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 건축하자!”(3)
[느헤미야 2장 19-20절 말씀 묵상]
한 불평이 많은 청년이 왕을 찾아와 인생을 성공적으로 사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졸랐습니다. 왕은 잔에 포도주를 가득 부어 청년에게 주면서 말했습니다: ’포도주 잔을 들 고 시내를 한 바퀴 돌아오면 성공비결을 가르쳐 주겠다. 단, 포도주를 엎지르면 네 목을 베리라.’ 청년은 땀을 뻘뻘 흘리며 시내를 한 바퀴 돌아왔습니다. 그러자 왕이 물었습니 다: “시내를 돌며 무엇을 보았느냐. 거리의 거지와 장사꾼들을 보았느냐. 혹시 술집에서 새어 나오는 노랫소리를 들었느냐?” 청년이 대답했습니다: “포도주 잔에 신경을 쓰느라 아 무 것도 보고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왕이 말했습니다: “바로 그것이 성공의 비결이다. 인생의 목표를 확고하게 세우고 일에 집중하면 주위의 유혹과 비난이 들리지 안을 것이다.” 일하지 않는 사람은 불평이 많다. 분명한 인생관을 갖고 일에 몰입하는 사람은 불평할 틈 이 없습니다(인터넷).
저와 여러분의 인생관은 무엇입니까? 저와 여러분이 세운 확고한 목표는 무엇입 니까? 지금 저와 여러분은 그 목표에 집중하면서 그 목표를 이루고자 주위를 돌아보지 않 고 달려가고 있습니까? 느헤미야를 생각해 볼 때에 그는 확고한 인생의 목표가 있었습니 다. 그것은 바로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이 목표를 이루는데 생명을 걸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에게는 사명감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전을 재건하는 일에 있어서 첫 번째 필요한 요소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묵상했습니다. 두 번째로, 주님의 전을 재건하는 일에 있어서 필요한 요소는 동기부여라는 것도 우리는 이미 묵상했습니다. 저는 오늘 세 번째로 “일어나 건축하자! (3)”란 제목아래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는 일에 있 어서 꼭 필요한 요소인 “성공의 확신”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 분에게 성공의 확신을 주시길 기원합니다.
세 번째로, 우리는 성공의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2장 20절을 보십시오: “내가 대답하여 가로되 하늘의 하나님 이 우리로 형통케 하시리니 그의 종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오직 너희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명록도 없다 하였느니라”. 여기서 “형통”이란 단어는 영어 로 “success”, 즉 “성공”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말의 의미 무엇입니까? 형통, 일반 적으로 모든 일이 잘 되어 가는 것을 말합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모든 하는 일이 잘 되어 서 원하는 대로 잘 풀고 물질적으로는 번영하고 풍성해 지는 것을 말합니다(인터넷). 그러 나 성경에서 말하는 "형통"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하며 사는 것, 하나님 뜻 안에서 합 력하여 선을 이루며 사는 복"을 말합니다. 우리의 말씀 순종의 삶을 통하여 오직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 질 때에 우리는 그것을 형통 혹은 성공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느헤 미야가 경험하였던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합력하여 이루었던 선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아닥사스다 왕 앞에서 은혜를 입게 된 것이었습니다. 성경 느헤미야 1장 11절을 보 십시오: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날 종으로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 니….” 아닥사스다 왕 앞에서 입은 은혜는 다름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닥사스다 왕으로 하 여금 느헤미야가 원하는 것인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을 재건하는 일을 허락한 것을 가리킵 니다(2:8). 아닥사스다 왕은 느헤미야에게 예루살렘 성으로 돌아가 성을 재건하는 일을 허 락했을 뿐만 아니라 느헤미야의 요구인 두 조소[하나는 유다까지 무사히 통과할 수 있게 하 는 조소(2:7)와 또 하나는 왕의 삼림 감독 아삽에게 내린 것으로 느헤미야에게 들보 재목을 주게 하는 조소였음(2:8)]를 내려 주었습니다. 이것을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유 다 백성들 앞에서 개인 간증을 그의 짧은 연설에 나누었습니다: “또 저희에게 하나님의 선 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고하였더니 …”(2:18). 그 때에 느헤미 야와 유다 백성들에게 있어서 성공의 걸림돌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바로 예루살 렘 주위 이웃 지도자들이였던 이방인들인 산발랏과 도비야와 게셈이였습니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2장 19절을 보십시오: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 되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와 아 라비아 사람 게셈이 이 말을 듣고 우리를 업신여기고 비웃어 가로되 너희의 하는 일이 무엇 이냐 왕을 배반코자 하느냐 하기로.” 