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된 지도자

 

 

 

[느헤미야 5장 14-19절 말씀 묵상]

 

 

하버드 의대 심리학자인 스티븐 버글래스는 “성공증후군”에 대해서 이러한 말을 하 였습니다: 엄청난 성취감을 얻었다하더라도, 그것을 지탱할 기본적인 성품이 없다면 파멸로 향하게 된다. 그는 그러한 사람들이 다음의 네 가지의 A중 하나 이상에 빠져들게 된다고 믿고 있다: (1) Arrogance(거만), (2) Painful feeling of Aloneness(외로움의 고통), (3) Destructive Adventure-Seeking(파괴적인 모험추구), (4) Adultery(간음). 이 4 가지는 약 한 성품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값을 치루기에 언제나 턱없이 비싼 값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 입니다. 여기서 명심해야 할 것은 현재 자신이 처한 골짜기, 즉 네 가지 A 중 하나 이상 빠져든 상황에서는 결코 시간이나 돈 또는 더 많음 명성으로 지나갈 수 없다는 것을 잊어서 는 안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성품의 균열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 깊이가 더해가며 더 파괴 적으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모임에서 사람들을 이끌 때, 성품이 우리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맥스웰). 미드 파크 (Mid Park, Inc)사의 알랜 버나드 회장은 성품에 대해 이같이 말하였습니다: “리더십이 반 드시 갖추어야할 존경심, 그것은 개인의 윤리적 삶을 필요로 한다. 리더는 옭고 그른 것의 경계선, 그 위에 있어야 할 뿐 아니라, 또한 ‘회색지대’가 없는 투명한 삶을 살아야만 한 다”(맥스웰). 지도력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목록은 성품이라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일꾼들(potential leaders)을 찾아 성숙된 평신도 사역자로 세워 파송하기 위해선 “성품 만 들기”에 헌신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성품 만들기”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위기 혹은 역경입니다.  그 이유는 위기가 반드시 성품을 형성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성품을 드러내 는 것만큼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역경은 성품과 타협이 만나는 교차로로, 인생은 언제나 그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합니다(맥스웰).

 

오늘 본문 느헤미야 5장 14-19절을 보면 우리는 모범된 지도자 느헤미야를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위기와 역경 가운데서 타협을 하지 않는 지도자였습니다. 그의 모범된 지 도력에 대해서 한 4가지로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주시는 은혜를 받아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중심된 꿈을 가진 지도자들이 다 될 수 있길 기원합니다.

 

첫째로, 모범된 지도자는 자신의 특권을 남용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5장 14절을 보십시오: “내가 유다 땅 총독으로 세움을 받을 때 곧 아닥사스다 왕 이십 년부터 삼십이 년까지 십이 년 동안은 나와 내 형제가 총독의 녹 을 먹지 아니하였느니라.” 여기서 “총독의 녹”을 먹지 않았다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이 말씀은 느헤미야는 유다 땅 총독으로 12년 있는 동안 자기와 자기 형제들은 유다 총독 으로서 백성들로부터 세금을 걷을 수 있는 권한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않았다는 말 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백성들에게 유다 땅 중심 기금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자기들 개인 보고(treasury)를 위해서도 세금을 걷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자기와 자 기 형제들, 즉 총독의 섬김에 있는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들은 유다 사람들에게 세금을 걷지 않고 자기들의 돈을 사용해서 유다 백성들을 섬겼습니다.

