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씀대로 이루시는 하나님

 

 

 

[느헤미야 9장 6-8절 말씀 묵상]

 

 

프랑스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합니다: “사람은 자기를 기다리게 하는 자의 결점 을 계산한다.” 이 말은 약속 시간에 적용이 됩니다. 다시 말하면, 약속시간에 늦는 것은 생각보다 손실이 큰 행동입니다.   별 것 아닌(?) 일로 상대의 미움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 다.   “머니 투데이”란 인터넷 사이트를 보면 대림산업을 만든 이재준 회장에 관한 이야기 하나를 그 측근이 들려준 것이 나옵니다: “한 번은 그 분을 모시고 중국여행을 간 적이 있 습니다. 약속시간에 맞춰 나갔는데 회장님이 이미 나와 계신 겁니다. 당황했지요. 다음 날 은 시간보다 7-8 분 미리 나왔는데 역시 회장님이 나와 계신 겁니다. 할 수 없이 다음 날 은 20분 정도 일찍 나갔습니다. 그랬더니 잠시 후 회장님이 나오시는 거예요. 시계를 보니 정확히 15분 전인 겁니다. 나중에 왜 이렇게 일찍 나오시냐고 회장님께 물어봤습니다. 그 랬더니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나는 약속시간보다 15분 일찍 나가는 것을 철칙으로 하고 있네. `그 이유는 첫째, 일찍 나가면 서두르지 않으니까 여유 있는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고, 둘째, 미리 나가 있으면 상대방의 호감을 살수있고, 셋째, 일찍 나가면 전철이나 버 스를 탈 수 있지만 서두르면 택시 등을 타야 하니 경제적으로도 좋고…”(인터넷). 시간 약 속을 잘 지킨다는 것은 사소한 일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닙니 다. 그 안에는 `나는 당신과의 약속을 소중히 합니다, 당신의 인격을 귀하게 여깁니다` 라 는 의미가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한근태).

 

신앙생활에도 매우 귀중한 약속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나와의 약속입 니다. 이 약속을 한 2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약속하심과 내 가 하나님께 약속 혹은 서약. 두 번째 것을 먼저 생각해 볼 때에 과연 저와 여러분은 하나 님께 서약한 것을 잘 지키고 있는가란 질문을 던져야 할 것입니다. 전도서5장 4-5절을 보 십시오: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말라 하나님은 우매자를 기뻐하지 아 니하시나니 서원한 것을 갚으라 서원하고 갚지 아니 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나으니”. 오늘 더 초점을 맞추고자 하는 약속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약속입니다. 우리를 예수님의 피로 구속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소중히 여기시고 귀히 여기사 약속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 하나님은 그 약속하실 말씀대로 그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 중심으로 “그 말씀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이란 제목을 걸고 그 말씀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이신지 한 2 가지로 묵상해 보고자 합 니다.

 

첫째로, 그 말씀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은 약속의 말씀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가나 안 땅을 그의 자손에게 주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9장 8절을 보십시 오: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의 땅을 그 씨에게 주리라 하시더니 …”. 이스라엘 자손들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이 방 사람과 절교하고 자기들의 죄와 열조들의 죄를 자복하면서 하나님께 경배를 드렸습니다 (9:1-5). 그런 후 오늘 본문 6절부터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선하심을 베풀어 주신 일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언급 속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핵심 단어는 바로 “주다”입니다. 이 단어는 느헤미야 9장에서만 적어도 16번 나옵니다. 그 이유는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 문입니다(딤전6:17). 그분은 참으로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 들에게 땅을 주셨고(느9:8, 15, 35), 법(13절)과 “선한 신”(20절)과 양식과 물(15, 20절)을 또한 “구원자들”(27절)과 원수들에게서 승리를 주셨습니다(22, 24절). 이 가나안 땅을 아 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창세기 15장 18-21절에 이 미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창세기 15장 13-16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 라함에게 주시는 약속에 한 4 가지 놀라운 사실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 첫째는,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즉 애굽에서 객이되어 그 들에게 400년 괴로움을 당하면서 그들을 섬길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성경 창세기 15장 1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 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 롭게 하리니”. 이 사실은 약속의 말씀이 성취되기까지 괴로움과 고난이 있다는 사실을 가 르쳐 주고 있습니다.

