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건축할 것인가?
[느헤미야 3장 1-3절 말씀 묵상]
공화당 컨벤션에서 부시 대통령의 연설 중에 자주 사용되었던 문구는 ‘더 안전한 세상과 더 희망찬 미국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연설 중에 부시 대통령은 몇 몇 사람들의 이름을 언급했습니다: ‘… 최고의 부대통령이 있어서 나는 운이 좋다 … 나는 그 가 내 옆에 있어서 영광이다….’ 그러면서 영부인이 로라 부시의 선함과 친절함과 장점들 을 자기가 26년 전에 보았던 것을 미국 사람들이 보게 되었다고 하면서 그녀와 함께 삶을 걷는다는 것이 감사하다고 언급했습니다. 그 다음에 자기의 두 딸과 가까운 친구들과 부모 님을 언급했습니다. 그의 연설 중 특히 마지막 부분에 가서 자유를 위하여 싸우다가 전사 한 군인들과 그들의 가족에게 말한 부분을 들으면서 마음이 뭉클함과 동시에 TV에서는 눈 물을 흘리는 사람들을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이 부시 대통령의 연설을 들으면서 부시 대통 령과 느헤미야를 비교해 보았습니다. 무너진 미국 뉴욕 쌍둥이 빌딩(Twin Towers) 후에 미국을 좀 더 안전하고 희망찬 미국으로 세우려는 부시 대통령과 무너진 예루살렘 성을 재 건하는 느헤미야, 강하고 일관성 있는 지도력으로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는 부시와 뚜 렷한 목표와 사명감을 가지고 기도하는 가운데 계획을 세워 행동으로 옮기는 느헤미야 …. 특히 저는 오늘 본문 느헤미야 3장과 비교할 때 느헤미야가 자기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언급하는 부분에서 좀 더 유사한 점을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3장 1-3절을 보면 느헤미야는 많은 사람들의 이름과 그룹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는데 무슨 일을 했는지 적고 있습니다. 과연 느헤미야와 유다 백성들은 예루살렘 성을 어떻게 건축했습니까? 저는 오 늘 본문 말씀 중심으로 “어떻게 건축할 것인가?”란 제목을 걸고 한두 가지 방법을 생각하 면서 교훈을 받는 가운데 우리 또한 섬기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데 쓰임 받기를 기 원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협력(teamwork)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3장에 나타난 팀워크(협동작업)를 보십시오.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겠다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2:18)고 등장한 인물이 오늘 본문 느헤 미야 3장에 보면 38명의 개인 이름과 더불어 42 다른 그룹 이름들이 적혀있습니다[적어도 75명 이상(이동원)]. 이 사실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루살렘 성은 느헤미야나 어느 누구 혼자의 힘으로 건축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즉, 사명감을 갖 고 지도자에게 동기를 부여 받은 많은 사람들이 협력하여 예루살렘 성을 건축했다는 사실입 니다. 여기서 우리는 협동의 원리를 배워야 합니다. 그 원리를 잘 말해주는 있는 성경구 절은 바로 전도서 4장9-12절 말씀입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 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두 사람이 함께 누 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쉽께 끊어지지 않는 삼겹줄 같은 인간관 계를 가진 팀원들이 협력하여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재건하는 일에 쓰임 받는 다면 그 파워 는 놀라울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느헤미야는 75명이나 넘는 많은 인물들의 이름과 그들이 행한 일들을 적으면서도 자신의 이름과 행한 일은 적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16절 에 나오는 “느헤미야”는 다른 인물임).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줍니까? 이것은 우리에게 느헤미야의 훌륭한 지도력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의 훌륭한 지도력의 특징 들은 무엇입니까?
- 느헤미야는 맨 파워(manpower)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75명이 넘는 이 사람들이 없었다면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는 일을 혼자서 못 했을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에겐 이 사람들이 필요했습니다. 마쓰시다 고노스케는 마 스시타 전기를 설립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사원들에게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사람들 이 너희 회사는 무엇 만드는 회사인가?”하고 물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회사는 사람을 만듭니다‘라고 대답하라고 했습니다(인터넷).