그들은 먼저 이들은 느헤미야와 유다 백성들을 업신 여겼습니다. 하나님의 종인 느헤미야를 조롱하는 죄를 범하였고 또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조롱하는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느헤미야와 유다 백성들이 하려고 하는 일을 비웃었습니다: “너희의 하는 일이 무엇이냐?”. 그들은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는 일에 대하 여 비웃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이들은 ‘아닥사스다 왕을 배반코자 하느냐?’고 말하였 습니다. 이것은 느헤미야와 유다백성들로 하여금 과거 에스라 시대로 돌아가 아닥사스다 왕이 예루살렘 성을 재건 못하게 한 사건을 기억나게 하는 질문입니다(스 4장). 그러나 느 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으로부터 허락을 받고 왔습니다. 이것을 대적들이 알고 있었을 것 입니다. 그러면서도 말을 한 것은 느헤미야와 유다 백성들의 마음을 낙심시키려는 의도였 습니다.
세상의 관점으로 볼 때에 느헤미야와 유다 백성들은 형통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면 형통이란 일반적으로 모든 것이 잘 되어가는 것인데 그들에게는 잘 되어가다가 대적들이 다시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의 형통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하며 살아갈 때에 대적들이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대적들과 원수들의 핍박 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형통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예로, 창세기 39장2-3절에 나오는 요셉을 들 수 있습니다: “여호와 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 (바로의 신하 시위대 장 보디발)의 집에 있으니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 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성경은 요셉을 가리켜 “형통한 자”라고 말씀하면서 하나님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디발도 보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 연 세상의 관점에서 요셉이 범사에 형통했습니까? 과연 모든 게 잘 되었습니까? 만일 세 상의 관점에서 요셉이 성공한 사람이라면 어떻게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갑니까? 그 런 사람을 어떻게 형통한 자, 혹은 성공한 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요셉 을 “형통한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형통한 자의 삶에는 핍박과 고통도 있습니다. 그 런데 왜 우리는 이러한 성경적인 형통에 대하여 의아하게 여기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우 리는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 잠언 23장 17절을 보십시오: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열심히 주일성수 하고 예배 잘 드리고, 성경 읽고, 십일조 드리고… 어떻게든 하나님 마음에 합한 생활을 하려고 노력해도 일이 잘 안 풀리는데 옆의 사람은 바르게 생활하지도 않고 다른 사람을 괴롭힘에 도 불구하고 돈도 잘 벌고 잘 사는 것 같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마음에 "내가 그 동안 잘못 살았나. 나도 저렇게 살아볼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죄인의 형통은 세상적인 형통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 시편 37편 7절을 보 십시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여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
성공의 걸림돌이 다시 나타났을 때 느헤미야는 어떻게 하였습니까? 오늘 본문 느 헤미야 2장 20절을 보십시오: “내가 대답하여 가로되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로 형통케 하시 리니 그의 종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오직 너희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 리도 없고 명록도 없다 하였느니라.” 여기서 느헤미야는 두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 “하늘의 하나님”이 형통케 하신다는 확신 가운데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는 일을 계속 추진할 뜻을 느헤미야는 확고히 말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의 성공의 확신의 근거는 바로 “하늘의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는 이미 예 루살렘 형편을 듣고 슬피 울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간구하였을 때 하늘의 하나 님의 기도 응답으로 형통의 경험을 했었습니다(1:4-5). 