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은 기회입니다!

 

 

 

“환난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 지켰네 이 신앙 생각 할 때에 기쁨이 충만하도다 … 성도의 신앙 본받아 원수도 사랑하겠네 인자한 언어 행실로 이 신앙 전파 하리라 …” (찬송가 383장 “환난과 핍박 중에도”, 1절과 3절).

 

우리 성도님들이 환난을 당할 때에 신앙을 지킬 수 있다는 것,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이것이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켜 주신 우리 신앙을 생각할 때에 기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 성도님들이 환난을 당할 때에 원수도 사랑하면서 인자한 언어 행실로 이 신앙을 전파한다는 것, 이것은 성령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환난 중에 신앙을 지키는 것도 우리 힘과 능력으로 못하는 것이지만 이 신앙을 전파한다는 것은 더욱더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기쁨으로 이 신앙을 전파하게 하시는 것을 보면 이것은 분명히 성령 하나님의 역사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놀라운 성령 하나님의 복음 확산의 역사는 어느 정도인가 하면 환난 중에 있는 우리 성도님들로 하여금 죽도록 충성케 하시사 우리 성도님들의 순교를 통해서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확산케 하시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신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행 1:8).

 

성령행전이라고까지 불리는 사도행전, 사도행전 11장 19절을 보면 성경은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일어난 일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일들이란 첫째로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한 것입니다(8:4). 그 흩어진 사람들 중 한 사람인 빌립은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므로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일심으로 그의 말하는 것을 좇는 역사가 일어났고 또한 많은 귀신들린 자들과 중풍병자들이 치유를 받으므로 그 성에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5-8절). 이 소식, 즉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사마리아로 보내매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며(14-15절) 주님의 말씀을 증거하여 말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면서 사마리아인의 여러 촌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25절). 주님의 사자가 빌립에게 “일어나서 남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하여(26절) 그는 순종하여 가서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가 있는 내시(27절)에게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으로 시작하여 예수님을 가르쳐 복음을 전하므로(35절) 그가 믿음으로 그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38절). 그리고 그는 성령의 역사와 인도하심 따라 그곳을 떠나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다니며 복음을 전하였습니다(40절). 그리고 나서 사도행전 9장에 와서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일어날 그 두 번째 일이란 바로 다메섹 도상에서 사울이 변하여 구원을 받고 사명을 받되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는 일입니다(행9장). 이 일을 생각할 때 성령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주권적으로 역사하신 네 만남이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1)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만남(1-9절), (2)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와의 만남(10-19절), (3) 바나바와의 만남(26-27절), (4) 예루살렘 사도들과의 만남 (28절). 성령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만남들을 통하여 사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런 후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일어난 세 번째 일은 바로 사도행전 10장에 나오는 이방인 이달리야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인 고넬료(2절)와 그의 집에 모인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이(24절) 베드로의 설교(36-43절)를 들었을 때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내려온 것입니다(44절). 그리고 나서 오늘 본문 사도행전 11장 19절부터 시작하여 26절까지 일어난 일로서 그 네 번째 일은 바로 이방인 교회인 안디옥 교회가 세워진 일입니다. 결국 성령 하나님께서는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통하여 초대 교회 성도님들을 흩으셨고, 그 흩어진 자들은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할 새 사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시고, 이방인 고넬료와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까지 복음을 듣게 하셨으며 더 나아가서 이방인 교회인 안디옥 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환난이란 흩어져 복음을 전하는 복음 확장의 기회요, 지도자를 세우는 기회요, 하나님의 나라 확장의 기회요 또한 교회를 세우는 기회라 말할 수 있습니다. 특히 저는 사도행전 11장 19-26절을 묵상하면서 환난이란 어떠한 기회인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한 네 가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로, 환난이란 흩어져 주 예수님을 전파하는 기회요 복음 전파의 영역을 넓힐 수 있는 기회입니다.

 

성경 사도행전 11장 19-20절을 보십시오: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하는데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초대 교회 성도들이 흩어지게 되었고 그 흩어진 사람들이 여러 지역으로 흩어져 예수 그리스도의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했는데 그 중에 몇 사람은 안디옥에 이르러 이방인인 헬라인들에게도 주 예수님을 전파하였습니다. 우리는 뭉쳐서 교회 안에서 다투고 싸우고 죄를 범하기보다 오히려 환난을 통해서라도 성령님께서 우리를 흩어주셔서 우리가 두루 다니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필요가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데 우리는 한국 사람들에게만 복음을 전하기보다 외국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들의 언어를 할 줄 모른다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언어로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우리는 복음 전파의 영역을 좀더 넓힐 필요가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환난을 통해서라도 우리로 하여금 복음 전파의 영역을 넓혀주시길 기원합니다.

