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이루신 역사

 

 

 

[느헤미야 6장 15-19절 말씀 묵상]

 

 

“기름부음”이란 말이 무슨 말인지 아십니까? 종교적 의미에서 기름부음은 두가지 용례 가 있는데 그 하나는 어떤 물체에 기름을 발라 성별시키는 것입니다(출30:23, 레8:10-1 2).그리고 다른 하나는 사람에게 기름을 부어 제사장(출29:7)과 선지자(왕상19:16)와 왕 (왕상1:39으로 세우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름 붓는 자가 누구이든 그 권위의 근원이 하나 님께 있음을 나타냅니다. 여기서부터 여호와에게서 온 거룩한 구세주로서의 메시아 개념이 생겨났는데 “메시아”와 “그리스도”는 모두 “기름부음 받은 자”를 의미합니다(인터넷). 유 진 피터슨(Eugene Peterson) 목사님은 그의 책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에서 “기름부 음”에 대해서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성경에서 기름부음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 터 할 일을 받는다는 의미다. 고용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사실상 이런 말이다. '해야 할 일 이 있다. 그것을 네게 맡기겠다. 그리고 너는 그 일을 할 수 있다"(피터슨). 제 개인적 생 각은 기름부음을 구한다는 것은 큰 책임이 뒤따른다 것입니다.   그 이유는 기름부음을 구했 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할 일을 받기를 구했다는 말인데 그 하나님의 일을 우리 자신이 행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일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 니라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이 우리를 통해서 하시는 일임을 우리가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므로 말미암아 믿음으 로 행하는 하나님의 일이 되야 합니다(갈2:20). 그것이 바로 신약에서 말하는 기름부음입 니다. 즉,   기름부음은 성령의 임재 또는 내재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사용되었습니다(요일 2:20, 27). 그러나 더 큰 유혹(위험)은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를 통하여 일하시는 것을 경험하다가 우리 자신이 하나님처럼 된 것처럼 착각하는데 있습니 다. 우리는 일을 잘 하거나 좋은 일을 할 때 정말 신과 같은 존재가 된다면(피터슨) 기름 부음을 받아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것은 큰 축복과 은혜임과 동시에 큰 위험과 유혹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일이 예배보다 우선순위가 될 때에 이러한 유혹에 빠지게 됩니다. 즉 일을 위해 예배가 도구화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면(예: 사울처럼) 그 때에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름부음을 빙자하여 우리의 일 을 할 때에는 우리의 섬김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존귀케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존귀 케 됩니다. 그러한 신격화하는 일(행동)은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명목아래 하나님의 존재 를 부인하는 일밖에 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6장16절을 보면 성경은 예루살렘 성벽 완공이 “하나님이 이루 신 것”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느헤미야를 기름 부으심으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인 예루살렘 성벽을 완공케 하셨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께서는 느헤미야 를 통하여 일하셨습니까? 하나님의 역사를 한 3가지로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1) 공모 (Conspiracy), (2) 완공(Completion), (3) 자신감(Confidence).

 