느헤미야 2장 4절에서도 아닥사스 다 왕이 “무엇을 원하느냐”고 질문했을 때에 느헤미야는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였던 것 을 우리는 배웠습니다. 느헤미야는 형통케 하시는 하늘의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확 신 하였기에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는 일을 하나님께서 또한 이루실 줄 확신 하였습니다. 그 확신을 가지고 느헤미야는 유다 백성들과 일어나 예루살렘 성을 건축할 것이라고 그의 대적들에게 말한 것입니다. 성공의 확신이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 혹은 물질이나 환경처럼 다른 것이라면 일어나 건축하려고 해도 대적이 오면 흔들리고 의심 하며 두려움 속에서 포기할 수 있습니다. 그 예가 학개서에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적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 성전을 짓다가 기초만 져놓고 대적의 위협으로 말미암아 두려 워하여 성전 재건을 포기하고 성전은 황무한 채로 놓아두고 “각각 자기의 집에 빨랐”었습니 다(학1:9).
- 느헤미야의 대적들은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고 느헤미야는 그들에게 담대히 말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무엇입니까? 한 3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a) 첫째로, 산 발랏과 도비야와 게셈은 유대 나라를 배열함에 있어서 아무 법정 나눔이 없다는 말씀입니 다. (b) 둘째로, 그들은 아무 법정 권리가 예루살렘에서 없다는 말씀입니다. (3) 셋째로, 그들은 유대인의 종교적 예식 기념에 아무 권리도 없다는 말씀입니다(휀샴). 미국 카네기 기술연구소 졸업생 가운데 성공한 사람들을 추적해서 성공 비결을 조 사한 보고가 있어 나눕니다: ˝전문 지식이나 기술은 성공하는데 15퍼센트의 영향밖에 주지않았다. 나머지 85퍼센트는 좋은 인간관계에 있었다.˝ 특히 그들은 인간관계를 위해 세 가지 방문을 잘했는데 그것은 ´입의 방문´과 ´손의 방문´, 발의 방문´ 입니다. 입의 방문은 칭찬을 해서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용기를 주는 것이고 손의 방문은 편지를 써서 진 솔한 사랑의 마음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발의 방문은 상대가 병들었거나 어려움에 처했을 때 찾아가는 것입니다. 칭찬은 할수록 커지고 편지는 쓸수록 감동을 주며 어려운 이는 찾 아갈수록 친근해집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성공한 사람들을 잘 살펴보십시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하찮게 여기는 작은 일도 소홀히 여기지 않고 잘 챙겨서 주위 사람들과 좋은 관계 를 맺고 있을 것입니다”(인터넷). 성경에서 가르쳐 주는 성공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한 3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 첫째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 성공의 비결입니다.
성경 창세기 39장 23절을 보십시오: “…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심이라 여 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느헤미야와 함께 하신 하나님, 그의 선하신 손이 느헤미야를 도우시고(느 2:8, 18) 또한 그의 마음을 감화하사 역사하신 하나님(2:12), 그 “하늘의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느헤미야의 성공(형통)의 비결입니다.
- 둘째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행하는 것이 성공의 비결입니다.
성경 여호수아 1장 7-8절을 보십시오: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 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 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느헤미야는 자기 자신의 뜻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곧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는 일을 추구하였습니다.
- 셋째로, 하나님을 구하는 것, 즉 기도하는 것이 성공의 비결입니다.
성경 역대하 26장 5절을 보십시오: “… 스가랴의 사는 날에 하나님을 구하였고 저 가 여호와를 구할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케 하셨더라.” 느헤미야는 기도의 사람으로서 하 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형통의 비결이 되시는 주님만을 바라보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말씀과 기도로 승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