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위기
[느헤미야 4장 7-14절 말씀 묵상]
“우리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입니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은 1933년 3월 4일 취임식에서 대공황의 불안과 좌절에 빠진 국민들에게 이렇게 호 소했습니다. 당시 미국은 전대미문의 경제위기로 1천500만 명이 실업상태에 빠지고, 은행 등 금융기관이 연쇄 도산하면서 극도의 공포가 국민들을 엄습했습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루스벨트는 어떤 경제 정책보다 ‘자신감’ 회복이 불황을 이기는 급선 무라고 간파했습니다. 두려움이 가져오는 끝없는 불안과 패배주의가 바로 위기의 본질이라 고 보았습니다. 위기의식이 위기를 부르고 위기가 다시 위기의식을 증폭시키는 과정을 루 스벨트는 단절시키고자 했던 것입니다(인터넷).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어떠한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습니까? 두려움입니까? 걱정 과 염려입니까? 낙심입니까? 의심입니까? 우리 교회를 바라볼 때 여러분께서는 어떠한 위기가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전 개인적으로 “확신의 위기”(Crisis of Conviction)가 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떠한 확신의 위기입니까? 물론 구원의 확신, 죄 사함의 확신, 기도 응답의 확신, 인도의 확신 그리고 승리의 확신을 말할 수 있지만 그 보다 ‘주님이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신다’는 약속의 말씀인 마태복음 16장18절을 믿지 못하는 확신의 위기가 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불확신 속에 거하게 될 때에 그것 은 곧 우리 교회의 위기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확신의 위기가 언제 올 수 있습니 까? 바로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재건되어 갈 때에 올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4장7-14절을 보면 우리는 예루살렘 성이 재건되어 가고 있을 때 느헤미야와 유다 백성들은 큰 위기를 직면하게 되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본 문 말씀 중심으로 “오는 위기”란 제목 아래 그 위기를 한 4가지로 생각해보면서 우리 각자 개인의 삶이나 가정이나 교회에 다가올 위기에 대해서 교훈을 받길 원합니다. 다가올 위기 를 지혜롭게 그리고 신실하게 잘 준하여 대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첫째 위기는, 늘어나는 대적자들입니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4장 7절을 보십시오: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이 … 함께 꾀하기를 …”. 예루살렘 성 재건이 진척이 있으면 있을수록 대적자들도 많아졌습니다. 처음에는 대적자들이 산발랏과 사마리아인들 그리고 도비야와 암몬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 재건하는 일을 대적하였습니다(2:10). 그러다가 2장 19절에 와서는 이들 대적자들 외에도 게셈과 아라비아 사람들이 합류해서 느헤미야와 유대 백성들의 예루살렘 성 재건을 대적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느헤미야4장7절에 와서는 이젠 “아스돗 사람들”이란 무리까지 연합하여 느헤미야와 유다 백성들의 예루살렘 성을 재 건하는 일을 대적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봅니다. 이들이 연합한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의 목적은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는 일을 막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사탄은 주님의 몸된 교회가 재건되는 것을 지금도 막고자 악을 쓰고 있 습니다. 그 방법 중 하나는 외부적인 교회 대적자들의 숫자를 늘릴 뿐만 아니라 내부적인 교회 대적자들도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늘어나는 대적자들의 대적은 특히 주님의 몸 된 교회가 더욱더 견고히 세워져 갈 때 더욱 심합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가 세워지면 세 워 질수록 사탄은 교회를 무너트리고자 더욱더 외부적으로나 내부적으로 대적자들을 계속 일으켜서 교회 재건을 막으려고 발버둥 칩니다. 이렇게 늘어나는 대적은 우리에게는 늘어 나는 기회입니다. 어떠한 기회입니까? 우리의 연약함과 무능력함을 더욱더 깊이 깨닫는 기회임과 동시에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능력을 더욱더 깊이 경험할 수 있는 참 좋은 기회입 니다. 또한 하나님께 더욱더 간절히 기도드릴 수 있는 좋은 기회요 또한 그 기도를 응답 받아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깨닫는 좋은 기회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는 귀한 기회입니다.
