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기에 …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 (말라기 1장 2절 상반절).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교회를 사랑하십니다.  사랑하시되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 교회가 그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고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까요? (말1:2)

 

            첫째로, 우리 교회 장로들(가르치는 장로인 ‘목사’와 치리하는 장로인 ‘장로’)은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할 것입니다.

 

           말라기 1장 6절을 보십시오: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우리 교회 장로들이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고 있다면 우리 교회 장로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할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 장로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할 것입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합당한 예배를 드리지 않을 것입니다(7-14절).  이스라엘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제단에 “더러운 떡”(7절)과 “눈 먼 희생제물”, “저는 것”, “병든 것”(8절), “훔친 물건”을 봉헌물로 드렸습니다(13절).  드리되 그들은 “이 일이 얼머나 번거로운고 하며 코웃음”을 치면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13절).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8절),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9절),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10절), “희가 이같이 봉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13절).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제사장들에게 이렇게까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10절).  그 이유는 이스라엘 제사장들은 주님을 더럽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7, 12절).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라고 말하였습니다(7절).  즉, 이스라엘 제사장들은 자기들이 주님을 더럽히며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하고 있는 줄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 장로들은 하나님의 크신 이름을 멸시하고 있는 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장로들은 주님을 더럽히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들은 입술로는 하나님을 “아버지” 또는 “주님”이라고 부르면서도 우리들은 마음으로는 그 아버지 하나님을, 그 주님을 공경하며 두려워하지 않고 있습니다(6절).  지금 우리들은 하나님의 전에 올라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 “더러운 떡”과 “눈 먼 희생제물”, “저는 것”과 “병든 것” 및 “훔친 물건”을 봉헌물로 드리고 있으면서도(7, 8, 13절) 주님을 더럽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들은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헛되이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10절).  오죽 하셨으면 주님께서는 우리 중에 예배당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10절). 

 

            둘째로, 우리 교회 평신도들은 하나님을 괴롭게 할 것입니다.

 

            말라기 2장 17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롭게 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롭혀 드렸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모든 악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좋게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하며 또 말하기를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함이니라”.  우리 교회 평신도들이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고 있다면 우리 교회 평신도들은 하나님을 괴롭게 할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 평신도들은 하나님을 괴롭게 할 것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에 불순종할 것입니다(10-16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각 사람이 자기 형제에게 거짓을 행하여 우리(그들의) 조상들의 언약을 욕되게 하”였습니다(10절).  또한 그들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중에서는 가증한 일을 행하였으며 유다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시는 그 성결을 욕되게 하여 이방 신의 딸과 결혼”을 하셨습니다(11절).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다시는 너희의 봉헌물을 돌아보지도 아니하시며 그것을 너희 손에서 기꺼이 받지도 아니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13절).  그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찌 됨이니이까”(Why?)라고 말하였습니다(14절).  그들은 아직도 왜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봉헌물을 받지 않으시는지 자기들의 죄를 깨닫지 못하엿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괴롭게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17절).  특히 그들은 말로 “모든 악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좋게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라고 말하므로 하나님을 괴롭게 하고 있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17절). 

 

            지금 우리 교회 평신도들은 하나님을 괴롭게 하고 있는 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평신도들은 행동으로 거짓을 행하므로 언약을 욕되게 하며(10, 11절) 불신자들과 결혼하므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그 성결을 욕되게하고 있습니다(11절).  그리고 지금 우리 평신도들은 말로 “모든 악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좋게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라고 말하므로 하나님을 괴롭게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들은 우리 자신들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행악자를 기뻐하시는 줄로 오해하고 있고 또한 하나님께서 공의를 행하시지 않는다고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에게 대한 우리의 오해로 말미암아 괴로움을 받으시고 계십니다(박윤선). 

 

            셋째로, 우리들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할 것입니다.

 

            말라기 3장 8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우리가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고 있다면 우리들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할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들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할 것입니까?  우리는 온전한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지 않을 것입니다(9-10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온전한 소산의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하나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지 않았습니다(10절).  그들은 하나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않았습니다(7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더러 그 소산의 십일조를 바치라고 하셨는데도 말입니다.  그 소산을 주신 이가 하나님이시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전부를 요구하셔도 합당하시지만 다만 십분지 일을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레위 족속의 사용할 것을 공급하시기 위하셔 이스라엘 백성들의 소산인 곡식, 술, 기름 양 떼와 소떼의 처음 난 것 등에 대한 십일조를 바치라고 하신 것입니다(레27:30; 민18:20-24; 신14:22)(박윤선).  그러나 하나님꼐 속한 십일조를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과 같은 죄입니다(박윤선).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들은 온전한 십일조를 하나님께 바치고 있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는 우리의 물질이 하나님의 소유임을 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물질을 주신 이가 하나님이시요 그 물질의 주인이 우리가 아니라 주님이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 것처롬 생각하고 우리 뜻과 우리 마음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온전한 십일조를 하나님께 바치고 있지 않는 원인은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무슨 믿음이 없습니까?  바로 우리의 십일조로 “나(하나님)을 시험하여 내가(하나님께서) 문을 열고 너희(우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고자(10절)하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 돌아가리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7절).  그런데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라고 하나님께 묻고 있습니다.  즉, 우리는 우리가 범하고 있는 도둑질을 죄로 여기고 있지 않기 때문에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갈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습니다.

 

            넷째로, 우리들은 완악한 말로 하나님을 대적할 것입니다.

 

            말라기 3장 1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우리가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고 있다면 우리들은 하나님의을 대적할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들은 하나님을 대적 할 것입니까?  바로 우리의 완악한 말로 우리들은 하나님을 대적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고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의 완한한 말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었으면서도 그 죄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그들의 완악한 말이란 말라기 3장 14-15절에서 이렇게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서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함이라”.  아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죄 때문에 금식하는 것과 같은 것)(박윤선)이 유익이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14절)  어떻게 교만한 자가 복을 받는다고 말할 수 있으며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창성)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15절)  더 나아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그들이 악을 행하면서 하나님이 심판하시는가 보자하며 의심함)가 화를 면한다고 말하였습니다(15절, 박윤선).   이렇게 그들은 악한사상을 가지고 완악한 말로 하나님을 대적하였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이렇게 완악한 말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다라고 말하고 있으며(적어도 생각하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음) 또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 우리 자신에게 유익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그렇게 말하는 교인들도 있음).  지금 우리들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교만한 자를 부러워하고 있습니다(시73:3).  또한 지금 우리들은 악을 행하는 자는 창성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말3:15).  지금 우리들은 악인은 “죽는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건강하며 타인과 같은 고난이 없고 타인과 같은 재앙도 없”을 뿐만 아니라(시73:4-5)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 하”되(12절) “저희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지나”는 것을(7절) 보고 우리들은 그들을 질시하고 있습니다(3절).  그러면서 우리들은 “내가 내 마음을 정히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13절)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교만한가 복되다,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한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말3:15)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말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완악한 말들이요 우리는 지금 그러한 완악한 말들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습니다. 

 

            왜 지금 우리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하며, 하나님을 괴롭게 하며,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하며 또한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우리가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말1:2).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기에 이러한 죄들을 하나님께 범하고 있으면서도 우리의 죄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들에게 지금 하나님께서는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3:7)고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말로다 형용할 수 없는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더욱더 깊이, 더욱더 넓히, 더욱더 많이, 더욱더 높게 깨닫길 기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