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망의 소리는 기회입니다.

 

 

 

직장이던 가정이던 교회이던 어느 조직에서나 우리는 원망의 소리를 듣습니다. 그 이유는 직장 안에서나 가정 안에서나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불만족하는 이유는 직장이나 가정이나 교회 안에 못마땅한 일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못마땅한 일들 중 하나는 어쩌면 불공평한 처사 때문일 것입니다. 결국 직장이나 가정이나 교회 안에서 우리가 듣는 원망의 소리를 불공평한 처사로 인한 불만족에서 나오는 원망의 소리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그 사실을 짐작하면서도 직장이나 가정이나 교회 안에서 원망의 소리를 들을 때 우리의 마음은 편치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어찌할 바를 모를 때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원망의 소리를 들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어떠한 기회입니까?

 

성경 사도행전 6장 1절을 보면 초대 교회에 성령의 충만한 역사 가운데 사도들이 핍박과 능욕 가운데서도(5:41)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므로(42절) 제자들이 더 많아졌습니다(6:1). 그리고 제자들이 많아졌을 때에 초대 교회 안에서는 원망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원망의 소리는 헬라 파 유대인들이(헬라어를 사용하는 이방에서 출생한 유대인들)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 파 유대인들(아람어를 사용하는 팔레스틴의 유대인들)에게 낸 소리였습니다(1절). 이러한 원망의 소리를 우리 가운데서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불공평한 일들을 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교회 안에서 구제 사역을 하는데 구제헌금이 힘들고 어려운 성도들 가운데 공평하게 나누어 지지(분배되지) 않을 때 성도님들 가운데서 충분히 원망의 소리가 낼 수가 있습니다. 그 때 우리 교회 지도자들은 그 원망의 소리를 겸허히 들어야 합니다. 듣데 우리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합니까?

 

첫째로, 성도님들의 원망의 소리를 들을 때 우리 교회 지도자들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본래 사명으로 돌아가 그 사명을 실행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성경 사도행전 6장 2절을 보면 초대 교회 지도자들이였던 열 두 사도들은 제자들을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여러분은 이 말이 좀 이상하게 들리지 않으십니까? 아니 헬라파 유대인들의 원망의 소리를 들었으면 그 열 두 사도들은 구제 사역에 있어서 불공평한 처사를 확인한 후 헬라파 유대인들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고 있었으면 빠지지 않도록 조치를 속히 내려야 하지 않았나요? 이것이 주로 우리 교회 지도자들의 반응이 아닙니까? 교회 안에 문제를 알게 되었다면 그 문제를 속히 해결해야 하는 것이 우리 교회 지도자들의 책임이 아닌가요? 그래야 교회 안에 분쟁과 분열을 막고 교회의 화목을 도모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열 두 사도들은 그리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구제 사업을 하는 것이 마땅치 않다고 모든 제자들에게 공포하였습니다(2절). 왜 그들은 그리 공포했습니까? 그 이유는 그 사도들은 주님께서 자기들에게 주신 사명이 하나님의 말씀 곧 복음을 전파하는 것인데 구제 사업을 맡아서 하다보니까 그 신령한 직분을 감당함에 있어서 지장을 받게 되었기 때문입니다(박윤선). 그래서 그들은 헬라파 유대인들의 원망의 소리를 듣고 주님께서 그들을 부르시사 주신 본래 사명으로 돌아가 그 사명을 실행하는 기회로 삼은 것입니다. 이 얼마나 지혜로운 사람들이요 성령 충만한 사람들입니까?

 

