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약함은 기회입니다.

 

 

 

저는 뭣도 모르고 담임 목사가 되었습니다. 부목사 경험도 1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것도 제가 쭉 자라났던 승리장로교회에서 아버님께서 담임 목사님으로 섬기시고 계실 때 부목사로 딱 1년 섬긴 경험입니다. 그리고 그 경험 후 저는 탈진하여 요나처럼 아버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한국으로 도망갔습니다. 한국에 가서 서현 교회에서 교육 목사로, 그것도 영어사역을 섬기다가 나중엔 새 가정부도 좀 섬겼었습니다. 그것도 다 합쳐서 2년 9개월뿐이었습니다. 물론 담임 목사가 되는데 경험이 다는 아닌 줄은 압니다. 그저 그만큼 부족한데 주님께서는 교회갱신목회자협회 수련회 때 강사 목사님을 통하여 약속의 말씀인 마태복음 16장 18절을 주시므로 다시 승리장로교회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버님 목사님은 은퇴하시고(선교사로 섬기심) 제가 담임목사가 되었습니다. 그게 벌써 금년 12월 21일이면 5년이 됩니다. 지난 세월을 생각해 볼 때 언젠가 아내가 저에게 한 말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 ‘James, you have changed’(제임스, 당신은 변했습니다). 아내는 제가 담임 목사가 된 후 달라졌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아내의 그 말에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부인 할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제 자신을 봐도 달라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왠지 “담임 목사”라는 직분이 저로 하여금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 것 같았습니다. 전처럼 주님 안에서 형제, 자매님들과 허심탄회 하게 말도 못하고, 교제도 마음 것 못하면서 늘 교회 목양실에 있는 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담임 목사’가 뭐 길래 내가 이렇게 변했는가”하는 생각도 들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 원인 중 하나는 “담임 목사”란 직분에게 주어진 압력(pressure)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특히 정신적인 압박이 많지 않나 생각합니다. 담임 목사가 되니까 더욱더 무거운 책임감도 느낄 뿐만 아니라 제가 제 자신에게 부여하는 압력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그와 더불어 이런 저런 신경 쓰는 일들이 더욱더 많아지고, 원치 않는 스트레스도 받으면서 마음이 참 무거울 때도 종종 있습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제 마음엔 종종 눌리는 일이 있었고 지금도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오늘 새벽기도회를 준비하고자 어제 저녁에 성경을 읽다가 성경 고린도후서 11장 28절을 읽게 되었습니다.

 

오늘 성경 고린도후서 11장 28절을 보면 사도 바울의 마음에는 눌리는 일이 있었던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곧 바울이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혹여나 성도들이 연약하여 실족하게 될까 봐 염려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9절을 보십시오: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 이러한 바울의 염려, 그의 애타는 마음에는 두려움조차 있었습니다. 그 두려움이란 사단이 그리스도를 향한 성도들의 마음이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하는 두려움이었습니다(3절). 바울은 교회 성도들이 그가 전파한 예수 그리스도의 참 복음에서 떠나 “다른 복음”(4절)을 용납하여 믿음에서 떠날까봐 염려했습니다. 그가 이렇게 염려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은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 교회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13절).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니(14절) “사단의 일군들도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므로(15절) 믿은 자들을 미혹하여 진리에서 떠나 믿음을 배반하게 하려고 했기 때문에 바울은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교회 성도들을 향한 염려로 인하여 바울은 날마다 마음이 눌렸던 것입니다.

 

담임 목사에게는 이러한 마음의 눌림이 있어야 합니다. 그에게는 성도들을 향한 염려로 인하여 속에 눌림이 있어야 합니다. 혹여나 주님께서 맡겨주신 양 떼들 가운데 연약하여 가장한 사단의 일군들에게 미혹되어 믿음을 떠나 주님을 배반하지 않을까 염려해야 합니다. 물론 이 염려 외에도 목회를 하다 보면 다른 많은 염려들이 있겠지만 우리 목회자들이 제일 염려해야 할 것은 성도들의 신앙입니다. 우리는 성도들의 영혼 구원에 제일 큰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이 믿음에 견고히 서 있는지 안 있는지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염려로 인하여 우리 마음에 눌림이 있을지라도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눌린 마음을 소성케 해 주실 것(restore)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에 새 활력을 넣어 주실 것(refresh)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 마음을 부흥케 하실 것(revival)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에서 떠나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중상함과 수군수군하는 것과 거만함과 어지러운 것이 있을까 두려워”했습니다(12:20). 또한 바울은 교회가 그리스도를 향하는 깨끗함에서 떠나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의 죄를 범할까 봐 두려워했습니다(21절). 더 나아가서, 바울은 이러한 죄를 범한 후 교회가 “회개치 아니함을 인하여 근심할까 두려워”했습니다(21절). 이러한 염려와 두려움으로 인하여 바울의 마음은 눌려있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바울은 자기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더 나아가서 그가 깨닫는 연약함을 자랑했습니다(11:30). 자랑했을 뿐만 아니라 바울은 자기의 약함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기뻐했습니다(12:10).