둘째 위기는, 대적자들의 연합 무력 공격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4장 7-8절을 보면 많은 대적자들은 예루살렘 성이 중수되어 그 퇴락한 곳이 수보 되어 간다 함을 듣고 심히 분하여 다 함께 꾀하였습니다. 이들의 꾀 함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예루살렘으로 가서 쳐서 요란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7절). 즉, 대적자들이 연합하여 예루살렘을 쳐 들어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유다 백성 들을 요란하게 만들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젠 예루살렘 도시는 대적자들에게 포위가 되었 습니다. 북쪽으로는 산발랏과 사마리아인들, 동쪽으로는 도비야와 암몬 사람들, 남쪽으로는 게셈과 아라비아 사람들, 그리고 서쪽으로는 아스돗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고 있는 느헤미야와 유다 백성들을 포위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다 연합하여 느헤미야와 유다 백 성들을 대적하여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것을 멈추게 하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대적자들의 연합은 누가복음 23장12절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이었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 예수님을 핍박함에 있어서 연 합 전선을 피는 대적자들을 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시편기자가 예언하였습니다: “세 상의 군왕 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며”(시 2:2). 지금도 예수님과 예수님의 교회를 대적하는 대적자들은 이렇게 연합하여 함께 교회 를 공격하여 교회를 요란하게 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공하는 것같이 보입니다. 교회가 시끄럽고 복잡한 일들로 마음에 평안함을 누리지 못하고 교회의 목적까지도 혼동하 게 만들므로 교회 안에 질서도 깨고 있습니다. 우리 성령님은 명백하게(clearly)하게 인도 하시는 하나님이시지만 사탄은 우리를 계속 혼동(confusion)케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대 적자들의 연합 공격은 우리 교회가 더욱더 주님 안에서 단결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우리가 함께 모여 한 마음 한 뜻으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예: 행1:8) 전혀 기도 에 힘쓸 수 있는 기회입니다(행1:14). 그리할 때 온 교회는 성령 충만하여(행2장) 그리스도 의 복음을 더욱더 담대히 선포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위기는, 낙심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4장 10절을 보십시오: “유다 사람들은 이르기를 흙무더기가 아직도 많거늘 담부하는 자의 힘이 쇠하였으니 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하고.” 유 다 백성들은 일이 많음으로 인하여 낙심하였습니다. 흙무더기가 아직 많이 남아 있어서 낙 심하고 있었는데 이젠 대적자들의 연합 전선 및 무력 공격의 소식을 듣고 더 힘이 빠졌고 또한 낙심했습니다. 전에 예루살렘 성이 훼파 되어 여기 저기 널려져 있는 흙무더기나 돌 들, 이것을 다 치우면서 성벽을 재건해야 하니 일이 두 배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기 에 유다 백성들은 일이 너무 많아 낙심했습니다. 또한 예루살렘 성벽이 반이나 재건된 이 마당에 대적자들의 숫자도 늘어가고 공격은 더욱더 심해짐을 느낄 때에 이 얼마나 낙심되었 겠습니까? 이러한 낙심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함에 있어서 참으로 위험한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낙심으로 말미암아 더 이상 노력하지 않으려는 자세와 냉담과 절망적인 타성을 초래하게 되므로 말미암아 전체 재건하는 분위기를 빨리 오염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페 커).
우리의 영혼이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재건함에 있어서 일이 많음으로 말미암아 낙심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엔 즐거운 마음으로 교회 일을 하다가 점진적으로 그 일이 부담으로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탈진하는 봉사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왜 이러한 현 상이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습니까? 낙심 때문입니다. 낙심한 영혼은 결국 교회 일이 무거운 짐으로 느껴집니다. 외부적인 요소들로 인하여 우리 마음이 낙심되는 것은 그래도 좀 견딜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낙심의 원인이 우리 자신일 경우 참 견디기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보면서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과 미련함 등을 보면서 낙심 하게 되면 그것은 곧 낙심이란 늪에 더욱더 깊이 빠지게 될 뿐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무서운 낙심의 원인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다시 말하면, 시편 기자처럼 하나님께서 그의 얼굴을 가리시는 것 같고 내가 고통을 당할 때 부르짖어도 아무 기도 응답 이 없는 것 같이 느껴질 때에 오는 낙심은 참으로 치명적입니다. 거의 절망감이 들게까지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절망 가운데 오히려 하나님을 갈망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절망 속에서 하나님을 갈망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소망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 다(렘29:11). 그는 우리의 영혼을 소성케 하시며 부흥케 하시는 소망의 주님이십니다. 그 러므로 우리는 낙망 속에서 오히려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시43:5).