요즘 우리 목사님들, 너무나 바쁩니다. 지금 우리는 마음이 너무나 분주합니다. 분주한 나머지 지금 우리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면서 주님께서 주신 사명인 “내 (어린) 양을 먹이라”는 부르심에 순종하지 못하고/않고 있습니다(요21:15, 17). 그 원인은 지금 우리는 사명에 이끌림을 받고 있기보다 상황에 이끌림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목사님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가르치는 일에 전념해야 하는데 지금 우리는 그 외에 부수적인 일들에 너무나 많은 시간을 빼기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우리 각자의 타당하게 생각되는 이유(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 타당하게 생각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아마도 성도님들이 각자 받은 은사와 직분대로 역할을 신실하게 잘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라는 조직 안에 담임 목사나 부교역자 외에 장로님들과 안수 집사님들 및 직분자들의 역할이 각자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섬기는 직분자들이 자기의 역할을 모르고(또는 알면서도) 자기의 맡은 책임을 감당하지 못할(안할) 때에 그 부담은 거의 다 목사님들에게 가지 않나 생각합니다. 참으로 심각한 것은 성도님들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의식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 잘못된 의식이란 자기의 책임을 목사님들에게 떠 맡겨도 된다는 생각입니다. 마치 가정에서 자녀들이 자기의 책임을 회피하고 그저 모든 것을 부모님께 떠맡기듯이 요즘 교회 안에서 이러한 영적 어린 아이들로 인하여 목사님들이 하나님의 말씀 사역에 충분한 시간을 헌신하지 못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이 우리 목사님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 사역에 초점을 두지 않고 구제 사역이나 다른 교회 사역에 초점을 맞춰도 된다고 생각해서는 결코 아니 됩니다. 만일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우리는 교회 안에 원망의 소리를 들으면서 우리의 우선순위를 내려놓고 성령에서 말씀하고 있는 주님의 우선순위를 겸손히 받아들여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말씀 사역에 우선순위를 둬야 합니다.

 

둘째로, 성도님들의 원망의 소리를 우리 교회 지도자들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붙여 주신 사역자들을 세우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성경 사도행전 6장 3-4절을 보면 초대 교회 지도자들이였던 열 두 사도들은 제자들을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 초대 교회 열 두 사도들은 온 교회를 소집하여 그들에게 자기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구제 사업을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함을 공포한 후에 그 구제 사업 일을 대신 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 초대 교회 성도들은 그 열 두 사도들의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였습니다(5절). 그들을 사도들 앞에 세웠을 때 사도들은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했습니다(6절). 그리고 사도들은 그 일곱 사람들에게 구제사역을 맡겼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일곱 사람들에게 구제 사역을 위임한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들은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였습니다(4절). 이 얼마나 귀한 하나님의 은혜입니까? 구제함에 있어서 분배가 제대로 되지 않아 원망의 소리를 듣고 있었을 때 성령 하나님께서는 사도들로 하여금 초대 교회 사역자들 일곱을 세우게 하시므로 말미암아 그들과 함께 역할 분담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초대 교회 열 두 사도들은 원망의 소리를 사역자들을 세우는 기회를 삼은 것입니다. 그들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일곱 사람들에게 자기들이 하던 구제 사역을 위임을 한 것입니다.

 

요즘 우리 목사님들, 성도님들에게 위임할 줄 잘 모릅니다. 지금 우리는 우리 혼자서 교회 일들을 다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평신도 사역자들을 세워서 함께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겨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평신도 사역자들을 세우고 있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 우리 목사님들은 교회 평신도 사역자들로 하여금 주님의 일을 마음껏 하도록 하고 있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혹시 우리 안에 있는 일 욕심 때문은 아닐까요? 혹시 우리 안에 있는 잘못된 권위주의 때문은 아닙니까? 혹시 우리가 그 평신도 사역자들을 신뢰하지 못해서 그런 것은 아닌지요? 이것은 어느 면으로 보면 우리 목사님들이 우리 자신만을 믿고 있기 때문에 우리 평신도 사역자들을 믿지 못하고 있는 것인 줄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목사님들은 주님께서 함께 동역하라고 우리에게 붙여 주신 주님의 일군들을 하나님의 사역자들로 세워 그들에게 주님의 일을 위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원망의 소리를 들을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사역자들을 발굴하여 세우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초대 교회 안에서 들리는 원망의 소리로 인하여 교회 지도자들이였던 열 두 사도들이 주님께서 그들을 부르시사 주신 본래 사명으로 돌아가 그 사명을 실행하는 기회로 삼고 또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일곱 사람들을 택하여 세우는 기회로 삼으므로 말미암아 결국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고 이 도에 복종하”는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7절). 이 역사를 묵상할 때 지금 21세기 목회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우리 목사님들도 초대 교회 열 두 사도들처럼 교회 안에서 성도님들의 원망의 소리를 들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어떠한 기회로 삼아야 합니까?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으로 돌아가 그 사명을 실행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평신도 사역자들을 세우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함께 성령과 지혜와 충만하여 함께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는 일에 동역하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수님의 제자들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는 역사를 체험할 수 있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들리고 있는 원망의 소리를 하나님의 음성 듣는 기회로 삼아 순종하길 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