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 건축하자!”(2)

 

 

 

[느헤미야 2장 17-18절 말씀 묵상]

 

 

릭 워렌(Rick Warren) 목사님은 그의 책 “목적이 이끄는 삶”의 3장 “삶의 원동력” 에서 수백 가지의 상황, 가치 그리고 감정이 우리의 삶을 이끌 수 있다고 말하면서 가장 보 편적인 것 다섯 가지를 말하였습니다: (1) 많은 사람들이 죄의식에 의해 끌려 다닌다, (2) 많은 사람들이 원한과 분노의 쓴 뿌리를 씹으며 살아간다, (3)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에 이 끌려 살아간다, (4) 많은 사람들이 물질에 이끌려 살아간다, (5)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 의 인정을 받기 위해 살아간다(워렌). 이 다섯 가지 잘못된 삶의 원동력 외에 한 가지를 추가한다면 에이든 토저 목사님이 말한 ‘잘못된 습관에 이끌려 살아간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위에 다섯 가지 잘못된 삶의 원동력도 습관화가 되어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 해져 있기에 우리가 무엇에 이끌려 살아가고 있는지 조차 모르는 무지함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교회 생활을 오랫동안 하면서도 우리가 죄의식에 이끌려 생 활하는지, 원한과 분노의 쓴 뿌리를 씹으며 생활하는지, 두려움에 이끌려 생활하는지, 물질 에 이끌려 생활하는지,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자 교회 생활하는지 분별할 수 있는 능력 을 상실했다는 말입니다. 과연 무엇이 저와 여러분으로 하여금 오늘 이곳에 나아와 하나님 께 예배를 드리게 하고 있습니까? 죄책감입니까? 원한과 분노의 쓴 뿌리를 가지고 예배 를 드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일 예배를 빠지면 괜히 무슨 일이 일어날까봐 두려워서입 니까? 물질의 축복을 받고자 입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려고 이곳에 나 아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습관적으로 나아와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 까?

 

저는 오늘 본문 느헤미야 2장 17-18절 말씀 중심으로 “일어나 건축하자! (2)”라는 제목 아래 “동기부여”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동기부여를 받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2장 17절을 보십시오: “후에 저희에게 이르기를 우리의 당한 곤경은 너희도 목도하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되었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여 다시 수치를 받지 말자하고.” 동기란 무엇입니까?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과 학교실 및 전남대학교병원 정신과 소아청소년 정신건강클리닉 최 영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 니다: “동기란 인간으로 하여금 행동을 유발하는 그 무엇이다. 행동을 시작하고, 일단 시작 된 행동을 지속하게 만드는 내적인 심리상태를 말합니다. 인간의 모든 행동은 이 동기 때 문에 시작되고 지속됩니다.   쉽게 말하면, ‘나는 하고 싶다’라는 의욕의 불꽃이 바로 동기입 니다. 동기를 유발하는 원칙은 아이들이 고통스러운 것을 싫어하고 즐거움을 추구한다는 것을 명심하는 것입니다.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도록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공부에 문제 가 있다면 어떻게 공부하라고 지시하기 보다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니?’라고 물어보고 스스로 답을 찾아서 실천하게 격려해야 합니다. 독립심을 북돋아주면 동기가 생깁니다(인 터넷). 어떻게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거민들에게 동기부여 했습니까? 한 4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화이트):

 

  • 느헤미야는 자기의 동료 의식을 예루살렘 거민들에게 알려주었습니다. 느헤미야의 이 간결하고 직설적인 연설을 보면 예루살렘 거주민의 한 사람으로 자기 자신을 여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의 중보기도, 즉 자기를 동족들과 동일시하는 모습인 “나와 나의 아비 집이 범죄하여”(1:6)에서 보듯이 그는 예루살렘 거주민 들에게 연설을 하면서 “우리”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17절을 다시 보십시오: “우리의 당한 곤경은 너희도 묵도하는 바라.” 느헤미야는 수산 궁에서 파견되어 나온 관리 행세를 하면서 “당신들이 참 딱해 보이니 내가 도와주러 왔노라”는 식으로 말하지 않았습니 다.

 

  •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거주민들로 하여금 곤경을 직시하게 하였습니다예를 들자면, 우리 교회의 안 좋은 상황들을 목사인 제가 먼저 사전에 다 살펴본 후 여러분에게 우리가 묵도하고 있는 이 “곤경”을 직시케 도전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무서운 것은 기계적으로, 또는 습관적으로 신앙생활하다 보면 교회에 안 좋은 상황들도 익 숙해져서 그 심각성을 못 느낀다는 것입니다. 죤 화이트 목사님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은 어려움을 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자원들 을 못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가까이에 있는 자원은 어려움을 무릅쓰고 앞으로 나아 가는 지도자 그 자체이다.”