네 번째 위기는, 바로 두려움이었습니다.
대적자들이 연합하여 무력 공격을 감행할 것이라는 음모의 소식을 유대인 정보 제 공자들이 느헤미야와 유다 백성들에게 가지고 왔습니다. 특히 무서운 것은 각기 다른 방향 으로부터 동시에 예루살렘으로 쳐 들어간다는 기습 공격이 있으리라는 보고였습니다(화이 트). 오늘 본문 느헤미야 4장 11-12절을 보십시오: “우리의 대적은 이르기를 저희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가 저희 중에 달려 들어가서 살륙하여 역사를 그치게 하리 라 하고 대적의 근처에 거하는 유다 사람들도 그 각처에서 와서 열 번이나 우리에게 고하기 를 너희가 우리에게로 와야 하리라 하기로”. 느헤미야와 유다 백성들이 알지도 못하고 보 지도 못할 때에 기습하여 살륙하여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일을 중단하게 만든다는 이러 한 음모의 소식은 낙심하고 있었던 유다 백성들의 마음에 두려움을 주기 충분했습니다.
미국의 사상가 및 박물학자였던 헨리 소로는 그의 읽기 1851년 9월7일에 이렇게 썼다고 합니다: “Nothing is so much to be feared as fear”(두려움만큼 두려워할게 없습 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는 두려움이란 저와 여러분을 마비시키기 때문입니다. 두 려움은 전염성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마비시킬 수 있습니다. 성경 신명기 20장8절을 보십시오: “… 두려워서 마음에 겁내는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그 형제들의 마음도 그의 마음과 같이 떨어질까 하노라 …”. 전쟁에 나아갈 군사를 모집함에 있어서 두 려워서 마음에 겁을 내는 자가 있으면 모집된 다른 형제들의 마음도 그의 마음과 같이 떨어 져서는 아니되기에 성경은 그 두려워하는 형제는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교회는 승리하는 교회이지만 또한 전투하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영적 전쟁 을 함에 있어서 그의 영적 군사들 중 사탄의 공격을 무서워하는 자가 있다면 그 한 사람으 로 인하여 두려움이 전제 교인들에 점진적으로 점염된다면 그 영적 전쟁은 이길 수 없습니 다. 확산되어 두려움에 지배를 받는 군사들은 교회를 무너트리는 사탄의 역사를 그저 멍하 지 보고 있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성경 이사야41장10절 말씀을 붙잡으십시 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 라.” 결코 두려움과 믿음은 우리 마음에 공전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고 오 직 하나님을 믿음 믿음으로 승리해야 합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재건되어 갈 때에 위기는 올 것입니다. 주님의 교회가 세워 지는 것을 막으려는 대적자들이 점진적으로 늘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대적자들은 연합 하여 교회를 공격하려고 음모를 꾀할 것입니다. 그 결과 교회가 낙심하며 두려워할 수 있 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Increase opposition is increase opportunity!’ (증가하는 대적은 기회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낙심과 절망 가운데서 오히려 하나님을 갈망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소망 을 주실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두려울 때 크시고 두려우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의지해 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을 강하게 하시며 담대케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해 야 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우리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시고(마16:18) 그 약속의 성취해 나아가시는 주님의 세우시는 역사에 다 함께 동참해야 할 것입니다. 승 리!
다가오는 위기를 신실하게 준비하길 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영적 전쟁을 승리케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