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은 기회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못마땅합니다.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불편합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말할 때 자꾸만 불평합니다. 불평하지 말아야 하는데 ….

 

성경 출애굽기 17장 3절을 보면 모세에게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옵니다. 그들이 모세에게 불평한 이유는 마실 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1절).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을 때였습니다(1절). 그 때 그들은 마실 물이 없어서 모세와 다투어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고 말했습니다(2절). 그 말을 들은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고 말했습니다(2절). 그러나 목마른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에게 “어째서 당신이 우리를 이집트에서 끌어내어 우리와 우리 자녀와 가축이 다 목말라 죽게 하십니까?”라고 불평했습니다(3절). 어느 정도로 그들이 모세에게 불평을 했는가 하면 그들은 모세에게 돌을 던지려고까지 한 것 같습니다(4절). 왜 이 정로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평했을까요? 저는 그 대답을 7절 하반절 말씀에서 찾아보았습니다: “…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계신가 하였음이더라”[(현대인의 성경)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와 다투고 시험하여 ‘여호와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느냐, 계시지 않느냐?’하고 떠들어댔기 때문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에게 불평한 이유는 그들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미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 길을 걸”어서 “마라”라는 곳에 이르러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므로 모세에게 불평(원망)하였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그 쓴 물을 달게 만드신 이적(출15:22-25)을 경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또 모세에게 불평한 것입니다(17:3). 그 불평을 들은 모세는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4절). 그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나일 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서(5절) 그 지팡이로 시내 산 바위를 치라(6절)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그 말씀대로 순종하여 이스라엘 장로들이 보는 앞에서 그대로 했습니다(6절).

 

시편 37편 1, 7-8절도 보면 성경은 우리에게 불평하지 말라고 세 번이나 반복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성경은 우리에게 악인의 형통을 보고(7절) 불의를 행하는 악인들을 시기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1절).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시편 73편 말씀이 다시 생각이 났습니다. 그 이유는 수년 전에 어느 장로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왜 의인은 고통을 당하는데 악인은 형통하는지…?’라는 질문을 받은 후 하나님께서 저로 하여금 시편 73편을 묵상케 하시사 그 질문의 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악인의 형통”이란 주제를 묵상할 때마다 시편 73편이 생각이 납니다. 그 말씀을 보면 시편 기자 아삽도 악인의 형통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기 때문입니다(시73;1). 죽을 때도 고통이 없고, 힘이 강건하며(4절) 고난과 재앙도 없는 악인들(5절), 그들은 살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은 것(7절)을 보았을 때 아삽은 그 악인들을 보고 시기하여 거의 넘어질 뻔했습니다(2절). 특히 그 악인들이 항상 평안하고 재물이 더욱 불어나는 것을 보았을 때(12절) 아삽은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라고 말하기까지 했습니다(13절). 의인은 고통을 당하는데 악인은 형통하는 것을 볼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충분히 아삽이나 다윗처럼 그 악인들을 시기할 수 있습니다. 시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우리는 형통하는 악인들을 보고 분노할 수도 있습니다(37:8). 그리고 우리는 불만족 속에서 충분히 불평하고 또 불평할 수가 있습니다(1, 7, 8절). 그러나 오늘 본문 시편 37편 1, 7, 8절에서 성경은 분명히 그리고 세 번이나 우리에게 ‘불평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기 때문입니다(“it leads only to evil”)(8절, 참고: 73:15). 다시 말하면, 우리가 악인의 형통을 보고 시기하므로 불만족 속에서 불평하게 되면 죄악을 범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불평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악인의 형통을 보고 불평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악인들은 속히(37:2, 36) 끊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9, 22, 28, 34, 38절). 어느 정도로 속히 끊어질 것인가 하면 마치 푸른 채소가 속히 쇠잔하는 것처럼(2절) 악인들은 속히 끊어질 것입니다. 시편 73편을 보면 시편 기자 아삽은 그 사실을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깨닫게 되었습니다(73:17). 무엇을 깨달았습니까? 바로 악인의 종말입니다(17절). 악인의 종말은 무엇입니까? 파멸입니다(18절). 파멸이되 악인의 종말은 “갑자기” 황폐되는 것입니다(19절).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님께서 깨신 후에는 악인들을 멸시할 것입니다(20절). 여러분, 악인을 행하는 자들은 반드시 끊어질 것입니다(37:9). 주님의 저주를 받은 자들은 분명히 끊어질 뿐만 아니라(22절) 그들의 자손들도 끊어질 것입니다(28절). 그리고 그 범죄자들의 미래도 끊어질 것입니다(38절). 우리는 악인들이 끊어질 것을 똑똑히 볼 것입니다(34절). 그러기에 우리는 악인들의 형통을 보고 그들을 시기하면서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불평하지 말고 어떻게 해야 합니까? 먼저 우리는 하나님을 의뢰해야 합니다(3절).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성실을 먹을거리고 삼아야 합니다(3절). 또한 우리는 하나님을 기뻐해야 합니다(4절).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4절). 우리는 우리의 길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5절).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입니다(5절).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7절). 그 이유는 우리는 하나님을 소망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9절). 그리고 우리는 온유하며(11절) 온전해야 합니다(37절). 그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를 차지할 것이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할 것입니다(11절, 참고 37절).

 

마음에 들지 않고 못마땅하면 마음에 불만족이 생깁니다. 불만족이 쌓이게 되면 불평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불평하기 시작하다 보면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습관적으로 불평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습관적으로 불평하는 원인은 마음에 불만족 때문입니다. 그리그고 우리 마음에 불만족이 있는 것은 우리가 필요한 것이나 원하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필요한 것이나 원하는 것이 없을 때 우리는 그 필요한 것과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실 것이라는 것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은 하나님께 불평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23:1)는 믿음의 고백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면 우리는 부족할 때에도 불신 속에서 불만족하면서 불평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풍부함과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자족의) 비결을 배웠”으면(빌4:12) 우리는 궁핍할 때에도 불평하지 않을 것입니다. 심지어 우리는 사도 바울과 같이 “육체의 가시”가 주어졌다한들(고후12:7) 불평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족하기 때문입니다(9절). 족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불평하기보다 감사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응답하신 기도 감사 거절하신 것 감사 헤쳐 나온 풍랑 감사 모든 것 채우시네

아픔과 기쁨도 감사 절망중 위로 감사 측량 못할 은혜 감사 크신 사랑 감사해”

 

(”날 구원하신 주 감사”, 2절).

 

 

 

 

 

범사에 감사할 조건이 되시는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제임스 김 목사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