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를 그치고 쉴 것입니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요한계시록 14장 13절).
저는 어제 목요일 오전에 노회 목사님이 입원해 계신 호스피스에 갔었습니다. 가보니 증경 노회장 목사님이 와 계시고 두 분의 여자 분들이 계셔서 병실 복도에서 혼자 기다리면서 이러한 글을 적어보았습니다: “연말에 노회 목사님이 입원해 계신 병원에 왔습니다(호스피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제 인생의 마무리를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제 자신의 죽음을 생각할 때 사랑하는 가족과 교회 식구와 친구들과 동역자들과 많은 형제, 자매들과 잠시 헤어진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죽음은 두렵지가 않습니다. 그 보다 주님 앞에 서서 회계할 때에 주님께 칭찬을 받지 못할까봐 두렵습니다.” 그리고 나서 저는 증경 노회장 목사님이 병실에서 나오시는 것을 보고 인사드린 후 병실에 들어가 질병으로 고통 중에 계신 노회 목사님을 뵈었습니다. 저는 그 병실에 계셨던 두 여자분들 중에 한분은 목사님의 어머님이신 것을 알고 인사드린 후 목사님에 대해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 대화 중 목사님의 어머님께서는 저에게 목사님께서 선교지에 계셨을 때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습니다. 실제로 그 어머님께서 아드님의 선교지까지 여러 번 가셔서 직접 목격한 일들을 말씀해 주시는데 기뻤습니다. 저는 주님께서 목사님을 귀하게 사용하셔서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잘 선포하셔서 많은 은혜를 끼쳤다는 사실을 더 알게 되니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저는 대화를 마친 후 목사님에게 다가가 손을 잡고 기도하고 곧장 주차장으로 나와 교회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얼마 있다가 아버님을 통해서 저에게 족보로 할머님이 되시는 김 사모님이 위암으로 소천 하셨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저에게는 그 사모님 할머님의 남편 되시는 목사님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주님께서 그 목사님을 사용하셔서 저희 교회 대학 수련회 때 요한복음 6장 1-15절 말씀을 듣게하시사 구원과 더불어 헌신케 하셔서 목사가 되겠다고 결심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 할아버지가 소천 하셨을 때(2002년) 저는 한국에서 아내랑 아이들 셋을 다 데리고 미국에 와서 그 분의 장례식에 참여했었습니다. 그런데 이젠 사모님 할머님의 장례식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듣고 아내랑 찾아가 뵙고 싶었는데 집안 어르신 한분이 사모님이 힘들다고 저를 만류하셔서 찾아뵙지 못하고 소천 소식을 접했습니다.
저는 성경 시편 90편 10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참으로 수고와 슬픔이 많은 세상입니다. 죽을 일이 쌓인 세상이요 밤낮으로 수고할 수밖에 없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요한계시록 14장 13절을 보면 성경은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쉴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들”은 누구입니까? 바로 “주 안에서 죽은 자들”입니다(13절). 성경은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은 복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13절). 그리고 그들은 죽으면 수고를 그치고 쉴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수고를 그치고 쉴 주님 안에서 죽은 자들은 어떻게 이 땅에서 살았을까요? 다시 말하면, 그들은 누구일까요? 한 5가지로 간략하게 묵상하고자 합니다:
첫째로, 그들은 순결한 자들입니다.
성경 요한계시록 14장 4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현대인의 성경) “이들은 여자들과 더불어 자신을 더럽히지 않고 순결을 지킨 사람들로서 …”]. 여기서 “이 사람들은” 바로 ‘땅에서 속량함(구원)을 받은 144,000명 성도들로서(3절) 세상주의의 강한 유혹으로(“여자”들, 박윤선) 자기 자신들 더럽히지 아니한 순결한 자들을 가리킵니다(4절). 이 순결한 자들은 마치 처녀인 신부가 신랑을 맞이하기 위하여 자신의 순결을 지키는 것처럼 신부된 교회가 신랑 되신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하여 정결히 수절하여 세상과 죄악을 섬기지 않습니다(박윤선). 그러므로 교회는 순결해야 합니다. 교회는 영광스러운 교회로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세움을 받아야 합니다(엡 5:27).
둘째로, 그들은 주님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들입니다.