- 느헤미야는 일을 그 사람들에게 “위임”(delegation)하였습니다. 어느 한 형제의 홈페이지에 적힌 글입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리더들은 자기 부 하들보다 뛰어나게 일을 잘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을 알아 보고 끌어 모아, 통합적인 비전 아래 효율적으로 배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삼류리더는 자 기 능력을 사용하고, 이류 리더는 남의 힘을 사용하고, 일류리더 는 남의 지혜를 사용합니 다’(이준호). 탁월한 지도력을 가지고 있었던 느헤미야는 75명이 넘는 유대 백성들에게 일 을 위임하여 각자의 재능을 마음 것 발휘하도록 하였습니다.
- 느헤미야는 격려할 줄 아는 지도자였습니다. 왜 그는 오늘 보문 3장에서 75명이나 넘는 사람들의 이름과 그들의 행한 일(업적) 을 적고 있습니까? 특히 그는 20절에서는 삽배의 아들 바룩이 “한 부분을 힘써 중수 하” 였다고 적고 있습니다. 이 표현은 다른 사람에게는 사용한 일이 없습니다. 보통 “… 사람 은 … 일을 했고”라는 표현만 있습니다. 그러다가 바룩은 특별히 힘써 일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왜 느헤미야는 바룩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수고했지만 그 중에서 특별히 많은 희생을 했던 한 사람을 느헤미야는 기억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것을 잊지 않고 기록한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오늘 본문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 다음은”이란 단어입니다. 느헤미야 3장1-32절중에 22구절에 걸쳐서 “그 다음에” 라는 말이 29번이나 강조되어 있습니다. 2절부터 보십시오(“그 다음은 …”). 그리고 4절, 5절, 7절, 8절, 9절, 12절 등등 29번이나 나옵니다. 이것은 일의 순서를 밝히는 단순한 나 열이 아닙니다. 이것은 유다 백성들은 자기가 서야 할 위치에 서서 그 일을 하고 또 다른 사람이 그 옆에 자기가 마땅히 서야 할 자리에 서서 그 일을 하고, 그래서 이 엄청난 예루살렘 성의 건축을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이 단어의 나열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이 모든 일을 질서 있게 조화를 이루면서 협력하여 이 대대한 역사를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이동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함에 있어서 모든 일을 질서 있게 조화를 이루면서 협력하여 위 대한 일을 이루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unity)가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각양각색의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가 되서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였다는 것입니다: “대제사장”과 그의 “형제 제사장들”(1절), “여리고 사람들”(2절), 누구누구의 “아들”(2, 4, 6, 등등), 어느 “자손들”(3절) 등등. 오늘 본문 3장에 나오는 사 람들의 목록을 보면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1절) 예루살렘 성을 건축한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9절 (12, 14, 15, 16, 17, 18절)을 보면 “다스리 는 자”라는 말이 나옵니다. 보통 우리가 생각할 때 한 지방이나 도시를 다르시는 자라면 일을 하인에게 시킬텐데 하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 때 당시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는 일에는 직위를 막론하고 다 협력하여 일을 했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입니까? 성경 시편 133편1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마지막 둘째로, 우리는 은사 받은 대로 일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일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 무디(D. L. Moody) 목사님은 이렇게 말 했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대하여 잘못된 아이디어(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은 생각하기를 교회는 와서 편히 쉬는 곳, 폭신한 성도 좌석에 앉아서 목사의 설교를 들으며 구제 헌금을 드리며 교회가 부도가 않나도록 자기의 책임을 하는 곳으로 원하고 있 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일이란 (교회 안에서 실제적 일) 그들의 마음에 들어올 틈이 없 는 것입니다’(위어스비).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는 일에 있어서 무디 목사님이 말한 것처럼 일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느헤미야 3장 5절을 보십시오: “그 다음은 드고아 사람 들이 중수하였으나 그 귀족들은 그 주의 역사에 담부치 아니하였으며”. 