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논과 다말의 아버지인 다윗도 전혀 책임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심히 간교한 요나답은 이복 누이동생 다말에 대한 애정 때문에 병이 들고 날마다 수심에 잠겨있는 암논에게 쉽게 접근하여 “침대에 누워 병든 척하고 있다가 너의 부친이 너를 보러 오거든 네 누이동생 다말을 보내 네가 보는 앞에서 음식을 만들게 해 달라고 부탁하고 너를 위해 만든 그 음식을 다말이 직접 손으로 먹여 주면 좀 나을 것 같다고 하여라”고 말했습니다. 이 꼼수에는 다말과 암논의 아버지인 다윗을 개입하게 만들어 결국에 가서는 암논이 쉽게 접근할 수 없었던 다말로 하여금 암논의 집에 오게 만들었고 그녀로 하여금 침대에 누워 병든 척하고 있는 암논에게 밀가루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자기 이복 오빠 암논이 보는 데서 과자를 만들어 암논이 누워있는 침실까지 들어가서 직접 먹이게까지 만들었습니다. 결국 다말이 음식을 먹이려고 암논에게 가까이 갔을 때 암논은 다말을 붙잡고 그녀에게 “나의 누이야 와서 나와 동침하자”고 강요했습니다. 그러자 다말은 거절했지만 암논은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다말보다 힘이 세므로 그녀를 덮쳐 강간하고 말았습니다(사무엘하 13:5-14,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아버지 다윗은 아들 암논에 대해서 너무나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 다윗은 자기 아들 암논이 이복 여동생 다말을 몹시 사랑하고 연모하고 있었던 것을 몰랐던 것 같습니다. 또한 다윗은 암논인 ‘침대에 누워 병든 척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만일 다윗이 그것을 알고 있었다면 암논이 자기에게 “동생 다말을 보내 내가 보는 앞에서 직접 음식을 만들어 나에게 먹여 주라고 하십시오”라고 말했을 때 “다윗은 다말에게 사람을 보내 암논의 집에 가서 그를 위해 음식을 만들어 주라고 지시하”지 않았어야 했습니다(6-7절, 현대인의 성경). 그 이유는 그것은 마치 고양이에게 생선을 주는 것과 같은 지시였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다윗은 다말을 사랑하고 연모하여 사모하여 병까지 든 암논에게 다말로 하여금 그의 집에 가서 그를 위해 음식을 만들어 주라고 지시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 결과로 암논은 다말을 강간했습니다(14절, 현대인의 성경). 그 책임이 아버지 다윗에게 전혀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저는 다말이 암논의 집에 가는 것은 마치 “소가 도살장으로 가는 것 같고 사슴이 올가미 속으로 뛰어들어가는 것 같았”다고 생각합니다(잠7:22, 현대인의 성경). 물론 이 모든 간교한 계획의 실행은 심히 간교한 요나답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지만 저는 암논과 다말의 아버지인 다윗도 전혀 책임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