첫째로, 공모(Conspiracy)입니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6장 17-19절을 보면 우리는 끊임없는 사탄의 역사(The Unceasing Works of Satan)를 볼 수가 있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유다의 귀 인들이 여러 번 도비야에게 편지하였고 도비야의 편지도 저희에게 이르렀으니”.  여기서 “그 때에”란 말은 유대인들이 느헤미야의 지도 아래서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던 기간을 가리 킵니다(박윤선). 즉, 예루살렘 성벽 완공 이전을 가리킵니다(15-16절). 그래서 논리적으로 따진다면 17-19절은 15-16절 이전에 있었던 일이기에 15-16절 이전에 써졌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15-16절후에 적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지 확실치 않습 니다. 한 가지 추측은 예루살렘 성벽 완공 후에도 교만하지 말고 항상 사탄의 유혹을 경계 하는 차원에서 인지도 모릅니다. 그 동안 유다의 고위층 인물들도 산발랏과 도비야와 밀통 해가지고 느헤미야를 낙심시키려고 계속 서신을 주고받았습니다. 아무 서신을 계속 주고받 았기에 산발랏과 도비야가 예루살렘의 일을 훤히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개인적 인 관계를 볼 때에 느헤미야 2장10절 말씀에 근거하여 도비야가 사마리아의 산발랏 밑에서 일했던 관리로서 예루살렘에서 거주했었던 적도 있었지 않았는가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 다.  이 때에 도비야와 또 그의 아들과 유다 고위층의 딸들과 통혼한 것 같습니다.  느헤미 야 6장 18절을 보십시오: “도비야는 아라의 아들 스가냐의 사위가 되었고 도비야의 아들 여호하난도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의 딸을 취하였으므로 유다에서 저와 동맹한 자가 많음이 라.” 여기서 “베레갸의 아들 므슬람”이란 인물은 유다에서 중요한 관리였을 것입니다 (WBC). 느헤미야 3장4절과 30절을 보면 “무슬람”이란 인물이 두 번이나 나오는데 그는 예루살렘 성벽 중건하는 일에 느헤미야의 견고한 지원자처럼 여겨집니다. 결국 이것은 무 엇을 의미하냐면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함에 있어서 외부적으로 뿐만 아니라 이 렇게 내부적으로도 함께 성벽을 재건하는 유다 백성들 중에 그의 대적과 함께 공모를 한 사 람들도 있었다는 말입니다. 또한 이들은 이스라엘의 원수들에 관하여는 느헤미야에게 좋게 말하기도 하고, 또한 느헤미야에게 관하여는 원수들에게 좋치 않게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19절 상반 절을 보십시오: “저희들이 도비야의 선행을 내 앞에 말하고 또 나의 말도 저에게 전하매 ….” 또한 원수 도비야는 편지로 느헤미야를 위협하기도 했습니다(19절 하반절).

 

여기서 우리는 사탄의 끊임없는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사탄의 계략 은 예루살렘 성벽 건축이 진척되는 단계마다 더욱 야비한 형태의 공격을 취한다는 것입니다 (화이트). 처음에는 조롱과 공개적인 비웃음이었고(4:1-3) 그 다음에는 어마어마한 연합 전 선을 구축하여 무장 공격을 꾀한다는 소식이 들려 왔었고(4:7-12) 그러고는 대화로 해결하 자는 제의로 위장된 암살 음모가 이어졌습니다(6:1-3).   그 다음엔 중상 모략적 비난이 담 긴 공개서한도 나왔고(6:5-6) 그리고 예루살렘 성벽이 거의 완공되어가는 단계에서는 거짓 선지자 스마야를 통하여 느헤미야로 하여금 하나님께 범죄케 하며 유다 백성들에게 신뢰를 잃게 만들고자 했었습니다(6:10-13).  이러한 와중에서 2장10절에서부터 등장하는 도비야 는 꾸준히 유다의 고위층 인물들과 서신을 주고받으면서 결국 자녀들을 서로 결혼시키는(통 혼) 전략을 써가면서 느헤미야를 두렵게 하여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 못하게 하려고 했습니 다. 만일 우리가 그러한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찬송가 342장이 이 질문의 답을 줍니다: (1절) “어려운 일 당할 때 나의 믿음 적으나 의지하는 내 주를 더욱 의지합니다. (후렴) 세월 지나 갈수록 의지할 것뿐일세   아무 일을 만나도 예수 의지합니다.”

 