 

둘째로, 환난이란 주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는 참 좋은 기회입니다.

 

성경 사도행전 11장 21절을 보십시오: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초대 교회 성도들이 흩어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되 영역을 넓혀서 안디옥까지 와서 이방인에게도 복음을 전할 때에 놀라운 역사는 주님의 손이 그 복음 전파자들과 함께 하시므로 수다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주님께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 삶 속에 위기란 기회라 생각합니다. 그 위기의 기회 중 하나가 바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특히 어려움과 역경으로 인하여 내 두 손을 내려놓고 포기하고 싶을 때에 오히려 주님의 오른손이 나의 손을 붙잡고 일으켜 주시사 다시금 주님이 주신 목적에 이끌림을 받게 하시는 역사를 경험할 때 참으로 삶의 위기란 주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 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임한 환난, 그 환난을 받고 있을 때에 오히려 복음을 전파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므로 수다한 사람들이 주님을 믿고 주님께 돌아오는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체험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에게 임한 역경과 위기를 통해서라도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가지 볼 수 있길 기원합니다.

 

셋째로, 환난이란 팀 사역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성경 사도행전 11장 22절과 25-26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져 복음 전파와 복음 전파의 영역의 넓힘 그리고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 외에도 안디옥에서 일어난 수다한 사람의 구원의 역사의 소식을 예루살렘 교회가 듣고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24절)인 바나바를 안디옥에 보내므로 말미암아 안디옥 지역 복음 전파자와 예루살렘 교회 그리고 바나바가 한 팀이 되어 안디옥 복음 사역과 양육 사역을 함께 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엿보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 하나님께서는 바나바로 하여금 사울을 다소에서 데리고 오게 하여 둘이 함께 팀 사역을 일년간 하게 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25-26절). 그 결과 “큰 무리가 주께 더하”였고(24절) “안디옥에서 비로서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습니다(26절). 어쩌면 우리는 모든 것이 너무나 편해서(혹은 배가 불러서) 팀 사역을 잘 못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교회 안에서나 선교지에서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우리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주님과 이웃을 섬기지 못하므로 말미암아 복음 전파 사역과 양육 사역이 바울과 아볼로처럼(고전 3:5-9) 잘 되고 있지 않습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왜 우리는 함께 팀 사역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까? 교만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까? 왜 교만한 것입니까? 환난과 핍박이 없어서 그런 것입니까? 우리는 초대 교회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성령 하나님께서 초대 교회 성도님들을 흩으사 복음 전파케 하시고 예루살렘 교회와 안디옥 교회, 바나바와 안디옥 지역 복음 전파자들과 사울과 함께 팀 사역케 하신 것처럼 이 시대에도 환난을 통해서라도 성령 하나님께서 교회들과 사역자들을 한 팀으로 만들어 주시사 주님의 마음으로 주님이 사랑하시는 영혼들에게 다가가게 하시사 주 예수님의 복음을 전파하며 주님의 말씀을 가르쳐 잘 양육할 수 있게 해 주시길 기원합니다.

 

마지막 넷째로, 환난이란 교회를 세울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성경 사도행전 11장 26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져 복음 전파와 복음 전파의 영역의 넓히게 하시고.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면서 팀 사역을 감당하는 가운데 주님께서는 주님의 교회인 안디옥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역시 주님의 교회는 주님께서 주님의 방법으로 세우심을 엿봅니다(마16:18). 환난을 통해서라도 주님의 교회를 세우시는 이 주님의 역사를 엿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과연 우리가 환난을 맞이하였다 하여 주님의 교회를 세우는 주님의 역사에 동참하지 않고 마치 선지자 학개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중단하고 우리 각자 집에 빨라야겠습니까?(학 1:4, 9)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는 환난을 통해서라도 위기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의 이끌림을 받아 주님이 세우시는 교회를 세우는 사역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여 부지런히, 신실하게 그리고 말씀 중심과 믿음으로 섬겨야 합니다. 주님께서 주님의 교회를 세우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역경과 위기와 환난을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한 기회로 삼을 줄 아는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이 되길 원하는,

 

 

제임스 목사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