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심케 하는 자가 아니라 위로하는 자가 되고 싶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낙심하게 하여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신 땅으로 건너갈 수 없게 하려 하느냐 … 그들이 에스골 골짜기에 올라가서 그 땅을 보고 이스라엘 자손을 낙심하게 하여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신 땅으로 갈 수 없게 하였었느니라” (민수기 32장 7, 9절).
어제 저녁에 노회 선배 목사님의 어머님이 소천하셔서 입관 예배를 드리고 장지에 갔었습니다. 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 저는 제 자신의 죽음과 장례식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생각할 때 저는 제 장례식이 오시는 조문객들을 배려하며 그 분들을 위로하는 장례식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 생각할 때 제 마음에 떠오른 두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첫번째 장례식은 제 친구의 어머님 장례식입니다. 그 사모님은 돌아가시기 전에 자신의 장례식을 준비하셨던지 장례 예배 주보에 조문객들에게 쓰신 편지 내용이 적혀있었습니다. 여탯 것 여러 장례식에 참석했었지만 그 분처럼 돌아가시기 전에 자신의 장례 예배 주보에 조문객들에게 편지를 쓰신 분은 처음이었기에 이렇게 마음에 귀한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또 다른 장례식은 저의 삼촌 목사님의 장례식입니다. 돌아가시기 전 질병으로 병원에 입원해 계셨을 때 저에게 입관예배 인도를 부탁하시면서 성경본문까지 주셨는데 그 성경본문은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였습니다(사40:1). 저 또한 이 두 분들처럼 제 장례식 때 오시는 조문객들을 위로해 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어제 장례식을 참석하면서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제 자신의 삶을 뒤돌아 볼 때 ‘과연 나는 내 이웃을 위로하며 살아가고 있는가?’라고 자문할 때 제 마음이 그리 편치 못함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제 자신의 목회를 뒤돌아 볼 때 하나님께서 저에게 맡기신 성도님들을 위로하기보다 낙심시킨 일들이 더 많치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저는 그 분들을 설교를 통해서 낙심시킨 일들이 많치 않았는가 생각되니 마음이 무겁습니다. 제가 그리 생각하는 이유는 제 설교가 본문에 충실한다는 명목아래 위로보다 책망의 설교를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잘 달리는 말에 채찍질 한다는 말을 잘 이해하지도 못하는 제 자신이 어쩌면 잘 달리지도 못하는 말에 설교로 채찍질 한 것은 아닌가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못합니다. 그래서 기도와 고민 중에 강해 설교하던 본문을 바꾸어 설교를 하고 있으면서도 과연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바르게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드니 그 또한 마음에 편치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제 자신이 오랫동안 기도해 오던 “사랑의 불타는 전도자와 위로자가 되게 하옵소서”라는 기도 제목이 왠지 부끄럽게 느껴집니다. 낙심케 하는 자가 아니라 위로하는 자가 되고 싶은데 …
오늘 본문 민수기 32장 7절과 9절을 보면 “낙심”이란 단어가 나옵니다. 7절 말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낙심케 한 자들은 바로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들로서 그들은 그들의 형제들인 다른 10지파들과 함꼐 요단강 건너 가나안 백성들과 싸우러 가지 않고 목축할 만한 장소(1, 4절)인 야셀 땅과 길르앗 땅에(1절) 거주하길 모세에게 요청하였습니다(5절). 그들은 모세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만일 당신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이 땅을 당신의 종들에게 그들의 소유로 주시고 우리에게 요단 강을 건너지 않게 하소서”(5절). 그 말을 들은 모세는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에게 “너희 형제들은 싸우러 가거늘 너희는 여기 앉아 있고자 하느냐”(6절)고 책망하면서 “너희가 어찌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낙심하게 하여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신 땅으로 건너갈 수 없게 하려 하느냐”(7절)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 후 9절에 와서 모세는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들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낙심시킨 그들의 조상들에 대해서 말하였습니다. 그 요점은 그들 또한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들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을 낙심케 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오늘 본문에 나오는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들이나 그들의 조상들이나 모두 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낙심케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던 것입니다: “보라 너희는 너희의 조상의 대를 이어 일어난 죄인의 무리로서 이스라엘을 향하신 여호와의 노를 더욱 심하게 하는도다”(14절). 상상이 되십니까? “조상의 대를 이어 일어난 죄인의 무리”로서 조상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낙심시키고 그의 후손들이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들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낙심시키는 이 모습이 상상 되십니까? 그들의 조상들은 10명의 가나안 땅 정탐꾼들의 악평(13:32, 14:35, 36)하므로 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낙심시켜(신1:28) 그들로 하여금 뱀새도록 통곡하며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게 만들었고(민14:1)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들은 많은 가축 때를 (32:1) 목축할 만한 장소(1, 4절)에서 안주하려고 하므로 요단 강 건너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는 나머지 10자피 이스라엘 백성들을 낙심시켰습니다(6-7절). 이렇게 조상의 대를 이어 일어나 죄인의 무리들은 자기들 조상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을 낙심시킨 것입니다.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의 조상인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은 10명의 정탐꾼들은 자신들만 낙심시킨 것이 아니라 그들의 불신의 보고(“악평”)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 또한 낙심케 하였습니다. 그리고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은 이스라엘 전 공동체 책임을 망각하고 자기들만 생각한 이기적인 욕구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공동체를 낙심시켰습니다. 결론적으로 그들의 조상들처럼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낙심시켰는데 그 원인은 한 마디로 말한다면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참고: 12절).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지 않으면 우리가 속해 있는 공동체 모든 사람들을 낙심케 할 수가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지 않고 불신하면 우리는 우리 형제들을 낙심케 할 수가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교회란 공동체 안에서 개인의 책임 뿐만 아니라 공동체적인 책임을 신실하게 감당하지 않을 때 우리는 주님의 몸된 교회 안에 있는 지체들을 낙심케 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낙심케 하는 자가 아니라 위로하는 자가 되십시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위로하고 계시듯이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우리 이웃을 위로하며 살아가십시다. 그러한 삶을 살아가려고 할 때 많은 고뇌와 고민와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 때마다 우리 모두 히브리서 12장 3절 말씀을 기억하며 묵상하십시다: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우리 모두 예수님을 생각하십시다. 우리 모두 우리로 하여금 낙심치 않게 하시려고 죄인들의 모든 적대감과 강한 반대를 참으신 예수님을 생각하십시다. 그리할 때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우리를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그 위로하심에 힘입어 우리 모두 온전히 주님을 따르십시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우리의 형제, 자매들을 위로해 주시길 기원합니다.
사랑의 불타는 위로자로 세움 받기를 간절히 원하는,
제임스 목사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