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한 대로 행하라!

 

 

 

[느헤미야 5장 1-13절 말씀 묵상]

 

 

어느 주일 남편 혼자 저녁예배를 갔다 오더니 그날은 밤늦도록 아내를 열렬히 사랑 해 주었습니다.   오랜만에 기분이 흡족해진 부인은 대견한 눈초리로 남편을 보면서 말했습 니다: “당신 오늘 웬일이유?”.   다음날 아침, 어젯밤 일이 필시 목사님의 설교에 의한 영향 이리라 짐작한 아내는 비싼 과일 바구니를 사 들고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목사님, 고마 워요. 그리고 어제 저녁 설교 참 좋았다죠. ‘아내를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설교였나 요?’ 그러자 목사님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대답했습니다: 아닌데요.   ‘원수를 사랑하 라’는 설교였는데요”(월간목회).   이 유모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물론 이 유모의 핵심은 아 내의 착각, 즉 남편이 자기를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았더니 자기는 원 수로 생각하고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이 집사라는 남편이 설교 말씀을 듣고 “네 몸”이던 “원수”이던 말씀을 행동으로 옮겼다는 사실에 주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 성경 느헤미야 5장 13절을 보면 “… 회중이 다 아멘하고 여호와를 찬송하고 백성들이 그 말한 대로 행하였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 중심으로 “말한 대로 행하라!”는 제목을 걸고 오늘 본문에 나오는 세 부류의 사람들의 말을 한 번 들어 보 면서 묵상하고자 합니다. 바라기는 하나님의 말씀 실천을 통하여 공동체가 더욱더 하나가 되는 역사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첫 번째 부류의 사람인, 백성들의 말을 들어보십시오.

 

오늘 본문 느헤미야 5장 1절을 보십시오: “때에 백성이 그 아내와 함께 크게 부르 짖어 그 형제 유다 사람을 원망하는데.” 여기서 ‘원망하다’란 동사는 ‘심각하게 부르짖다’ 란 말로서 비탄/고통 가운데‘크게 부르짖음’음 가리킵니다. 크신 하나님(great God)(1:5)을 위하여 큰 일 (great work)(4:19)을 하는 가운데서 크게 부르짖는 소리(great cry)(5:1)가 유 대인들 가운데서 들리게 되었습니다. 이 부르짖음은 외부적 대적들인 산발랏의 사마리아인 들, 또는 도비야와 암몬 사람들, 게셈과 아라비아 사람들 그리고 아스돗 사람들로 말미암았 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부르짖음은 다른 아닌 내부적 대적들인 같은 동족 유대인들로 말미암았습니다. 그들은 다름 아닌 귀족들과 치리자들(7절)이였습니다. 이때까지 단합하여 예루살렘 성 중건에 열성을 다하던 유다 백성들이 이젠 서로 원망을 발하였습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부르짖음에 주로 잠잠했던 아내들까지 나서서 함께 부르짖었겠습니까. 왜냐하 면 그 당시 여인들은 앞에 나서지 않고 주로 뒤에서 머물러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힘 든 일들을 유다 백성들은 접하고 있었습니까? 인구 집중으로 말미암아 찾아온 식량 부족, 또한 과도한 세금 징수 및 자녀를 노예로 팔고 사는 것이 바로 유다 백성들이 접하고 있었 던 힘든 일들이었습니다. 이해가 되는 것은 예루살렘 성의 건축을 위해 많은 이스라엘 백 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여들게 되었고 그래서 인구 집중이라는 문제가 야기되었습니다. 많 은 인구가 한 곳에 모여 있으므로 자연히 식량이 부족하게 되었던 것입니다(휀샴). 또한, 성벽 건축을 하다 보니 그 일에 모든 손이 집중으로 인해서 농사를 하는 사람들의 수도 적 어지게 되어 식량 증산이 크게 감소되었습니다. 또, 지금은 전시 태세입니다. 밖으로는 예 루살렘 성벽 건축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인접 지역의 부족들이나 다른 나람 사람들의 침략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예루살렘 성문을 열고 밖에 나가서 농사를 짖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거기에다가 설상가상으로 흉년이 찾아왔습니다. “또 한 그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인 메대 바사 정부는 그들에게 속한 모든 속국들에게 과도한 세금을 징수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압력을 견딜 수가 없었던 이스라엘의 민중들은 밭과 포도원과 짐승을 전당잡혀야 했습니다”(이동원).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 잔인했던 일 은 많은 유대인들이 양식을 사기 위해서 부유층의 유대인들(성벽 재건에 반대했던)에게 자 기 자식을 노예로 팔아 넘겨야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화이트). 이것은 그 때에 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음을 알려줍니다(출22:25-27; 신15:7-15). 그들은 율법대로 가난한 형제에게 이자 없이 돈을 빌려주었어야 하며, 가난한 자의 물건을 오랫동안 저당 잡지 말아 야 했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 시대의 부자들은 이 율법을 자키지 않았으므로 가난한 자 들이 곤경에 빠져 불평하게 된 것입니다(박윤선). 이 유다 백성들의 불평들은 근복적으로 4 가지였습니다: (1) 첫째, “우리는 먹어야 산다!”(2절), (2) 둘째, “우리는 죄다 저당 잡혔 다!”(3절), (3) 셋째, “세금 때문에 죽을 지경이다!”(4절), (4) 마지막 넷째, “저들의 자식들 은 원하는 것을 모두 갖는데 우리의 자식들은 왜 종이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모두 한 민 족이 아닌가? 그렇지만 우리도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5절)(화이트). 한 마디로,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일은 가난한 유다 백성들에게 파멸을 가져오므로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었 습니다. 이것은 사탄의 역사입니다.  결국 최종 목표인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는 것을 막고 자 하는 사탄의 역사란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오늘 본문 느헤미야 5 장 5절 하반 절입니다: “… 우리의 밭과 포도원이 이미 남의 것이 되었으니 속량할 힘이 없 도다”. 여기서 “속량할 힘이 없도다”란 말은 ‘우리 손에 능이 없다’란 말입니다(휀샴). 즉, 가난한 유대 백성들은 노예가 된 자녀들을 밭이나 포도원으로 속량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이유는 그들의 밭과 포도원이 이마 부자 유대인들에게 전당 잡혔기 때문입니(3 절).  힘이 없는 가난한 유다 백성들, 노예로 팔린 자기 자녀들을 속량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이들은 지금 심각하게 부르짖고 있는 것입니다.

