갇힘은 기회입니다.

 

 

 

마음이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주로 사랑하는 분들이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고 계시다가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 있는 모습을 뵐 때입니다. 상상할 수 없는 그 분들의 육신의 고통을 눈으로 직접 볼 때에 마음이 무겁고 괴로울 때가 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분들 옆에서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고 그분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하면서도 저는 특히 그 분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마음이 뭉클하면서 나오는 눈물을 참기가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사랑하는 그 분들이 우리 곁을 떠나면 하나님께서는 주시는 큰 은혜의 힘으로 장례 예배를 인도하지만 주일 아침 교회당으로 와서 그 분들의 빈자리를 보면 또 다시 그분들의 추억으로 인하여 그리움 속에 잠기곤 합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은혜는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힘들고 어려울 때일수록 하나님의 사랑을 조금 더 깊이, 많이, 크게 베풀어 주시고 계십니다. 특히 작년 말에 고 안덕일 전도사님을 하나님 아버지께 떠나 보내드리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더 많이, 더 크게, 더 깊이 경험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주신 작은 깨달음은 마음이 힘들면 힘들수록 하나님께서는 사랑을 더 많이 베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성경 출애굽기 14장 3-4절을 보십시오: “바로가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들이 그 땅에서 멀리 떠나 광야에 갇힌바 되었다 하리라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바로가 그들의 뒤를 따르리니 내가 그와 그의 온 군대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하시매 무리가 그대로 행하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나온 모세에게 하신 말씀으로써 애굽 왕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갇힌바 되었다고 생각하여 그들을 추격할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바로와 그의 군대로 통해서 영광을 얻으므로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는 내용의 말씀이었습니다. 그 말씀대로 애굽 왕 바로와 그의 신하들의 마음은 변하여(5절) 병거를 갖추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추격했지만(6-8절) 하나님께서는 바로와 그의 군대와 그의 병거와 마병을 통해서 영광을 얻으시사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셨습니다(17-18절). 즉,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바다 가운데 뒤집어엎으시되 이스라엘 백성을 뒤쫓아 홍해 바다에 들어간 전차와 마병과 바로의 모든 군대를 덮어 버렸으므로 그들 가운데 한사람도 살아남은 자가 없게 하시므로(27-28절, 현대인의 성경) “그 큰 능력을” 나타내시므로(31절) 영광을 얻으셨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갇힌바 되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무리 동서남북을 보아도 문제의 해결점이 안보일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두려움과 걱정과 불안과 극심한 스트레스 가운데서 계속해서 그 갇힌바 된 상황에서 스스로 빠져 나오려고 노력하지만 그리하면 할수록 마치 늪에 빠진 사람처럼 우리는 더욱더 깊은 늪에 빠져 절망적인 상황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그 때에 우리는 우리의 무능력함과 무기력감을 뼈저리게 느끼는 절망 가운데서 오히려 주님만을 갈망하며 주님만을 바라보며 간구하게 됩니다(참고: 욘2:4).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위기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확성기(megaphone)로 크게 말씀하시사 우리로 하여금 그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인내하며 견디게 하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사(롬8:28) 우리에게 하신 약속을 이루시므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찬양케 하십니다. 저는 하나님의 돌려 인도하심에는(출13:18)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바다 앞에서 갇힌바 된 것처럼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갇힌바 되게 하시사 우리를 막으시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성령님께서 사도 바울로 하여금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썼을 때에도 예수님의 영이 허락하시지 않았던 것처럼(행16:6, 7)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에서도 우리의 길을 막으시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성령 하나님께서 바울을 아시아로 가는 길을 막으시기도 하셨지만 마게도냐로 인도하셨던 것처럼(10절) 동일하신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의 문을 닫으실 때도 있지만 저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때에 우리에게 분명히 열어주시는 문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문이 닫히고 열리는 경우도 많지만 종종 우리의 삶에는 동서남북으로 갇힌바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갇힌바 된 사람을 생각할 때 창세기 39장에 나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옥게 갇힌 요셉이 생각났습니다(창:39:20).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워서(6절) 자기 주인인 애굽(이집트) 왕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인 보디발(1절)의 아내가 눈짓하다가(7절) “날마다”(10절) 동침하기를 청하였을 때(7, 10절)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짓지 않으려고(9절)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녀와 함께 있지도 않았습니다(10절). 그런데 하루는 요셉이 일을 하러 자기 주인의 집에 들어갔는데 그 때 그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오직 자기주인의 아내만 있었습니다(11절). 그 여인이 요셉의 옷을 잡고 “나와 동침하자”고 했을 때 요셉은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밖으로 도망하여 나갔습니다(12, 13절). 그 모습을 보고 그 여인은 집 사람들을 불러서 요셉이 자리를 겁탈하려고 했다고 거짓말을 하였고(14절) 자기 남편인 보디발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에게도 요셉이 자기를 희롱하려고 자기 방으로 들어왔다가 자기가 소리를 지르자 요셉이 옷을 자기에게 버려두고 달아났다고 거짓을 하였습니다(16-18절). 그 결과 요셉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옥에 갇혔지만(20절) 하나님께서는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셨습니다(21절). 간수장은 옥의 죄수들을 다 요셉에게 맡기고 옥 안의 제반 업무를 요셉으로 하여금 처리하게 하였습니다(22절). 그리고 그는 요셉이 책임 맡은 일에 대해서는 전혀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셔서 그로 하여금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23절, 현대인의 성경). 형통케 하시되 하나님께서는 옥에 갇힌 요셉으로 하여금 애굽 왕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하게 하시므로(40장) 바로 왕의 꿈까지 해석하여 옥에서 건짐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애굽의 총리까지 되게 하셨습니다(41장).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옥에 갇힌바 된 노예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형통케 하시되(39:2, 3, 21, 23) 그를 높이시사 애굽의 총리로 세우셨습니다(41:41).