 

  •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거주민들에게 함께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자고 도전하였습니다오늘 본문 느헤미야 2장 17절을 보십시오: “… 자,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여 다시 수치를 받지 말자….” 저의 개인 고민입니다: 어떻게 하면 성도님들을 행동으로 옮기게 할 것인가? 화이트 목사님의 말이 마음에 다가옵니다: “그들(사람들)은 어떤 비전으로 말미암 아 현재의 자기들보다도 위대한 어떤 것에 대한 억누를 수 없는 소망, 혹은 이제껏 엄두도 내지 못했던 것을 실현해 보고자 하는 소망이 가슴속에서 용솟음칠 때에 비로소 행동한다.” 여러분의 억누를 수 없는 소망은 무엇입니까? 이제껏 엄두도 내지 못했던 것을 실현해 보 고자 하는 가슴속에서 용솟음치는 소망은 무엇입니까?

 

  •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거주민들에게 자기 개인 간증을 나누었습니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2장 18절을 보십시오: “또 저희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고하였더니.”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거주민들에게 예루 살렘에 오기 전 아닥사스다 왕과의 있었던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손으로 도움을 받 았던 것을 나누었습니다. 예루살렘 성 재건을 원치 않았던 아닥사스다 왕이 하나님의 선하 신 손으로 말미암아 느헤미야를 예루살렘으로 보내는 것을 즐거워했었던 것뿐만 아니라 느 헤미야가 요구한 조소들도 내리는 것을 즐겨했었기에 그가 지금 예루살렘 성 거주민들 앞에 있다는 것을 느헤미야는 나누었습니다. 예루살렘을 향한 느헤미야의 개인적인 부담, 그리 고 주님의 선하신 손을 경험한 것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 거주민들의 마음의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는 시기가 온 것임을 설득시켰습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거주민들에게 동기를 이렇게 부여 했을 때 그들의 반응은 어 떠했습니까? 오늘 본문 느헤미야 2장 18절 하반 절을 보십시오: “… 저희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 바로 이것입니다!  지도자의 사 명감 속에서 제시된 비전(예루살렘 성 재건)과 동기가 부여되었을 때 그 지도자를 좇는 자 들이 스스로 말하기를 “일어나 건축하자”라고 외쳤습니다. 그리했을 때 예루살렘이 재건될 수 있었습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 세우시는 교회, 주님께서 지도자에게 사명감을 불타오르게 하시고 지도자는 좇는 자들에게 비전과 동기를 부여하므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주님께서는 세우십니다. 우리 교회에게 주신 주님의 약속의 말씀은 마태복음 16장 18절입니다: “… 내가 … 내 교회를 세우리니 ….” 우리 교회는 주님의 교회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교회는 주님께서 세우십니다. 여러분, 주님께서 주님의 교회를 세우고 계심을 경험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느헤미야처럼 주님의 선한 손으로 도움을 받고 있는 교회 지도자 분들을 보고 계시지 않습니까? 제가 제 자신을 볼 때에 저 같이 연약한 자를 강하게 세우고 계시는 주님의 신실하시고 선한 손길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주에도 아내와 대화하면서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당신의 남편은 강하지 않다. 상당히 연약한데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제임스 패커 목사님은 ‘모든 진정한 지도자들은 동기부여의 대가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예로 세계 2차전 전쟁 때 영국의 윈스턴 처칠을 들고 있습니다. 프랑스가 떨어지고 있었고 영국의 힘도 제일 낮아져 있었을 때 그가 한 국민 연설을 예를 들고 있습 니다: ‘나는 아무 것도 받칠게 없습니다. 오직 피와 수고와 눈물과 땀만을 받칩니다. … 우리의 목표가 무엇입니까? 나는 오직 한 마디로 답할 수 있습니다: 승리 – 모든 희생을 다하여 승리, 모든 공포에도 불구하고 승리, 그 길이 얼마나 길고 어려운지는 모르겠지만 승리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침략이 거의 확정실 되었을 때에 그는 이렇게 연설을 하였습 니다: ‘우리는 어떠한 희생을 치루더라도 우리 섬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는 바닷가에서 싸 워야 합니다, 우리는 땅에서도 싸워야 합니다. 우리는 들판에서 싸워야 하며 길가에서도 싸워야 합니다. 우리는 언덕에서도 싸워야 합니다. 우리는 절대로 항복해서는 안 됩니다’ (패커).

 

 

 

오직 주님만이 나의 동기부여가 되길 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좇는 자들에게 비전과 도전과 동기부여를 줄 수 있는 그리스도 중심된 꿈을 가진 일꾼으로 세움 받길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