 

힘이 없는 형제들의 말, 그들의 부르짖음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합니까? 우리 는 그들을 부르짖음을 듣고 그들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주님께서 그들을 부르짖 음을 듣고 돌아보시기 때문입니다. 성경 사무엘상 9장 16절을 보십시오: “… 내 백성의 부 르짖음이 내게 상달하였으므로 내가 그들을 돌아보았노라 하시더니.”

 

두 번째 사람인, 느헤미야의 말을 들어 보십시오.

 

오늘 본문 느헤미야 5장 6절을 보십시오: “내가 백성의 부르짖음과 이런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만일 느헤미야가 정치인이었다면 ‘무엇이 인기 있는가?’란 질문을 던지면서 인기를 얻는 방향으로 문제를 처리해 나아갔을 것입니다. 혹은 만일 그가 외교관 이였다면 ‘무엇이 안 전할까?’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부자와 가난한 유대 백성들 사이에서 안전한 길 을 선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지도자는 ‘무엇이 옳은가?’이란 질문을 던지면서 옳 은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랬기에 느헤미야는 유다 백성들의 죄를 보고 거룩한 분노를 품게 된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부자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말미암 아 이러한 문제가 발생되었음을 알았기에 분노했던 것입니다. 또한 지금 나라 안이 이렇게 어려운 지경에 빠져 있는데 이 고난의 시기를 틈타서 오히려 인간을 착취하고 인간을 노예 화하는, 즉 동족과 동족이 서로가 서로를 노예와 종으로 삼는 끔찍한 비극이 벌어진 것을 알고 분노했던 것입니다(이동원). 이 문제를 지도자 느헤미야는 어떻게 해결해 나아갔습니 까?

 

  • 첫째로, 그는 중심에 계획했습니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5장 7절 상반 절을 보십시오: “중심에 계획하고 ….” 느헤미 야는 분노했을 때 그 분노를 터뜨리기보다 중심에 계획했습니다. 즉, 그는 하나님 앞에서 곰곰이 생각하면서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계획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건설적 인 지도력입니다. 느헤미야는 자기를 노엽게 했던 것보다 훨씬 더 하나님을 노엽게 했던 잘못을 시정하기 위해 하나님의 동의를 얻어 하나님의 방법대로 행동하려 했습니다(화이 트). 이러한 느헤미야의 행동은 성경 잠언 16장 32절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 라.” 자기를 다스리지 못하는 지도자는 다른 사람을 다스리는데 성공 할 수가 절대 없습니 다.