예루살렘 성을 재 건하는 일에 있어서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2:18)고 있는 가운데 동참하지 않는 귀족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느헤미야와 그와 함께한 지도자들을 돕지 아니하였습니다. 여기서 저는 2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1) 첫째 질문은 ‘왜 드고아 사람의 귀족들은 예 루살렘 성 재건하는 역사에 동참하지 않았는가?’이고, (2) 둘째 질문은 ‘왜 느헤미야가 5절 에서 이 귀족들의 일하지 않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일까?’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 십니까? 첫째 질문에 대한 가능성 있는 대답은 드고아는 지역적으로 예루살렘 서동 쪽에 있는 열린 나라(open country)로서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는 일을 반대하며 대적하는 무리 중 아라비아 사람 게셈(2:19)으로부터 공격 받기에 쉬웠기 때문에 그를 두려워하여 예루살 렘 성을 재건하는 일에 동참하지 않았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휀샴). 또 한 가지 가능성 있 는 대답은 귀족들로서 겸손하지 못해서 낮아져 다른 이들과 함께 봉사하지 않았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박윤선). 둘째 질문인 ‘왜 느헤미야가 이 드고아 귀족들이 주님의 일에 동참하지 않았는가를 5절에 지적하고 있는가’에는 우리에게 귀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그 귀한 교훈이란 이유가 ‘두려움’이던 ‘겸손하지 못해서’이던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 인 예루살렘 성을 재건함에 있어서 방관자가 있어서는 아니 된다는 것입니다. 즉, 모두가 다 일어나 주님의 전을 재건하는 일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교훈은 이러한 방관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느헤미야와 다른 모든 이들이 힘을 내어 한 마음, 한 뜻 으로 예루살렘 성을 재건했다는 것입니다. 즉, 외부적으로는 성공의 걸림돌이 산발랏과 도 비야와 게셈 그리고 내부적으로는 방 관자들이였던 드고아의 귀족들이 있었을지라도 예루살 렘 성을 건축 하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셨다는 것(2:20)을 증명해 보이고 있 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느헤미야와 유다 백성들로 하여금 형통케 하시되 중요 한 사실은 느헤미야 3장에 나오는 많은 사람들의 은사를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책임은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은사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달란트 비유를 보면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다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마25:18). 즉, 주님이 주신 은사를 사용하여 부지런히(열심히) 일을 하지 않 다가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21, 23절)라고 칭찬을 받기 보다 “게으른 종아”(26절) 또는 “무익한 종”(30절)이라고 질책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3장에 등장하는 인물은 38명 개인들과 42 그룹들이 나오는데 (위어스비) 그 42 그룹들을 4 전문 직종으로 나눈다면 “the goldsmiths”(금세공인들, 금 대 장장이, 8절)과 “the perfumers”(향품 장사, 8절)과 “정치인들”(12절)과 “the merchants or businessmen”(무역상인 혹은 사업가, 31절)로 나눌 수 있습니다(휀샴). 성경은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는 일에 있어서 여러 가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잡다하게 나열하는 이유가 무 엇입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은사대로 자기의 달란트를 사용하여 함께 일을 했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입니다. 즉, 은사의 원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은사의 원리란 무엇입니까? 성경 고린도전서 12장과 로마서 12장 그리고 에베소서 4장에 은사의 원리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히 고린도전서 12장에 보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사실과 더불어 교회는 하나님이 각양 은사를 주신 여러 사람들 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몸에 팔, 다리, 머리 등 여러 가지 재능과 여러 가지 은사를 주신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느헤 미야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은사 받은 대로 일을 했습니까?
