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힘

 

 

 

[느헤미야 8장 9-12절 말씀 묵상]

 

 

생명을 가진 곤충가운데 개미처럼 신비한 곤충도 없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개미는 그 작은 체구로 자기보다 몇 배나 더 큰 먹이를 끌고 가는 모습을 보았습니까? 죽은 메뚜 기를 질질 끌고 가는 개미를 지켜보던 어떤 관찰자가 개미의 몸무게를 달아 보았는데 놀랍 게도 개미는 무려 자기보다 60배나 더 되는 것을 끌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런 일을 해낼 수 있단 말입니까. 그 능력은 하나님께서 피조물에게 주신 훌륭한 선물입니다(인터넷). 성경 잠언 6장6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게으른 자 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개미와 우리를 비교하면 어떠합니 까? 우리 인간은 개비보다 더 큰 힘과 능력을 선물 받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 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고백하였습니다(빌4:13).   그러나 너무나 많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능력 없는(powerless) 삶을 살고 있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주님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라는 것은 한 성경구절이지 우리 삶 속에서 는 그 진리를 부인하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입에서는 ‘할 수 있다’라는 말보 다 ‘못하겠습니다’, ‘어려울 것 같은데요,’ 등등이란 말이 쉽게 나오고 있습니다. 아니면 속 으로 주님의 능력을 부인하는 불신이 많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능력, 경건의 능력을 부인 하면서 너무나 비관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충분한 능력 의 공급을 사용하지 못하면서 허비 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떻 게 하면 능력 있는 신앙생활, 힘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 느헤미야 8장 10 절 말씀이 그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힘 있는 신앙생활 을 할 수 있는지 그 해답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 입니다.

 

우리의 힘은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8장 10절 하반 절을 보십시오: “…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 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그럼 어떻게 하면 주님 을 기뻐하는 것입니까? 한 3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 첫째로, 주님을 기뻐하기 위해선 우리는 슬퍼하지 말려 울지 않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8장 9절을 보십시오: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이스라 엘 백성들은 학자 에스라를 통하여 모세의 율법을 듣고 또한 레위 사람들을 통하여 율법을 깨닫게 될 때에 자기들의 죄가 들춰지므로 회개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다 시 말하면, 그들은 율법을 통하여 죄의 자각(conviction of sins)이 있으므로 울었습니다. 에스라도 이러한 눈물을 흘렸습니다. 성경 에스라 10장1절을 보십시오: “에스라가 하나님의 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이 심히 통곡하매 ….” 이렇 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의 자각으로 인하여 울고 있을 때에 느헤미야와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성일이니 슬퍼하며 울지 말라고 권 면했습니다. 지금 현대 말로 한다면, 목사님을 통하여 또한 성경공부 교사 선생님들을 통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도님들이 자기의 죄를 깨닫게 되어 회개의 눈물을 흘리고 있 을 때에 목사님과 장로님과 교사 선생님들이 ‘오늘은 주일이니 슬퍼하며 울지 마십시오’라 고 권면한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눈가에 눈물이 메말라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말씀을 통 하여 우리의 죄를 자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영적 거울인 하나님의 말씀에 자기 자신을 부지런히 비취보지 않고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죄를 잘 깨닫 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영적 거울을 보아도 자신의 추한 모습을 볼 수 없을 정 도로 우리의 영안의 어두워져 있기 때문에 우리는 회개의 필요성조차도 잘못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교회 안에서 설교 시간에 눈물을 흘리는 것 을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합니까? 불행하게도 우리는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을 심리적인 기 술로 울도록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설교자들은 자기들이 그렇게 하고 있는 사실을 전혀 모 른 채 심리 조작이라는 기술을 쓰고 있습니다. 강력한 감정의 물결이 모든 회중 을 사로잡 을 때 만족스러운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가 사람들을 울게 만들었을 때 성공 했다는 생각이 들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내적 각성보다는 눈에 보이는 결과에 더 신경 쓰 고 있기 때문입니다(화이트). 많은 때에 우리 설교자들은 성도들에 내적각성보다 눈에 보 이는 결과인 눈물에 더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흘리는 눈물이 말씀을 들으므로 죄의 자각으로 인한 회개의 눈물이라기보다 설교자들의 심리 조작으로 말미암은 감정(눈물)일 때가 충분히 있습니다. 눈물을 흘린다고 해서 내적 각성이 일어나고 있다는 말이 아닐 있습니다. 눈물은 전혀 한 심령의 내적 각성과 연관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 래서 요엘 선지자는 요엘 2장 12-13절 상반 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 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 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 그러나 과연 회개의 눈물, 죄를 슬퍼하는 것이 우리의 힘입니까? 그 대답은 “아니오”입니다. 성경은 회개의 눈물이 우리의 힘이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의 날인 주일, 주님의 전에 올라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것이 우리의 힘이 아니 라는 말입니다.