 

  • 둘째로, 느헤미야는 귀인들과 민장들을 꾸짖었습니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5장 7절을 보십시오: “…귀인과 민장을 꾸짖어 이르기를 너희 가 각기 형제에게 취리를 하는도다 하고.” 여기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느헤미야는 먼 저 잘못에 대해 책임 소재가 있는 사람들인 귀인들과 민장들에게 찾아 간 것을 볼 수 있습 니다.   분명히 그는 문제를 공개적으로 다루어야 하겠지만 먼저 사적인 자리에서 잘못을 저 지른 이들에게 자신의 태도를 분명히 밝힌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쉬운 행동이라고 생각하 지 않습니다. 가난한 유대인들의 입장을 들었고 이젠 부자 유대인들과 지도자들의 입장을 들으면서 느헤미야는 양쪽 입장을 모두 보려고 했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만일 느헤미야가 그랬다면 귀인들과 민장들을 꾸짖지 못했을 것입니다. 꾸짖으려고 했다가도 마음이 약해졌 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귀인들과 민장들과의 관계 가 어떻게 전개될는지 모르지만 그의 분명하고도 함축적인 견해인 “너희가 각기 형제에게 취리를 하는도다”(7절)고 밝히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느헤미야가 귀인들과 민장들을 꾸짖으면서 그들을 2 가지 사실에 근거하여 호소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첫째로는 형제우애입니다. 그는 이들에게 그들이 취리하는 가난한 유다 백성 들을 가리켜 “형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7절).

 

  • 둘째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귀인들과 민장들에게 호소했습니다. 즉, 모세의 율법은 유대인들로 하여금 서로에게 이자를 요구하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성경 출애굽기 22장 25절을 보십시오: “네가 만일 너와 함께한 나의 백성 중 가난한 자에게 돈 을 꾸이거든 너는 그에게 채주 같이 하지 말며 변리를 받지 말 것이며”. 느헤미야는 먼저 사적인 자리에서 잘못을 저지른 귀인들과 민장들을 면책한 다음에 공개적인 문제이기에 공 적인 자리에서 이 문제를 다루고자 ‘큰 대회’를 열었습니다. 이제는 개인적으로 귀족들을 꾸짖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 앞에서 꾸짖으려고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5장 8-9 절을 보십시오: “ 이르기를 우리는 이방인의 손에 팔린 우리 형제 유다 사람들을 우리의 힘 을 다하여 속량하였거늘 너희는 너희 형제를 팔고자 하느냐 더구나 우리의 손에 팔리게 하 겠느냐 … 너희의 소위가 좋지 못하도다 우리 대적 이방 사람의 비방을 생각하고 우리 하나 님을 경외함에 행할 것이 아니냐.” 느헤미야는 당시의 지도자들이 부당하게 백성을 착취하 기 때문에 이 시련이 더 심각하게 되었다고 지적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이 어려운 시기를 이용하여 돈을 빌려 주고, 갚지 못하는 사람들의 자녀들을 노예로 삼는 ‘형제의식’의 결핍을 지적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이방인들이 자기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우리가 이런 식 으로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느냐’고 지적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에 게 하나님의 경외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입니다(이동원).

 

  • 셋째로, 느헤미야는 문제의 원인을 해결하였습니다.

 

어떻게 그는 문제를 해결하였습니까? 그는 더 이상 이자를 받기를 그치자고 부자 유대인들에게 호소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5장 10절을 보십시오: “나와 내 형제와 종자들도 역시 돈과 곡식을 백성에게 취하여 주나니 우리가 그 이식 받기를 그치자”. 여기 서 느헤미야가 자신을 하나의 좋은 모본으로 제시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도 한때는 잘못을 범하였음을 고백하는 것인지, 그의 말로만은 분명치 않습니다. 만일 그가 그의 수하들과 함께 이자를 위해 돈을 빌려 주고 있었다면, 이제 그는 이를 고백하며 앞으로 그러한 일을 일체 중단할 것을 제안함으로써 자신의 잘못을 드러내 놓고 있는 것입니다(화이트). 지도 자는 실수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한 지도자의 두드러진 특징은 다른 사람들에게 적용하 는 기준을 자기 자신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하여, 자신의 실수를 죄다 드러내 놓고 다루려는 의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에서 결코 움츠러들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수 치스럽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는 자유함으로 이끄는 가장 정직한 길입니다(화 이트). 또한 느헤미야는 가난한 형제 유다 백성들에게서 취한 것들을 돌려 줄 것 을 호소 했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너희는 오늘이라도 그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과 집이 며 취한바 돈이나 곡식이나 새 포도주나 기름의 백분지 일을 돌려보내라 하였더니.” 이것 이 바로 진정한 회개입니다. 자신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그 잘못된 행동을 즉시 그만두고 변상할 수 있는 일이라면 변상하는 것 말입니다.   언제 해야 합니까?   “오늘이라도” 죄를 버리고 회개해야 합니다. 이동원 목사님이 어느 부흥회에 참석했을 때 들은 말씀이라고 합 니다: “지옥이란 어떤 곳입니까? 차차 고치자고 하면서 미루다가 결국 그 결심을 실현치 못해 ‘아차차’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이동원).

 

세 번째 부류의 사람들인, 귀인과 민장의 말을 들어 보십시오.

