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인생을 잘 마무리 할 수 있을까?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디모데전서 113-14).

 

 

이번에 “2017 인터넷 사역 한국으로”를 위하여 한국으로 나아가기 전에 제 마음이 평온하지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멘토 목사님의 은퇴 과정 속에서 들리는 말들이 저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과연 나는 어떻게 목회 사역을 마치고 은퇴를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는 것인지, 등등 제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고민이 제 목회 은퇴 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 제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제 자신에게 과연 나는 주님과 사람들 앞에서 어떻게 이 인생을 마쳐야 하는지를 또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인생을 마쳐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지를 생각할 때 저는 제 자신 스스로에게 경계해야 할 많은 것들 중에 특히 공로의식을 경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죽을 때까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며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하여 수고할 때에 저는 숫자와 제 이력에 민감하고 싶지 않습니다. 몇 년 동안 목회를 했다든지, 그 수년 동안 목회하면서 제가 주님을 위하여 행한 일들을 기록하던지, 목회를 마치면서 교회에다가 어느 정도 액수의 은퇴금을 요구한다던지 등등으로 인하여 사람들 앞에서 제 공로와 영광을 들어내고 싶지 않습니다. 그보다 저는 사도 바울처럼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는 고백과 더불어 그 은혜의 힘으로 주님의 일을 감당하다가 인생의 끝 부분에 와서는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모든 일을 다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남은 것은 의의 면류관을 받는 일뿐입니다”(딤후 4:6-7)라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가운데 저는 한국에 나가서 인터넷 사역으로 알게 된 목사님 한 명을 만났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기 전날인 금요일 아침 그 목사님을 통하여 그 목사님이 보고 듣고 경험한 교회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었을 때 제 평생 처음으로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제 가슴이 답답하면서 마음이 멍하였을 뿐만 아니라 울고 싶었습니다. 더 이상 말을 들을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안 그래도 그 전날 목요일 어느 부목사님 부부를 만나 대화하면서 그 목사님을 통해서 한국 교회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는 이러한 글을 썼었습니다: “우리 목사님들은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그 다음 날 금요일 아침에 또 다른 부목사님을 통해서 한국 교회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를 들으니 울고 싶을 정도로 가슴이 답답했던 것 같습니다. 그 안 좋은 목사님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우리 목회자들이 교만하여 물질에 대한 욕심 등을 부리는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을 잊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본문 디모데전서 1장 13-14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그의 영적 아들인 디모데에게 편지를 써 내려가면서 특히 2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 2 가지란 바로 주님의 긍휼과 주님의 은혜입니다.

 

먼저 바울은 자신이 과거에 어떠한 사람이었는지를 디모데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13절)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메섹 도상에서 만나기 전에는(행 9:4, 26:14) 예수 그리스도를 비방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박해하는 폭행자였습니다. 즉, 그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을 때에는(딤전 1:13)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던 자였습니다(빌 3:6). 바울은 예수님이 메시아(그리스도)인 줄 모르고 그리한 것입니다(딤전 1:13). 그러므로 그는 긍휼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셨습니다(16절).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저를 향하신 주님의 긍휼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의 죄로 인하여 저는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아 마땅한 죄인이라는 사실이 생각났습니다(살후 1:9). 이렇게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아 마땅한 죄인(유 1:7)이 저에게 주님께서는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셨다고 생각할 때(딤전 1:16) 이것이 주님의 긍휼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죄도 없으신 독생자 예수님에게 저의 모든 죄를 전가하시사 저의 죄의 형벌을 받으시게 하시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에도 오래 참으시지 않으셨던 하나님께서는 죄가 많은 저에게 내리셔야 할 형벌을 내리지 않으시고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니(롬 9:22) 이것이 주님의 긍휼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 주님의 오래 참으심이 저에게 구원이 된 줄 알기에(벧후 3:15) 어찌 이 주님의 긍휼에 감사하지 않을 수 있으면, 어찌 겸손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 다음 하나 더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하고 있는 것은 바로 주님의 은혜입니다: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딤전 1:14).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던 바울은 자기 자신이 죄인 중에 자기가 괴수인 줄을 알고 있었습니다(15절). 그러한 죄인 중에 괴수인 바울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셨습니다(16절). 주님은 그에게 긍휼을 베푸시사 그에게 영원한 멸망의 진노의 형벌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주님께서는 그에게 풍성한 믿음과 사랑과 함께(14절)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16절). 그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는 바울을 충성되이 여겨 그에게 직분을 맡기셨습니다(12절).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신 주님께서는 (딤후 2:13) 바울을 충성되이 여기사 그에게 이방인의 사도 직분을 맡기셨습니다(롬 11:13).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던 자가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기보다 오히려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도 주님의 크신 은혜인데 주님께서는 그를 구원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사도로 직분을 맡기셨으니 이렇게 큰 은혜가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자기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감사하다고 말한 것입니다(딤전 1:12).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저에게 베풀어주신 주님의 은혜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풍성한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저 같은 죄인이 무엇이관데 저에게 은혜의 선물인 믿음을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영접케 하셨는지 그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미쁘신 주님은 저 같은 불성실한 자를 충성되이 여겨 목사의 직분을 맡기셨으니 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언젠가 인터넷 기사를 통해 고 한경직 목사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납니다. 그 기억이란 그 분은 1992년에 템플턴상을 수상하는 축하행사 때 인사말을 하면서 "먼저 나는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나는 신사참배를 했습니다" 하고 공개했다는 것입니다. 그 분뿐만 아니라 고 박윤선 목사님도 집회를 인도하면서 자신의 신사참배를 이렇게 고백했다고 합니다: “나도 단 한 번이지만 신사참배를 한 범과가 있으므로 나는 언제나 그 일로 인하여 원통함을 금할 수 없었는데, 이때에 그 죄를 회중 앞에 공고백하였던 것이다”(인터넷). 이렇게 자신의 신사참배의 죄를 공적으로 고백한 이 두 분은 제가 보기엔 끝까지 주님과 사람들 앞에서 겸손히 사셨다고 생각합니다. 그 분들이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그분들은 과거의 죄를 항상 기억하면서 거룩하신 주님께 나아가시므로 그 죄의 크기를 점점 더 깊이 깨달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랬기에 그분들은 주님의 긍휼과 은혜의 크기를 점진적으로 더 크게, 더 많이, 더 깊이 깨달았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죄인 됨을 점점 더 크고 깊게 깨달아 가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점점 더 크고 깊게 깨달아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 그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는 그는 은혜 의식으로 충만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은혜 의식으로 충만한 그리스도인은 목회 사역을 다 마치고 난 후에도 입술로 뿐만 아니라 진심으로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고전 15:10)라고 고백할 뿐만 아니라 인생을 마무리 할 때에도 겸손히 동일한 고백을 합니다. 그리고 그는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는 인자하시고 진실하시므로 주의 이름에만 영광을 돌리소서”라고 간구할 것입니다(시 115:1).

 

 

 

 

주님의 크신 긍휼과 은혜로 오늘 하루도 살아가고 있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17년 12월 13일, 숫자와 공로의식을 경계하며 은혜 의식으로만 더욱더 충만하길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