 

저는 갇힌 반 된 사람을 생각할 때 또 생각나는 사람은 바울과 실라입니다. 그들 또한 요셉처럼 억울하게 감옥에 가둔바 되었지만 바울과 실라는 한밤중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행16:23-25). 그들이 하나님께 기도한 것은 좀 이해가 되지만 어떻게 그들은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을 찬송할 수가 있었을까요? 특히 찬송이란 만일 예수전도단의 홍성건 목사님의 말대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 행하신 일을 찬양하는 것’이라면 아직 감옥에서 기적적으로 건짐을 받지 못한 상황에서 어떻게 바울과 실라는 하나님께 찬양을 드릴 수 있었을까요? 저는 바울과 실라가 갇힌바 된 감옥에서 하나님을 찬양했다는 말씀을 생각할 때 찬양의 능력(power of praise)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찬양의 능력을 믿습니다. 결국 그들이 감옥에서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을 때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지고(26절) 그들을 지키던 간수가 죄수들이 다 도망한 줄 생각하고 자결하려다가(27절) 바울을 통하여 주 예수님을 믿어 그와 그의 온 가족 식구들이 다 하나님을 믿어 크게 기뻐했습니다(31-34절). 결과적으로 구원의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며 찬양하던 바울과 실라만 감옥에서 건져내신 게 아니라 그들을 지키던 간수와 그의 가정의 영혼도 구원해 주시사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과 영광을 나타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우리가 바울과 실라나 요셉이나 출애굽 당시 홍해 바다 앞에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인간적으로 보고 생각할 때 갇힌바 되었다 할지라도 구원의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가운데 우리의 건짐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큰 구원의 능력을 보므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길 기원합니다.

 

 

 

갇힌바 된 가운데서 우리에게 인자를 더하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을 더 많이, 더 크게, 더 깊게 경험하므로 그 하나님의 사랑에 힘입어 우리의 힘듦을 참고 견디며 인내하게 하시다가 마침내 주님의 인자하심이 우리의 생명보다 나으므로 우리의 마음과 입술로 하여금 주님을 찬양 경배케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제임스 김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