둘째로, 완공(Completion)입니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6장 15절을 보십시오: “성 역사가 오십이일 만에 엘룰월 이십 오일에 끝나매.” 예루살렘 성벽을 중건하는 일이 52일 만에 끝났습니다.   “엘루월 이십 오 일”은 지금 달력으로 말하면 9월20일정도가 됩니다. 이 역사는 7월 말 즘에 시작하여 9월 쯤에 완공된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묵상한바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의 문제를 처음으로 들 었었던 때가 “기슬르월” 즉 우리 달력으로 11-12월 즘이었습니다(1:1).   그리고 그는 아닥 사스다 왕에게 자기의 계획을 아뢴 때가 “니산 월” 즉 우리 달력으로 4개월이 지난 3-4월 즘이었습니다(2:1). 그런 후 왕의 허락을 받고 느헤미야가 수산 궁에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온 기간이 한 2, 3달이 걸렸으니 4-5월에서 6-7월 즘에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이 기 간은 예루살렘 성벽이 완공한 52일 기간보다 더 오래 걸려서 수산 궁에서 예루살렘까지 느 헤미야는 온 것임을 말해줍니다. 어떻게 느헤미야는 유다 백성들과 함께 예루살렘 성벽을 52일이라는 짧은 기간에 완공할 수 있었습니까? 그 비결을 한 몇 가지로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 제일 중요한 완공 비결은 기도로 준비를 많이 한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벽 완공은 52일밖에 안 걸렸지만 그 전에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의 문제 를 처음 들었던 “기슬르월”, 즉 우리 달력으로 11-12월부터 아닥사스다 왕에게 자기의 예 루살렘 성벽 중건의 계획을 아뢴 “니산 월”인 3-4월까지 그는 4개월 동안이나 하나님께 기 도하였습니다. 고국의 아픈 소식을 들었던 느헤미야, 예루살렘 성이 훼파하고 성문 들이 불에 탔으며 그 남은 자들은 환난을 당하여 능욕을 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그의 형제인 하나 니(1:2-3)에게 전해 듣고 “앉아서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 하”였던 느헤미야(1:4), 그는 아닥사스다 왕에게 그의 계획을 아뢰기 전까지 하나님께 그 문제를 놓고 간구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느헤미야는 사람인 아닥사스다 왕을 움직이는 것 보다 간구로 하나님을 움직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이동 원).  다시 말하면, 느헤미야는 기도의 사람으로서 사람보다 하나님의 더 의식하였기 때문 에 보이는 그 당시 최고의 힘과 세력을 자랑하는 메대 바사 왕인 아닥사스다 왕을 바라보기 보다 왕중의 왕이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 본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 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전도 집회를 준비하면서 40일 동안 한끼씩 금식하면서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는 것 이유는 우리의 태신자의 마음을 여실 수 있 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로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에 하나님 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사 우리의 태신자들의 마음을 여시사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구세 주와 주님으로 영접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가 붙잡고 간구하고 있는 약 속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바로 성경 사도행전 16장14절 말씀입니다: “… 주께서 그(루디 아의)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 완공 비결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 후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는 살 아 있는 기도, 행함이 있는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는 계속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면서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그리하였을 때에 “내 하나님 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심으로(도 우신 일)” 아닥사스다 왕이 느헤미야의 요구를 허락하였습니다(2:8, 18).

 

  • 완공 비결은 목적에 이끌림을 받는 삶입니다.

 

느헤미야는 정지시킬 수 없는 혹은 멈추게 할 수 없는 지도자(an unstoppable leader)였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일을 시작한 후에 대적들로 말미암아 마음과 주의를 딴 데로 돌릴 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목적 또는 초점을 예루살렘 성벽 재건 에 맞추고 마음과 주의를 딴 데로 돌리지 않았습니다. 그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에게 3 C’s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1) Conviction(확신): 이것이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 이라는 확신, 승리의 확신, 등등, (2) Confidence(자신감): 자기에게 근거한 자신감이 아닌 주님의 신실하심에 근거한 자신감.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루신다 는 그의 신실하심안에서의 자신감, (3) Consistency(일관성): 이랬다저랬다 하는 것이 아니 라 사명을 완수함에 있어서 한 길을 걷는 삶. 느헤미야에게 있어서 목적은 바로 예루살렘 성벽 재건이었습니다.

 

  • 완공 비결은 탁월한 위기관리입니다.

 

예루살렘 성벽이 완공되어 가면 갈수록 대적들의 공격은 더욱더 아비해지고 강해졌 습니다(조롱, 연합전선 구축하여 무장공격 소식, 위장된 암살 음모, 중상모략, 거짓 선지자 의 출연). 이러한 위기들을 만날 때마다 느헤미야는 그의 탁월한 위기관리를 보여주었습니 다. 그는 기도로 그 위기를 이겨냈고, 또한 기도의 행동으로 파수꾼도 세워 그 위기를 모 면했습니다. 또한 그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자신감을 갖도록 끊임없이 유다 백성 들을 도전하므로 위기를 극대화하기보다 크신 주님을 바라보게 했습니다. 그는 용기를 유 다 백성들에게 보여주었고 하나님이 주신 분별력으로 위기도 모면했습니다. 느헤미야는 탁 월한 위기 관리자였습니다.

