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도 놀랍게 여기시며 칭찬하신 믿음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 (누가복음 7장 9절).

 

 

            언젠가 고민이 있어 제 아버님 목사님께 찾아가서 상담을 받았을 때 저에게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물질을 초월해라.’  그 때 그 권면의 말씀을 들었을 때 저는 제 자신의 한계를 먼저 인정하면서 제가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을 기도로 하나님께 맡기기로 마음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이렇게 초월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 이유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7장 9절 말씀 배경에 나오는 “어떤 백부장”(2절) 때문입니다.  그의 믿음이 어떠한 믿음이었길래 예수님께서도 놀랍게 여기시고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9절)고 따르는 무리들에게 말씀하셨는지 궁금하여 묵상하면서 박윤선 박사님의 주석을 보는 가운데 저는 이 백부장의 믿음을 세 가지를 초월한 믿음이라는 결론을 내려 보았습니다.

 

            첫째로, 예수님께서도 놀랍게 여기시며 칭찬하신 믿음은 민족을 초월한 믿음입니다.

 

            누가복음 7장 5절을 보십시오: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  오늘 본문에 나오는 “어떤 백부장”(2절)은 유대인이 아닌 로마인으로서 자기 아래에도 (백명의) 병사들이 있는 로마 군인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예수님께 보냈습니다(3절).  그 이유는 이 백부장이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기에(2절) 그는 예수님을 청하여 그 종을 구해 주시길 원하였기 때문입니다(3절).  예수님을 만난 그 유대인 장로들은 예수님께 나아가 간절히 구하였습니다: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4-5절).  놀랍지 않습니까?  유대인 장로들이 그 로마 백부장에 대해서 예수님께 말한 내용이 놀랍지 않습니까?  상상해 보십시오.  만일 일제 시대 때 어떤 일본 군인이 한국 민족을 사랑해서 한국 기독교인들을 위하여 교회당을 지어줬다면 한국 기독교인들이 그 일본 군인을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오늘 본문 누가복음 7장에 나오는 유대 장로들처럼 그 한국 기독교인들도 그 일본 군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 ‘그는 우리 한국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교회당을 지어주었습니다’?  저는 이 로마 백부장을 생각할 때 먼저 자기의 종을 사랑했다는 그 사실이 좀 놀랐습니다.  그 이유는 그 종은 분명히 로마인이 아니라 유대인이었을 텐데 아무리 그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다 할지라도 그는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소자 한 사람을 사랑했던 그 로마 백부장은 유대 민족을 사랑하여 그들을 위하여 회당까지 지어주었다는 사실은 그는 민족을 초월한 사랑을 한 믿음의 소유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민족을 초월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사랑한다는 우리들은 타민족을 향한 편애가 없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으로 모든 민족을 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는 육적으로나 영적으로 병들어 고통당하는 타민족 사람들을 사랑하여 그들에게 하나님의 치유의 능력이 나타나길 기도할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여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길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 교회는 다양한 민족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어 다양성 속에서 통일성을 지켜 나아가야 합니다.

 

            둘째로, 예수님께서도 놀랍게 여기시며 칭찬하신 믿음은 환경과 지위와 위치를 초월한 믿음입니다.

 

          누가복음 7장 6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함께 가실새 이에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병들어 죽게 된 자기 종을 사랑하여 예수님께 유대인의 장로들을 보내어 그 종을 구해 주시길 청한 로마 백부장은 예수님께서 자기 집으로 가까이 오셨을 때 자기의 벗들(친구들)을 예수님께 보냈습니다(6절).  그리고는 예수님께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6절).  왜 그 백부장은 자기 벗들을 통하여 예수님께 이렇게 말을 한 것입니까?  그 이유는 그는 겸손하였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가 교만했다면, 그리고 그가 예수님을 그저 한 유대인 목수의 아들로만 생각했더라면 그는 예수님에게 그리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도 자기는 유대를 다스리고 있는 로마 나라의 백부장인데 유대인 예수가 마땅히 오라하면 자기 집에 와서 자기가 원한는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로마 백부장은 자기의 위치와 지위를 초월하여 예수님이 자기 집에 들어오심을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말하였습니다.  더 나아가서, 그는 예수님께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다(7절)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있었기에 그 주님 앞에서 겸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접한 환경을 초월해야 합니다.  그 환경을 주권 속에서 디자인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우리는 그 환경을 초월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지위나 위치를 초월해야 합니다.  초월하되 우리는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모신 자들로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람들 앞에서도 겸손해야 합니다.  결코 우리는 자기의 위치나 지위를 내세우면서 자만심을 가져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셋째로, 예수님께서도 놀랍게 여기시며 칭찬하신 믿음은 시간과 공간의 거리를 초월한 믿음입니다.

 

            누가복음 7장 7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유대 민족을 사랑하고 자기의 종을 사랑하여 그 죽어가는 종의 병을 고치고자 예수님께 유대 장로들 뿐만 아니라 자기의 벗들까지 보낸 로마 백부장은 그 벗들을 통하여 예수님께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라고 구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그는 예수님께서 말씀만 하셔도 자기 하인이 죽을 병에서 나을 줄 믿었기 때문입니다.  참 놀라운 믿음이 아닙니까?  시간과 공간의 거리를 초월한 이 백부장의 믿음이 놀랍지 않습니까?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의 능력을 믿을 뿐만 아니라 그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믿는 그 믿음은 참 놀라운 믿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로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만져주신던지 안수해주시던지 해서 그들의 질병을 고쳐주시길 원하였을텐데 이 로마 백부장은 주님께서 말씀만 하셔도 자기의 종이 죽을 병에서 나을 줄 믿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소유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시간과 공간의 거리를 초월한 믿음을 소유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믿음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작은 자들아”(마6:30; 8:26; 16:8; 눅12:28),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마14:31),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마17:20), “너희의 믿음이 어디 있느냐”(눅8:25),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막4:40),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막16:14),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20:27).  예수님께서는 그의 제자들의 믿음을 보시고 한번도 칭찬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그 제자들의 믿음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7장에 나오는 로마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놀랍게 여기시고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놀랍게 여기시고 칭찬하신 백부장의 믿음, 그의 믿음은 민족을 초월한 믿음이요 환경과 지위와 위치를 초월한 믿음이요 또한 시간과 공간의 거리를 초월한 믿음이었습니다.  그러한 믿음을 소유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길 기원합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막 9:24),

 

제임스 김 목사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