성경 요한계시록 14장 4절 중반절을 보십시오: “…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현대인의 성경) “어린 양이 어디로 가든지 따라가는 자들입니다”]. 여기서 “어디로 인도하든지”란 말은 그 지도 방향이 피지도자에게 미리 알려지지 않은 것을 암시합니다. 이렇게 방향이 불확실해 보이는 지도에도, 땅에서 구원을 받은 순결한 성도들은 “어린 양”이 되시는 주님께 순종합니다(박윤선). 이러한 믿음의 행동을 보여준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이었습니다. 성경 히브리서 11장 8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고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는 가야 할 곳이 어딘지도 모르는 채 떠났던 것입니다”(현대인의 성경). 그러므로 순결한 교회는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주님(“어린 양”)의 인도하심 따라 순종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교회를 오라 하실 때 교회는 주님의 인도하심 따라 어디든지 주님을 따라 주님과 같이 가야 합니다(새 찬송가 324장, “예수 나를 오라 하네” 후렴).
셋째로, 그들은 하나님과 주님께 속한 자들입니다.
성경 요한계시록 14장 4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현대인의 성경) “이들은 또 사람들 가운데서 사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첫 열매로 바쳐진 사람들이며”]. ‘속량(구원)함을 받은 144,000명’(3절)은 적그리스도(“짐승”)를 따르지 않고 어린 양이신 주님이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따라가는 자들입니다. 또한 그 성도들은 적그리스도를 따르는 무리들과 다르게, 예수님의 이름과 및 하나님의 이름이 그들의 이마에 쓰여져 있습니다(1절).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소유요 또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다는 상징입니다(박윤선). 즉, 그들은 하나님과 주님께 속한 자들입니다(4절). 교회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주님께서 교회를 세상에서 택하였습니다(요 15:19).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과 주님께 속한 자들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고전 10:32, 고후 1:1, 딤전 3:5)요 주님의 교회입니다(마 16:18).
넷째로, 그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고 흠이 없는 자들입니다.
성경 요한계시록 14장 5절을 보십시오: “거짓말을 하지 않고 흠이 없는 자들입니다”(현대인의 성경)[(개역개정)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거짓말을 하는 자들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들이요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님을 부인하는 적그리스도입니다 (요일 2:22). 그들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인 마귀에게 속한 자들입니다(요 8:44).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심으로 속량함(구원)을 받은 성도들은 하나님과 주님께 속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계 14:5). 신실한 증인이었던 사도 바울도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잠 14:5, 고후 11:31). 신실한 증인의 공동체인 교회도 거짓말을 해서는 아니 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성도들은 진실해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은 흠이 없어야 합니다. 그 말은 아무 죄도 짓지 않는 무죄한 자를 말하는 게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죄 사함을 받고,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은 자들을 가리킵니다(롬 4:25). 즉, 흠이 없는 자들이란 하나님 앞에 무흠자로 간주된 자를 가리킵니다(박윤선).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칭함을 받았습니다. 교회는 하나님 보시기에 흠이 없는 자들입니다. 흠이 없는 교회는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거짓이 없어야 하며 진실해야 합니다.
마지막 다섯째로,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들입니다.
성경 요한계시록 14장 12절을 보십시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님을 충실히 믿는 성도들은 이런 때 인내가 필요하다”].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습니다(13:10). 그들은 온 천하를 꾀고(12:9)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10절)인 “옛 뱀 곧 마귀” 또는 “사탄”(9절)이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는 줄을 알므로 크게 분 내어” 우리에게 내려와(12절)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지만(벧전 5:8) 성도들은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계12:17, 14:12)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서(12:17)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들입니다(14:12). 그들은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사탄을 이기되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합니다(12:11). 그러므로 그들은 사도 바울처럼 선한 싸움을 싸우고 그들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키므로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줄을 믿습니다(딤후 4:7-8).
주님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습니다. 주님을 믿고 죽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그들은 순결하며, 주님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며, 하나님과 주님께 속하였으며, 거짓말을 하지 않고 흠이 없으며 또한 죽기까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님의 대한 믿음을 지킵니다. 이러한 자들이 죽었을 때 그들은 수고를 그치고 영원한 안식처에 영원히 쉴 것입니다.
“내가 천성 바라보고 가까이 왔으니 아버지의 영광 집에 나 쉬고 싶도다
나는 부족하여도 영접하실 터이니 영광나라 계신 임금 우리 구주 예수라”
(새 찬송가 493장, “하늘 가는 밝은 길이”, 3절).
주님이 부르시는 그 날 그 순간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맡겨진 사명과 직분을 묵묵히 신실하고 진실하게 끝까지 감당하길 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2017년 12월 29일, 수고와 슬픔이 많은 세상에서 살면서 그 수고와 그 슬픔이 그치고 영원한 안식처에서 사랑하는 주님과 형제, 자매들과 영원히 함께 거하길 기도하며 기대하며 기다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