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왕케 하려는 사람”(1)
[느헤미야 2장 1-5절 말씀 묵상]
스티븐 코비는 그의 책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The 7 Habits of Highly Effective People)이란 책에서 “‘정지 버튼’ 만들기”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자극’ 과 ‘반응’ 사이에 ‘선택의 자유’가 있는데 너무나 많은 사람이 대응적으로 행동할 때가 많습 니다. 그러기보다 ‘정지 버튼’을 눌러서 생각할 시간을 가지십시오. ‘과연 나는 이 자극에 어떻게 반응해 나아갈 것인가?’를 ‘선택의 자유’ 시간에 생각하는 가운데 감정과 상황에 따 라서 하기보다 원칙과 가치에 따라 행동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중 첫 번째 습관인 “주도적이 되라”(Be Proactive)는 말입니다[정의: “감정과 상황에 따라 반응하기보다는 원칙과 가치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다(코비). 그러나 우리는 주도적이 되기보다 ‘반응적’(reactive)이 될 때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즉, 우리는 자극을 받았을 때 상황과 감정에 치우쳐 행동할 때가 많습니다. 물론 주도적인 사람들도 외부적 자극에 영향(그것이 육체적이든, 사회적이 든 혹은 심리적이든)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원칙과 가치 근거의 선택 혹은 반응을 보입니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2장 1-5절을 보면 우리는 유다에 남아 있는 유다 사람과 예루 살렘 형편을 듣고 자극을 받은 느헤미야가 주도적으로 위대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위 대한 일을 시도하는 모습을 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였던 느헤미야, 그는 이제 자기 기도 의 책임을 지고자 하나님의 일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아가고자 믿음의 삶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인들과 하나님의 성인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는 것이 자기 의 개인적인 성공과 부귀, 영화보다 더 가치 있음을 알고 있었던 느헤미야는 이젠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선택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본문 느헤미야 2장1-5절 중심으로 “흥왕케 하려는 사람 (1)”이란 제목 아래 느헤미야의 선택의 원인인 그의 내면세계, 즉 그의 마음을 한 2가지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느헤미야의 마음에는 근심이 있었습니다(1-3절).
오늘 본문 느헤미야 2장 2절을 보십시오: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색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그 때에 내가 크게 두려워하여.” 느헤미야의 마음의 근심의 원인은 무엇이었습니까? 3절을 보십시오: “왕께 대답하되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되었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색이 없사오리이까.” 기도의 사람 느헤미야가 4개월 동안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 후 아닥사스다 왕 앞에 술이 있기로 그가 들어 왕에게 드렸는데 그의 얼굴에 수색이 있음을 왕이 보았습니다(1-2절). 또한 아닥사스다 왕은 느헤미야의 얼 굴의 수색이 육신의 병 때문이 아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느헤미야의 마음에 근심이 있는지 물어본 것입니다. 그 때에 두려움 속에서 느헤미야는 자기 얼굴의 수색이 왜 있는지 이유를 아닥사스다 왕에게 고백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유다 땅이 황폐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1:3). 그 때부터 4개월이 되도록 느헤미야의 마음에는 근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개인 문제 때문이 아니 이스라엘 공동체의 비참해 진 사실 때문에 그는 근심하고 있었기에 얼굴에 수색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종류의 근심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합니다. 성경 고린도후서 7 장 10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이 말씀의 근거해서 생각해 볼 때 두 종류의 근심은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과 “세상 근심”있니다. 세상 근 심은 끝없는 근심으로 그치고 결국 사망에 이르러 후회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 로 하는 영적 근심은 회개(“마음을 고침”)를 통하여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유다에 남아있는 유다 백성들과 예루살렘 성의 형편을 듣고 영적 근심을 하였습니다. 이 느헤미야의 영적 근심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우리는 한 3가지 생각해 볼 수 가 있습니다:
- 인간의 연약함을 교훈해 줍니다. 이동원 목사님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의 마음의 근심이 “얼마나 위로 가 되는지 모릅니다. 그는 기도했고 또 하나님이 역사하리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럼에 도 불구하고 그는 근심했습니다. 만일 성경이 기록하기를 느헤미야는 기도한 후 전혀 근심 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우리는 느헤미야를 우리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인물로 혹은 비인간 적이고 신화적인 인물로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이동원).
- 지혜자의 교훈을 생각나게 합니다. 전도서 7장3절을 보십시오: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 음이 좋게 됨이니라.” 이 느헤미야의 마음의 근심이야 말로 그에게 유익이 되었던 것은 그 로 하여금 더욱더 하나님께 간구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기도 응답을 기대하고 기다렸던 기도의 사람 느헤미야에게 있어서는 4개월이란 기간은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는 비전에 더 욱더 불이 타오르게 만드는 기간이었던 것입니다.
- 느헤미야의 마음의 근심은 그에게 오히려 기회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어떤 기회입니까? 아닥사스다 왕 앞에서 은혜를 입게 되는 기회입니다(1:11). 얼 굴의 수색을 보고 왕이 느헤미야에게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색이 있느냐”라 고 물어보았습니다. 이젠 느헤미야는 왜 마음에 근심이 있는지 자신의 마음의 원함을 아닥 사스다 왕에게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집고 넘어가 야 할 것은 느헤미야의 얼굴에 수색이 있었다는 것은 그에게 죽음을 의미할 수도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크게 두려워하”였던 것입니다(2절). 그 이유는 당시 페르 시아의 법에 왕 앞에서 시중을 드는 사람들이나 왕과 대작을 하는 모든 신하들이 만일 얼굴 에 근심 빛을 띄우면 그 순간부터 직위를 박탈당한다는 규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이동원). 그는 직위 박탈뿐만 아니라 왕이 분노했더라면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숨길 수 없는 마음의 근심을 통하여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느헤미야의 기도를 응답해 주고 계셨습 니다.
