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려는 기회입니다.
제가 요즘 염려하는 것 중 하나는 우울증이나 공항 장애 및 치매로 고생하는 형제, 자매님들입니다. 또한 저는 그들을 사랑으로 돌보는 식구들을 생각할 때에도 염려가 됩니다. 저는 얼마나 힘들고 마음이 괴로울까 생각하면 마음에 걱정이 되고 염려가 됩니다. 저는 그들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면서도 염려를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성경은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벧전5:7) 저는 그 말씀을 알고 있으면서도 염려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 붙잡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난 후 돌아서면 그들이 생각날 때 또 다시 염려를 합니다. 성경 말씀대로 제 염려를 다 주님께 못 맡기고 있기 때문이겠죠. 제 믿음이 적어서 그렇고요.
성경 누가복음 12장 26절 문맥을 보면(22-34절)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22절),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29절)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1) 그 첫 번째 이유는, 우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25절). 우리가 염려한들 무슨 소용이 있나요. 아무 도움도 안 되고 아무 유익도 안 되는 염려를 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됩니다. (2) 그 두 번째 이유는, 우리는 가장 작은 일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26절). 이처럼 사소한 일도 못하면서 왜 다른 일들까지 염려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26절, 현대인의 성경). (3) 그 세 번째 이유는, 이런 것들은 모두 믿지 않는 사람들이 애써 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마6:32, 현대인의 성경). (4) 그 네 번째 이유는, 우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다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눅12:30,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가 무엇이 필요한지를 다 알고 계시기에 우리는 염려하지 말아야 하는데 우리는 염려하고 또 염려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믿음이 작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28절). 우리는 믿음이 작은 자들이기에 오늘도, 내일도 우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우리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합니다(22절).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까마귀를 생각해야 합니다(24절). 우리는 공중의 새를 보아야 합니다(마6:26). 아직도 기억납니다. 지난번에 영어사역 연합 수련회를 산으로 가서 아침에 숙소 밖 뒤 베란다에 있는 의자에 앉아 날라 다니다가 나무에 앉았다 하는 새들을 바라보면서 마태복음 6장 26절 말씀의 내용이 생각났습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그래서 저는 그 새들을 보면서 잠시나마 그 말씀을 묵상했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늘 아버지께서 새들도 기르고 계시는데 이것들보다 훨씬 귀하고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김을 받고 있는 나를(사43:4) 하나님 아버지께서 어찌 기르시지 않으시겠는가.’ 실제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저를 기르시사 저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되 풍족히 주셔서 음식이 없어서 굶은 적이 없었습니다. 또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저에게 입을 것을 공급해 주셔서 한 번도 옷이 없어서 벌거벗고 다닌 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저로 하여금 음식이나 옷이나 넘치도록 과분하게 누리면서 살게 해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런 저런 일들로 염려를 합니다. 저는 인간관계에서 상대방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까 염려합니다(마10:19). 또한 저는 “세상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까” 합니다(고전7:33). 저는 교회 일로 염려하고 근심합니다(고후11:28, 참고: 눅10:41). 교인들 중에 교회를 떠나고 예수님을 떠날까봐 염려합니다(신29:18). 특히 저는 제 자신이 사탄의 유혹에 빠질까 염려합니다(딤전3:7). 이렇게 저는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눅21:34) 또한 이렇게 세상의 염려를 하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막혀 결코 결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막4:19). 저는 이러면 안 되다는 것을 알면서도(막4:19) 지금도 여러 가지 일들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의 일 때문에도 염려를 하지만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내일(미래) 일루도 염려를 합니다. 이러한 저에게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6:34).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고 싶습니다. 모든 염려를 다 주님께 맡기면서 살고 싶습니다. 제가 염려한다고 그 염려하는 일들이 더 나아지는 것도 아닌데 왜 자꾸만 염려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가장 작은 일도 하지 못하면서 왜 다른 일들을 염려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믿음이 작아서이겠지요. 저를 귀하게 여기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제가 무엇이 필요한지를 제일 잘알고 계시다는 사실을 견고히 믿길 원합니다. 그래서 저는 더 이상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처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면서 그런 것들을 구하기에 급급하고 싶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고 싶습니다.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주님의 말씀(마6:33)을 믿음으로 붙잡고 제 마음과 기도의 우선순위를 올바르게 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저는 하나님께 굳건한 믿음을 구할 뿐만 아니라 제 믿음의 성장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더 묵상하며 주님의 음성을 듣는데 헌신하길 원합니다(롬10:17). 그러면서 저는 종종 공중에 날아다니는 새를 보려고 합니다. 또한 저는 꽃이 어떻게 자라나는가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마6:28). 그 이유는 저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새도 기르시고 꽃도 입히시는데 하물며 새와 꽃보다 훨씬 귀한 저를 아버지 하나님께서 기르시고 입혀주신다는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서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충분히 염려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막4:19) 나(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내 모든 염려를 다 맡기고(벧전5:7) 내일 일을 염려하지 않기로 결심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