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사람 (2)

 

 

[느헤미야 1장 4-11절 말씀 묵상]

 

 

한 농부가 산 속에서 거대한 곰을 만났습니다. 그는 공포에 질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간절히 기도를 올렸습니다: "하나님, 이 곰의 마음을 순 하게 변화시켜 주세요." 농부가 한참 기도를 하고 눈을 떴습니다. 그런데 곰도 마주 앉아 서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농부는 자신의 기도가 응답된 줄 알고 크게 감동을 받 았습니다: "이렇게 빨리 기도 응답을 해주시다니... 내 기도가 곰의 마음을 감동시켰구나." 그때 곰이 기도를 마치고 농부를 그윽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네가 지금 무슨 기도를 했는지 나는 전혀 모른다. 나는 다만 음식을 앞에 놓고 식사기도를 했을 뿐이다" (인터넷).  이 재미있는 기도의 예화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농부처럼 기도 응답을 받은 줄 알고 착각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기도의 응답을 받 기 위해선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저는 오늘 본문 느헤미야 1장5-11절 말씀 중심으로 “기도의 사람 (2)”란 제목 아래 느헤미야의 기도를 한 6가지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이동 원). 그러한 가운데 느헤미야처럼 기도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첫째로, 느헤미야는 금식 기도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1장 4절을 보십시오: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 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금식은 1년 에 한번, 속죄날에 금식을 하게 되어 있었습니다(레16:29). 그런데 느헤미야는 수일 동안 슬퍼하며 금식기도 하였습니다(느1:4). 여러분, 금식기도란 무엇입니까? “금식기도”하면 우리는 밥을 굶는다는 것을 제일 먼저 연상합니다. 그러나 밥을 안 먹고 굶는다는 것이 중 요한 것이 아니라 기도한다는 그 자체가 중요합니다. 금식기도는 가장 절박한 기도의 형태 입니다(이동원). 중보 기도함에 있어서 금식하는 것은 기도의 능력을 효과적으로 더욱더 강화하는 방법입니다. 느헤미야가 금식 기도했다는 것은 밥 먹을 시간까지 아껴가며 기도 하는 일에 전심전력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는 전적으로 기도했으며 장식적인 기 도나 의례적인 기도가 아니라 기도에 자기의 영혼과 마음과 심장을 싣고 기도했다는 것입니 다(이동원).

 

둘째로, 느헤미야는 기도의 대상을 알고 기도했습니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1장 5절을 보십시오: “가로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 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 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저와 여러분은 누구에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물론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고 있는 그 하나님은 과 연 누구신지 의문이 듭니다. 의문이 드는 이유는 우리가 말하는 하나님은 성경의 하나님이 라기보다 우리의 좁은 마음이 상상하고 있는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있는가 하면 기도를 하나님께 드린 후 우리의 삶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 고 있는 하나님께 기도한 자는 믿음으로 기도하였기에 믿음의 삶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에 상상력 안에 넣고 기도하는 하나님께 기도한 자는 의심이 섞인 기도를 드렸기 에 기도 후에 의심의 삶을 보여줄 수밖에 없습니다. 과연 우리는 성경의 하나님을 알고 믿 음으로 그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까?

 

그러면 성경의 하나님은 누구이십니까? 오늘 본문에서 느헤미야의 하나님을 한 3 가지로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 느헤미야의 하나님은 “하늘의 하나님”이십니다.  느헤미야는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메데 바사라는 이방인 나라에서 유대인으로서 느헤미야는 ‘땅의 하나님’, 즉 이방인 나라에 신들을 섬기지 않았습니다. 그 는 우상을 숭배하지 않았습니다.

 

  • 느헤미야의 하나님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십니다.  느헤미야는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유다에 남아있는 유다 백 성들과 예루살렘의 형편을 들었던 느헤미야, 환난과 능욕을 당하는 고국의 백성들과 훼파된 예루살렘 성과 소화된 성문에 대한 슬픈 소식을 듣고 왜 그는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께 기 도했습니까? 그 이유는 그는 유다의 소식이 자기 민족의 범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공의 로우신 결과인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느헤미야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범죄 하고도 회개치 않은 유다 백성들을 징계하신 것을 확언하는 소식을 들었기에 하나님의 하나 님 되심, 즉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역경과 고난 가 운데서 하나님의 크심과 두려우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역경과 고난을 통하여 우리의 작 음과 범죄의 큼을 깨달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큰 고난(3절)을 겪고 있으며 또한 큰일을 행해야 한다면(4:19; 6:3) 우리는 큰 권능(10절)과 큰 복(9:25, 25)과 하나님의 큰 긍휼 (9:31)이 필요합니다(위어스비).

 

  • 느헤미야의 하나님은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 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범죄하고 회개치 않는 자 에게는 두려운 하나님이시지만, 회개하며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긍휼을 베푸시는 사 랑의 하나님이시란 뜻”입니다(박윤선). 느헤미야는 언약의 하나님,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 께 간구하였습니다. 윌리엄 캐리(William Carey)는 이러한 유명한 말을 우리에게 남겨주었 습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을 믿으라. 위대하신 하나님께 기도하라. 그리고 위대하신 하나 님께서 위대한 일을 이루어주실 것을 기대하라”(이동원).