마지막 둘째로, 느헤미야의 마음에는 소원이 있었습니다(4-5절).
오늘 본문 느헤미야 2장 4-5절을 보십시오: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 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왕에게 고하되 왕이 만일 즐겨 하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중건하게 하옵소서 하였는데.” 아닥사스다 왕은 느헤미야의 얼굴에 수색을 보고 마음의 근심이 있음을 보았습니다(2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느헤미야의 기도를 들으사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의 역사하고 계셨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좀 알 수 있 는가 하면 그는 얼굴에 수색이 있는 느헤미야를 죽일 수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에게 관심을 갖고 있는 모습을 좀 알 수가 있습니다(2, 4절). 참 흥미로운 하나님의 역사가 아닐 수 없 습니다. 느헤미야의 마음의 근심을 통하여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의 관심을 보이게 하시는 하나님은 느헤미야의 기도를 들으사 왕의 마음을 움직이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닥 사스다 왕은 느헤미야에게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고 묻습니다(4절). 이렇게 하나님께서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을 움직이고 계셨다는 사실을 우리가 좀 더 알기 위해서는 그의 마음 을 움직이는 일에 있어서 어려움 2가지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 첫째로, 아닥사스다 왕은 아주 고집이 세어 남의 말을 좀체 듣지 않는 사람이 었습니다. 이런 왕에게 느헤미야가 가서 자기의 부탁을 들어달라고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 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꺼냈다가 잘못하면 자기의 지위를 박탈당함은 물론 생 명에 위협을 느낄 정도였습니다(이동원).
- 둘째로, 아닥사스다 왕은 예루살렘 성이 건축되는 것을 평소에 못마땅하게 생 각하던 사람이었습니다(이동원). 그에게 전해진 고발장인 에스라 4장11-13절 말씀과 아닥 사스다 왕의 답변인 에스라 4장18-21절을 보십시오:
(고발장) ““아닥사스다 왕에게 올린 그 글의 초본은 이러하니 강 서편에 있는 신복 들은 왕에게 고하나이다 왕에게서 올라온 유다 사람들이 우리의 곳 예루살렘에 이르러 이 패역하고 악한 성읍을 건축하는데 이미 그 지대를 수축하고 성곽을 건축하오니 이제 왕은 아시옵소서 만일 이 성읍을 건축하며 그 성곽을 마치면 저 무리가 다시는 조공과 잡세와 부 세를 바치지 아니하리니 필경 왕들에게 손해가 되리이다(스 4:11-13).
(답변) “너희의 올린 글을 내 앞에서 낭독시키고 명하여 살펴보니 과연 이 성읍이 예로부터 열왕을 거역하며 그 중에서 항상 패역하고 모반하는 일을 행하였으며 옛적에는 예 루살렘을 주재하는 큰 군왕이 있어서 강 서편 모든 땅도 주재하매 조공과 잡세와 부세를 저 에게 다 바쳤도다 이제 너희는 명을 전하여 그 사람들로 역사를 그치게 하여 그 성을 건축 지 못하게하고 내가 다시 조서 내리기를 기다리라”(스 4:18-21).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기 이전에 먼저 예루살렘에 돌아왔던 사람들 가운데 예루 살렘 성을 건축하려는 운동이 이미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소식을 들은 아닥사스다 왕은 성을 건축하는 일을 무력으로 막게 했습니다. 그 이유는 혹 그 성이 건축되면 예루살렘의 모든 국민들이 힘을 합해서 당시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가장 큰 메대 바사를 그들이 거역하 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에게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는 일을 허락해 줄 것 을 요청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왕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는 질문에 느헤미야는 제 일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4절). 그는 습관적으로 눈을 감고 ‘천지 만물을 지으시고… ‘하면서 기도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생활화가 되어 있었습니 다. 왕에게 어떻게 대답할 것을 알게 해달라는 기도였을 것입니다. 우리도 사람들과의 대화 가운데 있을 때 눈을 뜨고 그들과 대화 하지만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좋은 습관 이 있어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지금 이 순간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지 지혜를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는 습관은 좋은 습관이라 생각합니다. 그 다음에 느헤미야는 그의 마 음의 소원을 아닥사스다 왕에게 아뢰었습니다. 5절 보십시오: “왕이 만일 즐겨하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중건하게 하옵소서 하였는데.” 여기서 우리는 느헤미야가 이미 느헤미야 1장 11절 하반 절에서 하나님께 드렸던 기도와 연관성을 볼 수 있습니다: “… 오늘날 종으로 형통하 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그 연관성이란 하나님께서는 아닥사스다 왕에 게 은혜를 입게 해달라는 느헤미야의 기도를 응답하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느헤미 야는 이것을 알고 왕의 질문인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는 질문에 마음의 소원을 왕에게 아 뢰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의인의 마음의 소원은 이루어 주십니다. 이 성경 구절들을 보십시 오: “… 의인은 그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느니라”(잠10:24); “의인의 소원은 오직 선하 나…”(11:23); “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저희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 원하시리로다”(시145:19). 우리가 우리 마음에 근심과 소원을 다 하나님께 기도로 아뢸 때 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사 응답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게 해주십니다. 이 하나님의 은총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길 기원합니다.
마음의 소원을 아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마음의 근심도 아시고 관심을 가지시고 다가오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