 

느헤미야의 꾸짖음을 듣고 있었던 귀인들과 민장들의 첫 번째 반응은 “침묵”이였습 니다(8절). 즉, 귀인들과 민장들은 느헤미야의 면책을 할 말을 찾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자기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속량할 힘이 없는 형제인 가난한 유다 백성들을 이방인의 손에서 부터 힘을 다하여 함께 속량해 놓고 다시 자기들의 노예로 삼 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이것은 속량의 목적이 그 가난한 형제 유다 백성들을 자기들 의 권력에 속박하는 죄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것을 느헤미야가 알고 지적하며 면책하고 있 었기에 귀인들과 민장들은 할 말이 없었습니다. 자기들이 죄를 범하고 있었던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귀인들과 민장들의 두 번째 반응은 12절 상반 절에 나와 있습니다: “저희가 말하기를 우리가 당신의 말씀대로 행하여 돌려보내고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아니하리 이다 하 기로 ….” 이들은 느헤미야에게 그가 권면한대로 행하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가난한 형제 유대 백성들에게 돌려 줄 것(밭, 포도원, 감람원, 집, 돈이나 곡식이나 새 포도주나 기 름의 백분지 일)을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고 돌려주겠다고 느헤미야에게 약속하였습니다. 이 때에 느헤미야는 제사장을 불러 이들 이한 약속을 지키겠다는 맹세를 받도록 했습니다 (12절). 그리고 난 후 느헤미야는 귀인들과 민장들에게 엄숙한 경고의 말을 들려주었습니 다: “내가 옷자락을 떨치며 이르기를 이 말대로 행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이 또한 이와 같 이 그 집과 산업에서 떨치실지니 저는 곧 이렇게 떨쳐져 빌지로다 하매”(13절). 이것은 상 징적인 행동으로서 옷자락을 떨치는 것은 맹세를 지키지 아니하면 옷자락을 떨쳐 모든 것을 비우는 것처럼 저주가 임하여 맹세를 지키지 아니한 자들의 소유가 다 없어질 것을 말합니 다. 그 때에 회중들은 다 아멘하고 여호와를 찬송하고 백성들이 그 말한 대로 행하였습니 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5장 4절을 보면 “세금을 바쳤도다”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말씀은 약 2500년 느헤미야 시대 때에는 유대 백성들은 그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 가인 메대 바사 정부에게 세금을 바쳐서야 했던 것을 말합니다. 이 말씀이 저희 교회에도 지금 적용됩니다. 저희 교회가 소유하고 있는 교회 건물에 대한 세금을 내야 합니다. 그 런데 지금 저희 교회 제정은 세금을 낼만 한 능력이 안 됩니다.  제 개인적으로 이것은 우 리 교회에게 좋은 기회라고 믿습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재건함에 있어서 나타나는 “틈”들을 메워 더욱더 튼튼한 교회로 세워지는 기회로 믿습니다. 성경 역대상 29 장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예루살렘 성을 그렇게도 짖기 원했던 다윗은 아들 솔로몬을 통해 서 하나님께서 그 역사를 이루신다는 사실을 알고 그 큰 역사를 위하여 “힘을 다하여 예 비”(2절)하여 그의 마음이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므로 물질을 받쳤습니다(3절). 그가 모범을 보였을 때 “이에 모든 족장과 이스라엘 모든 지파 어른과 천부장과 백부장과 왕의 사무 감 독이 다 즐거이 드”렸습니다(6절). 그 때에 “백성이 자기의 즐거이 드림으로 기뻐하였으니 곧 저희가 성심으로 여호와께 즐거이 드림이며 다윗왕도 기쁨을 이기지 못하”였습니다(9 절). 제가 승리장로교회 담임 목사로 다윗처럼 모범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제가 먼저 물 질을 받쳐 우리 교회가 내야할 세금을 내는데 힘쓰고자 합니다. 오늘 이렇게 여러분에게 말한 대로 행동으로 옮길 것입니다. 그리할 때 바라기는 우리 교회 지도자들이 즐거이 물 질을 받칠 수 있길 바랍니다. 또한 온 교회가 한 마음, 한 뜻을 품고 주님의 몸 된 교회 재건하는 일에 있어서 보여진 “틈”을 메우는데 즐거운 마음으로 주님께 드리길 바랍니다. 성경 역대상 29장 14절을 보십시오: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데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 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 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17절을 보십시오: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 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 내가 아나이다. 내가 정직한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즐거이 드렸 사오며 이제 내가 또 여기 있는 주의 백성이 주께 즐거이 드리는 것을 보오니 심히 기쁘도소이다.”

 

 

 

신뢰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은,

 

 

제임스 김 목사 나눔

(말한대로 행하는 자로 세움 받길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