 

셋째로, 느헤미야는 범죄함을 자복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1장 6-7절을 보십시오: “이제 종이 주의 종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이스라엘 자손의 주 앞에 범죄함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나의 아비 집이 범죄하여 주를 향하여 심 히 악을 행하여 주의 종 모세에게 주께서 명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 이다”.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중보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민족의 죄만 자복 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도 민족의 범죄함에 책임이 있음을 고백하였습니다. 그도 에스라 처럼 이스라엘 공동체의 죄악을 연대 책임지고 친히 자기의 죄처럼 여겨 회개한 것입니다 (박윤선).  에스라도 그랬습니다.  성경 에스라 9장 6절을 보십시오: “…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러워 낯이 뜨뜻하여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다니엘도 그랬었습 니다.  성경 다니엘 9장 20절을 보십시오: “내가 이같이 말하여 기도하며 내 죄와 및 내 백 성 이스라엘의 죄를 자복하고 내 하나님의 거룩한 산을 위하여 내 하나님 여호와 앞에 간구 할 때.” 왜 느헤미야는 민족의 범죄함에 자기 자신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고 함께 죄를 하나님께 자복했습니까? 그 이유는 그에게는 공동체적인 범죄의 책임감을 갖고 있었기 때 문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하나님께서는 느헤미야가 수산 궁에 있다고 ‘너는 아 무 책임이 없다’고 하시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참고: 에스더(에 4:13-14)와 아간(수 7:1, 11)].  하나님을 사랑하며 고국을 사랑하는 중보기도자는 고국의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징 계를 받는 것을 알고 슬피 울며 (금식)기도 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긍휼을 구합니다. 그리 할 때에 그는 자기 백성의 죄를 자기의 죄로 여기고 하나님께 죄를 자복하는 공동체적 책임 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이렇게 중보기도는 중보기도 대상자들과 영으로 하나 되게 만듭니 다.

 

넷째로,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았습니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1장 8-10절을 보십시오: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 하여 가라사대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열국 중에 흩을 것이요 만일 내게로 돌아 와서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컨대 기억하옵소서 이들 은 주께서 일찍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주의 종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   이것은 이 엠 바운즈(E. M. Bounds)가 말한 두 종류의 기도 중 첫째 종류인 믿음의 기도입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인 신명기 28장63-67절과 30장1-10절 말씀을 붙잡고 기 도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명심해야할 사실은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 잡고 믿음(prayer in faith)으로 기도하였던 것만 아니라 믿음의 삶(faithful life)인 주님의 계 명을 지켜 행할 것을 하나님께 약속(다짐)하였습니다.   이렇게 느헤미야는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되 인내심을 가지고 기도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느헤미야는 4개월 동안 하 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였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면 느헤미야 1장 2절과 2장1절 비교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기슬르월”(1:1)은 출애굽 후의 히브리 달 력의 달로써 우리 시간으로 말하면 11월 중순이나 12월 중순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니 산”(2:1)은 히브리 달로써 우리 시간으로 말하면 3월 중순이나 4월 중순을 가리킵니다(박윤 선). 즉, 느헤미야는 한 4개월 동안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께 기도한 것입 니다. 그의 아버지 이름은 “하가랴”입니다. 그 이름의 뜻은 “여호와를 기다린다”입니다(박윤선).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되 인내심을 가지고 기도 할 것은 가르쳐 줍니다.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는 고국을 위하여 중보 기도하되 기도한 후 기대하면서 기도 응답될 때가지 기다렸습니다.

 

마지막 다섯째로, 느헤미야는 기도의 책임을 지고자 했습니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1장 11절을 보십시오: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 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날 종으로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관원이 되었었느니라.” 여기서 “이 사람”이란 “아닥사스다 왕”(2:1)을 가리킵니다. 느헤미야는 확신을 가지고 기 도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을 움직이사 그로 하여금 예루살렘 성 을 재건하는데 돕도록 역사하실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이동원 목사님은 이렇게 말하였습니 다: “즉, 그는 하나님께 기도드린 다음 왕께 나아가 왕에게 자기의 고향 예루살렘 성을 건 축하는데 도와 달라고 청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왕에게 청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 앞 에 기도드리는 것입니다.  그는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왕의 마음을 움직여 주실 것을 믿 고, 이제 왕에게 가서 이야기할 작정이었습니다”(이동원).

 

우리 하나님은 기도자를 통하여 기도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경 에베소서 3장 20절을 보십시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 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시고자 먼저 기도자인 우리 안에서 역사하십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하여 그 기도를 응답하시길 원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의 간절함이 금식 기도로도 나타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기도의 대상 이신 하나님을 바로 알아가는 지식 속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를 자백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간구해야 합니다. 기도의 책임 을 질 줄 아는 기도의 행함이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기도의 사람으로 세워지길 기원하면서,

 

 

제임스 김 목사 나눔

(토요 새벽기도회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