 

  • 둘째는,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 후 “큰 재물”을 이끌고 애굽에서 나올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성경 창세기 15장 14절을 보십시오: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이 사실은 약속의 말씀이 성취되는 과정에서 하나 님의 능력과 공급을 경험할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 셋째로, 아브라함 자신은 약속의 말씀이 성취될 것을 보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 입니다.

 

성경 창세기 15장 15절을 보십시오: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이 사실은 약속의 말씀이 내 세대에 성취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가 르쳐 줍니다. 그래서 성경 히브리서 11장1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 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

 

  • 마지막 넷째로, 약속의 말씀이 성취되기까지는 약 400년이란 세월을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성경 창세기 15장 16절을 보십시오: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 사실은 약속의 말씀이 성취되기까지는 상당한 믿음의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지 못하게 하는 원인을 가르 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마태복음 16장18절입니다: “… 내가 … 내 교회를 세우리니”입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붙잡지 못하게 하는 원인을 한 3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 첫째 원인은, 괴로움과 고난입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 일에 느헤미야 시대 때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열심히 재건을 힘쓰는 가운데 대적들이 조롱하며 위협하며 공격하며 지도자를 암살하려는 음모, 그 리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과정 속에서 너무나 많은 시련이 있기에 그 시련에 지쳐 쓰 려저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더 이상 붙잡기를 포기할 위험이 충분히 있습니 다.

 

  • 둘째 원인은, 하나님의 능력과 공급하심을 경험하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금년 한 해 동안 주님께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고 계시는 그의 능력과 공급하 심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약속의 말씀인 주님께서 주님의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약속의 말씀 을 더 이상 붙잡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셋째 원인은, 믿음의 인내가 결핍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이 성취되기까지 약 400년이 걸 렸습니다. 이 얼마나 긴 시간입니까? 상당한 믿음의 인내가 요구되는 일입니다. 우리 교 회에도 적용이 됩니다. 주님께서 이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셨을 때 우리는 믿음으로 인내해야 합니다.

 

“약속과 만나는 사람은 ‘불가능’과 만나는 사람입니다. 모든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약속을 붙잡는 자는 그 속에 숨어 있는 ‘가능’을 봅니다”(인터넷). 여러분은 이러한 약속을 붙잡는 자들입니까? 여러분은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그 속에 숨어 있는 ‘가능’을 보시고 계 십니까?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 처해있을지라도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어떠한 고난과 괴로움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능력과 공급하심을 경험하면서 믿음의 인내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워 나아가야 합니다.

 

마지막 둘째로, “그 말씀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은 약속의 말씀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9장 8절을 보십시오: “마음이 주 앞에서 충성됨을 보시고 더불 어 언약을 세우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과 기 르가스 족속의 땅을 그 씨에게 주리라 하시더니 그 말씀대로 이루셨사오니 주는 의로우심이로소이다.”   여기서 “언약”이란 무슨 말입니까?  “언약”이란 히브리어 단어의 문자적 의미 는 “자르다”(cut)입니다. 성경 창세기 15장 17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 하여 삼년된 암소와 삼년 된 암염소와 삼년 된 수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해(9 절) 그 모든 것을 취하여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는 장면이 나옵 니다(10절).  그런 후 해가 져서 어둘 때에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는 장면 이 나옵니다(17절). 그런 후 18절에 가서 성경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세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 니까? 원래 이 언약을 체결할 때는 언약의 당사자인 두 사람이 함께 쪼갠 고기 사이로 지 나가야 됩니다. 그 이유는 만약 언약을 지키지 않으면 쪼갠 고기처럼 죽임을 면치 못할 것 이라는 엄중한 서약을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 쪼갠 고기사이로 하나님이 보내신 횃불만이 지나갔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약속을 의미합니다. 또 한 이것은 하나님이 그 약속을 직접 성취하겠노라는 강력한 의지가 담겨있습니다(김기주). 이 “언약”이란 말은 두 가지를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 속”(God’s promise)과 “사람의 책임”(Human obligation)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 님의 약속은 그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게 하는 것과 그의 이름을 창대케 하는 것 또한 그 로 하여금 복의 근원이 되게 히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조차 없는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고 약속의 말씀을 주셨고 그의 이름은 “아브람”으로서 “존귀한 아버지”란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의 이름을 “열국의 아버지”란 의미를 지니고 있는 “아브라함”으 로 바꾸시사 창대케 하시겠다고 하나님께 서는 약속하셨으며 또한 복을 받지 못하고 있었던 자를 통하여 다른 이들에게도 복이 되게 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사 람의 책임은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의 책임은 창세기 12장1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 습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 할 땅으로 가라”. 즉, 아브 라함의 책임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을 붙잡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 아 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갔습니다(창12:4).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 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습니다(히11:8).