 

교회를 향한 염려로 인하여 마음이 눌릴 때 어떻게 자기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며 기뻐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하나님께서 저의 약함을 들춰내실 때에 자신을 향한 실망과 낙망 속에서 마음이 괴로울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시편 43편 5절 말씀으로 제 영혼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합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 이렇게 제 자신의 영혼에게 부르짖어 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절 때는 자포자기 하고 싶을 때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제 마음이 아파 고통스러워 어느 누구의 위로도 거절하는 제 자신의 모습도 보곤 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자신의 약함을 오히려 자랑하며 기뻐하였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11:30, 12:10).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므로 우리의 마음이 눌릴 때(Pressure)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한 7가지로 생각해 봅니다:

 

(1) Pray (기도하십시오):

 

염려로 인하여 마음이 눌릴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고 인정하므로 하나님께 기도로 나아가야 합니다.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 우리의 약함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온전케 됨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온전한 능력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의 충족한 은혜(sufficient grace of God)를 구해야 합니다.

 

(2) Put your hope in God (당신의 소망을 주님께 두십시오):

 

염려로 인하여 우리는 마음이 눌리고 더 나아가서 들춰지는 연약함으로 인하여 낙망하고 절망할 수 있습니다. 그리할지라도 우리는 절망 속에서 오히려 하나님을 갈망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시편 기자처럼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시43:5)고 우리 자신의 영혼에게 외쳐야 합니다. 즉, 우리는 염려 가운데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소망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3) Preservation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실 줄 믿으십시오):

 

주님의 몸 된 교회에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의 신앙이 염려될 때에 하나님께 기도드리므로 그들을 다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맡기되 하나님께서 그들을 가장한 목사나 교사인 거짓 목사, 거짓 교사들로부터 보호해 주실 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교회는 주님의 교회입니다. 주님께서 세우십니다(마16:18). 그리고 주님께서 그의 교회를 보호해 주시고 지켜주실 것입니다.

 

(4) Press on (푯대를 향하여 나아가십시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장 14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바울은 외부적으로는 복음 증거하는 일을 자기 생명보다 귀하게 여겼습니다(행20:24). 그리고 그는 내부적으로 교회 성도들의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이 세상에 존재하였습니다(빌1:24). 성도들과 교회를 향한 염려로 인하여 마음이 눌릴 때에라도 우리는 사명감을 가지고 주어진 푯대를 향하여 전진해 나아가야 합니다.

 

(5) Perfection (주님의 온전함을 추구하십시오):

 

성경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 외에도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된 형제, 자매들의 온전함을 추구해야 합니다. 우리의 약함 가운데서 온전하여지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온전함을 추구해야 합니다. 주님의 교회는 온전해야 합니다.

 

(6) Persevere (인내하십시오):

 

교회를 향한 염려로 마음이 눌릴 때라도 우리는 참고 또 참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그의 몸 된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셨기에(마16:18) 우리는 그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참고 기도하며, 기대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분명히 인내의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7) Praise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염려로 마음이 눌릴 때 우리는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를 통치하시는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찬양을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의 구원의 은총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향한 염려로 인하여 마음이 눌릴 때 자신의 약함을 자랑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의 약함 속에서 하나님의 족한 은혜를 맛보았기 때문입니다(고전12:9). 다시 말하면, 바울은 자신의 약함을 오히려 자랑하며 기뻐하였던 이유는 하나님의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지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9절). 그러므로 바울은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였던 것입니다(9절). 그는 자신의 여러 약함을 자랑하므로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하여금) 내게(자기에게) 머물게 하려” 하였던 것입니다(9절). 그러므로 그는 이렇게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2:20).

 

약할 때 하나님의 능력으로 온전케 되어 그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교회를 섬겼던 바울은 자기의 여러 약함 들을 주님 앞에 내려놓고 자기를 비어 하나님의 능력으로 온전히 채워져 그 능력으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겼던 것입니다. 저도 바울처럼 제 자신의 여러 약함을 자랑하며 기뻐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으로 온전히 채워져 주님의 몸 된 승리장로교회를 섬기고 싶습니다.

 

 

 

 

연약할 때 하나님의 온전한 능력을 의지하면서,

 

 

 

제임스 목사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