 

느헤미야의 이러한 모범적인 행동은 신약에 사도 바울을 생각나게 만듭니다. 사도 바울은 사도로서 권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용하지 않았습니다(고전9장). 그는 고린도교 회에게로 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권한을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값없이”(9:18) 복음을 전한 것처럼 자기에게 있는 권한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바울은 모든 그리스도인 일하는 자들이 자기처럼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닙 니다.   그 이유는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기 때문입니다(14 절). 그러나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바울의 모범을 좇아 부(wealth)와 사역에 관한 영적 자세에 균형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맡겨진 영혼들의 영혼이 잘됨을 위 하여 우리 자신들의 개인적인 이익을 희생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합니 까?   특히 한국 정치는 어떠합니까?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되면 제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어떻게 하면 권력을 이용하여 돈을 벌까?’하는 것이 아닙니까? 백성들이 나라 살림 잘하 라고 뽑아주면 자기의 권력이나 특권, 높은 지위를 남용해서 나라가 경제 파탄에 이르던 말 던 자기 배만 채우기 바쁘지 않습니까?  문제가 터지면 사과 상자에 몇 억을 주고 받고 하 니 말입니다.

 

지도자들은 특권의식보다 종의 의식에 더 크게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이동원). 지 도자들은 비난을 많이 받고 신뢰를 들 받는 사람들입니다.’ 지도자들은 자기들을 희생하면 서까지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자가 되야 합니다.

 

둘째로, 모범된 지도자는 전통적인 과오에서 벗어납니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5장 15절을 보십시오: “이전 총독들은 백성에게 토색하여 양 식과 포도주와 또 은 사십 세겔을 취하였고 그 종자들도 백성을 압제하였으나 나는 하나님 을 경외하므로 이같이 행치 아니하고”.   느헤미야가 유다 땅 총독이 되기 전에 있었던 총독 들은 그들의 종자들과 함께 다 같이 백성들에게서 토색질을 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 면, 자기들의 개인적인 호화로운 삶을 위해서 유다 백성들에게서 “약식과 포도주와 은 사십 세겔”의 수당을 작취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전 총독들과 그 종자들은 유다 백성들에게 무거운 짐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전혀 백성들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들의 배만 채우 기에 바빴기에 백성들의 짐이 더욱더 무거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총독 느헤 미야는 이들과 같이 행치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그는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도자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예배하는 자로서 합당한 행동을 취했습니 다.

 

우리는 직위가 올라간다든지 지위가 향상되면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 다. 또한 우리가 높은 감투를 쓰게 되면, 그 감투가 하나님보다 크게 보여 하나님을 외면할 경우도 있습니다(이동원).   그 한 예로 우리는 사울 왕을 들 수가 있습니다.   성경 사무엘상 15장 17절을 보십시오: “사무엘이 가로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시고.”   스 스로 작게 여기던 사울은 왕이 된 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크게 여김을 받으므로 교만하여져서 하나님을 위하기보다 자기를 위하는(12절) 왕이 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하나님을 두 려워하기보다 자기를 크게 여긴 사람들을 두려워했던 것입니다(24절).

 

죤 화이트 목사님의 말입니다: “기독교적 공무가 한창 진행되는 초창기부터 그 사 역으로 인한 ‘돈 버는 일’에 관심을 갖는 그리스도인은 거의 없다. 그러나 나이가 먹고 책 임이 막중해지고 경력이 높아지면서,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에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할 뿐만 아니라 임금님처럼 많은 돈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탐욕의 뱀이 서서히 우리의 자선과 사랑을 목 조르는 것이다. 잘사는 나라에서는 기독교계의 지도자들이 일신 의 부귀를 위해 기독교 사역을 이용할 수도 있고 또 때로는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 그 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자신이 목자가 아니라 늑대임을 드러낸다”(화이트). 사역의 초창기 에는 탐욕의 뱀은 보이지 않지만 서서히 그 꼬리부터 들어내기 시작할 수 있다는 말, 무서 운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느헤미야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경외하는 자들이 되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악을 미워해야 합니다(잠언 8:13).

