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군을 세워라!

 

 

 

[느헤미야 7장 1-3절 말씀 묵상]

 

 

교회 안에는 18가지의 봉사 유형이 있다고 합니다(인터넷): (1) 소대장형- 언제나 선두에서 챙기는 성도, (2) 먹거리형- 일할 때는 요리조리 빠지고 먹을 때는 쏜살같이 나타 나는 성도, (3) 자라목형- 집에서는 기고만장, 교회에서는 움츠러드는 성도, (4) 미꾸라지형 - 핑계대고 잘 빠져나가는 성도, (5) 천진난만형- 순종하며 할일을 열심히 찾는 성도, (6) 주둥아리형- 입으로만 봉사하는 성도, (7) 재수좋은형- 빗자루 방금 잡았는데 막 도착한 목 사님께 칭찬 받는 성도, (8) 가정파괴형- 봉사를 핑계로 가정에 소홀한 성도, (9) 사기진작 형- 일꾼에게 줄 먹거리를 가져오는 성도, (10) 뒤로쳐져형- 뒤에 안주하려는 성도, (11) 시간망각형- 시작했다하면 불기둥의 인도가 필요한 성도, (12) 중도하차형- 중간에 말없이 사라지는 성도, (13) 눈먼붕어형- 현장에 생각 없이 왔다가 항상 걸려드는 성도, (14) 마르 다형- 간식과 식사를 준비하여 즐겁게 하는 성도, (15) 엔돌핀공급형- 일보다 옆에서 즐겁 게 웃겨주는 성도, (16) 공구류상가형- 필요한 자재, 공구를 챙겨주는 성도, (17) 먹을복없 는형- 간식 먹을 때마다 본의 아니게 항상 빠지게 되는 성도, 그리고 (18) 충성파형- 끝까 지 말없이 봉사하는 성도. 여러분은 어떤 일꾼들이 공동체 안에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오늘 본문 중심으로 “일꾼을 세워라!”라는 제목을 걸고 예루살렘 성을 완공한 후 느헤 미야가 세운 일꾼들을 한 3가지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세워진 일군들은 문지기와 노래하는 자들과 레위 사람들 입니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7장 1절을 보십시오: “성이 건축되매 문짝을 달고 문지기와 노 래하는 자들과 레위 사람들을 세운 후에”. 느헤미야 6장1절을 보면 예루살렘 성을 다 건축 하였지만 “아직 성문에 문짝을 달지 못”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 역사가 오십이일 만에” 끝나 성이 완공 되었을 때(6:15) 오늘 본문 7장 1절에 와서는 느헤미야가 성 문짝을 달았던 것입니다. 성문을 달은 후 제일 먼저 유다 백성들의 대표가 문지기와 노 래하는 자들과 레위 사람들을 세웠습니다. 이들은 모두 성전 봉사에 종사할 자들이었습니 다. 이것을 우리 현대 말로 한다면, 도시를 재건한 후 교회에서 섬길 목사님과 찬양팀과 안내위원을 세웠다고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한 마디로, 예배자들을 세웠다는 말입니다.

 

찰스 휀샴(F. Charles Fensham)은 그의 주석에서 말하기는 1, 2, 3절에서 나오는 ‘세우다’ 혹은 ‘임명하다’라는 단어 ‘appoint’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3 다른 뿌리(root)가 있 다고 합니다: 1절의 “세운 후”(appointed)는 the root “pqd”로서 “probably made by representatives of the people”(사람들의 대표들)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1절에 나와 있는 문지기와 노래하는 사람들과 레위 사람들은 사람들의 대표들이 임명했을 것이라는 말 입니다. 2절에 나와 있는 “다스리게 하였는데”(put in charge)라는 단어의 뿌리는 “swh” 로서 유다 총독인 느헤미야가 임명한 것입니다. 마지막3절에 나와 있는 “appoint”란 단어 의 뿌리는 “’md”로서 총독 느헤미야가 2절에 세운 두 사람이 세운 파수꾼들이란 말입니다 (휀).

 

