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나는 하나님을 믿고 있는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민수기 14장 11절).

 

 

            내가 하나님을 믿고 있는지를 스스로 알아보기 위해선 나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심히 큰 어려운 상황을 접해보면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만일 내가 지금 그러한 상황을 접했다면 나는 어떻게 반응할까?  둘 중의 하나라 생각합니다.  믿음으로 반응하던지 아니면 불신으로 반응할 것입니다.  믿음으로 반응한다는 것은 갈렙과 여호수아처럼 반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가나안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민13:30),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14:8-9).  불신으로 반응한다는 것은 나머지 10명의 정탐꾼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반응하는 것입니다.  과연 그들은 어떻게 반응하였습니까?

           

            첫째로, 10명의 정탐꾼들은 악평을 하였습니다. 

 

민수기 13장 32-33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갈렙과 여호수아 와에 나머지 10명의 정탐꾼들은 모세와 아론와 이스라엘 온 회중에에 나아와 보고하되(13:26) 그들의 보고는 하나님의 능력을 불신하고 오히려 가나안 땅 거주민과 성읍이 강함과 큼과 견고함애 짖눌려(28, 32-33절)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는 것이었습니다(32절).  그 결과 가나안 땅에 대하여 악평한 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재앙으로 죽임을 당하였습니다(37절).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있으면 우리는 분명히 10명의 정탐꾼들처럼 말할 것입니다: “… 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28, 32-33절).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상황을 큰 바위로 볼 것이요 우리 자신은 계란처럼 볼 것입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나오는 말은 우리가 보기에는 “사실”처럼 느껴지겠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악평”입니다.  이렇게 10명의 정탐꾼들처럼 불신으로 받응한다는 것은 곧 악평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10명의 정탐꾼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워하였습니다.

 

민수기 14장 9절을 보십시오: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10명의 정탐꾼들이 가나안 땅에 대하여 악평한 이유는 그들은 가나안 땅 거주민들을 보고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두려워 했기에 그들은 악평을 하였고 그들의 악평은 온 이스라엘 회중들로 하여금 두렵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갈렙과 여호수아는 악평을 듣고 두려워하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 백성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두 번이나 거듭 말하였습니다.  어떻게 그들은 이렇게 담대히 말할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그들은 “여호와는 우리와 함꼐 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9절).  다시 말하면, 갈렙과 여호수아는 임마누엘 하나님을 믿었기에 가나안 백성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믿음이 없었던 10명의 정탐꾼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워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면 우리는 우리의 인생의 접하는 “거인들”(13:33)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은 불신이란 하나님의 크심과 강하심을 바라보게 하기보다 사람들의 큼과 강함을 보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결국 불신으로 반응한다는 것은10명의 정탐꾼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밤새도록 통곡했습니다.

 

민수기 14장 1절을 보십시오: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결국 10명의 정탐꾼들의 악평으로 말미암아 결국 이스라엘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면 밤새도록 통공하였습니다(14:1).  10명의 정탐꾼들의 불신의 보고(악평)가 온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두려워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밤새도록 통곡하게 만들었습니다.  안그대로 그들은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므로 이스라엘 자손도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11:4)고 말하면서 다시 울었는데 이렇게 또 다시 그들은 통곡한 것입니다.  이 얼마나 무익한 눈물입니까?  이렇게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였던 10명의 정탐꾼들은 악평을 하였고 그 악평으로 인하여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통곡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면서 큰 바위를 접하게 되면 우리는 분명히 우리 자신을 계란처럼 여길 뿐만 아니라 악평을 하므로 우리가 속해 있는 공동체 모두에게 악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툭히 우리가 교회를 대표하는 사람이던지 지도자들이라면 그 악영향은 더 클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온 공동체 사람들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께 간구케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 눈물은 유익하지 않은 눈물이겠지만 서두요.  과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통곡의 기도도 들어주실까요?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불신으로 반응한다는 것은 곧 통곡하는 것입니다.

 

넷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였습니다.

 

민수기 14장 2-4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결국 10명이 정탐꾼들은 두려움 속에서 자신의 악평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두려워하게 하고 밤새도록 통곡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1절) 또한 온 회중들로 하여금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게 만들었습니다(2, 36절).  원망하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젠 “애굽 땅에 죽었”으면 좋겠다고만 말하지 않고 더 나아가서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앗을 것을”(2절)이라고까지 원망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가나안 족속들의 칼에 쓰러지게 하시고 자기들의 처자를 사로잡히게 하시려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한다고까지 원망하였습니다(3절).  이게 말이 됩니까?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10명의 정탐꾼들의 악평을 듣고 두려움 속에서 밤새 통곡하면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였습니다.  원망하되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다운 가나안 땅은 이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들어가고 싶은 약속의 땅이 아니라 그들이 “싫어하던 땅”(31절)이 되었습니다.  자기들이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그 땅에 살고 있으닌까 이젠 그 땅도 싫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오히려 노예 생활하던 애굽을 그리워하며 그 애굽 땅으로 돌아가려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말로만 애굽 땅으로 돌아가자고 원망 속에서 말한 것이 아니라 이제 그들은 구체적으로 계획까지 세웠습니다.  그 계획이란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4절)였습니다.  그들의 지도자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모세였는데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을 애굽 땅으로 인도할 다른 새 지도자를 자기들이 세우고자 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를 원망합니다.  원망하는 가운데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지도자를 세웁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세운 지도자로 하여금 우리가 원하는 곳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길 기대합니다.  그 이유는 불신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를 거부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시고자 하시는 약속의 선물도 거부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27절).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원망할 때 참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원망의 소리까지도 들어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불신으로 반응해서는 아니됩니다.  불신으로 반응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를 원망하는 것입니다.

 

다섯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거역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였습니다.

 

민수기 14장 9절 상반절과 41절을 보십시오: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  모세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제 여호와의 명령을 범하느냐 이 일이 형통하지 못하리라.”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갈렙과 여호수아의 믿음의 보고를 믿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히려 두려워하는 10명의 정탐꾼들의 불신의 보고인 악평을 믿고 두려움과 원망 속에서 통곡하며 한 지휘관을 세워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 때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들에게 “다마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고 권면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온 회중의 그들의 권면을 듣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돌로 치려 하였습니다(10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가나안 족속들을 두려워하므로 결국 하나님을 거역하였습니다(9절).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것입니다(41절).  이렇게 결국 불신의 쓴 열매는 불순종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할 때에 우리는 악평하고 두려워하며 통곡하며 또한 원망 속에서 하나님을 거역하며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합니다.  불신으로 불만족 속에서 불평하게 만들며 결국에 가서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게 만듭니다.  불신으로 반응한다는 것은 결국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이렇게 불신으로 반응한다는 것은 악평하는 것이요, 두려워하는 것이요, 통곡하는 것이요, 원망하는 것이요 또한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에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입니다(11, 23절).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22절).  과연 나는 하나님을 믿고 있는가 다시금 제 자신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믿음의 진보를 추구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