 

오늘 성경 느헤미야 9장 8절은 우리 사람의 책임을 이렇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 마음이 주 앞에서 충성됨을 보시고....” 즉, 언약을 맺은 가운데 우리 사람의 책임은 우리의 마음이 주님 앞에서 충섬됨(신실함)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하나님 이 우리 교회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의심하고 있습니까? 왜 주님께서 이 교회를 세우시 겠다는 마태복음 16장18절 말씀을 부인하는 교회 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하나 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모르기 때문입 니다. 무지함에서 오는 의심과 무관심과 불충성입니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9장 6절에서 성경은 우리 하나님께서 어떠한 하나님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한 네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첫째로, 그는 오직 한분이신 하나님이십니다[(6절)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2) 둘째로,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6절 ) “…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3) 셋째로, 하나님은 창조하신 것을 보존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6절) “… 다 보존하시오니…”]. (4) 마지막 넷째로, 하나님은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이십니다[(6절) “…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 (5) 더 나아가서 오늘 본문 8절 하반절을 보면 우리 하 나님은 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8절) “…그 말씀대로 이루셨사오니 주는 의로우심이로소이다”].  왜 하나님은 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까?  그 이유는 그는 우리에게 약속하신 말씀 을 그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에 “그 말씀”인 마태복음 16장18절을 주셨습니다: “내가 … 내 교회를 세우리니.” 우리 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이 약속의 말씀을 이루고 계십니다. 우리의 책임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책임은 이 약속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이 말씀을 붙잡고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주님이 우리 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좇아가야 합니다. 어떻게 좇아야 합니까? 우리의 마음이 주님 앞에서 충성됨으로 좇아야 합니다.

 

일본의 유명한 신학자 우치무라 간조는 도쿄 제일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 일본 천 황의 ‘교육 칭호’라는 명령을 거부해 교사직을 박탈당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당시 ‘교육 칭 호’를 읽는 소리를 들으면 사람들은 모두 일어나 차렷자세로 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 치무라는 천황도 사람인데 그에게 하나님께 바치는 경의를 표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던 것 입니다. 그는 젊어서 미국에 건너가 식당에서 접시를 닦으며 공부를 했습니다. 그때 어 떤 사람이 그에게 “무엇 때문에 이 고생을 하느냐”고 묻자 “나는 세상의 부귀와 명예에 관 심이 없소. 내가 원하는 것은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을 돌리는 것이오”라고 말했다고 합니 다. 그는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기 위해 하나님의 선한 뜻을 실천하고 사랑의 폭을 넓히 기 위해서 충성을 다했습니다. 하나님께 충성을 약속한 사람에게 세상의 부귀영화보다 중 요한 것은 악한 영과 싸워 승리한 후 면류관을 얻는 것입니다. 주께서 맡기신 사명을 위해 충성을 바친 사람은 누구든지 즐거움에 참예하고 생명의 면류관을 얻게 될 것입니다. 성경 은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요한계시록 2:10)고 약속하고 있습니다(인터넷).

 

 

 

우리 교회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인 마태복음 16장 18절 말씀을 붙잡을 수밖에 없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1987년 5월, 승리장로교회 대학부 수련회 때 주신 요한복음 6장 1-15절의 약속의 말씀에 이끌림을 받아 오늘까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