 

셋째로, 모범된 지도자는 자기가 해야 할일을 힘을 다하여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느헤미야는 자기가 해야 할일을 힘을 다하여 했는데 무엇을 했습니까? 한 2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을 짓는 일을 계속했습니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5장 16절을 보십시오: “도리어 이 성 역사에 힘을 다하며 땅 을 사지 아니하였고 나의 모든 종자도 모여서 역사를 하였으며.” 이전 총독들이나 그들의 종자들처럼 유다 백성들에게 토색질을 하지 않고 하나님의 경외하므로 느헤미야는 그의 종 자들과 함께 오히려 그의 목표인 예루살렘 성벽을 계속 중건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대조적 입니까? 하나님의 경외하지 않는 지도자들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도자의 차이를 볼 때에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던 이전 총독들과 그의 종자들은 자기들의 “성벽” 쌓기에 바빴습니 다. 그 예로, 학개서 1장 9절을 들 수 있습니다: “… 내 집은 황무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에 빨랐음이니라.” 그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 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버렸느니라 …”(9절).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도자 느헤미야와 그의 종자들은 다 함께 힘을 다하여 예루살렘 성벽을 중건하는 데 열심히 일을 하면서 유대 땅을 사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는 땅 투기를 하지 않 았습니다.

 

  • 느헤미야는 대접하기를 힘썼습니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5장 17-18절 상반 절을 보십시오: “또 내 상에는 유다 사람들 과 민장들 일백오십 인이 있고 그 외에도 우리 사면 이방인 중에서 우리에게 나아온 자들이 있었는데 매일 나를 위하여 소 하나와 살진 양 여섯을 준비하며 닭도 많이 준비하고 열흘에 한 번씩은 각종 포도주를 갖추었나니.” 지도자에 대하여 두 견해가 있습니다. 하나는, 지 도자는 누가 우두머리인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견해입니다. 또 하나는 지도자는 섬기는 자이어야 한다는 견해입니다. 느헤미야 이전의 총독들과 그들의 부하들까지도 백성들 위에 군림했습니다(15절). 이에 반해 느헤미야는 섬기는 지도자였습니다. 진정한 지도자들은 섬깁니다. 사람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들의 최상의 유익을 위해 섬기는 것인데, 그렇게 할 때 항상 유명해지는 것은 아니고 또 항상 감명을 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참된 지 도자들은 일신의 영광을 위한 욕망이 아니라 사랑과 관심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기꺼이 대가 를 치를 자세를 갖는 것입니다(화이트). 느헤미야는 총독으로서 자기의 식탁에 자기가 대 접해야 할 손님이 매일 150 명 이상이나 되었습니다(유다 사람들과 민장들 외에 주위 나라 이방인들 중 에 찾아온 손님들). 이들을 대접하려면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럼에도 느헤미야는 백성들의 녹을 요구하지 않고 자기 돈으로 다 음식을 준비하여 대접했 습니다. 그것도 최고로 좋은 음식(“살진 양”, choice sheep) 풍성하게 대접하였습니다(18 절). 왜 그랬습니까?  그 대답을 18절 하반 절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 내가 총독의 녹을 요구하지 아니하였음은 백성의 부역이 중함이니라.” 즉, 느헤미야는 백성들을 긍휼이 여기는 지도자였습니다.

 

넷째로, 모범된 지도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합니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5장 19절을 보십시오: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 백성을 위하여 행한 모든 일을 생각하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무슨 일을 희생적으로 하다 보면 좀 손해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내가 무엇 때문에 이 일을 고생스럽게 하는 가? 도대체 그 대가가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나 느헤미야는 유다 백성들에게 대가를 기 대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하나님께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보 상을 하나님께 기대한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오직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는 자세로 섬 기면서 오직 주님께서 그의 희생적인 섬김에 보상을 줄 것을 간구했습니다.

 

수고하며 애쓰면서도 대가나 보상을 받지 못하고 고생에 허덕이는 종들에게 성경 골로새서 3장 23-24절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 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 우리 는 주님께 받을 상을 바라보면서 힘써 섬겨야 합니다.

 

 

 

모범된 지도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제임스 김 목사 나눔

(하나님의 은혜로 섬기길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