 

  • 완공 비결, 인내 혹은 견딤입니다.

 

52일이란 기간이 느헤미야와 유다 백성들에겐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었을 것입니 다. 그들이 당면했던 어려움이나 위기들은 느헤미야와 유다 백성들에게 많은 인내와 견딤 을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들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습니까? 그 이유는 그들에게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벽의 완공의 꿈을 마음 에 그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교회 지도자들과 함께 기도모임을 하면서 저는 그들 을 도전하였습니다. 우리 교회가 기드온의 300명 군사와 같은 그리스도 중심된 꿈을 가진 일꾼을 세워 파송하는 그림을 마음이 그리자고 도전하였습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어떠한 어려움들과 위기를 만나도 인내하며 견딜 수 있을 것입니다.

 

한 마디로, 예루살렘 성벽 재건은 ”하나님이 이루신 것”입니다(6:16).

 

마지막 셋째로, 자신감 (Confidence)입니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6장 16절을 보십시오: “우리 모든 대적과 사면 이방 사람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스스로 낙담하였으니 이는 이 역사를 우리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하나님이 이루신 역사, 즉 예루살렘 성벽의 완공은 모든 대적과 사면 이방 나 라 사람들이 다 보고 들었습니다. 그랬을 때 그들은 “다 두려워하여 스스로 낙담”하게 되 었습니다. 그 이유는 예루살렘 성벽 완공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그 모든 대 적들과 이방 사람들이 알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오직 느헤미야와 유다 백성들의 인간의 힘으로는 완공 할 수 없는 일인 것을 모든 대적들과 사면 이방 사람들은 알고 있었 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느헤미와 유다 백성들과 함께 하셔서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 는데 도와주셨기 때문에 그 성벽이 완공되었음을 모든 대적들과 사면 이방 나라 사람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느헤미야와 유다 백성들의 모든 대적과 사면 이방 사 람들의 자신감을 잃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대적들을 통해서도 우리가 의지하고자 하는 가지 나무들을 다 싹둑 잘라 버리시므로 말미암아 자신만만하던 자세를 꺾 으신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의지하고 있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대적들이 우리를 두렵게 하던지 낙심시켜는 그 역사를 통하여서도 우리 자신을 의지하지 못 하게 만드십니다. 그러므로 결국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만드십니다.  또 한 가지 사실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사람과 환경으로 말미암아 낙심 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그의 대적들로 하여금 다양한 문제와 어려움들이 있었 지만 낙심했다는 말은 성경 느헤미야서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 즉,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 지하였던 느헤미야는 그의 대적들로 하여금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유다 백성들이 낙심했을 때에도(4:10ff.) 지도자 느헤미야는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self-confidence(자신감)에서 God-confidence(하나님 신뢰)로 신뢰 를 옮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기를 신뢰하는 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무리들의 자신감을 잃게 만드십니다.  성경 여호수아 2장 9-11절에 나오 는 기생 라합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 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백성이 다 너희 앞에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 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 가 들었음이라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의 연고로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에 하나님이시니라.”

 

핸리 불랙가비와 클로드 V. 킹이 쓴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는 길”(Experiencing God)란 책을 보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임무들은 항상 “하나님 크기”(God-sized)이다’. 이러한 하나 님과의 만남은 우리의 확신에 위기를 가져온다(블랙가비 & 킹). “하나님 크기”의 임무를 맡게 되면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점검해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나의 순종을 통 하여 믿음을 보여주던지 아니면 나의 연약한 믿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임(불순종). 세상 사 람들이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교회에게 끌리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만이 행할 수 있는 일들을 시도해 보는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블랙가비 & 킹).

 

크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크기’의 임무를 느헤미야에게 주셨습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느헤미야는 어떠한 대적의 위협과 공모 가운데서도 그 임무를 믿음으로 완수하였습니 다. 그러기에 대적들이나 사방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였고 자신감을 잃었던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고 계시는 ‘하나님 크기’의 임무는 무엇입니까? 주님 이 몸된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실 것입니다. 그 주 님의 세우시는 역사에 믿음으로 동참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하나님의 선한 손길이 함께 하시므로 주님의 교회를 세우는 사역을 감당하길 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자신감으로 섬기길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