하나 님의 복, 물질의 복이었음). 인복이란 무엇입니까? 옛날 어른들의 말씀에 ’인복’이란 말이 있는데 이는 사람을 잘 만나는 것이 복중의 하나라는 것입니다(인터넷). 부모는 자식을 잘 만나야 하며, 학생은 스승을 잘 만나야 하고 스승은 학생을 잘 만나야 합니다. 백성은 지 도자를 잘 만나야 하고 지도자는 백성을 잘 만나야 합니다. 서로가 잘 만나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은 인복은 무엇이었습니까?
(a) 첫째로, 자손의 축복이였습니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9장 23절 상반 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그 자손을 하늘의 별 같이 많게 하시고 …”. 이 축복은 창세기 22장17절에 나와 있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 의 말씀의 성취입니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 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자식이 없었던 아브라함에 게 약속의 아들인 이삭을 주신 하나님께서 그 이삭을 받치라는 시험 후 합격한 아브라함에 게 자손의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창22장). 그리고 그 약속의 말씀을 약 400년이라는 애굽 의 종살이 삶 속에서 하늘의 별 같이 많게 하셨습니다. 약속의 자녀는 하나님의 축복입니 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언약적 뜻이 우리의 삶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우리의 자녀 들을 통해서도 계속 이루어 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b) 둘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은 인복은 가나안 사람들이였습니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9장 24절을 보십시오: “… 주께서 그 땅 가나안 거민으로 저 희 앞에 복종케 하실 때에 가나안 사람과 그 왕들과 본토 여러 족속을 저희 손에 붙여 임의 로 행하게 하시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만 주신 것이 아니라 그 땅 거민들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들을 섬기게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 이 이젠 가나안 거민들을 자기 마음대로 행하도록 붙여 주셨습니다. 흥미롭지 않습니까? 약 400년 동안 애굽이란 이방인 나라에서 애굽 사람들을 섬기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젠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와서는 종노릇하는 것이 아니라 상전으로서 가나안 거민들을 자 기 원하는 데로 부릴 수 있으니 말입니다. 직장에서 좋은 상관을 만나는 것, 사업하는 가 운데 좋은 종업원들을 만나는 것, 다 축복입니다. 과연 이 물질의 복과 인복이 성경에서 말하는 진정한 축복입니까? 그 대답은 “아니오”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진정한 복, 복중의 복은 바로 하나님의 복, 즉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것입니다. 성경은 현세에 있어서 물질적 축복보다는 오히려 그리스도인의 고난을 강조하고 있으며 메시야, 곧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체가 가장 축복받은 상태임을 역설하고 있습니다(인터넷). 복중의 복 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를 나의 구세주로 주님으로 영접하는 자는 복의 근원이 되시 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기에 복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어떻게 누려야 합니까?
한 2가지로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 우리는 주님의 큰 복을 낭비하면 안 됩니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9장 25절 하반 절을 보십시오: “… 주의 큰 복을 즐겼사오나”. 여기서 ‘즐겼다’라는 단어는 영어로는 “reveled”인데 이 단어의 의미는 “한껏 즐기다, 향락 하다; (술·도박 따위에) 빠지다; (시간·돈)을 흥청망청 쓰다, 낭비하다”입니다. 그리고 히브 리어 단어의 의미는 “to luxuriate”즉, “사치스럽게 지내다, 호사하다; (…에) 탐닉하다, (…을) 즐기다”란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받은 축복을 남용한 것입니다. 배 가 부른 땅’에서 ‘배가 부른 사람들’이 돼 버린 이스라엘 백성들(25절), 바로 이것이 그들의 파멸의 원인 이였습니다(위어스비). 그들은 마치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처럼 아버지 의 부(wealth)는 원했지만 아버지의 뜻(will)은 원치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물질 으로 하여금 자기들을 지배하도록 방관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복을 지혜롭게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복을 다스릴 수 있는 바른 신앙과 성숙한 인격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복을 즐기면서 그 복을 주신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을 망각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선물(gift)을 즐거워하면서 선물을 주신 분(The Giver of that gift)은 즐거워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큰 복을 즐거워 했지만 주님은 즐거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경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 시는 큰 복을 낭비 하지 말고 즐거워하되 그 큰 복을 주시는 복중의 복이 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최고로 즐거워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 우리는 주님의 복보다 주님의 말씀에 최우선을 둬야 합니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9장 26절을 보십시오: “저희가 오히려 순종치 아니하고 주를 거역하며 주의 율법을 등 뒤에 두고 주께로 돌아오기를 권면하는 선지자들을 죽여 크게 설 만하게 행하였나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주신 큰 복을 즐거워하 는 가운데 그 큰 복을 주신 주님을 즐거워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곧 그들은 주님의 말씀보다 주님이 주신 복에 우선을 뒀던 것입니다. 주님이 주신 큰 복으 로 “배불리 먹고 살”진 이스라엘 백성들은 교만하여져서 하나님께 불순종하며 그를 거역(반 항)하는 죄를 범한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율법을 자기들의 등 뒤에 두고 주님께로 돌아 오라는 선지자들의 권면을 무시하고 그들을 죽여 “크게 설만(모독)하게 행하였”습니다. 주 님의 말씀을 주님의 복보다 우선순위에 두지 않으므로 주님의 “큰 복”(Thy great goodness)이 주님을 “크게 설만”(great blasphemies to Thee)하는 죄의 열매를 맺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큰 복을 통하여 주님께 큰 영광을 돌려야 할 책임이 있습니 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큰 복을 우리 배만 채우고 살찌게 하는데 사용하 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큰 계명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하는데 사용해야 합니다.
한 평신도의 글인 “물질이 신앙심 가늠하는 잣대로 변질”을 나누고 싶습니다: 교회 건축 등 교회성장을 업적으로 생각하는 교회지도자의 헌금강요, 직분을 맡기 위해 일 정액 의 특별헌금을 납부하는 관례, 부흥회 개최나 강사 청빙이 신앙성숙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헌금수입에 강조점을 두는 문제 등 다양합니다. 특히 돈의 많고 적음이 직분자 선택 기준 에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한 목회자의 지적과 모 교회가 교회 특별사업을 위해 성도 들에게 헌금을 거두면서 1백만 원 이상 납부자에게는 담임목사가 축복기도를 해 준 경우도 있었다는 이야기는 한국교회 물질주의 풍조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확연히 보여줍니 다. 한국교회에 나타나고 있는 이러한 풍조의 이면에는 ‘물질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보고 물질을 많이 가진 사람은 신앙심이 깊고 하나님이 축복한 사람이며 가난한 사람은 신앙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한국교회가 물질의 많음 을 축복으로 보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물질은 주를 위해 쓰라고 준 은사일 뿐입니다(인 터넷).
복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으로 인하여 오늘도 살아가고 있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하나님의 복, 인복, 물질의 복을 낭비하지 말아야 할 텐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