- 지도자들은 모범을 보였습니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3장 1절을 보십시오: “때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 형제 제사 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하고 문짝을 달고 또 성벽을 건축하여 함메아 망 대에서부터 하나넬 망대까지 성별 하였고.” “엘리아십”은 예수아(스룹바벨과 동역한 사람) 의 손자입니다. 성직에 있던 그가 이렇게 솔선하여 예루살렘 성 중건에 앞장서서 협력한 것은 공사에 있어서 모본입니다(박윤선). 그가 그의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한 일은 양문을 건축하는 것이었습니다. 양문이란 제사장이 제물을 바치기 위해 제단을 향해서 나 아갈 때에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문이었습니다. 이것은 제사에 관계되는 것이므로 제사장 이 해야 하는 것이 타당했습니다(이동원).
-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일을 더 많이 했습니다(11,19,21,24,27,30절). 한글 성경을 봐서는 잘 모르겠지만 영어성경으로 이 구절들을 보면 “repaired another section”(또 다른 부분을 수리했다)라고 적혀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일이 끝났을 때 자기의 도구를 내려놓는 것을 기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구절에 나오는 사람들은 또 다른 일을 맞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우는 교훈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교 회를 섬기면 아니 되며 오직 주님이 힘을 허락하시는데 까지 충성스럽게 섬겨야 한다는 것 입니다.
- 어떤 사람들은 집에서 일을 했습니다(10,23,28-30절). 이 구절들을 보면 “자기 집과 마주 대한 곳을 중수하였고”(10절), “자기 집 맞은 편 부분을 중수하였고”(23절), “자기 집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였고”(28-30절)라고 적 혀 있습니다. 적어도 6명의 일꾼과 알 수 없는 숫자의 제사장들은 자기들의 집에 가까운 부분을 중수하였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영적 교훈은 그리스도인의 섬김 은 가정에서부터 시작 되야 한다는 것입니다.
엘리자베스 엘리엇이 쓴 “영광의 문”(Through Gates of Splendor)이란 책이 있습 니다. 이 책은 북미 선교사들의 영원한 심장인 젊은 5인의 순교 이야기입니다. 이 책은 엘 리자베스 엘리엇의 남편인 짐 엘리엇과 그의 선교 팀원들이 다른 4명의 동역 자들이 누구 이며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어떻게 만나게 되어서 에콰도르에서 선교사로 헌신하다가 1956 년 살인부족 아우카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그들의 손에 죽임을 당한 것을 알려주는 책입니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인1996년에 쓴 “기념판 에필로그”에서 저자 엘리자베스 엘 리엇은 5인 순교자들에 대해서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다섯 남자 자신들을 돌이켜 본다. 다른 선교사들의 모험에 가담해야 할지 쉬 결정하지 못하던 피트의 고민, 마릴루가 임신 8 개월임에도 모든 일이 잘될 줄 확신하고 가려 했던 에드의 열정, 로저의 우울과 선교사로서 의 깊은 패배감, 네이트의 극도의 신중성과 굳은 결의, 무모하리만큼 들떴던 짐의 열의를 떠올린다.” 그러면서 저자가 이 다섯 명의 젊은 선교사들이 죽을 때부터 후에 자기가 와오 라니 인디언(아우카 인디언)들과 함께 살던 때와 그 후 그 일을 기록하고 자기 자신의 이후 경험에 비추어 묵상하던 긴 세월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이야기가 가리키는 점은 하나였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곧 하나님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분이 하나님일진 대 그분은 내 예배와 섬김을 받으시기 합당하다”(엘리엇).
하늘의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시고자 느헤미야를 들어 일으켜 사용하셨 습니다. 그와 더불어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있는 유다 백성들을 들어 일으켜 위대한 일 을 이루셨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오늘 이 시대에 저와 여러분을 사용하셔서 주님의 교회를 세우시고자 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 확장하기 원하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서로 협 력하여 받은 은사대로 신실하게 봉사하는 가운데 온전히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드러내야 할 것입니다.
다양성 속에서 통일성을 지켜 나아가는 목회를 추구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주님께서 은혜로 주신 각자의 은사를 깨달아 알아 충분히 사용하여 주님의 교회를 세우는 일에 헌신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