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하시는 하나님의 약속

 

 

“내가 너를 향하여 질투하리니  …” (I will direct my jealous anger against you)  (에스겔 23장 25절 상반절).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이 질투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특히 사랑하는 아내가 남편보다 다른 남자를 더 사랑할 때 그 남편은 당연히 질투해야 합니다.  질투하되 그 남편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왜 이렇게 그 남편은 질투하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그는 그의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가 질투하는 목적은 그가 사랑하는 아내를 다시금 자기에게로 돌이켜 부부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그는 질투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에스겔 23장 25절 상반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질투하시고 계십니다.  누구를 향하여 하나님을 질투하고 계시는 것입니까?  바로 두 여인을 향하여 입니다(2절).  그 두 여인은 “애굽에서 행음하되 어렸을 때에 행음”한 여인들입니다(3절).  이 두 여인의 이름은 오홀라와 그의 동생 오홀리바입니다(4절).  여기서 오홀라는 사마리아요 오홀리바는 예루살렘입니다(4절).  즉, 오홀라는 북쪽 이스라엘 열 지파를 가리키며 오홀리바는 남쪽 유다 두 지파를 가리킵니다.  북쪽 이스라엘 열 지파들은 하나님께 속하였으면서도 그들의 이웃인 앗수르 사람들을 사모하며 그들과 연애하여 그들과 행음하였습니다(5절).  즉, 북쪽 이스라엘 열 지파들은 앗수르의 화려함과 그 권세의 강대함에 끌려 하나님 보다 앗수르를 더 의지하여 살고자 하였습니다(박윤선).  그리고 그들은 앗수르의 모든 우상들로 자신들을 더렵혔습니다(7절).  이러한 행위를 하나님께서는 음행과 같이 간주한 것입니다(박윤선).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북쪽 이스라엘 열 지파들을 향하여 질투의 분노를 하시사 결국 그들이 믿고 의지하던 앗수르의 손으로 벌하셨습니다(9-10절).  이 심판의 행위를 보고도 남쪽 유다 두 지파들은 북쪽 이스라엘 열 지파들보다 음욕이 더하여 더 심하게 간음하였습니다(11절).  남쪽 유다 두 지파들은 하나님보다 다른 이방 나라들을 의지하였는데 그것도 나라 하나가 아니라 앗수르(12-13절)와 바벨론(14-18절)과 애굽(19-21절), 이렇게 세 나라들을 의지하여 영적 간음행위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남쪽 유다 두 지파들도 자기 자신들을 더렵혔습니다(17절).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남쪽 유다 두 지파들을 향하여 질투의 분노를 하시사 그들이 믿고 의지하던 바벨론 사람들을 일으켜 유다를 침략하도록 하셨습니다(22절).  왜 하나님께서는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에게 질투의 분노를 쏟아 부신 것입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향한 분노를 풀기 전에는 그들의 더러움이 다시 깨끗하여지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24:13).  이렇게 질투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러한 약속의 말씀을 주시고 계십니다: “이와 같이 내가 네 음란과 애굽 땅에서부터 행음하던 것을 그치게 하여 너로 그들을 향하여 눈을 들지도 못하게 하며 다시는 애굽을 기억하지도 못하게 하리라”(27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더 이상 행음하지 않게 만들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다른 나라를 의지하는 것을 그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를 향하여 질투하고 계십니다.  그 이유는 지금 우리 교회가 세상의 화려함과 그 권세의 강대함에 끌려 하나님보다 이 세상을 더 의지하고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순결을 더럽히고 있는 우리를 향하여 질투의 분노를 쏟지 않으시고 오히려 하나 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님께 다 쏟아 부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하시사 우리 교회를 향하신 모든 질투의 진노를 예수님께 쏟아 부신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영적 음행의 죄를 사해주시고 우리를 깨끗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신랑되신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거룩한 신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는 신랑되신 예수님의 재림를 학수고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질투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