여기서 “문지기”가 제일 먼저 나오는데 이것이 우리 교회에게 어떻게 적용이 될 수 있습니까? 마가복음 13장 34절 말씀으로 적용을 할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   즉 우리는 문지기 신앙으로 사명을 수행해야 한다는 말입니다(인 터넷). 마가복음 13장 33절부터 37절까지 ‘깨어 있으라’는 말씀이 4번이나 나옵니다. 이 것은 무엇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까? 우리는 문지기로서 깨어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종말이 가까울수록 우리 그리스도인은 문지기 신앙으로 사명을 잘 수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문지기 사명이 무엇입니까? 출입을 지키고 확인하는 것입니다. 들여보 낼 사람을 들여보내고 막아야 할 사람을 막아야 하는 것이 문지기 사명입니다. 일상에서도 그렇지만 영적생활에서도 그것은 동일합니다. 우리 영혼을 파괴하는 것이 들어오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영혼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출입을 허용해야 합니다. 사도 야 고보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 중 하나가 바로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약1:27). 악하고, 속되고, 부정하고, 더럽고, 거짓된 모든 것들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우리의 신앙생활이 엉망이 되지만 좋은 생 각, 아름다운 생각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아름답게 됩니다. 그래서 사 단은 기회만 되면 우리 안에 악한 영을 들여보내려고 발버둥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세 에 우리는 예배자들로 문지기 신앙으로 사명을 수행해야 합니다. 성령님이 우리 마음에 좌 정하시면 악한 것들이 들어오지를 못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귀는 우리 마음에 악한 생각 을 넣어 모양은 거룩한 성도인데 생활은 마귀가 하는 짓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세워진 일군들은 보조자 입니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7장 2절을 보십시오: “내 아우 하나니와 영문의 관원 하나냐로 함께 예루살렘을 다스리게 하였는데 하나냐는 위인이 충성되어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리에서 뛰어난 자라.” 백성들의 대표들이 1절에서 “문지기와 노래하는 자들과 레위 사람들을 세운 후에” 여기 2절에 와서는 유다 총독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을 함께 다스릴 두 명의 자기 보 조자를 세우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들의 이름은 “하나니”와 “하나냐”였습니다. “하나 니”란 이름은 우리가 이미 들었던 이름입니다. 여기서 느헤미야는 자기의 아우 (“내 아 우”)라고 하였는데 이 하나니가 느헤미야 1장2절에서 유다에서 수산궁에 와서 느헤미야에 게 유다에 남아 있는 사람들과 예루살렘 형편을 알려준 사람이었습니다(1:3). 이는 자기의 조국에 대한 정직과 사랑을 지닌 자였습니다(헨리). 다른 한 사람은 “하나냐”인데 그는 “영문의 관원”이었습니다. “영문”이란 성전 주위에 있는 요새로서 제일 쉽게 공격을 당할 수 있는 북쪽 성벽을 파수하는 곳이었습니다.   이 사람에 대해서는 한 2 가지로 느헤미야가 적고 있습니다. 하나냐는 충성된 자이며 또한 그는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 하나님을 경외하 는 자였습니다.

 

보조자의 제일 중요한 자질은 충성(신실함)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성경 디모데후서 2장 2절을 보십시오: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 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주 님께서 주신 사명을 완수하는데 충실합니다. 그러나 만일 지도자들이 하나님보다 사람을 두려워하게 되면 올무에 걸려 실패를 맛볼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 잠언29장 25절을 보십시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마지막 세 번째로 세워진 일군은 파수꾼입니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7장 3절을 보십시오: “내가 저희에게 이르기를 … 예루살렘 거 민으로 각각 반차를 따라 파수하되 자기 집 맞은편을 지키게 하라 하였노니.”  느헤미야가 두 보조자인 자기 아우 하나니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충성된 하나냐로 함께 예루살렘을 다스 리도록 세운 후 이 두 보조자들이 파수꾼들을 세우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3절). 파수꾼의 역할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은 성문을 열고 닫는 자들 이었습니다: “내가 저희에게 이르 기를 해가 높이 뜨기 전에는 예루살렘 성문을 열지 말고 아직 파수할 때에 곧 문을 닫고 빗 장을 지르며”(3절).  파수꾼의 역할 중 하나는 언제 문을 열고 언제 문들 닫아야 하는지 알 고 그대로 실천으로 옮기는 자들이었습니다.  문을 아침에 사람들이 다 잠을 자고 있을 때 에 문지기가 성문을 열어 놓는다면 대적들이 들어 왔을 때 무방비 상태에서 당하고 말 것이 며 또한 파수꾼이 없이 밤에 문을 닫아 놓는다면 원수들이 몰래 성안으로 스며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예루살렘 성과 유대 백성들의 안전을 위해서 조치했 어야 했었습니다. 그들은 두 종류의 파수들을 세웠습니다: 첫 번째 종류의 파수꾼들은 예 루살렘 성벽의 특별한 위치에서 순찰하였고 또 다른 종류의 파수꾼들은 자기들 집 근처에서 파수하도록 한 것입니다. 느헤미야 3장에 보면 많은 유다 백성들이 자기 집에서 가까운 성 벽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느헤미야는 하나니와 하나냐가 세운 파수꾼들에게 자기들이 세운 성벽 지역을 파수할 것을 도전하였습니다. 성문에 문지기들과 성벽에 파수꾼들로 말미암아 예루살렘 도시는 대적들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를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영적 파수을 세워야 합니다.   성경 이사야 62장 6절을 보십시오: “예루살렘 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숫군을 세우고 그들로 종일종야에 잠잠치 않게 하였는니라 ….” 여기에 기록된 바와 같이 성벽 위에 세워진 하나님의 파수꾼은 주의 종들이며 또 한 성도들입니다. 성을 지키는 사람의 가장 중요한 의무는 깨어있는 것입니다. 파수꾼이 잠 자고 있으면 큰일입니다. 군대 용어로 '전투에 실패하는 자는 용서 받을 수 있어도 경계 에 실패하는 자는 용서 받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쉬지 말고 항상 영 적으로 깨어 있어 우리 자신의 믿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 교회를 안에서 또는 통해서 어떠한 일군을 세우길 원하실까요?   하나 님을 예배하는 자들,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들, 목회자들, 또한 문지기의 신앙으로 사명을 수 행하는 자들, 하나님을 경외하며 충성된 지도자들을 세우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깨어있 는 영적 파수꾼들을 세우길 원하십니다. 우리 모두가 이러한 일군들로 세움 받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주님께서 그리스도 중심된 꿈을 가진 기드온의 300명 군사와 같은 지도자들을 세워 파송하 시사 하나님의 나를 확장케 하시길 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일꾼을 세우므로 교회를 세우고, 교회를 세우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길 기도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