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각오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사도행전 21장 13절).
싸울 때에 죽을 각오를 하고 달려드는 사람은 참 무섭습니다. 그 이유는 그 사람은 생명을 걸고 싸우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 사람이 자기가 싸우다가 죽어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우리에게 무섭게 달려들면 그 누가 막겠습니까.
오늘 본문 사도행전 21장 13절을 보면 우리는 죽을 각오를 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고 하는 사도 바울을 봅니다. 성령님이 각 성에서 결박과 환난이 기다린다고 그에게 증거하셨음에도 불구하고(20:23)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자 하는 결심에는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그 각 성 중에서 오늘 본문은 바울이 가이사랴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아가보라 하는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성령님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인 바울을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인 로마인에 넘겨주리라고 예언했습니다(11절). 그리했을 때 그 말을 들은 바울의 일행과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했습니다(12절). 그 때 바울은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고 말하면서(13절) 자기는 주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다고 말했습니다(13절).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을 각오를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생명을 걸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주님의 몸 된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죽을 각오를 한 사람이었습니다. 성경 사도행전 20장 24절을 보십시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바울은 자기 생명보다 주 예수님께 받은 사명이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는 것이 자기 생명보다 더 귀하게 여겼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가치관입니까? 어떻게 바울은 자기 생명보다 주님께 받은 사명, 곧 복음 증거하는 일을 더 귀하게 여긴 것입니까? 저는 그 이유가 시편 63편 3절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바울이 주님께 받은 사명을 자기 생명보다 더 귀하게 여길 수 있었던 원인은 바로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그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깨닫고 느끼고 경험하고 있었던 바울은 그 사랑에 감사, 감격하여 주님께서 주신 사명인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침에 있어서 자기 생명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주 예수님께 받은 사명에 불타올랐던 바울, 예루살렘에서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죽을 것도 각오한 모습을 보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고 권하였던 자들은 “주의 뜻대로 이루어 지이다”하고 권면을 그쳤습니다(21:14). 그리곤 바울은 그의 일행과 여러 날 후에 행장을 준비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15절).
왠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바울의 모습 속에서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의 모습인 예수님의 모습을 봅니다(사 53:7).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갈보리 산 십자가를 향하여 사셨던 예수님, 생명이 되신 예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구원(영생)을 위하여 스스로 자기 생명을 십자가에 내어 던지신 예수님, 그는 죽기까지 하나님 아버지께 복종하셨습니다(빌 2:8). 이 예수님처럼 예수님의 사도였던 바울도 죽음을 향해서 나아갔습니다. 어떻게 이 세상에서 한 번 사는 인생을 그리도 귀하게 여기지 않았을까 생각해 볼 때 주님께 받은 사명의 중요성과 그 사명을 완수해야 함을 다시금 도전 받습니다. 사명감에 불타오르는 복음 전도자, 죽을 각오를 하고 주님께 받은 사명을 완수하고자 하는 자세로 주어진 남은 인생 살아드리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불타는 전도자와 위로자가 되길 간절히 원하는,
제임스 목사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