 

  • 둘째로, 주님을 기뻐하기 위해서 우리는 근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8장 10-11절을 보십시오: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 심하지 말라 … 오늘은 성일이니 마땅히 종용하고 근심하지 말라 하매.” 왜 수문광장에 모 여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근심을 하였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근심하였던 이유는 무엇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무엇이 하나님을 불쾌하게 하는지 잘 모르면서 오랫동안 주 님을 올바르게 섬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패커). 우리의 삶을 뒤돌아 볼 때에 우리는 이스 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지 못했던 죄들이 생각날 수 있습니다. ‘그 때 그렇 게 했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셨을 텐데…’ 등등.  삶을 뒤돌아보면서 참 “틈”이 많이 보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혜롭지 못하게 말하고 행동한 것들도 생각날 수 있습니다. 사랑의 부족함도 많이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생각에 잠길 때에 마음이 기쁠 리는 없습니다.  또 한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낙심하여 힘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 분은 여러분의 삶을 뒤돌아보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자신의 부족한 죄로 말미암아 근 심이 있으십니까? 조만제라는 사람이 쓴 글 중에 “근심을 이기는 슬기”가 있습니다(인터 넷): “셰익스피어가 ‘근심은 생명의 적이다’라고 역설한 것처럼 근심이 지속되는 한 사람은 행복할 수 없고 즐거움을 가질 수 없다. 근심은 건강에 지장을 주어 생명을 단축시키고, 인간으로 하여금 새로운 창조적인 일에 전념할 수 없도록 만든다. … 널리 알려진 이솝도 ‘안심하면서 먹는 빵 한 조각이 근심하면서 먹는 잔치보다 낫다’고 말하였다.” 맞습니다. 근심은 우리에게 힘이 되기보다 우리로 하여금 더욱더 연약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느헤미 야와 에스라 그리고 백성들을 가르쳤던 레위 사람들은 울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근 심하지 말라”고 본문에서 두 번이나 말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서서 몇 시간동안이나 근심하면서 울고 있다고 상상해 볼 때에 그 얼마나 지치겠습니까?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는 그들이 울면서 근심하고 있었던 날이 “주의 성일”이였기 때문입니다(10 절). 우리가 잘 아는 복음성가 “이 날은”이 생각납니다: “이 날은 이 날은 주의 지으신 주 의 날일세 기뻐하며 기뻐하며 즐거워하세 즐거워하세 이 날은 주의 날일세 기뻐하며 즐거 워하세 이 날은 이 날은 주의 날일세”. 주일 주님의 전에 올라와 예배를 드리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앞에서 우리의 죄가 들춰지므로 근심할 수 있고 또한 근심해야 할 것 입니다. 그러나 이 근심도 우리의 힘이 될 수가 없습니다.

 

  • 마지막 세 번째로, 주님을 기뻐하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8장 12절을 보십시오: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 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그 읽어 들린 말을 밝히 앎이니라.” 이스라엘 백성들 은 느헤미야와 에스라, 그리고 그들에게 모세 율법을 깨닫게 했던 레위 사람들을 권면을 듣 고 슬픔과 눈물과 근심을 그치고 크게 즐거워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그 읽어 들린 말을 이 스라엘 백성들이 밝히 알았기 때문입니다(12절).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슬픔과 눈물, 근심을 사라지게 한 것은 다름 아닌 모세 율법을 밝히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모 세 율법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므로 회개의 눈물과 근심을 가져다줍니다(롬3:20). 그들은 모세 율법으로는 자기들이 구원을 받을 수 없음을 밝히 알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 갈라디아서 3장24절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 에게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 려 함이니라.” 모세 율법은 우리에게 죄의 자각, 즉 죄를 깨닫게 하지만 우리를 구원해 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모세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습니다(갈3:24).   즉, 모 세 율법으로는 죄를 깨닫게 되며 그 모세 율법이 가리키는 예수 그리스도로를 믿음으로 말 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는 것입니다. 이 진리를 밝히 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슬픔과 눈물과 근심을 중단하고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우리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현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므로 마음이 찔려 죄를 회개 하는 가운데 눈물과 슬픔, 근심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그 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 단계에서 한 단계 더 올라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습 니다. 다시 말하면, 말씀을 듣고 죄를 깨닫는 회개의 단계는 시작단계이지 결코 최종의 단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가리키는 최종의 단계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즉, 예 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죄 사함 및 구원이란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말 씀을 밝히 알고 있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가리키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바라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을 믿음으로 회개의 눈물을 흘리는 가운데 마음에 모든 슬픔과 근심을 주님께서 없애주시는 평강의 축복을 누립 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년 속죄 날을 지키고 주님께서 그들의 죄를 다루시므로(레16 장) 말미암아 그들이 죄 용서를 받으므로 기뻐하였습니다. 유대인의 달력을 보면 속죄 날 다음에 초막절이 옵니다. 그 초막절은 1주일 동안 하나님의 사람들이 즐거운 축제를 가집 니다(레23:26-44). 중요한 순서는 바로 이것입니다: 죄의 자각(conviction),   씻김 (cleansing), 그리고 축제 (celebration).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 율법을 듣고 밝히 알았다 는 말은 죄의 자각, 씻김, 그리고 축제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크 게 즐거워하였던 것입니다(12절).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잘 들어야 합니다.

 

이 말은 “종용”히 하나님 앞에서 그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 둘째로, 그 말씀을 밝히 깨달아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해 주시길 간구해야 합니 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오직 예수 님만이 우리의 회개의 눈물을 닦아주시며 우리 마음에 근심을 제거해 주실 수 있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우리의 기쁨이 되십니다. 그리고 그를 기뻐하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진정한 힘입니다.

 

하영조 목사님이 쓴 책 “힘은 있을 때 조심해야 합니다”를 보면 “참된 힘”이 무엇 인가 한 4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 중 넷 번째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인터넷): " 넷째, 참된 힘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 때에 우리 는 그를 즐거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기뻐할 때에 우리는 시편 기자가 시편 18편1절에서 말씀한 것을 우리도 진실로 고백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나 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 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나의 기쁨, 나의 힘이 되신 주님께 감사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죄의 자각, 씻김, 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