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앙을 통하여 얻는 평안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예레미야 29장 11절).

 

 

            우리는 “복”하면 좋아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 우리에게 축복을 해주면 참 좋아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재앙”하면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재앙이란 우리가 뜻하지 아니한 불행한 사고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재앙을 싫어합니다.  욥의 아내가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는 재앙을 만난 자기 남편 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기와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는 모습을 보고(욥2:8)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9절).  그 때에 욥은 그의 아내에게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10절)라고 말하였습니다.  어떻게 욥은 하나님께 복뿐만 아니라 재앙도 받았을까요?  저는 이 질문을 던질 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 재앙을 받는 것이 사단에게 복을 받는 것보다 더 낫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여 악에서 떠난(1:1) 욥에게 재앙을 내리신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께서는 사단이 욥에게 내리는 재앙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단이 욥에게 내리는 재앙을 통하여서도 욥에게 큰 복을 주셨습니다.  그 큰 복을 생각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욥에게 “처음 복보다 더 하게”하신 것(42:12), 즉 양 일만 사천과 약대 육천과 소 일천 겨리와 암나귀 일천과 아들 입곱과 전국 중에 아리따운 여자인 딸 셋(12-15절)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축복은 욥이 주님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다가 이제는 눈으로 주님을 뵈온 것입니다(5절).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사단이 욥에게 내린 재앙을 통해서도 욥에게 더 큰 복을 주셨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복을 주시길 원하셨지 결코 재앙을 내리시고자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본문 예레미야 29장 11절을 보면 우리는 유다 백성을 향하신 하나님의 생각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생각은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그들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19절).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선지자들을 꾸준히 보냈으나 유다 백성들은 그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19절).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들에게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그들을 뒤따르게 하셨습니다(18절).  더 나아가서 그들을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어 학대를 당하게 하셨으며 그들을 좇아낸 나라들 가운데에서 저주와 경악과 조소와 수모의 대상이 되게 하셨습니다(18절).  왠지 이 말씀을 생각할 때 지금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지 않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메시야)로 영접지 아니하므로 흩어져 여러 나라에게 “저주와 경악과 조소와 수모의 대상”이 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예레미야 시대 때 유다 백성들 뿐만 아니라 21세기 유대인들도 동일한 하나님의 재앙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습니까?  지금도 온 세계의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은 반유대주의자들에게 저주와 경악과 조소와 수모의 대상이 되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불순종하는 유대인들을 법에 따라 징계하시되 결코 그들을 무죄한 자로 여기시지 않았던 것입니다(30:11).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약도 없고 처방도 없는 상처를 주셨습니다(13절).  악행이 많고 죄가 많기 때문에 그들의 원수가 당할 고난을 유다 백성들이 받게 된 것입니다(14절).  그러나 이 잔인한 징계로(14절) 상처를 입은 유다 백성들은 자신들의 많은 악행과 허다한 죄를 깨달아 자복하며 회개하기보다 자기들의 상처 때문에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15절).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너는 어찌하여 네 상처 때문에 부르짖느냐”고 물으셨습니다(15절).  받은 상처로 인하여 자신들의 죄를 깨달고 회개했어야 하는데 유다 백성들은 고통스러운 상처 때문에 하나님께 부르짖은 것입니다.  즉, 그들은 죄 때문에 하나님께 부르짖지 않고 자신들의 상처 때문에 하나님께 부르짖은 것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29:12) 약속을 해주셨습니다: “… 내가 너의 상처로부터 새 살이 돋아나게 하여 너를 고쳐 주시라”(30:17).  약도 없고 처방도 없는 상처를 하나님께서는 고쳐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들을 환난에서 구하여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7절).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있어 그들을 구원해 주시사(11절) 그들에게 태평과 안락을 누리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10절).  그 결과 유다 백성들에게서 감사하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자들의 소리가 나오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19절).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존귀하게 하시며(19절) 그들 중에서 영도자(통치자)가 나오게 하시겠다(21절)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약속입니까?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들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시길 원하셨습니다(29:11).  이 미래와 희망을 얻기 위해서 유다 백성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했습니까?  그들은 하나님께서 내리신 재앙을 통하여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켰어야 했습니다(26:3).  그들은 그들의 길과 행위를 고치고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해야 했습니다(13절).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시며 또한 평안을 주셨을 것입니다(29:11).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 만을 주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재앙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께서는 재앙을 통해서라도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복이란 평안입니다.  그 복이란 미래와 희망입니다.  이 복을 얻기 위해선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리신 재앙을 통하여 죄의 길에서 돌이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재앙을 통하여서라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누리길 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